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별을 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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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별을
쫓아라!
그날, 하늘에서 내려온 히어로가 말했다.
처억. “네 별을 쫓아라!!!”
🌟
테토라는 눈을 떴다. 하늘은 투명했고, 깃털처럼 뜯긴 구름자락이 바람을 따라 너울거렸다. 교정의 아이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울렸다. 봄이 무르익는 소리다. 테토라에게는 더없이 무거운 초침소리 같기도 했다. 현재 시간, 낮 열두 시 반. 점심을 먹지 않고 돌아다니다 발견한 학교 뒷편에는 어린 소년 하나가 퍼져 잘 수 있는 자리가 동그라니 마련되어 있었고, 테토라는 햇살의 유혹을 딱히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누구 속도 모르고 높고, 파랗고…….
소년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저번 주, 홍월 심사에서 떨어졌다. 물론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장’에게서 홍월에서 떨어졌다한들 아이돌을 못하는 것은 아니니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건 테토라가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홍월에서 떨어진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제라도 받아줄 유닛이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이 학교는 겉으로 보이던 모습 따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신입생을 붙잡아 약육강식의 우리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저 기합만으로 헤쳐나가기에 테토라는 충분히 강하지도, 영악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테토라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별의 뾰족한 모서리가 손가락을 꾹 찌른다. 자신의 존재감을 상기시키려는 듯. 그래, 안다고! 복잡한 테토라의 맘도 모르고 여전히 하늘은 아득하게 높기만 했다.
아이돌은 흔히 별에 비유되곤 한다. ‘별’이 품은 거리감과 그것을 압살하는 존재감이 무대 위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적성과 제법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빛나며 오랜 세기에 걸쳐 소원이나 낭만의 대명사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유메노사키는 늘 뭣도 모르고 꿈만 많은 아이들로 붐비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테토라에게 주머니 속 별은 그냥…… 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진짜 별도 아니었다. 유광 색지를 얼기설기 오려 만든 모조 별은 흔들 때마다 안에 든 비즈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치 어린 애들 장난감처럼 못미더운 모양이다. 테토라의 손에 쥐어진 건 먹물처럼 짙은 빛깔이었는데, 햇빛을 맞을 때마다 여러 색들을 가득 머금어 제대로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그래. 실은 스카웃 제의가 있었다. 버려진 미운 오리 새끼같은 테토라에게도. 태양같은 미소를 두른 채 하늘에서 떨어진 그는 자신을 ‘히어로’라 칭하며 우렁차게 청했다.
나와 함께하지 않겠나!!!
목청에 얼이 다 빠진 테토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손 안에 색 모를 별만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방과 후, 체육관으로 와주면 좋겠다! 그런 소리만이 귓가를 울렁울렁 맴돌았다.
그치만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동경을 발판 삼아 유메노사키에 입학한 테토라로서는 냅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다. 대놓고 못미더웠던 그 선배의 탓도 좀 있었다. 그래도 딱히 갈 데도 없는데……. 아니, 그 전에 그 사람 좀 바보같아 보이기도 했고. 누가 이런 모조품 따위를 주며 스카웃 제의를 한단 말인가? 어지간히 망한 유닛 아니고서야,
파사삭.
“아?”
“어, 어엇…….”
때마침 풀숲을 뚫고 솟아난 소년과 테토라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소년은 이런 곳에서 사람을 볼 줄 몰랐다는 듯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일순 험악하게 구겨졌던 테토라의 미간이 금세 풀렸다. 같은 교복임을 알아본 탓이다. 게다가 넥타이도 같은 색이다. 그러면 1학년이겠구나. 옆반인가.
어라, 그 별……. 동그란 소년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이었다. 테토라는 소년의 엉거주춤한 모양을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혹시,”
“히익!”
“별…… 받았슴까?”
“그, 그, 그러하오만……?”
하오만? 이상한 말버릇이네. 그러고보니 노란 눈동자나 남색 머리카락 사이로 한 줄기 불빛처럼 그어진 브릿지같은 것에서 번개처럼 연상되는 색이 있었다. 테토라가 흐흥, 하고 악동처럼 웃었다.
“노란 별이져!!?”
“우왓, 어떻게 알았소!? 소인, 닌술 수련을 위해 복도보다는 벽 뒤를 선호하오만…… 그 선배 공께서는 바로 찾아내셔서 조금 놀라고 말았소.”
