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ts]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인기 있을리 없어

기록 by Gray

첫사랑은 언제입니까?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인기 있을리 없어




"너도 라노베 보냐?"
"라, 뭐?"
"라노베, 라이트 노벨."

미유키는 뜬금없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쿠라모치를 뚱하게 바라보았다.

"안 봐?"
"시간 없어."

스코어 북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데 라노베인지 라이트 노벨인지를 볼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일단 노벨 자가 붙은 것을 보니 소설인듯한데, 미유키로서는 수업시간에 보는 교과서에 실린 소설만으로도 소설은 충분했다.

-만화책은 좀 봐야 하나.

스코어 북 말고 다른 책이 볼 시간이 어디 있냐는 생각은 곧 만화로 뻗어갔다. 그냥 만화는 볼 생각 없지만, 순정만화는 달랐다.

"만화는 좀 볼까?"
"어쩐 일로?"
"사와무라가 보니까?"

제 대답에 뜨악한 눈빛을 쿠라모치를 미유키는 가볍게 외면했다.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고 있는 사와무라가 있었다.

"오늘은 바지 입었네."

미유키를 따라 시선을 옮긴 쿠라모치가 어쩐 일이냐는 투로 말했다.
어쩐 일이긴, 잔소리를 들었으니지.
미유키는 뱃속 깊이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바지 입었는데 왜 그래?"

미유키의 마음을 아는 쿠라모치는 사와무라가 바지를 입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왜 한숨이냐 구박했다. 그러니까 그거 내가 잔소리를 해서라니까. 미유키는 사실 대신 하소연을 선택했다.

"쿠라모치."
"스톱."
"사와무라 인기 있었어?"

쿠라모치는 제 앞에 떨어진 폭탄 아닌 폭탄에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대 인간으로 인기는 있긴 하지."

대장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사와무라의 언동과 행동은 여자아이를 대하는 사춘기 남학생들에게는 별 인기는 없긴 했다. 그런 데에 둔한, 아예 신경 안 쓰는 사와무라와 그런 사와무라를 유치원생이나 초등생 수준으로 놀리면서 좋아하는 미유키로서는 아주 다행하게도 말이다.

"그럼 왜 인기가 있지?"

이어지는 하소연은 아무리 쿠라모치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콩깍지가 씌이면 혼자 씌일 것이지 왜 남한테까지 씌우려는 거냐.

"너한테 인기 있겠지."

쿠라모치의 냉혹한 선언이 떨어졌다. 그러나 미유키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계를 20분 전으로 돌리자.
미유키는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었고 스코어 북을 보았다. 오늘 점심시간은 사와무라와 먹으려고 했지만, 예전에 한 약속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반의 명예가 걸려있습니다! 하며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사와무라를 보니 쓸데없는 일임이 분명했다. 응원은 거절 안 합니다! 라고 했지만 그런데 2학년이 가서 좋을 것은 없었다. 분명 점심시간에 뛰고 구르는 것일 것이다, 사와무라는 또 치마를 입은 채로 뛰고 구르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이전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도 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할 수 있다. 미유키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불안하지만, 사귀는 남자친구의 권리를 마구 남용하기 시작했다. 즉, 뛰고 구를 때는 바지를 입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귀고 있는 여자가 치마를 입고 뛰고 구르는 것을 볼 남자란 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잔소리에 지친 사와무라는 순순히 바지를 입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유키는 만족했다. 비록 치마 아래에 입어서 보기 흉했지만 일단 바지를 입은 것이다. 저- 사와무라가 바지를 입었다. 미유키를 위해. 그 사실에 미유키는 정말로 만족했고,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다. 기노시타가 말을 건네기 전까지.

"너네 매니저 인기 많네."

평소에는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말을 걸지 않는 기노시타가 뜬금없이 거는 말에 미유키는 어리둥절해졌다.

"저기, 뛰고 있는 말괄량이."

남의 애인을 함부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며 미유키의 눈썹이 가운데로 모였다.

"아, 미안. 그 사와무라?"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노시타를 보며 미유키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인기가 많네라니?"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다. 재미있는 애라는 말 정도는 미유키도 지나가면서 제법 들었다. 같은 밤 여자애들과도 제법 잘 어울리는 축이었고, 지나가던 남자애들과 가벼운 잡담을 잘 나는 것도 안다. 다만, 그것은 초등학생들 사이의 교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성별 구분이 없는 사귐과 인기. 그것이 사와무라의 장점이었다.

