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다음 트리까지 **2024 Mika HBD**

#미카 생일 #동생들과 동화책 #크리스마스 마켓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카 오빠야, 그림책 읽어 도."

"내도, 내도."

"응~? 어데, 어데. 머가 좋을까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크고 얇은 그림책을 하나씩 들고 오는 여동생들을 보며 미카는 눈을 반으로 접고 생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툭하면 울고, 싸우고, 생떼를 피우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지만 순순히 무언가를 조를 때만은 정말이지 천사처럼 귀엽다. 미카는 그런 동생들을 바라보며 제일 앞에 있는 아이가 내미는 그림책을 받아 들었다.

"그라믄 우선 이것부터 읽어 보까! 응아, 글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구마."

"응! 크리스마스 나라에 간 공주님 얘기 읽어 도!"

미카가 한 권을 펼치자 아이들이 주위로 둥글게 앉아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다. 가지고 오는 그림책들마다 벌써 수도 없이 읽은 탓에 모서리가 다 닳고 책장이 너덜너덜할 정도였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듯 좋아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싶어 한다. 미카는 첫 페이지를 넘겨, 아이들 앞에 그림을 보여주며 한쪽 구석에 씌어 있는 짧은 글을 읽었다.

"…공주님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하늘에는 하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어여쁜 불빛이 가득하고, 주위에는 빨간색과 녹색으로 장식된 가게들이 길 저편 끝까지 쭉 늘어서 있었거든요. 딸랑딸랑 울리는 방울 소리, 어딘가에서인지 모르게 들려 오는 명랑한 음악 소리. 이곳은 그야말로 1년 내내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나라'랍니다." 

"후아아…."

"내도 가 보고 싶데이…."

알록달록 컬러풀하게 채색된, 커다란 그림책 가득 펼쳐진 그 풍경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은 황홀한 상상에 젖었다. 고아원에서도 12월이 되면 거실에 놓을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그림엽서를 그려서 친한 사람들에게 보내거나 친구들끼리 서로 교환하는 등 사소한 행사를 하지만 결국 전부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행위일 뿐이었다. 눈 닿는 범위 전체가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완전히 가공의 것으로만 이루어진 낯선 공간에 대한 동경은 크리스마스 당일로 다가갈수록 더욱 높이 치솟았다.

그것은 미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미카 오빠', 하지만 그런 미카 역시 결국은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시설 예산이 빠듯한 것을 알고 일찌감치 어린이날 선물도, 생일 선물도 전부 사양해 버릴 만큼 철이 들었어도 어린 여동생들에게 둘러싸여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설레는 일까지 그만두지는 못했다.

"향긋한 바게트 빵과 달콤한 핫 초콜릿 냄새에 이끌려 한 가게에 들어간 공주님은 은화를 내고 음식을 사려 했지만,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일까요? 지갑에 들어 있는 것은 동글동글한 도토리뿐이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가게 주인은 도토리 세 개를 받고 공주님에게 빵을 건네주었답니다. 이곳에서는 도토리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었어요. 예쁜 천사 인형도, 귀여운 구슬도,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종도."

뎅그렁, 뎅그렁.

중후하고 울림이 묵직한, 성당 종 소리가 들려 왔다.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주위에서 빠르게 웅성거리는 소리는 한 마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였다. 눈을 깜박이던 미카는 한순간 자신이 그림책 속의 세계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로는 하얀 보석 같은 어여쁜 불빛. 빨간색과 녹색으로 장식된 아담한 가게들. 가게 문짝 가득 빼곡이 매달려 있는 자그마한 산타클로스와 순록 썰매 인형. 명랑한 캐롤 음악과 합창 소리,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아름다운 서양식 집, 그 앞을 장식한 수많은 빨간 양말의 곰인형과 금빛 선물 상자.

어린 동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다가 저도 모르게 그 속으로 들어와 버리다니 정말이지 환상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는 것쯤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하며 미카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떼었다. 물결 같은 인파 속에서 작은 조약돌처럼 휩쓸리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고아원 거실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마구 흔들고 눈을 부릅떴다.

읽고 또 읽어 거의 외울 정도가 된 그 그림책의 뒷이야기를 미카는 떠올렸다.

