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업) 애증(愛憎)

#Cerumillion

다락방 by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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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나를 신이라 부르며,

“오오,신령이시여..제발 이 공물을 받으시고, 부디 비를 내려주소서!”

“살려주세요, 싫어..엄마, 아빠!”

가끔은 나를 호환마마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세자, 세자! 여봐라. 물을 떠오거라. 어서!”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진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대체 누구였지?

1.

“조심하셔야 해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피하시고요. 아시겠죠?”

"걱정말라니까요,저 혼자만 가는것도 아닌데요, 뭘.“

“저는 아직도 당신이 왜 그 산에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풍습일 뿐이잖아요. 호랑이라니..”

“..저는 당신과 당신의 부모님께 떳떳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모두에게 제가 당신에게 어울리는 남자라고 말하고 싶어요.그것도..안돼는 거예요?”

남자는 그 말을 마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고 이에 여자는 볼을 붉히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 알았어요! 절대, 무리는 하면 안돼요..아시겠죠? 참,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는거, 남들에게 말해도 안 믿는 사람이 태반일 거예요.”

신세르. 그는 신씨집안의 하나뿐인 장손으로, 유아독존에 안하무인인 도련님이었다. 그런 그가 유씨집안의 둘째여식에게 푹 빠져 사랑꾼이 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도성에 파다했다. 때마침 그 두 집안이 혼사를 논의할 때라, 세르는 옳다구나 받아들였고, 둘은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 오만한 신도령의 연인이 누굴지 궁금해했고, 어떤 이들은 신도령이 드디어 제 짝을 만나 개과천선한 것이라 수군댔다.

그러나 그의 천성이 어디간건 아니라, 그는 제 연인의 앞에서만 발톱빠진 호랑이처럼 굴었고, 예전처럼 속으로 남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같았다.

그런 신도령에게 유대감이 내세운 조건은 하나. 저 뒷산의 호랑이를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한 사람이 잡기에는 어려운 것이라, 그는 조건을 내세우며 집에 딸린 사람 몇을 보내준다고 하였으나 세르는 그마저도 최소한으로 데려가길 원했다. 오만한 그다운 결정이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지.”

세르는 숲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스러지는 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람의 목이 부러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고 있는데도 그는 마치 나뭇잎이 굴러가는 걸 감상하듯 평안했다.

그래, 그는 그날 호랑이에게 물려죽었다. 평생을 남 위에 군림하던 남자에게는 초라한 죽음이었다. 생전의 지위와 사랑하던 연인을 두고 죽은 남자는 이승을 떠나지 못했고, 여자가 끝내 다른사람과 결혼한 것을 보고 절망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이 불행한 만큼 남들도 불행하기를 바랐다. 한평생 가져도 가져도 부족했던 사내는 이제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질투했고, 그들의 불행을 유흥거리로 삼았다. 그는 무척이나 변덕스러워서, 어떤 때는 숲에 들어온 사람들이 길을 헤메게 만들거나 역병을 퍼뜨리기도 했으나 어떤 때는 다친 소동물들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행동이 심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자신을 멋대로 받들며 어린아이나 여자, 노인을 공물이랍시며 바치는 인간들과 자신의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떨때는 동족을 해치는 인간들이 더 역하게 보였다. 그렇게 그가 물려죽은 몇년 뒤에는 산에 변덕스러운 신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그는 평소와 같이 자신이 물려죽었던 숲에서 눈을 떴다. 사실 눈을 떴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숲 주변을 부유하다가 몇몇 나무들에 금줄과 노란 종이가 붙어있는것을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은 부적이었다.

“쯧, 요새 왠 꼬맹이가 드나들더니..”

그것들은 세르의 주변으로 결계를 치듯 둥글게 둘러져 있었다. 결계는 점점 강력해져갔고 그의 행동반경도 좁아져갔다. 그는 결계를 깨뜨리기 위해 갖은 수를 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계가 마침내 완성되어 그를 옥죌때,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불경을 영창하던 사람들에게 짓씹듯 내뱉었다.

