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소마 장편

거짓말, 진실마음 - 4

드러난 진실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약 5500자

-

똑똑

“칸자키, 일어났나?”

문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소마가 흠칫 떨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케이토는 문 밖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바람이 창 밖의 나무를 스치는 소리만 들려오던 때에, 소마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일어났소이다. 들어오셔도 되오.”

소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토가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었다. 소마는 괜히 머리끝을 손으로 빗으며, 케이토를 등진 자세로 거울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케이토가 시선을 내리고 헛기침을 했다. 흠칫, 소마가 잠시 멈췄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계속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케이토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잠은 잘 잤나?”

“….”

마치 처음 만났을 때 같군. 다시 말수가 훅- 줄어버린 소마의 뒤에 앉아서, 그의 머리를 따라서 조심스레 손으로 빗어주었다. 케이토의 행동에 소마가 몸을 또다시 움찔 떨었다.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소마의 길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살살 빗어주던 케이토가 살풋 웃었다.

“어제 일은 미안했다. 많이 놀랐겠지.”

“….”

“하지만 후회하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는 못 할 것 같구나.”

“…?”

그가 손을 내려서 소마의 손을 움켜쥐었다. 둘의 시선이 거울 너머로 맞닿았다. 꿀꺽.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그 모습에 소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소마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그의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입을 맞췄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후회하지 않아. 내 모든 말은 진심이었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

“….”

“이 약혼이 정말로 결혼이 될 수 있도록, 네게 작업을 걸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순서가 조금 이상한 것 같긴 하다만…. 때로는, 이런 소설 도입부도 있는 법이겠지.”

케이토가 스르륵 눈을 감고서 다시 한 번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의 말, 분위기, 체온, 진심. 그 모든 것들에 소마의 심장이 쿵쿵 매섭도록 뛰었다.

소마는 어떻게 행동할지 밤새 고민했었다. 이 손을 빼고, 파렴치한이라고 소리쳐서 그를 거부하면 될 것이다. 파혼하기에 딱 좋은 핑계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마주한 케이토가 상처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케이토를 밀어내지도, 기뻐하지도.

굳어버린 소마를 가만히 바라보던 케이토가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가 옅게 웃음을 흘렸다.

“천천히 생각해도 좋다 칸자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부담스럽다면 밀어내고 거부해도 괜찮지만…. 나는,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해.”

선택지를 주었으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그는 소마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의 오만한 베팅은 언제나 정답을 향했으니까.

소마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소마의 손목을 그러쥐고서 그의 부드러운 볼을 어루만지며, 케이토가 은근하게 속삭였다.

“키스해도 될까.”

여전히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딱히 그의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니었던지, 케이토가 스르륵 몸을 숙였다. 질문보다는 부탁에 가까웠던 그의 말 때문일까, 새빨개진 소마의 볼과 자연스레 감기는 그의 두 눈 때문이었을까.

풀썩-

소마의 등이 또다시 바닥에 닿았다. 그의 긴 머리가 오로라처럼 바닥에 펼쳐졌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깍지를 끼고 있었다. 그의 혀가 소마의 입 안을, 입 천장과 혀 뿌리와 혀 끝을 간질였다. 소마의 입술을 살며시 깨물고, 집어삼키고. 우븟- 간간히 야릇한 신음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이렇게까지 입맞춤이 야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한 마리의 뱀 마냥 소마를 탐했다. 저절로 허리가 떨려왔다. 숨쉬기가 버겁고 입가로 침이 흘러내렸지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그를 밀어내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그를 보채며 그의 혀가 자신을 더럽혀주기를 본능적으로 바랄 뿐. 제 입술에 닿아오는 그의 숨결마저 야하다는 생각이 들던 때에- 케이토가 자신의 무릎을 소마의 다리 사이에 밀어넣었다. 움찔- 깜짝 놀란 소마가 조금은 다급히 그의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케이토가 몸을 일으켜 소마와 시선을 맞췄다. 흥분인지 부끄러움때문인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부족한 숨을 집어삼키는 소마의 모습은 꽤나 야했다.

“그, 그만….”

“….”

“하지, 말아주시오. 부탁이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소마의 말을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흥분감과 두려움에 눈물까지 차오른 소마의 얼굴에 더 욕정해버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에게서 벗어나기위해 소마가 몸을 바르작거렸다.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밀어냈다. 허나 케이토는 미동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그를 던져버릴 수도 있었지만 소마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소마의 마음속에는 망설임이라는 안개가 너무도 짙게, 뿌옇게 퍼져 있었다. 그것은 모든 행동을 주저하게 했다. 그 자신 또한 케이토를 갈구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그와 함께 선악과를 나눠먹고 진실을 마주하기를. 아주 잠시 뿐이더라도 그에게 진실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옅게 숨을 몰아쉬며 케이토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소마는 차마 그를 마주 바라보지 못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차올랐던 눈물만 옆으로 흘려보낼 뿐. 케이토가 다시 몸을 숙였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거리에 멈춰서서 속삭였다.

“…네가 싫다면 하지 않으마. 기다릴 수 있어. 준비가 되면 알려주련.”

“….”

