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이바] 푸딩 요정 사에구사 이바라

옛날옛날 어떤 세계에는 푸딩 요정인 사에구사 이바라가 살았어요…

  세상의 푸딩을 모두 관리하기 위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코즈믹푸딩프로덕션, 줄여서 코즈프로에서 일하고 있는 사에구사 이바라. 현재 부소장의 직위를 가지고 있으며 소장이 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곧 있을 신제품 발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해야하는데...

" 조사한 바로는 분명 이 근처였는데 말입니다... "

  납품한 푸딩에 다른 후가공을 해 매상을 더욱 올리고 있다는 가게를 단속하는 일을, 이왕 내려왔으니 함께 처리하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니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비틀거리며 주택가를 날아가는데 갑작스럽게 불어온 돌풍에 누군가의 집 창문으로 홀라당 들어와버렸다.

" 의도치않았지만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몸이 가볍다는게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

  얼굴을 한껏 구기고 중얼거리다 옷을 툭툭 털고 날개를 정리했다. 그러다 익숙한 캐러멜 향에 잠깐 멈춰 킁킁거린다. 가까이 가고 싶지만 날아갈 힘도 없어서 비척비척 걸어 도착한 곳은 길쭉한 기둥이 달린 무언가. 각 모서리에 길쭉한 네모 기둥이 달려있는 가구를 책상이라고 부르던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달큰한 향이 그 기둥 끝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날아오를 자신이 없어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은 다리를 잡고 끙끙거리며 올라간다. 

" 자신, 군시설에서 이보다 더한 훈련도 받았던 요정입니다. 굴하지 않습니다! "

  정말 한참을 올라가도 고지가 보이지않아 지쳐가는 중이었는데 달콤한 향이 가까워지는게 확실히 느껴지니 여기서 멈추기도 곤란해졌다. 무엇보다 여기서 손을 놓는 순간 세상과 인사해야할 지경인데 어떻게 놓을수가 있을까.  배는 고프고 힘은 없고, 자신의 요생을 기구하다고 여기며 팔을 뻗었다.

  뒤에 불이 있어도 못 움직이겠다 싶을 때 드디어 도착한 책상의 끝.  기둥을 발로 차며 날개를 힘차게 움직여 그 위로 몸을 던졌다. 데굴데굴. 책상에 얼굴을 붙이고 납작하게 엎드려 숨을 고른다. 더 짙어진 캐러멜 향. 지쳐있지만 그래도 포복으로 전진한다. 사실은 주변에 위험 상황이 없는지, 엄폐물이 있는지 확인해야하지만 지금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몸을 천천히 일으켜 접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마주한 푸딩. 꿀꺽...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반사적으로 침이 나온다.

" 누구의 것인진 모르겠지만, 조금만 실례하겠습니다. "

  남의 물건을 탐하면 안된다는건 이미 알고있지만, 그것도 인간의 것을 탐하면 더더욱 안된다는걸 알고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정도라면 괜찮을겁니다... 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암시를 하며 품에서 개인 숟가락을 꺼냈다. 그리고 연노란 빛의 말랑한 부분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푸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한 입만 먹고 기운을 차려서 날아가려던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버린지 오래. 한 입만 더 먹자, 딱 한 입만. 그렇게 한 번, 두번... 눈 앞에 있던 푸딩의 8분의 1이 제 입 속으로 사라진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누군가의 커다란 발소리, 그리고 마주친 눈. 

땡그랑

' 이건... 망했습니다. '

  놀라서 떨어뜨린 숟가락을 급하게 챙기고 날아오르자마자 커다란 그림자가 자신을 덮쳤고,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단단히 잡았다.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자 압박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꾸물거리며 틈 사이로 얼굴을 빼내 숨을 들이킨다.

" ...벌인가? "

  자신을 두고 벌이라니! 자아가 없는 그런 벌레와 자신을 비교하다니 이건 참을 수 없는 치욕입니다. 욱한 나머지 인간과 대화하면 안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입을 열어버렸다.

