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불멸의 연인
#레종데트르 #보쿠오레(기미) #각본 뒷부분 날조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벤트 '말하는 인형과 레종 데트르'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음
*미카의 고아원 양어머니(날조) 등장
파리로 완전히 거점을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오사카에 들러 고아원의 양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무슨 평생의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작년의 스승님을 생각하면 스케줄상 일본에도 자주 오갈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전처럼 마음만 먹으면 신칸센을 타고 찾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기에,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약간의 눈물을 찍었다.
"너무 아쉬워 마이소, 어무이. 그카고… 앞으로도 송금은 빠짐없이 할 테니께, 그짝도 걱정 안 해도 되고."
"지금 돈 걱정을 하는 줄 아나? 야가 참말로…."
"응헤헤, 전화도 자주 할께에."
미카가 멋쩍은 얼굴로 말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카. 암만 멀리 떨어져 있다캐도, 우리가 항상 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기를 잊지 마래이. 혹시 고생스럽거나 힘든 일이 있으믄 언제든지 돌아올 데가 있다는 기도."
"…응아, 내사 마 스승님 곁에 있는 긴데 머 힘든 일이 있겠노."
미카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슈 쪽을 바라보았다.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며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슈의 표정이 몹시도 평화로워 보여 미카도 배시시 웃음이 났다.
"…마, 항상 슈 군과 이츠키 가문에 신세를 지고 있기는 하지만… 캐도 미카, 전혀 맘 둘 데 없이 떠나는 기랑 최악의 경우 어데 갈 데가 있다는 기는 전혀 다르다 아이가."
"으응…."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말해 줘가 고맙데이, 어무이.
캐도 마, 내 진짜 어데 도망치거나 숨을 일이 생기믄 일루는 안 올끼다. 스승님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스승님이 아는 데로는 내 안 가제.
내가 사라진다믄, 그건 내가 스승님한테 방해가 될 때뿐이니께.
"인사는 제대로 마쳤겠지, 카게히라?"
"응… 인자 가야제."
택시에 타기 직전, 마지막으로 고아원을 돌아본 미카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슈가 말했다.
"작년에는 나도 비교적 빈번히 이 나라에 돌아오곤 했지만, 앞으로는 네가 곁에 있으니 귀국 횟수도 기간도 많이 줄어들 것이야. 그 점 명심하고 확실히 인사를 드렸으리라 믿는다."
"응아? 와 쭐어드는데? 하는 일은 똑같지 않나?"
미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슈는 입을 슬쩍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내가 귀국할 때마다 항상 네가 함께 하고 싶은 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많은 준비를 해 놓지 않았느냐? 카게히라라면 내 시간을 유의미하게 쓰리라 믿고 가능한 한 일정을 여유 있게 잡곤 했다만."
"그, 그랬나?!"
"나루카미에게서 몇 번이나 놀림받았는지 모르는 것을! 너는 몰랐단 말이야?"
미카는 당황했다.
"스승님, 내 땜에 매번 일정 조정했던 기가?! 왔다 갔다 하기 을매나 피곤한데 와 그랬나…? 내는 그런 것도 모르고…."
"성주관에서, 공항에서 헤어질 때마다 옷자락을 잡고 통 놓지 못했던 장본인이 할 말로는 들리지 않는군."
"응아아…."
슈가 미소를 짓더니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그럴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잖아. 앞으로는 내 입장에서도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셈이고. 매번 그렇게 생이별하는 것처럼 눈물을 삼키는 네 모습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
"미, 미안했다 아이가…."
"아, 하지만 카게히라가 벗들을 만나는 등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일본에서의 체류 기간을 늘리겠다고 희망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검토해 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야."
슈의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폐가 된다는 생각에 미카가 처음 파리에서의 동거를 거절했을 때는 그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는 어린애처럼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던 슈였지만, 결국은 슈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미카가 고개를 끄덕인 후로는 꽤나 기분이 좋은지 가끔 콧노래마저 부르곤 했다. 슈 입장에서 정말 이것이 그렇게까지 안달복달을 하고, 또 즐거워할 일인지 싶어 미카는 여전히 의아한 기분이었으나 어쨌든 기분 좋은 얼굴의 슈를 보는 것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미카는 방금 떠나온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 더러 보곤 했던 광경을 떠올렸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바닥에 드러누워 울면서 떼를 쓰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손에 넣은 인형이나 장난감 또는 풍선을 금세 손에서 놓아버릴 때가 있다.
'손에 넣는 것' 자체가 욕망을 채우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상 자체의 가치와, 인간의 소유욕은 별개다.
하지만, 그래도.
"저기, 스승님…."
"음? 뭐지?"
"…내는, 스승님을 위한 일이라믄 머든 다 할끼다."