좀 더 수련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고 중얼거리는 소년의 이름은 센고쿠 시노부라고 했다. 안 어울리는 듯, 또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테토라는 생각했다. 마냥 순해보이는 소년의 뒷통수에는 덤불의 나뭇잎 두어 개가 꼭 다람쥐 귀처럼 붙어있었다. 그러고보니 닌술 수련을 한다고 했었지……. 오타쿠인가? 테토라는 눈 앞의 꼬마 닌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뜸 제 별을 내밀어보였다.
“그냥 찍은 검다.”
그 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것보다, 그 선배? 라는 사람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슴까? 저도 이런 걸 받았슴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어서여.”
“아, 우음.”
망설이던 시노부가 어색한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 만났다던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던가, 무슨 멘트로 스카웃을 받았다던가. 들어보니 시노부도 테토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소년은 낯을 가리는 듯 제 손 안의 별만 꼼질거리는가 싶더니, 금세 표정이 풀려서는 테토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노부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 그 ‘히어로’라는 건 전대물에서 따온 게 맞는 것 같소! 그런 컨셉이라던가……? 소인은 닌자 컨셉이면 더 좋겠지만 말이오.”
“닌자 컨셉은 어딜 가도 없을 검다……. 으~뮤, 히어로 전대도 남자답고 좋긴 하지만 아이돌로써는, 글쎄여.”
가면 전대인 아이돌이라니, 코믹밴드도 아니고 말임다. 테토라가 조그맣게 뇌까린 말에 시노부는 애매한 낯으로 웃어버렸다. 구태여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감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둘 다 나름대로의 생각에 감싸이자 어색하지 않은 공백이 사이를 메꿨다. 테토라는 테토라대로, 시노부는 시노부대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머리 속으로 덧그리는 모양은 꼭 같았다. 별이다. 그 선배, 그래도 굉장히 대단하고 리더십 있는 사람 같았는데 왜 나에게, 어떻게 나에게, 하필이면 이 색의 별을……. 뭐 그런 답도 없고 결론도 없는 생각들이 빙글빙글 궤도를 타도록 두면서.
그 때, 깊어지는 생각을 가르며 종이 울렸다.
“아.”
“앗,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나보오.”
시노부가 먼저 무릎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 그럼 소인은 들어가 보겠소……? 쭈뼛거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테토라가, 또다시 불쑥 입을 열었다. 저기. 시노부의 어깨가 흠칫 튀었다.
“센고쿠 군은 방과 후에 가볼 생각이져.”
“으으음, 그렇소이다.”
“왜인지 물어봐도 됨까.”
“그야…….”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듯 하던 시노부는 이윽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토라의 눈동자는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여태 망설이던 테토라보다 확신에 찬 낯으로.
“그 선배 공은 소인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
“닌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딜 가든 놀림 받을 뿐이었는데…… 선배 공은 적어도, 소인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다’고 해주었기 때문이오.”
“그렇, 군여…….”
“그래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소.”
받아들여지는 건 기쁘니까 말이오. 니싯, 장난스럽게 접힌 보조개에 햇빛의 말랑함이 고인다. 덩치에 맞지 않는 책임감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여전히 애매모호한 테토라의 시선은 그런 시노부를 슬그머니 비껴가 이끼가 들러붙은 나무 그림자에 닿았다. 그 모습에서, 이번에 무언가를 가늠하고 만 건 시노부 쪽이었다. 어쩐지 조마조마한 얼굴로 시노부가 물었다.
“나구모 공……은, 가지 않을 생각이오?”
“저는.”
손 안에서 흙탕물같은 색의 별이 우그러졌다.
이내, 테토라는 땅이 꺼질 것 같은 숨을 내쉬었다.
“……생각 좀 해보고여.”
🌟
고민이 무색하게, 테토라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착실히 짐을 챙겨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자연스레 내린 노을을 따라 걷다 보니 체육관 앞이었다. 마치 길을 인도라도 해준 것처럼.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잘 알지만, 테토라는 결국 마음을 기울이고 말았다는 사실에 아주, 아주 조금 우울해지고 말았다. 어찌됐든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확언할 수 없고, 무언가 결정을 내리려면 저 체육관 문을 열어젖히긴 해야할 터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굼뜬 걸음을 미적미적 옮기던 테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던 것이다.