공주님은 불룩 튀어나온 배가 빨간 설탕과자로 만들어지고 솜사탕으로 수염을 붙인 산타클로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좁은 골목길을 걸어갔어요. 깜박깜박 꼬마전구가 아름답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사이로 따뜻한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답니다.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었어요. 크리스마스의 나라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동생들을 전부 고아원에 놓아두고 혼자만 행복한 나라에 온 자신이 과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갑자기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솟아올라, 미카는 저도 모르게 멈추어 섰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어깨가 부딪혀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렸지만 방금 전까지의 황홀했던 기분은 물에 녹은 솜사탕처럼 사라지고 갑자기 길 잃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쇼윈도 안의 북 치는 병정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유리알 같은 그 두 눈이 자신을 꾸짖는 것만 같았다.

뎅그렁, 뎅그렁.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만 꼭대기 첨탑이 간신히 보이는 거대하고 장엄한 성당 쪽에서 끊임없이 그 낮고 묵직한 종 소리가 들려 왔다. 하다못해, 이 종 소리가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근거도 없이 미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였다. 미카가 무척 좋아하는, 언제까지라도 듣고 있고 싶은, 마치 지구의 중심에서부터 울려 퍼지며 미카의 온몸을 뒤흔드는 소리.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미카는 끔찍한 상실감으로 눈이 젖어들어갔다. 정말로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팔을 들어 옷소매로 눈을 문지르려는데, 누군가의 크고 따뜻한 손이 미카의 얼어붙은 손을 빠르게 낚아챘다.

"―카게히라!"

"?!"

"하아, 하아… 이런 곳에서 대관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것이야! 네가 가판대 안쪽에 있는 오너먼트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기에 잠시 허리를 숙여서 팔을 뻗은 그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다니… 농! 어린아이도 아니고, 눈을 뗀 사이 없어진다니 말이나 되느냐!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항상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몇 번을 말했어!"

시야를 살짝 들어 올려다봐야 보이는 높이에서 미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섬세한 얼굴이 눈썹을 잔뜩 치켜올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화를 내고 있었다. 

"눈물? …아아, 추위로 살짝 맺힌 모양이군. 설령 그렇다 해도 직접 문질러 닦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카게히라?"

눈을 깜박거리며 상대를 빤히 응시하던 미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스승님."

"그래. 왜 부르지?"

"…내, 스승님캉 같이 있었구마."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것이야. 애당초 여기 온 것부터가 네가 생일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 보고 싶다고 해서…."

"응아아."

그랬다. 미카는 자신의 생일인 오늘, 슈와 함께 이곳에 와 있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프랑스에서 가장 크다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작은 도시에. 

파리에서도 개선문 앞 샹젤리제 거리에서 충분히 볼 만한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지만 무엇이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을 제일 먼저 보아야 한다는 슈의 주장에 의해 두 사람은 하루 어렵게 시간을 내어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다. 도착했을 때는 아직 날이 밝았지만, 나란히 눈을 반짝이며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이 차츰 겨울의 이른 해가 저물고 다소 쌀쌀한 밤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조명이 켜지는 밤이 찾아왔다. 낮에도 예뻤지만 어두워지고 조명이 더해지니 똑같이 들리던 음악 소리도 왠지 더 환상적이고 더 몽롱하게 느껴졌다. 

인파도 낮보다 더욱 늘어나는 바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슈의 옆에 딱 붙어 가게들을 구경하던 미카는 어느 오너먼트 가게의 가판대 앞에서 독특하게 생긴 천사 장식을 발견하고 발돋움을 해서 상체를 쭉 뻗었지만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곳에 있었다. 미카의 몸짓을 알아차린 슈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렵잖게 손을 뻗어 인형을 집어들었고―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미카가 온데간데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응아! 미, 미안타, 스승님! 내 잠깐 멍하니 있었나부다!"

