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진실마음 - 2
거짓은 거짓을 낳지만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약 3500자
과거 날조, 부모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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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를 높게 묶은 어린 소마가 도장 안에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천천히 그의 앞을 걸으며, 벽에 걸린 보검들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소마.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검술훈련…이라고 생각하오.‘
‘그래. 여지껏 소마 네가 배운 방법은 그것 하나 뿐이지.’
말과 함께 아버지는 검 하나를 들어올렸다. 천천히 검집에서 뽑아낸 뒤, 하늘을 향해 검 끝을 치켜올렸다.
‘허나 세상 만물을 한 가지 대안으로만 상대할 순 없는 법. …소마, 때로는 너를 지키기 위해 너 자신을 양보해야할 때도 있단다.‘
‘저 스스로를, 양보해야…?‘
‘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을 부드럽게 한 바퀴 돌렸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봐왔던 춤, 적을 베는 것이 아닌 검의 미학을 이끌어내는 검무. 몇 번을 보았음에도 그 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검은 무사의 손 안에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법이며, 무사는 주군에게 복종하여야 자신의 빛을 지킬 수 있다네. 휘둘러지지 않는 검은 고철이 되고, 주군없는 무사는 질서를 혼란시키는 화적이 되니.
…소마. 잘 기억하거라.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러나고 함구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때로는 필연적으로 거짓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검 끝이 부드럽게 공중을 갈랐다. 손끝을 칼등에 올리고 가볍게 도약하고서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긴 머리카락과 고운 옷자락이 오로라처럼 하늘하늘 흩날렸다. 무엇이든 베어버릴 듯, 아무것도 베지 않을 듯. 죽음을 그림자에 가둬둔 듯.
감았던 눈을 뜨고서, 저도 모르게 멎었던 숨을 다시 삼켰다.
짝 짝 짝
느린 박수 소리가 들려왔기에 소마가 퍼특 정신을 차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케이토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제야 점차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듯, 몽롱했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다.
“…정말 아름답구나 칸자키.”
“칭찬 감사드리오. 아버지께서는 본인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추시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함께 보면 좋겠소이다.”
"그래, 기대되는군.“
시간은 너무나도 빨랐다. 소마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때에서부터 어느덧 3주나 지났으니까. 스카프로 목을 감추고, 말을 줄이고, 매일 아침 천을 가슴에 둘러서 도톰하게 만들고. 거짓말은 아직도 심장 아래에 감춰져서 이따금 통증을 자아냈다.
둘의 사이는 그렇게까지 긴밀해지지는 않았으나, 첫날만큼 서먹하지는 않았다. 함께 식사를 하고, 주변을 산책하고, 지금의 사태를 해소할 대책을 강구하고.
‘너를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으마. 아직 네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너도 나도 잊으면 안 되니까.‘
케이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소마는 흠칫했다. 그녀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시큰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서 칸자키라고 불릴 때마다, 자신은 그저 죽음을 피해 잠시 도망온 것일 뿐이니 더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는 것을 상기했다.
“보답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나도 샤미센을 조금 할 줄 안다. 듣고 싶나?”
“…!”
그의 말에 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정리한 뒤 정좌하며 앉았다. 소마의 앉는 자세를 힐끔 본 케이토가 샤미센을 집어올렸다. 맑은 현소리가 곧 방 안에 울려퍼졌다.
‘아버지, 역시 이번 일은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그 점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어째서 진행시킨 겁니까? 그것도, 제게 일언반구도 없이.’
케이토의 질문에도 아버지는 그저 차를 홀짝였다. 잠시간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케이토는 그를 보채지 않았다. 찻잎이 떠있는 찻잔을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는 시간을 주면, 많은 것을 알아내니까.’
‘…?’
알 수 없는 대답에 케이토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끔 케이토는 그의 아버지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가 인자하게 웃고서 케이토의 찻잔에 차를 마저 따라주었다.
‘뭐, 그것도 있고. 이번에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일부러 언질 없이 진행했다네. 케이토 너는 이런 상황에 약하잖나.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다.’
‘….’
‘케이토, 너무 부담스럽다면 그만둬도 된단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는 건 어떻겠나. 그저 친구로 지내는 것도 좋으니 말이다.’
‘아버지, 제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으십니까?’
‘말이란 언제나 과유불급의 자세로 대해야 하는 거다.’
‘….’
케이토가 입을 꾹 다물고서 제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찻잎이 띄워진 그 잔은,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살풋 웃고서 다시 잔을 들어올렸다.
‘케이토, 네 다정함이 너의 약점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테지. 하지만 장담하건데, 그건 오히려 너의 보루가 될 거다. 지금처럼 말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천천히 들이마셨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케이토가 억지로 그녀를 내쫒지 않을 것을. 찻잎이 계속해서 그를 방해했지만, 그 덕분에 그는 느릿하게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답소이다!!”
케이토가 발목撥木을 내려놓자마자 소마가 흥분해서 외쳤다. 그의 반응에 케이토가 피식 웃고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름다운 소리라던가, 기교가 엄청나다던가, 칭찬의 말이 폭포마냥 쏟아져나왔기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을 말하던 소마가 그제야 자신의 흥분을 자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서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러지?”
“그, 너무 시끄럽게 한 것 같기에….”
“그건 괜찮다. 여기는 방음실이니까.”
“…? 방음실? 어째서 그런 거요?”
“아…. 음, 예전에 노래에 관심이 있었거든.”
말하기 민망한 듯 케이토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소마의 두 눈이 또다시 커졌다.
“본인도 노래에 조금 관심이 있었소이다!”
“호오, 그런가? 하긴, 너는 목소리가 예쁘니까 잘 부를 것 같구나.”
무심한 그의 말에 소마가 입을 헙 다물었다. 귀 끝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괜히 시선을 내려서 손을 꼼지락거리던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스미 공께서도, 잘 부르실 듯 하오.”
“칭찬 고맙다. 뭐, 어디서 나설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칸자키 너는 어려서 무대에도 자주 섰다고 했지. 들려줄 수 있나?”
“조, 좋소이다! …대신, 하스미 공께서도 답가를 들려주셨으면 하오!”
“후후, 그래.”
긍정의 말에 소마가 배시시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 한 가운데로 이동한 뒤 목을 가다듬었다.
~♪
청아한 음색이 방 안에 울려퍼졌다.멍하니 그의 노래를 감상했다.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뻗는 소마를 보며, 케이토가 생각했다.
세이렌같군.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하스미 공께서도 불러주시오!”
“그래, 약속했으니까.”
소마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케이토가 다시 샤미센을 들어올렸다. 맑은 음과 부드러운 그의 음색. 소마는 순간 먼저 노래를 불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자신의 노래보다 케이토의 노래가 더 아름다워서.
그렇게 몇 곡이나 번갈아 불렀을까. 노크소리가 들렸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부름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케이토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소마를 이끌었다. 자연스레 제 손을 잡아오는 케이토였기에 소마가 흠칫 굳었다. 그 모습에 케이토가 부드럽게 웃었다.
“혹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렇지 않나?”
자연스러운 그의 말과 행동이었기에, 소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잡은 손은 따뜻했으며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의 거짓말은 또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 잠겨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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