“언젠가 너희 가문에 영력을 가지지 못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너희 가문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이다!”

세르의 악행이 도를 넘어가며, 인근 마을에서는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그때 마을에 유랑하고 있던 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을 퇴마사라 소개했다. 그 집안의 성은 쿄란이었다.

그 뒤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들의 감독아래, 소나무에는 금줄과 여러 부적이 붙었고 몇 차례의 의식끝에 악령을 숲에 붙들어두는것에 성공했다. 마을 사람들은 크게 감사를 표하며 먼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온 퇴마사들에게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훗날 쿄란가에 영력이 없는 여자아이가 태어난건 다음 이야기였다.

“야, 나도 같이가!”

“얘들아, 뛰지 말고!”

저잣거리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흥정하는 아낙네들과 고소한 전 냄새, 흥겨운 풍악소리. 현명한 왕의 치세 아래, 조선은 태평성대였다.

“..재미없어.”

소년은 길바닥에 쭈구려 앉아 땅에 의미없는 그림을 그렸다. 옆에는 방금 만들었는지 김이 나는 작은 접시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고아였다. 부모가 버리고 간 것인지 아니면 죽었는지 그는 알 길이 없었으나, 태어나서 홀로 지내는 것이 익숙했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침 마을에는 선한 마음씨를 가진 한 승려가 머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산 위에 위치해 있는 작은 암자에서 자신을 거두어준 승려와 함께 살았다. 그의 도움으로 아이는 천천히 세상을 배워갔으나 여전히 또래 아이들과의 소통은 그에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베르였다.

읍내구경도 잠시, 베르는 자신의 안식처인 산으로 올라갔다. 암자에 들러 곡식 낱알과 나무열매 몇 개를 챙긴 그는 익숙하게 나뭇가지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는 소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놀았고, 가끔 다친 동물들을 암자에 데려가 치료해주기도 했다. 승려는 위험하다며 그를 몇번이고 타이르고, 사실 이 숲에는 무시무시한 귀신이 있다며 겁도 줘 봤지만 베르가 듣는 척도 하지않자 마지못해 승낙했다.

“아,아파..”

베르가 돌부리에 건너 넘어진 것은 그때였다. 말랑한 살갗위로 새빨갛게 피가 맺혔다. 베르는 아픔을 참고 암자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쉬이, 움직이지 말고. 그래, 착하지.”

베르는 저 멀리서 희미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다. ‘그것'은 성별을 가늠하기 힘든 외모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라면 놀라 도망쳤겠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느낌에 그는 잠자코 ’그것'이 자신의 무릎을 치료해주고 있는걸 지켜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대번에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이 이 숲에 아주 오랜시간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세르라고 소개했고 둘은 서로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세르가 귀신인지 사람인지는 또래친구가 고팠던 소년에게 문제가 되지않았다.

‘궁수들은 어서 활을 쏠 준비를 해! 정면에서 온다!’

‘꼭 돌아오셔야해요,도련님.’

‘신이시여, 부디 이 공물을 받으시고,’

‘..언제까지 그 남자만 붙들고 살 것이냐. 혼처가 정해졌다. 그만 이 아비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거라.’

‘마마다! 호환마마야! 성문을 걸어잠그고 환자들을 격리하라!’

..

.

‘..그리고 이 힘으로 삿된 것을 봉하리니.’

“..또 그 꿈이군.”

나는 익숙한 동굴에서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그 망할 퇴마사가 나를 이곳에 봉인한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미 기억속에서 흐릿해져갔고, 내가 이곳을 왜 떠돌고 있었는지도 점차 희미해져갔지만 내가 죽을 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했다.

그때 저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그곳으로 가보았다. 동물이 다쳐있을 것이라 생각한 곳에는 무릎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한 인간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했다.

나는 그 소년을 보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간 눈이 내 영혼을 꽤뚫어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무말도 없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이는 이윽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꼭 돌아오셔야해요, 도련님.’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그 이를.