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미카는 말을 이었다.
"내, 요 1년 동안 신출내기 예술가로서 참말로 열심히 살았데이.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갈고닦고, 열심히 일하고… 그니께 전보다는 쪼금이나마 쓸모가 있어졌을끼다."
"그래서?"
차가워진 슈의 목소리에 미카는 당황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어필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일까?
"그, 그니께… 으음, 그… 잘 설명하긴 힘들지만…."
"…."
"스승님이 오라캐서 파리 가는 거는 맞지만… 결국은 내 좋은 일 아이가?"
"뭐라고?"
슈가 미간을 좁혔다. 미카는 없는 말재주로나마 최대한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 자신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스승님은 혼자서도 충분히 파리에서 잘해 왔꼬, 앞으로도 문제없이 잘해낼 수 있을끼다…. 그치만 내는 안 된데이. 요 1년 동안 잘 알았다 안카나. 스승님 없이 내는, 혼자서는 원하는 만큼 자기표현도 잘 몬한다. 쩌번에도 말했지마는, 사람들이 내를 보고 칭찬해 주는 기는 내가 전혀 의도치 않은 부분이제. 스승님도 그걸 보고 실패한 예술이라꼬 안 했나?"
"농, 아니, 카게히라. 그 이야기는…."
"응, 그니께 결국 내를 똑바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통틀어서 스승님밖에 없제. 그걸 확실히 알고 나니께, 역시 내 세상에는 스승님 하나믄 충분하다꼬 생각했데이. 그치만 스승님 세상에 내가 꼭 필요한 부품은 아이지 않나? 그런데도 스승님은 내를 곁에 둘라꼬 해 줬제. 그기는, 역시 스승님이 다정한 사람이라 그런 기다."
"카게히라."
"그러니께 내는, 스승님을 위해서라믄 머든 다 할 수 있데이. 그게 내 방식의 '쥬뗌므'라카믄, 마 그럴싸하제?"
슈가 두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짚고 얼굴을 찌푸렸다.
"으, 응아아! 그치만 역시, 범죄 비슷한 짓은 안 할끼다! 그거는 인제 내 약속했다 아이가! 스승님까지 더럽히지 않겠다고!"
행여나 슈가 불쾌해할까 싶어 미카가 다급히 덧붙였지만 슈의 미간 주름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잡아먹을 듯 사나운 얼굴로 미카를 노려보면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언뜻 차창 밖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에 거의 다 왔으니 내릴 준비를 하거라. 다만 이것만은 말해 두마."
"응아?"
"카게히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야. 어딜 어떻게 봐서 그렇게 오해했는지는 모르겠다만."
"…?"
"하아, 가방을 챙기도록."
슈가 턱짓으로 가리키자, 미카는 정말로 하마터면 잊고 내릴 뻔한 가방의 존재를 그제야 떠올리고 허둥지둥 짐을 챙겼다.
"역시 스승님은 머리가 좋아가, 내를 빠삭하게 잘 아는구마!"
미카가 활짝 웃으면서 말하자 슈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
비행기 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대부분 고요히 잠이 들었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당연한 풍경이지만 슈는 이 모습이 마치 커다란 공동묘지 같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었다. 하늘 위에서 잠을 자다니, 그야말로 죽음의 나라 그 자체가 아닌가. 아무래도 인간이 산 채로 잠들기에는 너무 높고, 너무 불경한 위치이기는 하다.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있다 보니 비행 중에 깊은 잠을 자지는 못하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옆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쿨쿨 자는 존재가 있다. 슈는 옆을 흘끗 보고는 손가방을 뒤져 새 마스크를 한 장 꺼내 그 얼굴에 조심스럽게 씌워 주었다. 갈증 방지 겸, 이래봬도 아이돌이니 혹시 부주의하게 사진이라도 찍혔다가는 곤란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카를 데리고, 함께 하늘을 날아 프랑스로 가는 것은.
"앞으로는 수도 없이 함께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이제부터는 정말로 거의 모든 행동을 같이 할 것이다. 슈 역시 1년을 혼자 지냈는데도 여전히 곁에 늘 미카가 없다는 사실에 도통 익숙해지지 못했다. 불랑제리에서 무심결에 크루아상을 두 개 집을 때, 길을 걷다 알록달록한 사탕을 파는 귀여운 가게를 발견했을 때, 한밤중에 작업을 하다가 문득 뜨거운 차 한 잔과 옆사람의 의견이 필요할 때─
저도 모르게 옆을 돌아보며 카게히라, 하고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공허하게 울려퍼졌던가.