“칸자키. 나를 믿어줘.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돼.”

다시금 그가 입을 맞췄다. 그의 입맞춤은 너무도 상냥하고, 야하고, 부드러웠다. 소마의 감긴 두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떨어졌다. 이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 이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 깊은 애욕이 소마의 심장을 감싸안았다. 상처주기 싫다는 두려움보다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더 크게 부풀어올랐다. 사랑은 진실을 끄집어내는 법이니까.

더이상의 거짓말은 못하겠소.

자신을 일으켜 앉혀주고서, 식사는 준비되어 있으니 편할 때 나오라며 제 입가에 입을 맞춰준 케이토를 멍하니 바라보며 소마가 한 생각이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간.

문 밖에서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칸자키? 날 찾았다고 들었다만.”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소마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무슨 일이냐는 듯 케이토가 그의 앞에 앉아서 그에게 눈짓했다. 소마가 침을 꿀꺽 삼키고서 시선을 사선 아래로 피했다.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그래, 말해라.”

“…본인에 대해 실망하실 수도 있소.”

“그건 내가 판단하마.”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숨을 크게 들이쉬고서, 소마가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케이토는 소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허리띠를 풀고서, 유카타를 스르륵 어깨 아래로 내릴 때까지도. 소마는 그 아무렇지 않은 시선이 오히려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슴에 두르고 있던 천이 모습을 드러내자, 소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직접 풀어보시겠소?”

“…그러지.”

침을 꿀꺽 삼키고서 케이토가 손을 들었다. 천 끝을 살살 잡아당기고서 조심스레 풀어내렸다. 투둑- 바닥으로 천이 떨어지자 소마의 맨 가슴이 드러났다.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긴장감에 소마가 시선을 굴리던 때에, 케이토가 손을 들어서 소마의 가슴을 매만졌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서, 소마가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하스미 공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비밀이 있소.”

“흐음…. 나는 작은 것도 상관하지 않아 칸자키.”

“엣.”

“오히려 취향이기도 하고.”

“아, 아니. 그것이 아니오…!”

웃음섞인 그의 말에 소마의 얼굴이 빨개졌다. 설마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신 것인가…? 침을 꿀꺽 삼키고서 소마가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소마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기에, 케이토가 부드럽게 웃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듯이. 그의 미소에 소마가 심호흡을 하고서 제 허벅지 안쪽으로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부끄러운 감각에 소마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 본인은…. 여인이 아니라 사내였소이다.”

“….”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기에 소마의 심장은 더욱 무겁게 뛰었다. 아, 역시 좀 더 일찍 말했어야 했나. 아니면 말하지 않고 도망갔어야 했나. 피가 차게 식으려는 때에-

“이제야 말해주는군.”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소마가 눈을 떴다. 케이토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려왔기에 소마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진정하라는 듯 소마의 볼을 어루만지던 케이토가 입가에 입을 맞춰주었다. 소마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내렸다.

“…어, 어째서? 언제부터…?”

“뭐… 첫날에는 정말로 감쪽같이 속았었다. 애초에 약혼 상대의 성별을 첫만남부터 의심하는 건 무례한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음, 목소리라던가 앉는 방법이라던가 의아한 점이 많았고….”

소마의 눈물을 손으로 쓸어주고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찾아보니 칸자키가의 검무는, 남아들에게만 계승된다고 하더군.”

“…! 아, 아앗….”

그랬던 거요? 자신이 생각해도 엉성한 거짓말에 소마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케이토는 그런 소마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저번에 네 가슴을 만졌던 건, 마지막으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많이 놀랐겠지. 그리고 뭐, 내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셨고.”

“…그, 그런데도 본인을 받아주신 거요?”

“그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결혼하자는 말씀도…?”

“그래, 나는 진심이다. 네가 여자건 남자건 상관하지 않아. 너와 결혼하고 싶어.”

“….”

머리가 멍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소마를 가만히 바라보던 케이토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보다 칸자키. 옷을 좀 정리하는 건 어떻겠나?”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케이토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널 두 번이나 덮쳤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

무언가를 깨달은 소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때 하스미 공께서는 이미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잖소-

“그, 그럼. 사내인 본인에게 욕정하신다는 거요?”

“….”

케이토의 귀 끝이 붉어졌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마 또한 덩달아 말을 잃었다. 정말로?

어색한 정적이 둘 주변에 가득했다. 먼저 몸을 움직인 건 케이토였다. 소마의 허리를 감싸안고서, 그의 등허리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두 눈은 꽤나 뜨거웠다.

“…그래. 그러면 안 되나?”

“! 그, 잠깐-”

당황한 소마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거부해야하나? …왜?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고는 소마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의 손가락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어깨죽지에서는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제 아무리 소마여도, 이 모든 행위가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 하스미 공. 그게-”

“괜찮아. 긴장 풀어라.”

그가 고개를 들고서 소마의 입가로 다가갔다. 벌써 익숙해졌는지 본능적으로 눈을 감는 그 모습에, 케이토가 또다시 소리없이 웃었다.

선악과를 베어물고서 모든 거짓을 녹여버린 밤. 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달콤했다.

카테고리
#기타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