"아, 후배 녀석들이 얘기하더라고, 요즘 여자다워졌다고."

표정도 부드러워지고, 분위기도 여자같고라더라.
여자애한테 여자 같고 라니 심하지 않으냐며 본인이 더 심하게 말하는 기노시타의 말에 미유키의 표정은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녀석이 인기 있다니. 그런 일 같은 건 평생 없어야 되는 건데 말이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나 하는 거냐. 쿠라모치는 바보를 짝사랑하면서 바보가 옮은듯한 악우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얼굴 귀엽고, 눈도 크고, 바보 같지만 건강하고, 성격도 밝고, 다른 사람도 잘 보살펴 주면 인기 있는 거 당연한 거 아냐?"

그래서 제 말을 듣고 경악하는 악우를 보며 씩 하고 웃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인기 있다는 거, 이성으로 인식하면 바로 빠지는 그런 거란 거 몰라?"







머리가 어지럽다. 미유키는 제 앞에서 열심히 공을 줍고 있는 사와무라를 보며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었다.

"어디 아픕니까?"

어느새 미유키의 앞으로 다가온 사와무라가 걱정스레 물었다.

"널 보고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바지도 입었는데 왜?!"

미유키의 잔소리는 끈질기다. 그렇기에 사와무라는 적당히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반항심에 바지 입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우울한 얼굴로 남자친구인 자신을 어필하는 미유키를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찌 됐든, 자신은 미유키의 여자친구 아닌가.

"사와무라?"
"왜요?"

제 이름에 퉁명하게 대답하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생각하는지 뺨이 분홍빛이 된 사와무라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짐작되는 게 있었다.

"내 생각 많이 해?"
"네?"
"그냥, 혼자 있을 때나 수업 듣기 싫을 때나."
"감시합니까!"

눈이 댕그래져서 하는 말에 미유키는 어깨가 처졌다. 정답이었네.
사와무라는 귀엽다. 그리고 미유키를 생각하면서 혼자서 부끄러워하는 사와무라는 더 귀엽다. 사랑에 빠지면 귀여워지고 사랑스러워진다. 미유키는 진리를 눈앞에서 목격하며 먼눈이 되었다. 이건 잔소리할 수도 없잖아. 치마를 입고 뛰는 것은 바지를 입으라고 설득하면 된다. 공을 받아달라는 건 미루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말할 수 없다. 아니, 더 권장해야 마땅했다.

"미유키, 또 이상한 표정."
"어떤 표정인데."
"비에 젖은 너구리?"
"...봤냐."
"만화에서요! 그리고 진짜 너구리는 안 키워 봐서 모릅니다."

아, 거기입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를 말에 미유키는 눈썹이 모였다가 펴졌다. 어찌 됐든, 사와무라와 사귀는 사람은 자신이다.

"바람피우지 마."

그러니까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아니, 이 사와무라 에이준을 뭘로 보고!"

뜬금포를 터트리는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커졌다.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람을 벌써 바람 필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건가.

"애인이 인기가 좋으니 걱정이 많다고."

축 늘어진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눈썹이 모아졌다. 아 못생겼네. 사와무라의 표정은 언제나 자신보다 몇 배로 움직임이 컸다. 그래서 귀엽다가도 바로 못생겨졌다.

"계속 그렇게 못생긴 채로 있어도 되는데."
"애인한테 그런 소리 하기냐!"

가끔 진심은 속에 담아두는 게 좋다. 미유키는 이어지는 사와무라의 항의를 들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 축져졌던 겁이니까."

항의가 한참 이어지다 본론으로 돌아온 사와무라의 말에 축 처진 너구리가 된 미유키가 대답했다.

"네가 인기 있어서."
"네?"

아니, 제가 언제. 부끄러워하는 사와무라를 게슴츠레하며 보며 미유키는 한숨을 쉬었다.

"뭐가 좋다고."
"왜 또 시빕니까!"
"아니, 널 좋아하는 건 나만이면 되는 데 말이야."

어디서 강습받고 온 것인가. 기름을 퍼부은 미유키의 답에 사와무라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질투합니까. 선배."
"미유키."
"질투합니까. 미유키."