"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

" ...말했다. "

" 큼, 실례했습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여기 들어온 것 뿐이라 놓아주시면 제 갈길을 가ㅡ "

" ...벌이 말을 할 수 있던가? "

" 아니 벌이 아니라고 방금 말씀드렸지않습니까. "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바라봤는데, 자세히보니 하얗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하며 아름다운 얼굴하며, 여러 인간들 울렸겠다는 조건에 알맞는 사람이었다. 인간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던데, 이정도면 요정도 홀리겠다. 하고 생각한게 입 밖으로 나왔는지 그 사람이 작게 웃어보인다. 들린건지 아니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굴에서 눈을 돌리고 틈으로 빠져나오려고 꿈틀거리자 놔주지 않겠다는 듯 더 꽉 쥐는 손.

" 악, 놓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 ...놓아주면, 도망갈거잖아 "

" 그거야 당연ㅡ "

" ...그럼 안 놓아줄래. "

" 안 도망가겠습니다 "

" ...정말로? "

" ... "

" ...거짓말쟁이. "

" 크흠, 푸딩을 주신다면 있겠습니다. "

" ...푸딩, 원래 내건데. 네가 먹고 있었던 푸딩. "

" 그게, 그... 맞습니다만 어차피 제가 입 댔는데 그냥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대신 도망치지 않고 궁금한걸 마음대로 묻게 해드리겠습니다. "

" ...좋아. 대신 도망치면 잡을거니까. "

  도망에는 자신있지만 정말 도망쳤다간 잡히는게 문제가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싹하게 낮은 목소리였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고 압박감이 줄었다. 그리고 완전히 놓아주자 잠깐은 그냥 도망가는게 낫지않을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 인간의 눈길이 심상치 않게 변할까봐 꾸물거리며 다시 접시 위로 올라가 숟가락을 다시 꺼냈다. 어차피 이렇게된거 그냥 먹기라도 하자 싶어 한 입 다시 푹 퍼먹자 여전히 달콤하고 맛있는 푸딩. 한참을 냠냠거리다 등에 뭔가 톡, 닿았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 자신을 잡았던 손가락 중 하나. 이 사람은 손까지 단정하단 생각을 하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 ...그래서, 너는 뭐야? "

" 우물우물. "

" ...대답해준다고 했잖아. "

" ...꿀꺽. 묻게 해드린다고 했지 대답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마악 "

  뒷덜미가 잡아채져 달랑 들어올려졌다. 발밑이 안그래도 까마득해졌는데 팔을 움직여 책상을 벗어난다. 더더욱 까마득해진 발 밑.

" 이대로 떨어뜨리시면 정말로 죽습니다만?? "

" 죽어보고싶은거야? "

" 예, 예에?? 아니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 이렇게 마음대로 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웃기는 일이 아닐까, 적당히 하는게 어때. "

" 아, 그 예, 장난이었습니다, 장난이었으니까 부디 놓고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들고 있던 숟가락은 이미 떨어뜨려 비어있는 손으로 잡힌 손가락을 꽉 붙잡았다. 이대로 놓으면 죽는다 진짜 죽는다, 그냥 놓는다면 날 수 있지만 바닥으로 패대기 쳐버린다면 정말로 죽고 말것이다.

" ...사과할거야? "

" 죄송합니다악 "

" ...응. 용서할게. "

  다시 살포시 접시 위에 올려놔졌다. 정말 요정생 이렇게 급박했던 일은 몇 번 없었는데 오늘이 최고로 급박했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앉아있는데 놓친 숟가락을 친절하게 제 손에 쥐어주는 인간 때문에 소름이 파다닥 돋았다. 목숨과 맞바꾼 푸딩이니 더 맛있게 먹어야겠다며 숟가락을 박박 닦고 다시 퍼먹기 시작한다. 카라멜 시럽이 정말 달콤하고 맛있다는 생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다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

" ...아까 물어본거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

" ...크흠. "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그 인간한테 양손으로 내밀었다.

