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진실마음 - 3
거짓이 진실을 희석할 수 없다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약 4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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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소마는 점차 긴장이 풀려갔다. 어느덧 말수가 훅- 늘어버렸고, 케이토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조잘조잘 매일 마르지도 않고 이야깃거리를 꺼내는 소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으니까.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고, 좋아하는 꽃은 무엇이고, 가장 잘 하는 요리는 무엇이라며 즐겁게 얘기하는 소마를, 케이토는 웃으면서 바라보곤 했다.
“—해서, 그때 어머니께서 어떤 말을 하셨냐면….”
“흐음….”
기쁨에 상기된 얼굴로 말하던 중, 케이토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가까워진 거리와 귀를 스치는 그의 체온에, 순간 모든 말이 입 속에서 녹아버렸다. 멍하니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자, 케이토가 웃으면서 소마의 머리를 귀 뒤로 정리해서 넘겨주었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다. 계속 말해줘. 듣고 싶으니까.”
두근, 두근.
소마의 심장이 또다시 세차게 반응했다. 그의 미소도, 손길도, 말투도, 목소리도 좋아서.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심장 아래에 숨겨둔 거짓이 계속해서 그를 아프게 찔렀다. 좋아한다면, 미움받지 않으려면 일찍 말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의 미소가 좋아서 소마는 결국 다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짓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은 무정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소마가 성인이 되기까지 2주.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손 잡기는 이제 예삿일이며, 이따금 포옹을 하기도 하고, 함께 앉을 때에도 거리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벽에 기대어 앉을 때에도 둘의 어깨와 손은 꼭 접했으니까. 이날도 그랬다. 맞닿은 어깨로 전해지는 온기에 편안함을 느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케이토가 그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행동에 소마 또한 웃으며 마주잡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고요한 방, 같은 속도로 고동치는 심장, 부드러운 서로의 시선. 케이토가 반대쪽 손을 들어서 소마의 볼을 쓰다듬었다. 소마는 눈을 감고서 그의 손길에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이 평화가 좋았다.
“칸자키.”
“무?”
“곧 네 생일이잖나. 네가 성인이 되는 날.”
“….”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 다시금 심장에 가시처럼 박혔다. 눈을 뜨지 못한 채 그가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음, 그렇소이다.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케이토가, 소마의 손을 들어올려 손등에 입을 맞췄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소마가 놀라서 눈을 떴다. 손등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소마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은, 조금 뜨거웠다.
“그날 우리의 결혼식이 진행된다지.”
“…예정으로는 그랬소. 허나-”
“칸자키, 나는 이 결혼식을 무산시키고 싶지 않아.”
“…!”
그 말은…? 소마의 시선이 흔들렸다. 심장이 쿵쿵 뛰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케이토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서 소마의 손등에 또다시 입을 맞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와 결혼하고 싶어. 순간적인 충동도 아니고, 어른들의 압력도 아냐. 나의 의지로, 네게 청혼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칸자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나?”
그가 눈을 떠서 소마를 바라보았다. 놀라서 굳어버린 소마의 얼굴은 꽤나 붉었다.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케이토가 살풋 웃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마는 알고 있었다. 거절해야한다는 것을. 적어도 조금만 더 생각해본 뒤 말씀드리겠다고 해야한다는 것을. …차라리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면, 흔쾌히 이 청혼을 받아들였을 텐데. 사랑하게 되었으니 미움받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졌다.
‘…여자가 아니라고? 지금까지 날 속였던 건가, 칸자키? …실망이군.’
머릿속에서 케이토가 상처받은 눈빛으로 소마를 쳐다보았다. 배신자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동자.
본인은, 그것을 견딜 수 있으련가.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상처를.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들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중, 케이토가 그에게 몸을 숙였다. 입가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각에 소마가 퍼특 정신을 차렸다. 지금, 무엇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다정한 웃음에 소마는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손을 부드럽게 깍지껴서 잡은 뒤, 케이토가 다시 몸을 숙였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고, 케이토의 혀가 자연스레 소마의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등을 쓸어주며 케이토가 소마를 천천히 바닥에 눕혀주었다. 그를 밀어낼 생각도, 경황도 없었기에 소마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서 그저 서툴게 입맞춤에 응했다. 혀가 얽히고, 숨 쉬는 틈조차 아까워서 다시금 서로를 탐하고. 입술이 살짝 깨물렸을 때 소마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 떨었다. 서로 맞닿는 곳이 전부 뜨거워서,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
소마는 그가 제 가슴을 - 정확히는 천을 - 만지는 것을 느꼈다. 당황스러움에 몸을 흠칫 떨고는 다급히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케이토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서로의 입술에 가느다란 실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툭 끊어졌다. 붉어진 얼굴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 흐트러진 옷. 소마가 몽롱한 시선으로 케이토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에 케이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음, 미안하다. 싫었다면 사과하지.”
“….”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케이토의 시선을 피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애써 꾹 참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서, 가슴을 가리려는 듯 그가 제 어깨를 감싸안았다.
“…싫지는, 않소이다. 허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소.”
“….”
그는 상처받은 표정도, 힐난하려는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그저 두렵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케이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간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어색한 고요 속에서 먼저 행동한 것은 소마였다. 조심조심 몸을 일으키고서, 케이토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그가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를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케이토는 그저 제 손을 괜히 쥐었다펴기만 했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 또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똑똑
“들어오거라.”
드르륵- 열린 문 너머에는 케이토가 서 있었다. 후련함까지 느껴지는 제 아들의 표정에, 아버지는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표정이었다. 케이토가 그의 앞에 정좌하며 앉은 뒤, 그에게 물었다.
“알고 있으셨습니까?”
“무얼 말이냐.”
“그 아이의 성별 말입니다.”
케이토의 말에 아버지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기다려라, 차를 끓이마. 여유롭게 주전자를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는 말 없이 바라보았다. 케이토는 여전히 그를 보채지 않았다. 이내 케이토의 앞에 찻잔이 놓여졌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찻잎이 띄워진.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나.”
“짐작은 이전부터 했습니다만, 확증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찻잎이 그의 입술을 간지럽혔지만, 개의치 않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부인께서 내게 직접 말해주더군.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며…. 정확한 사정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고서 조금만 아이를 데리고 있어달라고 부탁했다네.”
“…그럼 그냥 그렇게 제게 말씀해주시면 되었잖습니까.”
“전에도 말했지, 케이토. 너는 이런 상황에 약하다고.”
“….”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욕심이라고 생각하도록 해라.”
그가 크게 웃고서 차를 홀짝였다. 케이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찻잔을 내려놓고서 아버지가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케이토, 네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다면 나를 닦달했겠지. 차를 끓일 시간이 어디있습니까, 빨리 말해주세요, 라던가.”
“….”
케이토가 헛웃음을 흘렸다. 가끔 제 아버지는 그 자신보다 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배신감이라도 느껴지련?”
그의 물음에 케이토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이렌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이렌…? 이국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었던가.”
“네. 노래로 뱃사공들을 홀리는 괴물입니다. 노랫소리가 너무도 아름답기에…, 괴물임을 알고도 그 노래를 들으려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군요.”
남자라는 것을 알았어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차를 마시며 그가 뒷말을 삼켰다. 굳이 듣지 않아도 알겠지만.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지 케이토.”
“예정대로 결혼식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케이토의 말에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찻잔을 내려다보는 케이토의 표정은 꽤나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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