선배에서 미유키로만 단어를 바꾼 사와무라의 질문에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미리 솔직하게 얘기해서 벽을 쳐놔야 한다.

"응."
"...진짜?"
"오늘 너한테 관심 있는 1학년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축구부의 1학년이라는 말은 뺐다. 미유키가 모르는 누군가가 어디에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 축구부만이 아니라 전체 1학년을 경계해야 마땅했다.

"진짜?"

믿을 수 없다는 사와무라의 반문에 미유키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벽만 세울까 봐 해자도 파야지.

"그러니까 바람 피지 마."

진심을 담은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설마, 살다 미유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말이 올 줄이야. 사와무라는 자신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미유키의 시선에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사와무라를 보며 뒤늦게 미유키도 부끄러워졌다.





사와무라가 샐쭉 웃었다.

"왜 웃어."
"좋아서요."

뭘 생각하는지 히죽거리면서 웃는 모습에 미유키의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이제야 선배가 제 기분을 느낀다니. 진짜 기분 좋네요."
"네 기분?"

세모꼴에서 동그랗게 편한 미유키의 눈을 보며 사와무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기분!"

거기에 한 손까지 들면서 환호하는 폼이 되었다.

"...너 질투했어?"
"...소녀의 마음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거 아닙니다."
"그럼 내 마음은?!"
"미유키 선배는 그런 거 신경 안 쓰잖습니까."
"둘이 있을 때는 미유키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선배라니, 모두에게 붙이는 호칭 같은 걸 듣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만으로 충분하다.

"...미유키는,"

미유키의 말에 뺨에 분홍빛으로 물든 사와무라가 말을 이었다.

"인기 있으니까."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의 고개가 가로 기울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기 있었나?"

인기 있었나? 미유키는 진심으로 자신의 인기에 대해 생각했다. 고백이야 몇 번 받았지만, 강호 세이도의 주전이면 보통 몇 번 받기는 마련이다. 사와무라가 리더라 부른 유우키가 고백받은 횟수라던가 발렌타인에 쌓였던 선물의 양이나 질을 생각하면 자신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모자랐다.

"...쿠라모치 선배가 걷어찰 겁니다."

쿠라모치만 걷어찰까. 분노의 조노가 머리를 들이받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

"그런 건 쓸데없는 거야."

미유키의 심드렁한 말에 사와무라가 분노했다.

"소녀의 마음을 뭘로 보고!"
"난 네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

정말 어디서 카사노바 강습이라도 받고 온 걸까. 직설적인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순식간에 빨개지는 얼굴이 참 귀엽다고, 역시 둘이 있을 때가 좋구나. 라고 생각하며 미유키는 싱글싱글 웃었다.

"질투한 거지?"
"...네."
"난 너만 있으면 돼."

좋아한 여자도, 장래를 생각한 여자도, 결혼을 생각한 여자도, 사와무라가 처음이다. 그리고 미유키는 이런 제 마음이 계속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
"...아닙니다."
"마음이 변할 수 있다고?"

제 걱정을 콕 집어 말하는 미유키를 이번에는 사와무라가 세모꼴이 된 눈으로 보았다. 꼭 말로 해야 하나.

"너만큼 재밌는 공 던질 여자애는 없으니까 걱정 말고."
"공이나 받아주고 그런 말 하십쇼."

투덜거리는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웃으며 보았다. 누가 사와무라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
쿠라모치가 들으면 그놈의 콩깍지라고 얘기할 생각을 하며 미유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 안 받아주면, 싫어할 거야?"
"누가 그런 걸로 싫어합니까!"

유치한 질문에 정답이 나온다. 미유키는 이전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질문과 들어서 기분 좋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답에 웃었다.

"사와무라."
"네."
"네가 좋아."

감정을 깨닫기까지 많은 부정을 했다.

"그러니까 너도 날 좋아해 줘."

그리고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손을 잡았다. 일방통행으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도 모르는 사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가.

"따뜻하네."

부끄러움에 온몸으로 열기를 내뿜기 시작하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웃었다. 이렇게 귀엽고 솔직한데 안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유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기 있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넘보지 못하게 해야겠지.

쿠라모치가 들으면 그놈의 콩깍지라고 한탄할 생각을 하며 미유키는 제 손에 잡힌 사와무라의 손을 움켜잡았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