“으으……. 진짜 가야 하나, 그치만, 이제 와서 입학을 무를 수도 없고, 그 선배 성가시게 쫓아올 것 같고…….”
아, 우울해……. 익히 들어 아는 캐치프레이즈를 중얼거리는 뒷모습은 혼자 조명이라도 받는 것마냥 환하게 빛났다.
테토라는 그 아이를 알고 있었다.
“아, 타카미네 군!! 맞져!!”
“윽.”
벼락같은 호명에 가뜩이나 움츠러든 등이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목울대를 꿀꺽, 하며 슬금슬금 뒤를 돌아보는 얼굴은, 과연…… 1학년 신입생들 중 회자되는 미모의 주인공이라 할 만 했다. 물론 타카미네 미도리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테토라가 저, 우울함을 짓이겨 만든 듯한 소년을 알고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화사하도록 아름다운 외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런 얼굴로도 커버 못할 의욕상실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한 미도리는 금세 긴장을 푸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 애를 감싼 ‘귀찮으니 날 내버려둬.’라고 호소하는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아서, 테토라는 애써 의식하지 않고 있던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말았다. 그에 대해 입을 여는 대신 테토라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힘차게 웃었다.
“여기서 뭐함까? 이미 다들 집에 갔을 시간인데.”
“아……. 그냥, 별 거 아니야. 좀 성가신 일이……,”
“혹시, 타카미네 군도.”
별 받았슴까. 조그마한 속삭임인데도 불구하고 미도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더니, 안 그래도 우울해보였던 분위기가 더더욱 가라앉아 완전히 흐려지는 게 아닌가. 테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아……. 땅이 꺼지다 못해 무너진 것처럼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테토라는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말았다. 아, 타카미네 군은 막내일지도 모르겠다…….
미도리가 주머니에서 다 구겨진 별을 꺼낸 건 그 와중이었다. 빛나는 초록색의 별. 테토라는 납득했다. ‘미도리’라는 이름을 차치하더라도 미도리에게는 초록색이 굉장히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목소리에서도, 외모에서도 싱그러운 숲의 향이 묻어나는 듯 해서.
한참 제 몫의 별을 바라보던 미도리가 어물거렸다.
“이거, 받았는데……. ……혹시 어, 음…….”
“나구모 테토라임다!!! 좋아하는 건 갈비와 근육 트레이닝!!! 같은 반인데도 모름까?”
“아, 미, 미안. 나는 귀가부 지향이라서……. 그, 아직 새학기이기도 하잖아……? 나구모 군이랑 나는 그다지 캐릭터 겹치지도 않고…….”
허, 참나. ……아무튼.
“나구모 군도 이거 받았어……?”
“그렇슴다.”
보란듯이, 테토라는 주머니에서 별을 꺼냈다. 바깥으로 꺼내자마자 노을을 잔뜩 흡수한 그 별은 미도리의 것과는 다르게 여전히 알아보기 힘든 색이다. 어떻게 보면 비 온 뒤의 진흙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테토라의 붉은 브릿지를 녹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테토라가 생각한 색은 아니다.
그런데 미도리는 테토라의 손 위에 올라간 것을 한참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구모 군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으음, 진심으로 하는 말임까?”
“아니, 노랑이나 초록이나 파랑보다야 당연히 이 색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아……?”
그건 맞긴 하지만여……. 테토라는 그래도, 하고 나오려는 말 끝을 애써 꾹꾹 삼켰다. 중학교 때와 같지 않도록 이번에야말로 확고한 무언가를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색은 조금…… 어중간하지 않냐는 말이 턱 끝까지 넘쳤다가 그대로 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목구멍이 까끌거렸다. 미도리가 이쪽의 기색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잠깐의 사이. 테토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의외네여, 타카미네 군도.”
“뭐가?”
“그냥.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슴다. 이런 거 귀찮아할 것 같이 보였거든여.”
“귀찮은 거 맞는데…….”
“아.”
그렇슴까……? 중얼거리는 시선에 의구심이 가득 담겨있어서, 미도리는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그, 여기 안 오면 또 그 이상하고 쓸 데 없이 열정적인 선배가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할 것 같아서……. 그럴 바엔 한 번 와보는 게 낫지, 싶잖아……?”
입학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그만 두는 게 더 우울할 것 같고…….
