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산

제가 완전 서민이라 부자 잘 몰라요 아이돌도...

그러려니 봐주세요⋯

포타에 올렸던 글을 조금 더 다듬어서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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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없는 하루의 느즈막한 오전 시간, 늦잠을 만끽하던 사쿠마는 포근한 이불을 만끽하며 뒤척이다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채로 몇 시인지 확인하려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 그보다 먼저 메신저 앱의 알림이 잔뜩 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UNDEAD의 단체 그룹방 알림인 듯 했는데, 미리보기로 보이는 메세지가 심각해보이지는 않았기에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사쿠마는 천천히 메신저 앱을 켰다.

그리고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눈으로 대화 내용을 대충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1분기 활동의 정산금이 입금된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어제 리즈링 사무소에서 정산금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깜빡 잊고 있었다⋯ 이걸 말하면 오오가미가 뭐라뭐라 시끄럽게 굴테니 조용히 숨기기로 했다.

그보다 정산이라⋯

유메노사키 재학 시절에도 아이돌로서의 수익이 있기는 했으나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야 학교 자체가 연습생 기획사 같은 곳이었으니⋯ 한 유닛이 큰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오히려 돈을 내는 경우가 더 많았더랬다. UNDEAD는 덜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졸업했고, 최근에는 유닛 홍보 목적으로 TV 프로그램 출연이나 콘서트 등 이런저런 활동도 꽤 많이 했으니 그때보다야 많이 들어왔겠지.

사쿠마는 별 기대없이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사회 초년생의 통장 잔고라기엔 과한 액수가 찍혀있었다.

"⋯⋯?"

이 금액을 본인이 직접 번 거라고? 혹시나 싶어 다시 보았으나 금액은 변함없었다.

자, 잠시만⋯ 아무리 여기저기 얼굴도 비추고 이런저런 활동도 열심히 했다지만 이런⋯ 금액을 벌었다고⋯?

부족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복한 환경에서 넉넉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온전히 자기 손으로 벌어온 돈의 금액이, 자신이 아이돌로서 벌어들인 금액이 상상 이상으로 컸기에 사쿠마는 잠시 굳어있었다. 파티션 너머에서 조심스레 노트북을 두드리던 텐쇼인이 무슨 일 생겼냐는 말을 하기 전까지 굳은 채 이런저런 생각에 깊이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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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쇼인 군, 혹시 이후에 일정 있는가?"

"⋯딱히 없는데, 왜?"

"그럼 잠시 어울려주게."

텐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멍하니 굳어있더니, 갑자기 쌩쌩해져서는 자신에게 어울려달라는 말을 하는게 낯설었다.

어울려달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도 처음있는 일인 것 같은데.

"⋯뭐 하려고?"

"쇼핑을 하려고 하네만⋯ 자네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쇼핑?"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과 함께 쇼핑이라니⋯

남은 일들과 다음 날 스케쥴을 머릿속으로 검토한 텐쇼인은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어울려줄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그 중 무엇 하나도 직접 질문할 수는 없다. 그러니 곁에서 보며 답을 찾아봐야지.

텐쇼인은 나갈 채비를 하는 사쿠마를 곁눈질로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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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정산금이 들어왔구나."

"그렇다네."

별 다른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건만 사쿠마는 무엇이 그리도 신났는지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텐쇼인에게 건네왔다. 요컨데 동생과 유닛 멤버들, 친구들의 선물을 같이 골라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네⋯."

"될 거라고 생각하네. 자네 선물도 사야하니까."

"⋯내 선물도 내가 고르는거야?"

"그럼 누가 고르겠누?"

네가 골라야지⋯?

텐쇼인의 말문이 잠시 막힌 사이 사쿠마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괜찮은 가게들을 찾아내려 느릿느릿 검색 엔진을 켰다. 스마트폰 조작에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기능만을 사용해서 그런지 검색에는 영 서툰 손놀림이었다. 텐쇼인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어렵구먼⋯"

"막연하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선물은 전부 같은 걸로 살거야?"

"아무래도 그게 좋으리라 생각되긴 하네만, 리츠한테는 뭔가 더⋯ 본인의 빅만쥬라도⋯"

"만쥬⋯⋯."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일단 모두한테 줄 것을 먼저 정하는게 좋지 않아? 내 생각에는 간식거리가 가장 무난할 것 같은데."

예산 넉넉한거 맞지?

사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텐쇼인이 차 키를 꺼내 차 잠금을 풀었다. 근처에서 삐빅 소리가 울렸다.