그 소년은 여인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내아이였지만 살짝 올라간 눈매와 그럼에도 순하고 말갛게 빛나는 눈망울은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것이었다. 홍옥을 닮은 그 눈동자는 햇빛을 받아 찬란히 빛났고, 무엇보다 소년은 그 여인의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이윽고 입을 움직여 소년을 치료해주었다. 소년은 살짝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손을 대자 상처가 서서히 낫는것을 보고 급기야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도련님, 도련님! 저 노리개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소저에게 어울릴 것 같나요? 앗, 저 머리빗도..’

그 모습마저도 옛 기억과 비슷해서, 나는 오랜만에 가슴 한켠이 뻐근해졌다.

소년의 이름은 베르였다.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된 그는 매우 살갑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고, 그도 나와 같이 오랫동안 친구가 없었다. 베르는 이제 매일 같이 숲으로 돌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 또한 숲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였기에 그런 베르가 고마웠다.

나는 그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별이 움직이는 방향, 이제는 전해지지 않는 옛 이야기, 여러 시편들, 내가 그동안 지켜봐왔던 인간들의 이야기..그와 나는 친구이자 스승과 제자였다.

눈을 빛내며 나에게 웃어주는 그를 보고 있자니 내가 버리지 못했던 깨진 조각들이 모여 천천히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과거의 흔적을 찾았고 그런 나에게 베르는 완벽한 대용품이었다.

그는 매우 영특한 소년이었다. 그는 내가 오래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벌써 셈에 능했고,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았다. 그가 나와 같은 시간대에 살았다면 그는 이미 높은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와 시간을 보내며 나는 지금이 내가 있던때로부터 100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어느 날을 기점으로, 숲에 드나드는 인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갔다. 조용했던 숲에는 동물들의 피가 흘렀고, 도무지 밤에 쉴 수 가 없었다.

짜증이 났던 나는 얘전에 그랬듯 사람들을 홀려 범에게 먹히게 하거나 절벽으로 유인해 죽게 만들었다. 피가 튀기는 모습을 보자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또 한동안 인간들이 오지않아 나는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베르의 존재는 오랫동안 숲을 떠도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는 내 정혼자의 화신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것부터 가끔은 우유부단한 모습까지. 나는 그에게 내가 살아생전 그녀에게 주지 못한 모든것을 쏟아 부었고 그런 나를 베르도 가끔 곤란한 모습을 보일 지언정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베르도 숲을 찾아오는 빈도가 줄었던 시기였다. 하루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요새 바쁜 일이 있다며 얼버무렸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으나 이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정이 많고 또 완전히 독립하기에는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산 밑의 마을은 바다건너 ‘미리견'이라는 나라에서 온 학자의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그를 사람들은 경계했으나 그가 어느정도 조선말을 한다는걸 알게되자 이윽고 후하게 그를 맞았다.

그러던 중 내가 그를 볼 기회가 왔다. 그가 무슨 연유인지 베르가 살고 있는 산 위의 암자로 올라 온 것이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승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도중 베르의 얘기가 나온 것인지 베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무엇인데 갑자기 베르에게 친한척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때 푸른 눈을 지닌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았다. 나와는 다른, 청명한 하늘의 색이었다. 그는 내쪽을 몇초간 응시하더니, 이윽고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이유에선지 나는 그 남자가 나를 ‘보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은 영혼인 나를 볼 수 없을텐데도 말이다. 그 남자를 보자 잊고있던 불쾌한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래, 마치 나를 봉인했던 그 빌어먹을 퇴마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숲에서 세르를 만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어느덧 19살이 되었고, 한창 미래의 걱정으로 바쁠 시기였지만 나는 여전히 세르와 놀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마을은 한 외국인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저 멀리있는 ‘미리견’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자신이 그곳에서는 한 학당의 훈장이라고 했다. 그는 마을에서 뜻 있는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며 지냈다. 산에서 따분하게 지내던 나에게 영어라는 것은 새로운 학문이었다. 나는 그의 밑에서 영어공부를, 밤에는 세르가 알려준대로 별을 관측하며 지냈다.