"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

" ...사에구사...이바라. "

" 예, 코즈프로 부소장입니다. "

" ...푸딩? "

" 예에, 인간 여러분이 드시는 푸딩은 거의 저희 담당입니다. "

" ...그렇구나. "

" 뭐, 믿지 못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된거 통성명이나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

" ...응 이바라. 나는 란 나기사야. "

" ...저희가 이름을 부를만큼 친하지는 않... "

" ... "

" 예, 부르셔도 됩니다. 저는... "

" ...나기사라고 불러도 좋아. "

  이 커다란 인간의 이름을 부르기엔 너무 친해보이니 한참을 대화하다 적당히 각하라고 부르기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여러가지 푸딩을 맛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

"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각하와 대화를 하다 알게된건, 작은 회사의 직원이라는 점과 그 회사의 사장과 친구라는 점. 믿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좋은 내용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잠깐의 동거. 침대 옆의 작은 서랍장 위 작은 방석이 자신의 침대가 되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차피 며칠만 신세질텐데,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누운 방석이 폭신한게 꽤 괜찮았다. 그래도 제 집의 침대만큼 좋은건 아니라며 꿍얼거리며 그날을 보냈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는 각하를 서랍장 위에서 발을 동당거리며 구경하다 ' ...이바라도 씻을래? ' 라는 말에 날아올라 각하의 손에 고여있는 물에 퐁당거리며 몸을 헹궜다. 젖은 날개로는 날 수 없으니 가만히 세면대에 앉아있었는데 자신이 톡톡 닦은 수건의 끝을 내미는 각하. 박박 닦고 푸르르 털어 날개를 말리자 ' ...강아지 같아. ' 라는 막말을 하는 각하. 당신이 제 필요에 의한 인간이 아니었으면 벌써 큰 일이 났을겁니다. 라는 말은 삼켜두었다.

  각하가 가고나면 혼자 푸딩을 사러 갈 예정이었지만, 파티션이 있으니 자신의 자리에서 푸딩을 먹어도 된다는 말에 냉큼 외투 주머니에 들어갔다. 

" 제 손으로 살 수 없는 곳은 인간인 각하가 가는 편이 훨씬 이득이니 선택한 일이며, 결코 외롭다거나 귀찮다는 이유가 아닙니다. "

"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

"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

  전혀 믿지 않는 얼굴로 웃는 각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주머니 속으로 깊이 숨었다. 유명하다는 푸딩 가게가 마침 회사 앞에 있어 푸딩을 하나 사, 감사하게도 자신이 있는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비좁은 주머니 속에서 푸딩과 함께 한참을 뒹굴 수 밖에 없었지만 다른 인간들에게 제 목소리가 들리면 곤란하니 참았다. 맛이 이상한 푸딩이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의자에 앉는 소리, 곧 주머니 속으로 손이 들어와 푸딩을 들어올리길래 냉큼 푸딩을 잡고 같이 밖으로 나왔다. 원래 직원 자리가 이렇게 외딴 곳에 있던가.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도 분명 각방을 주기는 합니다만 그건 윗 사람들일텐데.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푸딩이 든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제 앞에 내려주는 각하의 행동에 할 말을 싹 잊어버리고 푸딩 먹기에 돌입했다.

