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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어느 살인자의 고백

#Cerumillion

다락방 by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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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ger Warning!

-자살, 자해, 가스라이팅, 가정폭력, 살해

불편하신분들은 꼭 주의해 주세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처음부터 였을까?

".....르, 베르! 정신 차려! 우린 도망가야한다고!"

"ㄴ...내가....사람을......"

"그래, 내 전애인되는 사람을 시원하게 푹 찔렀지. 참고로 죄책감은 넣어둬, 그 새끼는 죽어도 쌌으니까."

"아...아...내가....사람을...,..."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감돌았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그 옆에는 남자가 힘 없이 누워있었다.

"겨....경찰,경찰을 지금이라도,"

"너 바보야? 그런 짓을 하면 경찰이 옳다구나하고 너를 감방에 처넣겠지! 난 그런 꼴 못 봐. 빨리 나와."

세르는 주저앉아 있는 내 손을 다급히 붙잡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경찰에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왜 당황하지 않았을까?

마치 이 살인을 예상한 것처럼.

ㅡ사건 발생 30일 전, 베르의 집

2월 xx일, 19xx

오늘은 우리가 만난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그를 집으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있을때,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그가 와인을 들고 현관에 서 있었다.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한창일 무렵,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그가 나에게 자신을 위해 내가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별 생각없이 '내가 할 수 있는것은 무엇이든.' 이라 답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안겨왔기 때문에, 나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ㅡ사건 발생 25일 전, oo카페 근처 골목길

2월 xx일, 19xx

그가 며칠 전 나에게 한 가지 고백을 해왔다.

요즘 누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익명으로 소포도 온다고 말했다. 짐작가는 사람이 없냐는 내 말에 그는 자신의 전애인을 꼽았다. 들어보니 그 전애인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그는 사귀는 날을 거듭할 수록 데이트 폭력을 일삼았고, 세르를 구속하려 들었다고 한다. 결국 참다 못한 그가 이별을 통보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던것 같다.

며칠 전에 한 질문은 이것을 염두해두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힘들어 보이는 세르를 안아주며 앞으로는 내가 옆에서 그를 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엾게도 그는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운 모양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가 밤늦게 어디를 가야할때면 그를 데리러 가곤 했다. 그도 나의 행동에 매우 고마워했다.

그 날도 세르를 데리러 oo카페에 가는 중이었다. 그때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급히 어디론가 가다가 나와 부딪혔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떨어진 사진을 주으려 했으나,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게 먼저였다. 그것은 세르를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그 스토커라는것을 알았다. 그를 잡으려 쫒아갔지만, 너무 빠르게 도망가버려서 놓치고 말았다.

나는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세르가 괜찮은지 살폈다. 그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았다.

무심코 눈을 감자 그 날의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ㅡ사건 발생 20일 전, 세르의 집

3월 xx일, 19xx

나는 세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는 그의 목소리 대신, 두 남자가 다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저었다.

문을 열었을 때는 그 키 큰 남자와 세르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카페 근처에서 본 그 남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때 그 남자의 손이 올라가며 세르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아빠,죄송해요..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엄마를 때리지 말아요.....'

'베,베르야...,윽..저ㅉ,쪽으로 숨어, 있으라고.,ㅎ..,했잖아.'

남자의 얼굴이 순간 친부의 얼굴로 보였다. 과거의 일이 겹쳐보인것일까?

상황이 벌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내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 손에는 피 묻은 송곳이 들려있었다.

넋이 나가 주저앉아 있던 나를 잡아 이끈 것은 세르였다. 그는 누군가가 신고를 하기라도 하면 내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며 빨리 도망가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지켜온 가치관에 반하는 일이 었으나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어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아니, 사실은 비겁한 변명이다. 나는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기를 바랬다. 눈을 뜨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겨주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겁쟁이처럼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하고 만 것이다.