자연스레 조수석에 탄 사쿠마는 운전석에 앉아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는 텐쇼인을 보며 연하게 웃었다.

역시 텐쇼인 군에게 말하길 잘했구먼. 고급스럽고 선물하기 좋은 가게는 잘 알고 있을테니 말일세. 덤으로 자차도 면허도 있으니 숨어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도 없고.

"벨트 메야지."

"아, 알겠네."

답지않게 수동적으로 구는 사쿠마를 수상하게 바라보던 텐쇼인은 그가 안전벨트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후 차를 출발시켰다. 사쿠마에게 이용당한다는 자각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는 이용당해도 괜찮겠지.

빚으로 치기에도 애매했지만 써먹어야겠다 다짐하며 주차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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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텐쇼인 군.

"오늘 일정도 없고, 예산 넉넉하잖아. 그렇지?"

"그렇긴 하네만⋯"

"그럼 됐네."

그럼 됐네라니 아무것도 안 됐다네.

가게에 데려달라고 했더니 호텔에 데려오는 경우가 어디있는가? 아니, 그래. 호텔 디저트가 훌륭하면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본인은 고급스러운 초콜릿가게나 마카롱 같은걸 생각했단 말일세?

호텔 파티쉐에게 주문 제작한, 제각기 다른 디저트 선물이라니, 자네의 그 스케일을 본인한테도 적용하지 말아주게!

사쿠마는 차를 얻어탄 것을 후회했다.

그냥 직접 알아볼 걸⋯! 번거로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걸⋯!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

텐쇼인이 하나하나 알려주며 주문하는 것을 확인하자 확실히 세심하고 고급스럽다는 것은 잘 알았다. 기다리는 동안 맛보라며 내어준 몽블랑도 훌륭했다. 물론 가격도 그에 걸맞게 대단했다⋯.

'선물 비용으로 반이 넘게 나갔구먼⋯'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 찝찝한 것은 사실이었다. 몽블랑도 먹고 결제도 마쳤지만, 디저트가 그리 단시간 내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이야기에 그럼 잠시 나갔다 오자며 텐쇼인의 손을 이끌고 호텔 정문 밖으로 나왔다.

아, 차 주차장에 있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리츠에게 따로 줄 선물도 사야한다네⋯"

"빅만쥬라며?"

"그건 예전에 줬으이."

버린 것 같지만 이라고 작게 덧붙인 말은 가볍게 흘려넘겼다.

"그럼⋯ 더 큰 만쥬?"

"만쥬 말고."

텐쇼인이 장난스레 던진 말에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사쿠마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옷이나 향수, 장신구 같은걸 생각 중이네만⋯"

"그래? ⋯그 선택지 중에서는 옷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런고?"

모두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엔 답을 정해 두고 움직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정말로 헤매이는 모습이었다.

텐쇼인이 넌지시 이끌자 사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텐쇼인의 뒤를 따랐다. 그건 무척 신기하고 드문 일이어서 조금 더 휘두르고 싶어졌으나,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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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에게 줄 선물까지 구매해 포장해오자 디저트도 얼추 완성되어 있었다. 커다란 상자들을 자동차 뒷자석에 잔뜩 실은 두 사람은 딴 길로 새는 일 없이 ES 건물로 돌아갔다.

중간중간 안전운전을 당부하는 사쿠마의 잔소리가 텐쇼인을 살살 긁었지만 어쨌든 선물들도 두 사람도 모두 무사히 돌아갔다.

텐쇼인은 바로 방으로 돌아갔으나 사쿠마는 갓 사온 따끈한 선물들을 전해주려 분주히 돌아다녔다.

해도 떠 있는데⋯ 저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건가?

조금 염려되었으나 저보다 연상인 그를 걱정하는 것도 뭔가 이상했기에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내지 않았다. 저보다 어른인데 자기보다 잘 하겠거니 하고 넘겼다.

넘겼는데.

벨소리에 문을 열자 탈진한 듯 한 사쿠마를 들쳐멘 히비키가 그 앞에 서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긴 은빛 머리카락으로 선물상자 여러 개를 들고있는 채였다.

"선물을 주고 엎어지는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그게 맞는 상황인 줄 알았답니다! 그거 놀라야 할 상황이 맞죠?"

어안이 벙벙해진 텐쇼인은 고개만 끄덕였다.

"다행히 제가 바깥에서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네요! 타이밍이 정말 Amazing 했습니다⋯☆"

"바깥에서는?"