" ...맛있어? "

" 네, 우물우물, 아무래도 이건 저희 쪽에서 납품하는 푸딩 같습니다. 자체 제작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역시 저희 쪽 물건이 훨씬 많은지라. 각하께서도 분명 저희 쪽 푸딩을 많이 먹어주셨을겁니다. "

" ...그렇구나. "

" 우물우물 "

" ...한 입도 안주는걸까. "

" ...드리겠습니다. "

  제 입이 닿은 숟가락인데 기분 나쁘지도 않은건지 얌전히 받아먹는다. 자신이 요정이라 상관없는건지 원래도 신경쓰지 않는건지 알 길은 없지만, 알 생각도 없다. 그냥 잘 받아먹는 인간은 귀여운 법이라며 인간계에 놀러가는게 취미인 동료가 한 말이 떠올라 자꾸만 떠넣어주게 된 것 뿐.

" ...이바라는 안먹어? "

" ... "

  정신없이 먹여주다 제 몫까지 줘버린 것은 제 실수였다. 

" 각하께서 하나 더 사주시면 되는 일입니다. "

" ...응. "

  빈 유리병 밖으로 맺힌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푸딩도 다 먹었고, 이제 각자 할 일을 할 시간.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 ...점심시간 전까진 올거지? "

" 일 처리가 늦어진다면 조금 늦을 수 있습니다만, 아마 그럴겁니다. 제가 오지 않으면 먼저 점심을 드시길! "

" ...응. 기다릴게. "

  각하를 본지 이제 겨우 하루. 그런데 이 걱정은 어디서부터 오는건지. 물가에 둔 아이같단 생각을 애써 지우며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

  그렇게 이틀, 사흘, 나흘... 각하의 주머니로 들어가는게 익숙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자료로 쓸 푸딩 데이터는 충분하게 얻었고, 그러면서 후가공으로 돈을 벌던 가게도 마침 납품하는 순간을 발견해 요정의 방법으로 손봐줬으니 이제 돌아가야 할텐데.

" ...안가면 안될까? "

"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이제 돌아가봐야합니다. "

" ...하지만 이바라가 없으면 쓸쓸해질 것 같아. "

" 예에, 그건 생각일 뿐입니다. 저 없이도 이미 잘 살고 계셨지않습니까. "

" ...그건 이바라가 오기 전이었잖아. "

" 그러니까, 오기 전엔 괜찮으셨잖습니까. "

" ...생각안나. "

" 하아... "

  답답함이 끝이 없는 대화를 주고받자니 지쳐버려 푸딩을 푹푹 퍼먹었다. 언제나 달콤한 푸딩이 기분을 돋궈줄만도 하건만. 오늘따라 속만 갑갑해진다.

" 각하, 잊어버리신 것 같지만 저는 푸딩요정이라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소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요정이기에 더더욱 이 이상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

" ...응. "

" 그러니 혼자 잘 사셔야합니다. "

" ...싫어. "

" 싫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

" ...이바라는 나랑 헤어져도 괜찮은거야? "

" 당연한 말씀을. "

" ...이바라는 매정하구나. "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창가에 앉아 푸딩을 마저 퍼먹었다. 금방 비어버린 유리병이 어쩐지 허전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입니다. 하고 전하자 각하는 듣지 못했다는 듯 자신에게서 몸을 돌려버린다. 조금 머뭇거리다 날아올라 각하의 볼에 붙었다. 조금 움찔하지만 눈을 뜨지 않는 각하.

" 저 말고도 소중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전하도 그렇고, 쥰도 그렇고. "

" ...이바라. "

" 그리고 어차피, 절 잊게 되실텐데 뭘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

" ...잊게된다니? "

" 각하, 자꾸 제가 요정임을 잊으시는 것 같은데 저같은 요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 ... "

" 저희는 타고난 마법이란게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걸로 이 세계와 제 세계를 왕래합니다. 그럼 여기서 그 마법이라는게 어떤 다른 역할을 하는지 각하라면 바로 알아차려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 ...잊게 해주는걸까. "

" 그렇습니다. 그것이 각하께 들켜도 도망가지 않았던 이유기도 합니다. "

" ...그런 것치고는 이바라는 도망가려고 했잖아. "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거야, 당황하면 기본적인 일은 잠시 잊게되지 않습니까 "

  가만히 제 말을 듣던 각하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잡고 귀 뒤로 낑낑거리며 넘겨줬다.