스승님은 혼자서도 뭐든 잘해내는 사람. 내가 없어도 괜찮은 사람. 하지만 다정하기 때문에, 자상하기 때문에 나를 신경써 주는 사람. 미카의 안에서 자신이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슈는 새삼 한숨을 내쉬었다. 굳게 닫힌 문처럼 견고한 그 아이의 고정관념을 고작 아니라는 말 몇 마디로 부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간신히 설득해서 파리에서 함께 사는 데 성공했다고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길다.
하지만 슈는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카게히라, 그 각본을 쓴 것이 다름아닌 나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모양이로구나."
머나먼 나라에서 날아온 유학생 청년은 끊임없는 연서와 노크로 아름다운 인형을 깨웠다. 인형 뒤에 숨어 있던 외롭고 소심한 인형사의 마음을 움직여,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게 만들 정도의 힘. 그것은 그저 꾸밈도 가식도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부어 주면 된다. 아무리 바닥 없는 늪 같아도 언젠가는 차오를 날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부어 주면 된다. 다행히 거기에 필요한 시간도, 인내심도 있다. 슈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미카의 앞머리를 넘기고 이마에 재빨리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
"응아~ 그라믄 세나 선배가 이짝 올 때 들려 보내께. 나루쨩, 또 전화하재이."
아라시에게서 파리 한정판 화장품 구매를 부탁받은 미카는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서 다시 스케치북을 집어들었다. 지난번 아라시를 모델로 디자인했던 주얼리의 반응이 꽤 좋아 후속작을 런칭하게 되면서 또다시 들어온 의뢰였다. 그 후 나즈나에게 브로치를 만들어 준 적도 있고, 소중한 누군가의 맞춤형으로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는 일이 자신의 성격에 꽤 잘 맞는다고 생각한 미카는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누구를 모델로 디자인할 것이냐였다.
"엔간한 사람들은 다 그려 봤는데… 딱 이거다! 하고 오는 기 없구마…."
슈가 학교에 가고 없는 오후, 미카는 슈의 아틀리에에 혼자 앉아 끙끙 앓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에 나란히 살기 시작했지만 의외로 24시간 내내 딱 붙어 사는 일상은 아니었다. 슈는 물론 학교에 가야 했고, 미카도 작품활동과 의뢰받은 작업을 하는 데 바빠 어떨 때는 하루종일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오히려 아틀리에에 와 있는 편이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미카도 이 아늑하고 적당히 어두운 공간이 마음에 들어, 거의 눌러앉아 지내곤 했다.
"누구를 생각하고 맹글어야 하나…."
긴 한숨을 내쉬며 디자인화가 잔뜩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을 뒤적이던 미카가 문득 한 장에서 손을 멈추었다.
그것은 요전번 이츠키 가문 사람들 앞에서만 공연했던 가극 '레종 데트르'의 두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페이지였다.
"…."
물론 슈와 미카가 연기한 이 인물들의 코디네이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대에 오르기 위한 복장이었고, 지금 미카가 만드는 것은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주얼리 제품이다.
이들을 모델로 커플 주얼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카는 조금 의욕이 났다.
"전에 연기했을 때 입었던 옷이 다 어데 들어있더라… 아, 여깄구마."
여성용 드레스와 풍성한 긴 머리 가발. 미카는 그것을 갖춰 입고 옅은 화장까지 한 후,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어떤 액세서리가 어울릴지를 고민해 보았다. 스스로가 할 액세서리를 고민할 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거울 속 타인을 보니 조금씩 솟아났다.
다소 마음이 놓인 미카는 스케치북에 열심히 연필을 놀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하고 말았다.
"계속 신경 써가꼬 잠도 제대로 몬 잤는데… 한숨만 자고 해야겠데이."
책상에 엎드린 미카는 그대로 감기는 눈꺼풀을 내려버렸다.
***
"카게히라, 안에 있느냐? 오는 길에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사 왔으니 홍차를…."
아틀리에로 들어오던 슈는 웬 긴 머리 여성이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그것이 자신이 만든 의상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보고 다른 의미에서 또 놀랐다.
단 한 번의 무대, '레종 데트르'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인형사 청년. 그 아름다운 사람이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응아아… 아, 스승님 왔나?"
인형사 청년의 모습을 한 미카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문 열리는 소리와 슈가 부르는 목소리에 깨어난 모양이었다.
슈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꿈을 꾸었소. 그 아름답던 장미의 저택이 온통 황폐해지고, 덩굴이 모두 시들고, 인형은 망가지고, 저택 안에 새빨간 글씨로 쓴 'Je t'aime'만이 남아 있는 꿈을.