뒷얘기는 무슨 뜻인지 사실 알아듣지 못했지만, 테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도리가 말하는 선배와 테토라를 찾아온 선배가 같은 사람이라면…… 아니,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는 그럴 만 하다고 테토라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이해는 함다.”
태양 같은 사람이었져. 테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태생부터 붉은 망토를 두른 히어로의 운명이 예비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딱 거기에 걸맞는 사람처럼 보였다. 강렬한 존재감,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커다란 목소리는 좀 시끄럽긴 했지만 도리어 그가 가진 담대함의 반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굉장히 고집이 세보였었지…….
테토라와 미도리는 동시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 때, 파사삭, 하고 익숙한 잎사귀 밟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
나, 나구모 공!
짤막한 부름과 함께 저 멀리서부터 조그마한 인영이 총총 뛰어왔다. 시노부였다. 또 풀숲을 돌아다니다 온 건지, 아니면 떼어내는 것을 잊은 건지 동그란 뒤통수에는 아까와 같은 잎사귀가 꼭 두 개 붙어있었다. 시노부는 비교적 커다란 미도리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가 테토라를 향해 배시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테토라는 미도리가 ‘뭐야, 치유될 것 같아…….’ 하고 중얼거리는 걸 듣고 말았다.)
“와줘서 다행이오!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소인, 조금은 안심할 수 있소이다…….”
“……얘기를 듣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여.”
“다들 별…… 받은 거구나?”
그러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주섬주섬 자신만의 별을 꺼낸다. 색색의 별들은 혼자 있을 때에는 그리 돋보이지 않았지만, 모아놓고 보니 얼추 그럴싸해보였다. 아직 빛날 준비를 마치지 않은 별들이 손바닥 위에 고이 놓여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만든 사람의 형편 없는 손재주가 돋보였는데, 시노부의 별은 작은 크기에 비해 비즈로 꽉 차있어서 꽤 무거웠고, 미도리의 별은 테이프를 쓸 데 없이 덕지덕지 붙여 모서리가 동그랬다.
그리고 테토라의 별은…….
“어쩐지 제 것만 좀 너덜거리는 것 같슴다.”
“처, 첫번째로 만든 거여서 그런 거 아니오!?”
“그냥 뭘 만드는 데에 소질이 없는 걸지도 몰라, 그 선배…….”
이딴 게 별이고 스카웃 제안이라니……. 어쩐지 점점 희망이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테토라는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이게 맞나?
그 사이, 시노부는 슬쩍 체육관 문을 열었다. 안은 조용했다. 열린 문 틈에서부터 흘러든 빛 한 줌이 체육관의 나무바닥 한 줄을 밝히고, 그 위로 채 치우지 않은 농구공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시노부의 머리 위에서 그걸 엿본 미도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정말이오.”
그 말대로였다. 불 꺼진 체육관은 텅 비어있었다. 심지어 체육관 무대 위에도, 아무도 없었다. 잠시 안을 들여다보던 셋은 주저하다 체육관 문을 그대로 열어젖혔다. 노을이 쏟아지며 체육관을 붉게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체육관 안에는 테토라와 시노부, 미도리 뿐이었다. 사람이 빠져나간지 오래 되어 차갑게 식은 체육관의 공기가 셋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테토라의 눈빛이, 형언할 수 없을 감정을 떠안고 일그러졌다. 곁에 선 시노부가 잔뜩 침울해진 채로 중얼거렸다.
“그 선배,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오…….”
“하아……, 이럴 줄 알았어.”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이제 그만 돌아가자. 미도리가 발을 돌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다오!!! 카나타, 가자!!!
하나, 둘, 셋, 히어로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순식간에 체육관의 불빛이 전부 밝혀져 스며들었던 노을을 몰아냈다. 마법처럼 문이 닫혀 바깥과, 현실과 공간을 단절시킨다. 우주를 비추는 오색의 섬광이 셋이 서있던 자리를 그대로 꿰뚫고―
찢어진 하늘에서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히어로가 낙하했다. 테토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선배였다.
붉은 히어로 복장을 갖춘 선배는 갓 태어난 별빛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곁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푸른 복장을 한 신비로운 미인이 함께였다. 같은 유닛의 사람인 듯 싶었다. 타이트하게 맞춰진 유닛복은 다채로운 빛을 머금고 정말로, 우주를 삼킬 것처럼 반짝였다. 힘찬 움직임마다 허리의 별똥별같은 장식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궤도를 내달리는 게 셋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그 순간 그들은 정말로 아이돌이었다.