"네! 후후 이 이상은 레이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래도 레이는 지금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 잠시 에이치에게 맡기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틈도 없이 머리카락에 얌전히 들려있던 선물 상자들이 텐쇼인의 양 손에 쥐여졌다.

하나는 제가 고른 제 것. 하나는 시라토리의 것.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앞선 두개보다 작은 상자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선물이었다.

"택배기사라도 된 것 같네요⋯ Amazing! 당신의 CJ대한통운, 히비키 와타루입니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사쿠마를 소파에 눕혀둔 히비키는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그를 배웅한 텐쇼인은 의뭉스러운 눈으로 나머지 하나의 작은 상자를 보았다.

⋯내 건가? 언제 이런걸 샀대⋯.

김칫국일 수도 있었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기에 우선은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 그래. 운전도 해줬는데. 혹시 모르지.

상자를 대강 밀어두고 시선을 돌리자 힘 없이 눈을 감고 늘어져있는 사쿠마가 보였다. 어쩐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기관리도 아이돌의 덕목인데. 그렇게 자기 몸 상태도 체크하지 않고 무리하면 어떡해? 그러다 정말로 큰일나면 어쩌려고.

속으로 혀를 쯧쯧 찬 텐쇼인은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신경을 돌렸다. 시선이 자꾸 소파로 향했으나, 그 뿐이었다.

-

"다녀왔습니다~!"

힘찬 목소리와 함께 시라토리가 방에 들어왔다. 그 소리에 깬 것인지 사쿠마의 눈이 띄였다. 바로 상체를 일으키자 그 움직임에 몸 위에 덮여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으응? 왜 방에⋯⋯"

"일어났어? 잠자는 숲 속의 마왕님?"

시라토리에게 손을 흔들어준 텐쇼인이 사쿠마의 머리맡에서 방긋 웃었다. 사쿠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텐쇼인은 무시한 채 그를 일으켜세워 치워두었던 선물상자 앞으로 데려갔다.

"아⋯"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을 깜빡인 사쿠마는 곧 정신을 차리고 포장된 선물 중 하나를 집어 시라토리에게 건넸다.

선물을 받은 시라토리는 거의 뒤로 넘어갈 뻔 했으나 다행히 넘어가진 않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가보로 삼겠다고 하는 것을 우선 풀어보라며 달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라토리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포장지를 조심조심 뜯는 사이 텐쇼인의 품에도 선물이 안겨졌다.

'⋯하나 뿐이네?'

텐쇼인에게 건네고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미련없이 돌아서서 찻잔과 주전자를 꺼내 티타임을 준비하는 사쿠마를 보자 숨 쉬는 것이 조금 갑갑해졌다.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톡톡 두드리며 호흡해도 갑갑한 느낌은 계속되었다.

'내꺼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러지.'

텐쇼인은 고개를 내젓고는 포장을 뜯었다. 자신이 고른 것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차와 함께 먹자며 쟁반을 들고 오는 사쿠마에게 시선을 줄 수가 없었다. 지금 보았다간 무언가가 잘못될 것 같다는 것을 느꼈기에. 텐쇼인은 조용히 시라토리를 소파에 앉히고 디저트를 보기 좋게 세팅해두었다.

시라토리가 지금까지 먹어본 디저트 중 가장 맛있다며 무척 좋아했으나 텐쇼인은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의무감으로 씹고 넘겼다.

아까 먹은 몽블랑은 맛있었는데⋯

억지로 웃고있는 입 안에서 조금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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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쇼인 군."

"응?"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사쿠마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남아있던 그 선물이었다.

역시 내꺼였구나. 굳어져있던 볼이 사르르 풀렸다.

"기름값 대신일세."

텐쇼인은 가타부타 말하는 대신 포장을 풀었다. 사쿠마의 눈 색과 똑닮은 액체가 각지고 투명한 유리병 안에 담겨있었다. 선물 포장이라 그런지 보라색 리본까지 깜찍하게 묶여있었다.

"곤란하네. 차에 향수를 주유할 수는 없는데."

"기름 대신이 아니라 기름값일세."

"어쩔 수 없지. 내가 뿌리는 수 밖에."

투껑을 열어 향을 맡은 텐쇼인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상한 부분에서 단순해지는구먼. 사쿠마도 연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마주본 채 그렇게 웃었다.

⋯그렇게 훈훈하게 넘어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건만, 입금 되어있던 것은 세금을 떼기 전 정산금이었다. 세후 첫 정산금은 화려하게도 마이너스였다.

고마웠던 마음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모르고 있던 사쿠마의 잘못도 있었으나, 아무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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