"하아… 더러 눈을 떼면 휘청휘청 어디론가 사라지는 네 성격은 잘 알고 있으니 이제 와서 야단쳐 봤자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럴 때만은 제발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 다오. 금세 찾았으니 망정이지, 사람이 많아 전파도 잘 터지지 않는 이런 곳에서 휴대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미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끄덕이기만 했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슈에게 자신의 생일이라는 핑계로 크리스마스 마켓에 함께 가자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고, 자신의 고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슈에게 불쾌한 경험을 선사해서야 천벌을 받을 일이었다. 미카 쪽에서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내 인제 안 그럴께…."하는 말이 흘러나오자 슈는 한숨을 내쉬며 차갑게 언 미카의 손을 잡고, 그 위에 무언가를 얹었다.

"이게 그렇게 신경이 쓰였나?"

"응아, 천사님…. 스승님, 이거 그새 사 온 기가?"

슈는 팔짱을 낀 채 엉뚱한 쪽을 쳐다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네가 없어지는 바람에 이걸 든 채 허둥지둥 찾으러 가려다 문득 뒤에서 가게 주인이 붙잡는 바람에 얼마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지폐를 건네버렸다. 불평의 목소리는 없었던 것을 보니 최소한 오너먼트 가격보다는 높은 액수였겠지. 나라고 이국의 땅에서 경범죄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야."

"응아아아아, 공연히 나 땜에 돈만 낭비한 기 아이가…."

"이 정도야 무얼. 그리고 말해 두겠는데 이것으로 네 생일선물을 갈음할 작정은 전혀 없으니 착각해서는 곤란해."

미카는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이러니까 도련님이란'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입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애당초 옆에 잘 붙어만 있었다면 슈가 쓸데없는 지출을 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미카는 슈에게서 얼떨결에 선물받은 꼴이 된 천사 오너먼트를 내려다보았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팔 부는 이 알록달록한 천사 인형이, 그 언젠가 동생들에게 읽어 주던 그림책 속에서 공주님이 도토리를 주고 구입한 그것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이.

"내, 지금 크리스마스의 나라에 있구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크리스마스의 나라.

"그라믄, 역시 이거는 다아…."

"카게히라, 카게히라. 혼자 또 엉뚱한 생각에 잠겨 비척비척 어디로 갈 생각이거든 내게 그 작은 머릿속에 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전부 하라는 것이야. 다 털어버리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니."

천사를 바라보며 눈빛이 멍해지려는 미카의 두 어깨를 슈가 붙잡고 흔들어댔다. 눈을 깜박이던 미카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크리스마스의 나라에 간 공주님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이야기를 하더라도 슈는 결코 바보 취급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스승님은 상냥하고, 공상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캐서 천사를 보니께 내가 꼭 그 공주님이 된 것 같은… 응후후, 얘기하다 보니 내 스스로가 웃기구마. 내 괘안타, 스승님. 인제 정신 바짝 차리구 스승님 뒤 잘 따라가께."

"그래서 그 공주님은 어떻게 됐지?"

"응아?"

슈가 생각보다 꽤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는 바람에 미카는 다소 당황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주위에 시설 동생들 없을 거 알믄서 내도 모르게 확인하게 된데이…. 그, 있제. 이거는 스승님이 혹시 내 동생들 만나게 되거들랑 비밀이데이. 꼭 지키 도."

"내용 여하에 따르겠다만… 일단 들어는 보자는 것이야."

"으응, 그, 아마 동화책 작가가 《성냥팔이 소녀》나 《플랜더스의 개》를 억수로 감명깊게 읽었나부다, 카는 기를 내 나중에 알았데이."

그 순간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은 슈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농! 그렇다면, 설마…."

"스승님 생각하는 기 맞데이. 그 공주님은 사실 공주님도 뭣도 아이고, 걍 오갈 데 없는 고아일 뿐이었다 아이가. 그 얘기 전부 다 크리스마스날 밤 결국 길거리에서 얼어 죽어가믄서 꾼 꿈이었데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남의 집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지는 창문 밖에서."

"네 동생들은 그런 무자비한 내용의 동화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의아한 표정의 슈를 보고 미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아, 그 부분이 내 꼭 비밀로 해 달라카는 부분이데이. 실은 책을 첨 봤을 때 내가 보고 혹시 동생들 보까 무서버가꼬 살살 이쁘게 잘 찢어가 난롯불에 태워뿟다 아이가. 내 손재주는 좋다카이, 우찌나 곱게 잘 찢어묵었는지 얼라덜은 아직도 마지막이 그런 얘긴 줄 모른데이."