언젠가 나의 친부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너는 너와 관계된 이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고. 그 말이 족쇄처럼 내 숨을 옭아매고 있었다.

세르는 한순간에 살인자를 숨겨주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개의치않고 내 안위만을 살폈다. 그것이 우습게도 한 줄기 위안이 되었고 또 내 머릿속은 여전히 소란스러워서,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눈을 감았다.

ㅡ사건 발생 15일전, 외진 별장

3월 xx, 19xx

"속보입니다. 금일 xx거리 한 아파트에서 자상을 입은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사후경직이나 주변 혈흔이 말라붙은 것으로 보아 사망추정시간은 더욱 이른것으로 보고 있으며, 용의자는 도주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내가 사람을 죽인지 벌써 5일이 지났다.

처음 다시 눈을 떴을때는 현실을 부정했고, 종국에는 울며 자수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인지하자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나는 사람을 죽인것도 모자라 현장을 벗어나 도주한 범인이었다. 그 남자가 세르의 스토커라는 사실은 내가 그 남자를 죽인 사실에 별 다른 점을 시사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차려, 내가 너 때문에 지금 어디까지 하고 있는데. 다 너 좋으라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잖아. 아니면 진짜 자수라도 하던가. 물론 나는 네가 잡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미안하다고, 이제 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옆에서 계속 괜찮다고, 넌 잘못한거 없다는 세르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대로 이렇게 사는것도 괜찮을 거라는 비겁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사용하던 별장이라며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일가친척이 없다고 했던 그가 어떻게 이곳을 알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의도적으로 그 주제에 대한 언급을 꺼렸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ㅡ사건 발생 10일 전, 외진 별장

3월 xx, 19xx

그 날도 별다른 일이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세르는 식료품을 사 온다며 시내로 나갔고, 나는 별장에 남아있었다. 무료함에 여기저기 별장을 둘러보던 나는 복도 끝 문이 살짝 열린 방을 발견했다.

집주인의 허락없이는 함부로 방에 들어가지 않는게 내 주의였지만, 호기심 내지는 반항심 때문이었을까?(무엇에 대한?)나는 그곳에 들어가 보면 안될 것을 보고 말았다.

세르의 일기로 보였던 그 노트에는 나를 만나기 전의 일부터, 최근의 일까지 쓰여있었다. 내가 어느 날 머뭇거리며 어렵게 꺼낸 내 어릴 적 얘기도, 그에겐 그저 이용하기 좋은 장기말이었다.

그의 전애인을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는 일기 속 그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냉담했다. 서랍 안쪽에는 카페 근처에서 본 남자가 지니고 있던 사진과 서류 하나가 있었다. 이 모든게 그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자 다시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덮쳐왔다.

저 편에 밀어두었던 그 날의 기억이 수면위로 올라와 나를 짓눌렀다. 연인에 대한 배신감과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뒤엉킨 살의는 향할 곳을 찾지 못하고 그저 내 마음에 응어리져있었다. 나는 그에게 진실만을 말해왔으나, 그는 내게 거짓만을 말해왔던 것인가?

친모는 사망. 친부는 전과자.

별 볼일 없는 인생에서 나타난 그는 마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구원자 같았다. 그도 나처럼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운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취향도 비슷했던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 투성이였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맛본 행복에 취해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입맛이 없다말하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세르가 무슨 일있냐며 나에게 물어왔지만,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새빨간 와인이 마치 그날 바닥을 적신 혈흔으로 보였다. 내가 먹고 있는게 음식인지, 정체모를 무언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속이 메스꺼워 졌다. 급기야 나는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ㅡ사건 발생 7일전, 외진 별장

3월 xx, 19xx

그 날 이후, 나는 불면증과 환각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아버지와 내가 죽인 남자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고 마지막에 그것은 내 연인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내가 식사를 하고 있을때, 책을 읽고 있을때 언제든 내 옆에서 속삭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자라 종국에는 너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네가 이렇게 살아갈 자격이 있냐는듯 끊임없이 속삭였다.