“그 소문 들었어요? 아유, 흉흉해서 원,”

“옆집에 박씨도 그렇게 됐다면서요?”

그 무렵 마을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미쳐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한경우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숲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중얼거렸다.

아마 전에 산에서 몰래 밀렵을 하던 꾼들이 단체로 사고를 당한 이후로 도는 소문인것 같았다. 그 소문의 산에서 사는 사람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였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퍽 먹히는 편이었다.

“베르야, 오늘도 수고했다. 가서 스님과 나누어먹으렴.”

새로오신 선생님은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고 내 사정이 신경쓰였는지 가끔 내게 간식을 내밀었다. 나는 처음에는 서먹해했지만 곧 그에게 마음을 터놓게되었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또 한 사람 생긴 기분이었다.

하루는 그 멀리서 어떻게 이 마을까지 오셨냐고 묻자, 그는 자기의 연인이 이 곳 사람이었다고 답했다. 조선사람이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궁금했지만 그가 웃으며 얼버무리는 눈치길래 더 물어보지 못했다. 그와 만난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베르야, 너는 남들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풀벌레가 낮게 울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려던 나는 그 말을 하는 남자의 눈이 어딘가 슬퍼보여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Ver. 서반아어로 ‘보다'라는 뜻이지. 사실 나는 네가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처음봤을 때부터 알아차렸어. 그리고 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도. 말해보렴, 정녕 평화롭던 이 마을에 갑자기 주민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고, 미쳐버리는게 정말 우연같니?”

“..저는, 전.”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는 하지 마려무나.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올 때마다 그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오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니.”

“..세르는 그런거 할 줄 몰라요. 악귀도 아니고요. 무언가 다른 요인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 제,제가 선생님을 도와 해결할 수 있을거예요.”

남자는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나를 물끄럼히 바라보더니 자그마한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주었다.

“..됐다. 때가 돼면 너도 모든걸 알게되겠지. 받으렴. 언젠가 네가 결정을 내리면 필요할거다.”

목걸이는 각도에 따라 붉은 빛이 돌기도, 푸른 빛이 돌기도 했다. 오묘한 빛의 팬던트를 보고 있자니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3.

"베르, 오랜만이야. 요즘은 숲에도 잘 안오고.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미안, 요새 좀 뜸했지?”

나는 평소처럼 세르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멈칫했다. 그의 뒤에 있던 아지랑이가 점차 힘을 키워가는듯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함없이 따스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밀렵꾼들이 떼죽음을 당한 날, 다시 만난 세르의 등 뒤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하루하루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으니까.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세르는, 이 숲만큼은 평온했다. 그것이 내 눈을 가렸던건지, 하나뿐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요새 마을이 뒤숭숭하더라고.”

나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세르가 나를 응시하는 와중에도 속에서는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만해, 물어봐서 무엇을 하고 싶은거야. 이때까지 방관해 놓고서. 너와 네 가족은 무사하잖아? 그럼 된 거야. 자, 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네가 그렇게 주변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네. 전에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잖아?“

“..나는,”

“빙빙돌리지 말고 말해, 베르. 네가 그 얘기를 꺼냈다는 건 이미 다 알고 물어보는거 아니야? 걱정 마, 나는 이런걸로 너를 미워하지 않을거야. 비록 너는 지금 나를 추궁하고 있지만.”

그렇게 답하는 세르의 표정은 처음에 만난 모습과 똑같아 오히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안도하며 입을 뗀 순간, 내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뭐라고?”

“그거 내가 한거라고.”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나 진지해.”

“음, 너는 귀찮은 벌레들을 죽일때 이유같은게 필요해? 아, 그 땡중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하여튼 그 망할 벌레들이 조금 귀찮게 해서 말이야. 근데 이것도 꽤 중독성이 있더라고. 한 명씩 죽일 때마다 예전의 힘이 조금씩 돌아오는 감각이.