짧은 등장만으로, 그들은.
붉은 빛을 휘감은 히어로가 씨익 웃었다.
“이 무대장치를 드디어 사용해보는군. 정말 감개무량하지 않나, 카나타!!”
“우웅~ 그런데 말이죠, 치아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주인공」 아닌가요?”
“하하하, 아무렴 어때. 무대 위의 주인공은 언제나 우리들이다!!”
자, 가자!
네에, 히어로.
빛이 사그라들고, 무언가 시작될 것만 같은 어둠이 두 사람을 가렸다가…….
이윽고 전주와 함께 터지듯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긴장과 설렘, 기대 같은 게 마구잡이로 뒤섞여 아이들의 눈을 밝힌다. 테토라 역시, 미도리나 시노부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단지 두 사람만으로 그 큰 무대가 꽉 채워진 것 같았다. 이 곳은 이미 어느 우주의 한복판. 히어로만을 위해 마련된 별들의 공간이었다.
고조되는 심장 고동을 본딴 기타음이 사정없이 바닥과, 세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언제 출동해도 이상하지 않을 각오를 다지는 목소리로부터 노래는 시작되었다.
- 몇 억 광년 떨어져 있다 해도,
- 언제나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어릴 적 텔레비전을 달고 살았던 소년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컨셉의 유닛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내심 무시하게 된 걸지도 몰랐다. 줄곧 원하던 ‘남자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것도 결코 아니다. 어느 유닛을 가더라도 대장처럼 늠름한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 그러니까 FIGHTING! FIGHTING!
- 미션 모드 시동이다!
그러나 테토라와 시노부, 미도리는 이미 유성대의 우주 안에 있었다.
- 풀 스피드로 이 우주를 달려 나가,
- 이어받은 정의의 피를 자랑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거야!
- 유성대, 미소와 내일을 위해
- 이 은하계에서 최고로 빛나는 별이 되는 거야!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체육관 무대는 커다랬지만 그만큼 목소리를 모아주지 못해 이리저리 튕겨냈고, 애초에 공연을 위한 설계와는 달라 빛을, 아이돌이 가진 빛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면 그만큼을 상회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불리한 환경을 깨부술 힘과 실력이, 요동치는 감정이.
그런데 저 위의 두 히어로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체육관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뒤로 별들이 쏟아지듯 흩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치아키는 이미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곤 잔뜩 반짝이고 있었다. 곁의 카나타도, 그런 치아키를 바라보며 충분히 즐거워보였다.
그래, 두 사람은 정말이지 즐거워보였다. 그들이 직접 일구어낸 우주 한복판에서.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을 압도하는 데에 필요한 건 저런 것일지도 모른다.
간주가 흐르는 사이, 치아키가 무대 밑의 아이들을 가리켰다. 처억.
“우선, 와주어서 고맙다! 아니, 와줄 줄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유메노사키 유일무이한 히어로 유닛 ‘유성대’. 지금은 나와 카나타뿐이지만……. 알다시피, 우주의 수많은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다!!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어.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너희들을 찾아낸 이유다. 다들 ‘별’을 가지고 왔겠지?!”
얼떨떨한 얼굴로, 테토라와 시노부, 미도리는 별을 꺼내들었다. 흡족하게 웃는 치아키를 바라보던 카나타가 슬쩍 입가를 가렸다.
“치아키, 만드느라 「고생」 했지요…….”
“크흠, 카나타, 그 얘기는 나중에 해주면 안될까……?”
후후~ ……아, 아무튼!!!
“그 별은…… 아직은 작고 볼품없지만, 분명, 분명 이 세상을 비추고도 남을 빛을 내뿜는 초신성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 너희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부디!! 우리 유성대와 함께 펼쳐주지 않겠나!! 그 별의 색이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범람하는 우주 그 너머를 가리키며, 히어로가 외쳤다.
처억. “너희의 별을 마음껏 쫓아다오!!!”
🌟
테토라는 그제서야, 그 순간이 오고서야 제 손안의 별을 제대로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오묘한 빛을 머금은 별은 유성대가 일군 새로운 우주에 감싸여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이제 테토라는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 색을 띠고 있든간에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 집념과 투혼의 색상. 노랑이나 파랑, 빨강, 초록과는 전혀 다른, 보라색은 더더욱 아닌,
그 색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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