미카는 깜짝 놀라 잠기운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그것은 실제 상연된 '레종 데트르'에는 없는 대사였다. 30대가 된 유학생 청년이 다시 파리의 장미 저택을 방문한 후 그 참상을 보고 절망한 그 밤에 꾼 꿈의 이야기였지만, 흐름이 너무 늘어진다는 판단에 슈가 삭제해 버린 부분이었다. 2부는 훨씬 산뜻하게, 간결하게 끝나는 편이 낫겠다는 말에 미카도 조금은 아쉽지만 동의했었는데.
마찬가지로 삭제된 부분까지 대본을 전부 외우고 있던 미카가 저도 모르게 그 대사에 응했다.
-그 꿈에서 깨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어차피 우리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어찌 그리 매정한 말을 하시오? 당신을 사랑하오. 아아, 사랑하오! 이 몸을 불태우는 정열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다음 대사를 말하려는 순간, 미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말은 그야말로 실제 자기 자신의 마음이나 다름없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저의 사랑은 너무나 작고 작아,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따위는 당신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을 거예요.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리 폄훼하고 하찮게 취급하지 말아 주시오!
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그 박력에 미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슈는 눈꼬리를 잔뜩 치켜올린 채 성큼성큼 다가와 미카의 두 어깨를 꽉 붙잡고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맹세하리다. 내 다음 생에 반드시 당신을 다시 찾아내고야 말겠소.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마침내 소리 높여 외치겠소!
-이제는 아무도 우리의 행복한 이야기를 훼방놓을 수 없노라! 나와 당신만이 이 세상의 주인으로 군림할지니, 한 번 있었던 비극이 결코 두 번 되풀이되지는 않으리라! 인간희극에, 행복이 깃들지어다!
"응아, 스승님? 그런 대사가 있었던가?"
당황한 미카가 몰입도 잊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원래 흐름으로는 이 부분에서 유학생이 인형사에게 입을 맞추려 하지만 인형사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유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물론, 어차피 전부 파기된 부분이지만.
"흥, 각본가는 나다. 어떻게 끌고 가든 그것은 내 소관이라는 것이야."
"그, 글킨 한데…."
영문 모를 궤변에 미카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자 슈는 긴 한숨을 내쉬고 미카를 껴안았다.
"카게히라, 나였다면… 결코 인형사를 홀로 놓아두고 귀국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긴 시간 후에야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야."
"응아, 마 시대상이라는 기 있으니께…."
"아니, 나였다면 강제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반 폐인이 되었겠지."
"?!"
"이렇게 공허한 약속만을 남기고 모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터. 사랑 하나 이루지 못하는 인생에 허무감밖에 느끼지 못하다,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을 것이야."
놀란 미카가 팔을 뻗어 슈를 살짝 밀어내고,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와?!"
"카게히라. 내가 너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네가 없으면 홀로 똑바로 설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너는 나를 동정해 주겠느냐? 아니면 환멸을 느끼고 내게 실망하겠느냐?"
"동정도 실망도 안 한데이! 내는 스승님이 필요하다카믄 머든 다 해줄끼다!"
물에 빠진 듯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던 두 팔이 다급히 슈의 등을 꽉 껴안았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다, 금세 아래로 축 처졌다.
"대신, 내가 필요없어지믄… 내가 스승님 미래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믄, 언제든지 말해 도. 내 고집으로 방해할 생각은 없데이."
"농, 그건 안 돼."
슈가 처져 있던 미카의 두 팔을 강제로 끌어올려 자신의 등 뒤에서 깍지를 끼게 했다.
"나는 이미 카게히라, 너만을 불멸의 연인으로 삼기로 맹세했다는 것이야."
"으… 응아아?!"
귓불에 입술이 살짝 닿기만 하는 키스에도 미카는 파르르 떨었다. 슈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말했을 텐데?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나도 다 할 수 있다고."
"무신 소리고?"
"어차피 가만히 내버려두면 너는 내게 영원히 구속되어 있을 테지. 변치 않는 마음만을 내게 바치며, 계속해서 시끄럽게 지저귈 것이 아니냐? 사랑한다고, 사랑해 달라고, 당신 외에는 다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당신의 옆자리를 결코 다른 누군가에게 내주지 말아 달라고."
"대단한 자신감이지만 틀린 말이 아이라 머 대꾸할 수가 없구마…."
슈가 흐흥, 하고 웃었다.
"네가 그런 영원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나 또한 당연히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아니, 내가 더 오래, 더 단단히 유지할 수 있겠지. 나는 네 스승이니."
"스승님 진짜 승부욕 강한 거 내도 아는데, 이런 데서 발휘할 필요는 없다카이…."
"승부욕? 그런 즉물적인 딱지를 붙이지 말아 다오. 이것은 더욱 고결하고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감정이니까. 카게히라, 인간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 감히 '영원'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입술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슈가 속삭였다.
"사랑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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