그러다 잊고 있던걸 깨달았어. 이 힘만 있으면, 평생을 너와 같이 있을 수 있겠다고. 이 힘만 있으면, 이 나라 최고 권력자들을 좌지우지 하는것도, 너에게 부귀양화를 안겨주는 것도 빈 말이 아닌거야! 우리는 영원히, 지금처럼 같이있을 수 있어. 나의 베르로, 너의 세르로.

마을사람들? 어차피 너에게 그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잖아. 네가 어릴 때 이 마을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네가 직접 나에게 말해줬잖아. 솔직해져, 베르. 진짜로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적 없었어? 그들이 너에게 부모없는 고아라고 놀리고, 괴롭혔는데도?

난 그렇게 못해. 난 내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웃으면서 넘어갈 위인이 아니야. 그래, 내가 그랬어. 내가 마을에 역병을 퍼뜨렸어. 이래도 내가 잘못한거야?“

“..정신차려. 결국 네 힘을 위해서 그랬던 거였잖아. 나를 네 행동의 변명으로 쓰지마. 내가 너에게 그들에게 복수해달라고 직접 말한적 있어? 없잖아. 네 짐작이잖아. 나는..괴로웠어. 저 밑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근데 그게 내 친구가 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모르겠어. 내가 원한건 그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단 말이야..“

"오, 불쌍한 베르.“

세르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게 다가와서는 진짜 친구들이 서로를 위로하듯 어깨를 어루어만졌다.

“나는 정말이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홀로 떠돌았지. 그러다가 너를 만난거야. 나도 너를 잃고 싶지 않아. 하나뿐인 너를..”

“..너, 네가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긴 해? 얼마나 나를 바보로 보는거야. 이제와서 사실은 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내가 옳다구나 넘어갈 줄 알았어? 아니지, 그저 네 제멋대로인 행동에 그럴싸한 이유를 붙힌 거 잖아. 그리고 그전에 사람을 죽인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야.

하나만 묻자. 넌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거야? 단순히 친구로 여긴다기엔..가끔 너는 내가 아니라 내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 처음에는 네가 착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지독히 이기적인 네가 그랬을리가 없어.

말해봐, 넌 대체 나에게서..누구를 겹쳐보고 있어?“

세르는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고는 뒤에 올 말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런 적, 없어. 처음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난 너에게 숨기는거 없어. 네 질문에도 다 답해줬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넌 거짓투성이구나. 지금까지 내게 보여줬던 모습들이 진심이긴 했어? 너는 진짜 죄책감이라는게 없는거야? 그렇게나 많은 목숨을 앗아가놓고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구는거, 진짜 질린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면해왔던 진실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방금 대화한 세르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고, 이 모든게 누군가의 계략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동시에 섬뜩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저 제멋대로인 악령이 내게 흥미를 잃는다면, 그렇다면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되는거지?

인간이 아닌 상태로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게 되면, 그처럼 사고하게 되는걸까 아니면 인간의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나는 인간이기는 한 걸까?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뒤로 한채 한시바삐 걸음을 옮겼다. 목에 달린 팬던트가 빛을 내며 울고있었다.

“..언젠가 너도 내가 맞다는걸 알게 될거야.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드디어 만났는데...”

멀어지는 베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르는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그를 둘러싼 귀기가 더 짙은 색을 띄었다.

“정신차려보세요, 아버지!”

그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갑자기 밥을 드시던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까지는. 서둘러 옆마을에 있는 의원을 모셔와 방도를 물었지만 그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줄 아는것이라고는 그저 더 악화되지 않게 옆에서 간호하는 것이었다.

그를 간호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몸이 아파오는 것을 무시한채 물수건을 교체하러 방으로 향했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신병이네.“

눈을 뜬 것은 여러 그림이 걸려있는 방이었다.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손을 잡고 있었고, 방 한켠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꽤나 센 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이 정도면 네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이 갔을 것 같은데.”

무당은 이 뒤에도 내림굿이니 신내림이니 말을 했지만 머리에서 열이나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사랑. 이런게 사랑이라고.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존재가 어떻게 신이고 사랑이란 말인가.