바알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카는 웃었다.

"그런 건 내 혼자만 알믄 충분하니께. 내는 '제일 나이 많은 미카 오빠'래가, 그런 걸 동생들이 모르게 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안카나."

"너라고 그런 혹독한 현실을 반드시 알아야 할 만큼 어른은 아니었다는 것이야…."

사실, 동화의 결말은 때때로 아이들에게 읽혀도 될까 싶을 만큼 잔혹하다. 오히려 그것은 본래 동화가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본래 민담이었던 그것들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고, 추후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여러 번에 걸쳐 미화되었다. 헨젤과 그레텔을 버린 어머니는 사실 계모가 아니라 친어머니라는 설이 유력하고, 성냥팔이 소녀의 모델은 당시 성냥 공장에서 백린의 위험성을 모른 채 일하다 중독된 채 거리로 내쫓긴 소녀 노동자였다. 미카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의 그런 뒷이야기들을 알게 될 때마다 하나하나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러고 나니 더욱 동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편했다. 전부 꿈이었어, 그토록 완벽한 행복은 그림책 속에만 존재했어, 그렇게 선을 긋고 나면 도리어 픽션 속 세계에 젖어 꿈을 꾸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슈는 어째서인지 화난 듯한 얼굴로 미카의 손을 꽉 잡았다. 성큼성큼 걷는 슈의 커다란 보폭을 열심히 따라가려던 미카가 갑자기 날아든 푹신한 장갑의 촉감에 깜짝 놀라 어깨가 굳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 작가는 자기만의 염세주의에 빠져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현실의 쓴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일그러진 사명감을 지녔던 고약한 창작자였던 모양이군. 어차피 기존 동화를 모방할 것이었다면 공주의 옷 가봉을 돕는 생쥐든, 호박 마차를 준비해 준 요정 대모든, 누군가 대리인을 파견해서 공주가 꿈에서 영원히 깨지 못하도록 도와주어야 했을 것을…."

"응아, 스승님. 이거, 손…."

추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얼굴이 새빨개진 미카가 손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슈는 신경도 쓰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장 내 취향에 부합하는 추가 등장인물은 역시 왕자로군. 그래, 카게히라. 그 이야기의 마무리는 이렇게 하자. 크리스마스날 밤, 창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한 그 집안 사람들이 깜짝 놀라 뛰쳐나와, 따스한 식탁으로 안내하는 것이야. 그리고 네 말대로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나라'에서 함께 만찬을 즐기지. 그 중에서도 특히 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한 청년이 몸을 덥힐 수 있도록 따스한 수프를 권하며 '네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지금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말하는― 뭘 그렇게 웃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미카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는, 스승님 아이가. 어느 왕자님이 공주님한테 옷을 직접 맹글어 주는데?"

계속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던 슈의 얼굴이 덩달아 붉게 물들어버렸다. 크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한 슈가 미카의 손을 잡은 채로 자신의 손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고,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다음번 트리까지 손을 잡고 가자는 것이야. 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나는 한 살 위의 형으로서 '어린 동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살필 의무가 있으니. 자, 가자."

"다음번 트리라니, 그거는 쩌어기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거 아이가? 응아, 스승님! 쫌 천천히 걸어 도!"

슈에게 손이 잡힌 채 인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거의 부딪힐 뻔하며 끌려가는 미카의 귀에 문득 또다시 성당의 종 소리가 들려 왔다. 뎅그렁, 뎅그렁. 그 소리에서 기시감이 든 이유를 미카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미카의 가슴속 중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앉아 결코 벗어나지 않을 어느 왕자 지망생의 목소리와 꼭 닮았다.

"스승님, 잠깐, 잠깐만. 내, 고향 동생들한테 줄 선물 사고 싶은데 같이 골라 주믄 안 되긋나?"

"…카게히라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야."

거대한 성당과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둘은 머리를 맞대고 크리스마스의 나라에서 선물로 가져갈 행복의 조각을 고르기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가게 앞에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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