세르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어쩔 수 없어서 결국 그도 내가 잠을 설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불면증에 좋은 허브차를 내밀며 걱정했지만 나로서는 이러나 저러나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되려 우습기만 했다.

너에게 나는 뭐였어?

그날 밤에는 유독 환청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나를 덮쳐오는 파도에 무기력하게 잠길 뿐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져 가는 느낌이 들었고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그때 책상에 올려둔 커터칼이 보였다. 나는 홀린듯이 그것을 집어 손목을 그었다. 새빨간 피가 아롱져 바닥에 떨어졌다. 우습게도 그것을 보자 그동안 내 머리에 뿌옇게 껴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나를 따라다니던 목소리들도 사그라들었다.

그래, 이거다.

ㅡ사건발생 3일 전, 외진 별장

3월 xx일, 19xx

"이제 잠은 잘자는거 같아 다행이네, 우리 언제 나들이 갈까?"

그렇게 말하는 세르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안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나는 표정을 꾸며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면증과 환청이 나아질 수록 내 손목에 있는 상처들은 늘어만 갔다. 그 때문에 나는 항상 긴 소매가 있는 옷을 입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우습게도 나는 이제 세르에게 어떻게 상처를 줄 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망친, 동시에 항상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자해하고 나서 며칠 후일까, 이번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 앞에 있는 이를 죽이라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어떻게 하면 그에게 최고의 복수를 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베르..! 너 괜찮아? 손에서 피가 나! 빨리 이쪽으로 와, 약 발라줄게."

그때 세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념에서 깨어 내려다보니 내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양배추를 썰다가 칼에 손이 베인듯 했다. 피가 제법 많이 났는지 양배추가 원래 적색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감흥이 없었지만, 세르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답지 않게 초조한 기색이었다.

만약 내가 너의 눈앞에서 죽어버린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할까?

ㅡ사건 발생 당일, 별장 뒤쪽 언덕

3월 25일, 1979

"미안, 그래도 여기도 나름 운치 있고 좋아. 꽃도 많이 피었어. 저기 봐!"

우리는 별장 뒤쪽에 언덕에서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음식을 먹었다. 주변의 눈 때문이었는지, 세르는 별장 뒤쪽의 언덕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장소야 어디든 상관없었기 때문에 군말없이 따라갔다.

나는 세르에게 나를 사랑하는지 물었다. 그는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웃으며 당연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럼 너에게 난, 그저 보기 좋은 인형이었던 거야?

나는 내가 사실 너의 일기를 봤노라고 고백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걸까?

그는 잠자코 있더니 오해라고, 내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나를 쫒아오는 것이 느껴져 나는 절벽쪽으로 더 빨리 뜀박질 했다. 뒤편은 절벽이었다.

절벽을 뒤로 마주 본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사실 너를 만난걸 정말 후회하고, 너를 죽여버리고 싶고, 네가 말한 그 모든 것중에 사실이 있기는 했냐고 소리쳤다. 그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야차처럼 변해가며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겠지, 나는 줄곧 너의 손 안에 있었으니까.

그에게 복수를 다짐한 그날, 나는 계획을 세웠다.

죽는 날은 그가 방심했을때, 장소는 시체도 못 찾게 아예 밖이 좋겠어. 살아봤자 무의미한 목숨으로 그에게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남는 거래가 아닌가?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뒤로 한 걸음을 더 갔다.

몸이 순간 부유하는 느낌이 나더니 내 몸이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그동안의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어머니, 수갑이 채워진채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나에게 욕설을 퍼붓던 친부, 웃으며 손을 내밀던 세르, 피 묻은 송곳을 들고 서있던 나.

우리의 끝이 보였다.

절벽 위로 세르의 망연한 표정이 눈에 보였다.

그래, 너의 그 빌어먹을 가면이 깨지는 순간을 보고 싶었어.

-어느 살인자의 고백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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