나는 무심코 목에 걸고있던 팬던트를 움켜쥐었다. 마음을 정하자 오히려 다시 머리가 개는 듯 했다.

“고맙네. 내 오늘 일은 따로 갚을테니 잠시 방을 비워줄수 있겠는가?”

무당은 이외에도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선생님의 분위기가 심각해 순순히 방을 나갔다. 그는 방에 베르밖에 남지 않자 무거운 낯을 하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때 너를 좀 더 강경하게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어.”

“아니예요. 어차피 그때 말씀하셔도 제가 듣지 않았을거예요.”

“그래..마음은 이제 정한 모양이구나. 쉽지 않은 길이 될거야.”

“네. 목걸이가 알려주었어요. 제 이기심으로 방관한 그 결과를..이제라도 바로잡을까 합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더니 어딘가 회한에 젖은 눈을 하며 창 밖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너는 내게 이 땅에 온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지. 그리고 내 연인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 내 ‘전’연인이지. 그녀는 자신의 마을에 위험이 닥친 걸 알고는 이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지. 나는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러 이곳으로 왔지만..지금은 그녀의 죽음에도 너의 병에도 모두 그 악령이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구나.

나는 두번씩이나 내 소중한 사람을 그 악마에게 뺏길 수 없다. 내가 준 목걸이는 사악한 것을 봉인만 할 수 있을뿐 만능은 아니야. 나도 너와..같이 함께 가게 해주겠니.“

“선생님의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는 제 친구였어요. 지금도 그가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요..

알아요, 저도. 그 친구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는것도. 절대 정당화해서는 안되는 짓을 했다는 것도. 그래도 최소한..마지막은 제가 마무리하고싶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나는 보라색으로 소용돌이치는 기운들을 가지고 놀다 저멀리 다가오는 인영을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베르! 왔구나. 네가 그렇게 가버리고 영영 안 올줄 알았어. 나랑 화해할 마음이 든거야? 하긴, 친구싸움은 물베기라고,”

"당장 나와 내 아버지를 풀어줘.“

베르는 날 보자마자 멱살을 잡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이 와중에도 아직 신병으로 얼굴에 열이 오른게 보였다.

“말하지 않았던가? 결국 너는 내가 옳다는걸 알게 될 거라고. 우리는 함께 할 운명이야. 네가 나와 함께하겠다고, 그 한마디만 하면 그 병은 씻은듯이 없어져.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내 사정도 이해해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나와 함께하는 순간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그럴만한 힘이 있었고,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들은 나약함과 동시에 교활해서 아무리 잘해줘봤자 고마운 줄을 모른다. 나는 이 숲에서 수많은 배신들을 목격했고 내 눈앞에서 몇번의 왕이 바뀌었다.

정처없이 떠돌던 내게 베르라는 존재는 그리운 과거의 편린이었다. 그와 같이 있을때면 나는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하나씩 쥐어주었고,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왜 그가 갑자기 그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내 멱살을 쥐고 흔드는 남자를 보는 눈에 서서히 경멸이 차올랐다.

“이해는 개뿔. 넌 정도를 넘었어. 아니, 이미 넘은지 오래지만. 최소한 내 가족만은 건들지 말았어야지..내 가족은!”

“하..결국 너도 그녀의 대용품인 주제에.”

“..뭐?”

"그래, 네가 언젠가 물었었지. 왜 너한테 잘해주냐고. 그건 네가 내 정혼자를 닮았기 때문이야. 나는 너에게 진심이었어. 너에게 내 모든것을 주려했지. 그런데 너는, 허구한 날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선비놀음이나 하고 있고. 내가 이제 너에게 관심을 쏟을 이유가 있나?“

순간 내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눈앞의 남자는 고개를 숙여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넌 나를 다른사람과 겹쳐보고 있었던거야. 근데, 너. 진짜 그 정혼자라는 사람을 사랑하긴 했던거야? 제멋대로에다가 이기적인 네가?”

