[쥰이바]이웃집 남자
이웃 남자와 만나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분 남짓이 다였다.
CP : 쥰이바
키워드 : 옆집, 이웃, 일상? , if :: 아이돌이 아닌 세계선
*퇴고없음, 자기 전에 생각나는 대로.
쥰이 하품을 하며 문을 닫았다. 7시 49분. 조금 이르지만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면 딱 8시 5분 쯤 학교에 도착한다. 급하게 찬 손목 시계를 만지작 거리며 엘리베이터로 가니 문이 열려있었다.
"빨리 안들어오고 뭐합니까."
엘리베이터 안엔 늘 보던 붉은 머리카락, 안경 그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다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남자였다. 회사원인지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곤 했다. 의아한 점이 있다면 남자는 차림새와 달리 등에 커다란 기타케이스—쥰은 사실 저것이 기타케이스인지 첼로케이스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물어보면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늘 것 같아서 언제나 짐작만 했다.—를 매고 있었다. 쥰이 고개를 까딱이며 감사하다고 말을 덧붙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곧장 닫혔고 13층, 12층 … 3층, 2층, 1층.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 …"
그리고 남자는 언제나 자신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 자가용에 탑승하고 그걸로 끝이다. 이웃이긴 했으나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이걸 대화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를 제외하면 쥰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웃의 남성이 몇 세 인지, 무슨 일을 하는 지 또 언제 이사왔는지도 말이다. 남자는 쥰의 가족이 이사오기 전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아는 것이라곤 언제나 정장차림에 기타케이스를 등에 매고 있다. 그리고 쥰,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출근한다는 점일까.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일까 아니면 어디 밴드에 소속된 기타맨일까. 쥰의 하교시간과는 겹친 적이 없었기에 남자가 언제 귀가하는진 잘 모르겠다.
그저 싸늘한 표정과 높은 콧대 위에 올려진 안경, 그리고 목을 살짝 덮을 정도의 붉은 머리카락과 자신을 노려보는 푸른 눈이 한참동안 생각났다. 쥰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딱 3분. 고작 3분의 만남은 처음 입에 뜯어 넣은 솜사탕처럼 강렬했다.
"웃기지도 않아. 3분이면 컵라면이 겨우 익는 시간인데 말이죠."
녹초였다. 쥰이 터덜터덜 자전거를 끌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다. 왼쪽 손목을 힐끔보니 벌써 새벽 두 시다. 열아홉살의 학생이 하교하기엔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사유는 간단 명료했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친척의 부탁으로 아이와 놀아준 탓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받은 용돈이 제법 묵직했다. 쥰은 자전거를 주차해두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이 돈으로 다음달에 나오는 새로운 워치를 사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14층 버튼을 눌렀다. 닫힘버튼까지 꾹 눌렀고 엘리베이터 문이 매끄럽게 닫히려던 찰나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쥰의 시야로 검은 장갑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은 그 손 때문에 닫히려던 문이 도로 열렸다. 시간도 시간이었고 엘리베이터 밖이 어두웠다. 혈기왕성한 고3 남학생임에도 덜컥 겁이 나서 입술 아래를 물었다. 뭐, 뭐지?
"하… 이웃의 정을 이렇게 돌려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쥰의 상상과 달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건 옆집의 남자였다. 남자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엘리베이터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등에 매고 있던 기타케이스는 손에 들려있었다. 아, 저거 손잡이도 있었구나.
"아, 죄송해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민첩해서 상황을 타개했으니까요 뭐."
남자의 말은 묘하게 사람 마음에 가시를 콕콕 찔렀다. 힐끔, 시선을 돌리니 출근 때와 달리 남자의 모습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언제나 다 잠그던 셔츠 단추는 위에 서너개가 풀려있었다. 아침엔 보지 못했던 검은 장갑이 손을 덮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반묶음을 하고 있었다.
"회사원이세요?"
"?"
쥰의 질문에 남자가 놀란 듯 휙, 고개를 돌려 쥰을 쳐다보았다. 하하. 하고 짧게 웃었고 기타케이스를 들지 않은 쪽의 손등으로 턱 아래를 닦아냈다.
"뭐, 큰틀에서 보자면 비슷하겠네요. 그러는 그쪽은 교복을 입고 있으니 학생이겠군요. 시간이 상당히 늦었습니다만 불량한 쪽의 학생 ... 뭐 그런겁니까?"
이 남자는 꼭 한마디에 순순히 답하질 않았다.
"아니거든요? 아저씨 원래 성격 이래요?"
… … ? 대답이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띵!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가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동안 여전히 남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뭐지, 기분이라도 상했나. 쥰은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도어락을 열었다. 비밀번호를 다 입력하고 문을 열자 옆집의 문도 동시에 열렸다. 그때였다.
"아저씨 아니고, 성격은 원래 이럽니다. 이렇게 보여도 아직 28살이라고요."
쾅!
그게 끝이었다. 아니 근데 28살이면 아저씨 아닌가?