" ...그럼, 이바라를 기억하려면? "

" 그건... 생각도 못한 부분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

" ...왜? "

" 애초에 요정을 기억하려는 인간이 어디있습니까, 각하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같은 요정은 벌레와 다름없어 보일테고 자세히 보기도 전에 죽여버릴 확률이 높으니 인간과 대화하려는 요정도 없고... "

" ...그럼 내가 요정을 기억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면 되겠네. "

" 동화라도 쓰시려는 겁니까, 어차피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인데다가 아까 제가 말씀 드렸지않습니까 제가 이 세계를 떠나면 자연스럽게 저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기억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

" ...그럼 어째서 아까는 내가 널 기억할 것처럼 얘기한거야? "

" 그거야... 각하의 마음을 가볍게해드리고 싶어서? "

" ...하나도 가벼워지지 않았어. "

" 차라리 잊는다는 말을 먼저 할 걸 그랬습니다. "

" ... "

  한참 말이 없던 각하는 눈을 뜨고 손을 들어 서랍장을 뒤적거리다, 처음 만났을 때 내밀었던 명함을 꺼내왔다. 그 사이에 나는 데구륵 굴러서 각하 얼굴 앞에 떨어졌다.

" ...그럼, 이바라가 떠나면 이 명함도 사라지는거야? "

"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

" ...모르는 것 투성이네. "

" 크흠, 원래 없었던 일을 처음 마주하면 모를 수 밖에 없지않겠습니까. "

" ...이바라는 날 기억해? "

" 음, 그렇습니다. "

" ...그럼, 이바라가 날 찾아와줘. "

  몸을 일으켜 앉다가 멈칫했다.

" ...네? "

" ...명함이 사라지는지, 내 기억이 남아있는지. 확인해야하지않을까? "

" 기억이 남아있을리가 없습니다. 마법을 뭘로 보시는건지. "

" ...그 확신이 틀렸다면? "

" 하... 곤란합니다 정말. "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인을 해본다는게 그리 나쁜건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지울 방법을 강구해야하고, 절대 사심이 있는게 아니라 푸딩요정들을 위한 일이니 괜찮지않을까. 제대로 앉아 팔짱을 끼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잊어버려도, 잊어버리지 않아도 큰 손해는 없을테니. "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보니 안도하는 듯 웃는 각하.

" ...그럼 내일은 잠깐 이별이네. "

" ...잠깐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

" ...이바라라면 금방 와줄거라고 믿으니까. "

" 너무 믿진마시길. 사업가는 앞 뒤가 같기 힘듭니다. "

" ...후후. 그럼 이제 잘까? "

" ...네. "

  다시 서랍장 위의 방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잡아서 각하의 볼 위로 다시 올려졌다.

" ...각하? "

" ...마지막 밤이니까. "

" ...안녕히 주무시길. "

" ...응. "

  따뜻한 각하의 체온에 노곤해져 금방 잠에 들었다. 새근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리자 나기사도 곧 잠에 들었다.


" 자,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침을 맛있는 푸딩으로 보내고, 옷매무세를 다듬었다.

" ...응. "

  인사하려는건지 각하의 손이 제 앞으로 내려왔다. 마지막이니까, 하고 각하의 손 위로 올라타자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닿는 볼.

" ...나중에 보자. "

" ...네. "

  낯간지럽지만 볼을 꼬옥 안아주고 놓았다. 그러자 각하는 팔을 움직여 창틀에 나를 내려놓는다.

" 그럼 정말로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

  손을 흔드는 각하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힘차게 날아올랐다. 파란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은 좋았지만, 자유로운게 분명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 켠이 껄끄럽다. 

' 얼른 다시 오던가해야지... '


백업용입니다~ 언젠가 2편을 쓰는 그 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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