“..내 사랑을 함부로 폄하하지마. 우린 진짜였어. 숭고했고, 그만큼 내가 간직할 가치가 있었어. 너같은 모조품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네 자신을 사랑한거 아니고? 말 들어보니까 분명. 너는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을거야. 사실 너는, 그 사람을 너의 분신으로 생각했던거 아니야? 네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 사람에게서 찾으며, 그 사람을 ‘완성’시키며 자기만족에 취했을 뿐인 불쌍한 남자.

그게 바로 너야.“

내 안에서 단단히 믿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베르에게서 그녀와 다른점을 찾을 때마다, 그녀에게서 나와 다른 점을 찾을 때마다, 나는 애써 그것들을 무시하며 그들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했던 게 아니였나?

결국 나는, 누구를 사랑했나.

나 자신이었나?

“..그런데 그게 뭐.”

“뭐?”

“그게 잘못된 거야? 나는 내가 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너희를 도운거야. 너희를 위해서.

..우리 이제 의미없는 논쟁은 그만 하자. 다시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는거야. 한번만, 더도 말고 딱 한번만 모른체하면 모두가 행복해져.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기 원하지. 그리고 나는 친히 그 바람을 들어주는 신이고. 너도 나와 같은 자리에서, 나와 평생을 지낼 수 있는데. 왜 그걸 몰라.

..나는 널 이렇게 놓칠 수 없어. 네가 싫다해도, 내가 그렇게 만들거야. 몇십년쯤 지나면 너도 알겠지.“

“그 ‘모두’에 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나 해? 이제와서 그 말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기연민은 집어치워. 넌 그 시간마저도 아까워.

넌 나에게 그저 친구에 불과했어. 가끔 도를 넘는 나를 향한 집착도 좋게 이해하려고 했어. 그런데, 뭐? 나를 네 마음대로 재단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나와 내 가족들에게 해를 끼쳐? 진짜 넌...

이제 그만 끝내자. 너도, 나도.“

그는 그 말 뒤에 왠 부적과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그깟걸로 무얼할 수 있냐고 코웃음치려던 나는 부적에서 풍기는 익숙한 기운에 이내 사색이 되었다.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나를 이 숲에 봉인했던 것과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으니까.

그제서야 그 푸른 눈을 가진 남자가 떠올랐다.

“..잠깐, 우리 대화로 하자. 너 지금 그 남자한테 속고있는거야.”

“네 입으로 다 말했으면서 속고 있기는 뭘 속아. 귀신은 과거의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지. 그래서 한번 생긴 약점은 영원히 약점이라고.

이게 내 마지막 예의고 작별인사야. 내 손으로 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 부디 이 안에서는 네가 한 일을 반성하면서 지내라.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목걸이를 쥐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예전에 누군가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귀신은 자신에게 없는 인간의 생기를 동경해서, 조금만 잘해줘도 금방 빠져버리고 만다는.

그럼 내가 그에게 너무 잘해준게 화근이었나. 내가 조금만 덜 잘해줬다면 우리는 오래 친한 벗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의문에 답해줄 이는 이제 없었고 나는 애써 떠오르는 잡생각을 떨치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푸른빛으로 변한 팬던트가 울기 시작했다.

+)

“베르, 오늘도 수고했어!”

나는 그 사건을 뒤로하고 선생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곳에서 나는 엑솔레이 라는 학교의 학생회장이 되어 지내고 있었다. 코토카, 멜로코, 도피오. 모두 여기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었다.

의뢰를 마치고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번 의뢰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조ㅅ..아니, 한국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세르는 내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에 봉인되었다. 그는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하는 부적과 선생님이 주신 목걸이의 힘으로 봉인되었다. 부적이 아직도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세르가 한눈에 사색이 될 정도면 강력한 물건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목걸이는 감시할 사람이 필요한 관계로 한동안 내가 걸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세르가 보면 오히려 같이 있게 되었다고 좋아할까?

...이제와서는 의미없는 생각일 뿐이다.

-애증(愛憎)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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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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