이바라의 일상은 단순했다. 6시 기상. 10분까지 침대를 정리하고 이후 40분까지 샤워를 한다. 50분까지 머리카락을 말린 뒤 가볍게 옷을 입고 짐을 챙긴다. 이후 7시 무렵에 아침을 먹는다. 주로 시리얼을 먹지만 오늘은 토스트기에 식빵 두개를 밀어넣고 계란후라이를 구웠다.
식탁에 앉아 스틱형 블랙커피 한 잔과 식빵 그리고 계란 후라이를 먹는다. 20분에 일어나서 먹은 것을 치우고 마지막으로 짐을 다시 체크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7시 45분이다. 현관으로 가서 로퍼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러간다. 하지만 … …
"또…"
이웃집엔 시건방진 꼬맹이가 산다.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들쭉날쭉한 이 꼬맹이는 아무래도 인근 고등학교의 학생인 듯 했다. 이제 이사 온 지 반년이었나. 이바라는 이 옆집의 남자애때문에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있었다. 1분에서 길게는 2분. 이 옆집 남자애는 시간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미묘한 오차가 있었지만 보통 그쯤 기다리면 왔다. 봐라, 이번에도.
"빨리 안들어오고 뭐합니까."
결국 모난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냥 먼저 갔어도 됐겠지만, 그랬다간 괜히 엘리베이터 기동 전력만 더 소모가 될 터였다. 이바라는 언제나 합리, 그리고 이성을 중요시 여겼다. 무엇보다 이웃과의 불화와 갈등은 피곤했으니까. 등에 맨 기타케이스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오늘 일은 특히 고된 일이라 어제부터 스트레스로 위가 따끔거렸다. 힐끔, 옆을 쳐다보니 남자애의 손목이 보였다. 왼쪽 손목에 반짝 거리는 사물이 보였다.
'시계겠군.'
시계를 차고 있는데 왜 항상 묘한 시간에 나오는 거지? 그런 생각이나 하던 찰나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들렸다. 남자애는 늘 자전거 주차대로, 그리고 자신은 차량의 주차 위치로 이동하면 그게 끝이었다. 중간 중간 멈춰서 사람이 타는 시간까지 더하면 남자애와 만나는 시간은 고작해야 5분 남짓이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해체된 총기를 조립한다. 타겟을 다시금 확인하고 바람의 위치를 체크한다. 열린 창이 있다면 그 창의 각도를 맞춰 쏘지만, 불가피한 경우엔 창을 관통해서 처리한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일까, 열린 창이 하나 있었다. 타겟 재확인이 끝난 뒤 자세를 잡았다. 묵직하지만 크지 않은 소음이 날렸다. 타겟의 사망을 확인한 뒤, 신속하게 총기를 해체하여 기타 케이스에 넣었다. 더미 케이스를 위에 한번 더 올린 뒤, 그 위로 기타를 올린다. 누가 보더라도 아주 평범한 기타케이스의 안이 되었다. 탁, 기타케이스의 뚜껑을 덮은 이바라가 옥상을 벗어났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고생했다. 이번주는 오프니 다음주엔 B구역 8포인트에서 언제나 그렇듯 돼지가 울 때."
B구역은 옆 동네였고 8포인트는 B구역 지도에서 8시방향의 공중전화 위치. 그리고 돼지가 울때니 해(亥)시라고 했으니 9~11시. 사전에 합의했으니 사실상 딱 9시일테지만.
이바라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놓고 부스를 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래서 이바라는 인적이 한산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타나 연주하다 해가 지면 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갔다. 사에구사 이바라의 직업은 청부살인업자였다. 이바라는 그런 호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준단 점에서 '해결사'정도로 본인을 생각했다.
"흠."
이바라는 사람의 죽음에 무감했다. 이전부터 숱하게 목숨을 앗아가는 일을 해서 무뎌진 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바라에게 타인의 살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행사를 거치지만, 의뢰를 받는다. 의뢰받은 인물을 죽이고 보고하면 곧 지정된 장소에 이전 의뢰 완수금과 다음 의뢰의 정보를 얻는다. 이 일은 벌써 5년 째 하고 있었다. 도덕이나 윤리는 이바라에게 한낱 기분이었다. 쓰레기를 길바닥에 그냥 버리는 편이지만 기분이 좋으면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몰래 넣기도 했다. 괜히 속이 뒤틀리듯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엔 옆 사람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도 제 뒷사람이 한 것처럼 공작하기도 했다. 이바라는 교활하고 또 유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차를 위해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절로 기분이 좋았다. 평소 갔으면 서두르지 않는 이바라였지만 자전거를 주차하고 터덜터덜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쥰을 보고, 답지 않게 서둘렀다. 아무렇게나 차를 주차해두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턱하니 문을 잡았다.
역시나 놀란 표정의 쥰이 보였다. 분명 자신의 키가 더 커야 마땅할텐데 요즘 애들은 왜 이리 성장세가 좋은지. 아주 근소한 차이였지만 남자애는 미묘하게 이바라보다 컸다. 놀란 표정에 괜히 한마디 얹어줬다.
"하… 이웃의 정을 이렇게 돌려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바라는 교활하고 또 유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다. 괜히 이 좋은 기분으로 심술이나 부리는 것은. 물론 이후에 아저씨란 소리를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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