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ts] 내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인기 있을리 없어 에서 이어집니다.
사와무라는 뛰었다.
"사와무라!"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맹렬히 쫓아오는 미유키 카즈야를 피해 열심히 뛰었다. 지금 잡히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사와무라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곧 잡혔지만.
"이 바보가!"
바보, 바보, 바보라고 하지마라.
"미유키가 해달라는대로 해줬잖습니까!"
"누가 이런걸 하라고 했어. 좀 더 정석적인 방법은?! 네가 잘 보는 순정 만화에 이런 건 안나와?!"
이 바보를 누가 데리고 사냐. 난가. 머리를 붙잡고 혼자서 만담을 하기 시작하는 미유키를 향해 사와무라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해달라는대로 해줬더니 도대체 이 난리가 뭔가. 진짜 바보는 미유키면서.
소동의 시작은 사소했다.
정말로 사소했다 라고 사와무라는 생각한다.
점심시간이었고, 수업이 시작하기 10분 전이었다. 앉아서 수다를 떨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사와무라는 빌린 순정만화를 열심히 읽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사와무라에게 불똥이 튀었다.
"사와무라는 누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
"응?"
한창 만화에 푹 빠져 있던 사와무라는 저에게 묻는 말에 뒤늦게 반응했다.
"뭐가?"
"야구부에서 남자친구로 삼기 제일 좋은 사람."
뭐야, 그런건가. 질문에 대한 사와무라의 답은 본능적이고 반사적이었다. 그것은 진리를 얘기함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크리스 선배."
단호하고 빠른 사와무라의 대답에 모두의 고개가 30도 각도로 기울어졌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곧 서로를 마주보며 서로의 당황한 표정에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 선배?"
"누구?"
"야구부?"
모르는 이름이다. 1군에 그런 선수가 있었나. 2군에 있는 선배인가? 급우들의 어수선한 대화에 사와무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설마, 크리스 선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크리스 선배를 모를 수가 있지? 어떻게? 모른다면! 그렇다면! 이 내가! 크리스 선배의 위대함을 설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느낌표를 남발하며 사와무라는 불타올랐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르고.
"너네 매니저 사귀는 사람 있다며?"
미유키는 여전히 뜬금없이 저에게 말거는 기노시타를 슬쩍 보았다가 스코어북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소문이 나는건가. 미유키는 제 생각보다 늦은 소문에 시큰둥 해졌다. 거기다 제 이름도 같이 퍼지지 않은 듯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같이 소문 날테니 크게 신경쓰지는 않아도 될것이다. 소문에 살이 붙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가.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는 미유키에게 뜬금없는 말이 다시 날아왔다.
"그나저나 불쌍하네."
기노시타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불쌍하다니? 누가?
"왜?"
결국 미유키는 스코어북에서 기노시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불쌍하다니 왜? 바보라고 놀려서? 공을 안받아줘서? 설마 점심시간에 뛸 때 바지 입으라고 잔소리 해서는 아니겠지? 미유키의 머릿 속에서 사와무라와 관련된 온갖 사실과 망상과 상상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곧 졸업할테니까지. 몇 개월 사귀지도 못하고 말이야."
아니, 내 졸업은 아직 1년 넘게 남았는데? 미유키는 이해못할 기노시타의 말에 안경을 추켜세웠다.
"졸업이라니?"
도대체 무슨 헛소문이 도는 건가. 최근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사와무라와 같이 있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미유키가 압도적이었다. 저 멀리서 쿠라모치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봐도, 후루야가 시무룩해도, 코미나토 동생이 앞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눈을 부라려도, 다른 매니저들의 눈빛이 좋지 않아도. 미유키는 꿋꿋하게 사와무라의 옆을 지켰다.
"몰라?"
모르겠습니다만? 왜 내 노력이 사라지는 소문이 퍼진거지? 졸업이라니? 3학년과 사귄다는 말인가? 누구랑?
미유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 지기 시작하자 기노시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그것도 아직 몰랐냐는 태도였다. 그리고 미유키의 인내가 끊기기전에 기노시타는 선심쓴다는 듯이 얘기했다.
"혼혈인 선배 있잖아. 그 선배랑 사귄다던데?"
아니, 아니, 아니. 일단 사와무라와 사귀는 것은 나인데?
머리에 바로 입력되지 않은 말에 미유키는 순간 멍해졌다. 그래서 신나서 떠드는 기노시타의 말을 막지 못했다. 뒤늦게 옆 자리를 차지한 쿠라모치가 기노시타의 수다를 들으면서 배를 붙잡고 애써 웃음을 참는 것을 보면서도 막지 못했다.
그럼 기노시타의 말을 옮겨보자.
- 사와무라는 크리스가 남자친구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랑했다.
"진짜 열변이었다더라."
1학년은 역시 귀엽네. 이제 2학년이면서 기노시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와무라의 행동을 평가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미유키의 얼굴은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뒤늦게 눈치챈 기노시타가 '너도 인기있으니까' 라는 위로아닌 위로를 하고 떠나자 마자 폭발했다.
수업 종이 끝나고 미유키는 바로 사와무라네 반으로 향했다. 뛰는 것에 준하는 걸음이었다. 뒤에서 쿠라모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미유키 선배?"
그리고 쉬는 시간에 어쩐 일이냐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며 터지려는 화를 삼켰다.
"사와무라."
"네?"
미유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딱딱한 부름에 사와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안뛰었는데.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말한 바지 입기를 착실히 지키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내가 뭘 잘못했나? 미유키 한테 무슨 일이 있나? 라고 생각하며 미유키를 따라 나섰다. 쉬는 시간이라 멀리 가지 못하고 복도 끝에서 둘의 걸음은 멈췄다. 그리고 미유키는 동그란 눈을 치켜뜨며 저를 보는 사와무라에게 따졌다.
"네 남자친구가 왜 크리스 선배야?"
"네?"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될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크리스 선배가 내 남자친구라니 그런 황송한, 아니 있을리 없을 일이 왜 미유키 입에서 나오는가.
"졸다가 꿈이라도 꿨습니까?"
수업시간에 졸다가 이상한 꿈이라도 꾼 것이 아닐까. 사와무라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저랑 사귀는 사람은 미유키 맞습니다."
그래서 사와무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유키에게 말했다. 이상한 꿈을 꿔서 불안해 하는 남자친구를 달래는 것, 그것이 여자친구의 의무 아니겠는가. 사와무라는 순정만화에서 보았던 여러가지 사례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미유키에게 '너의 여자친구는 나'를 어필했다.
"그런데 왜 소문이 돌아?"
"네?"
소문? 무슨 소문?
"무슨 소문요?"
"너랑 크리스 선배가 사귄다는 소문."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입이 벌어졌다. 무슨 그런 황송한 헛소문이. 야구부 3학년들의 태반은 진학을 위한 공부중이었고 거기에는 크리스도 있었다. 사와무라가 크리스를 만나는 것은 학교안에서 가끔 우연히 만나는 일이 아니면 마주칠 일이 없었다.
"크리스 선배 며칠 전에 미유키랑 같이 있을 때 만났잖습니까."
즉 그 이후로는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와무라의 말에 미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다.
"크리스 선배가 남자친구로 얼마나 좋은지 열변을 토했다던데?"
의문이지만 확신 어린 추궁에 사와무라의 고개가 30도로 기울어졌다가 아, 하며 다시 돌아왔다.
"했죠."
그 자랑스러운 끄덕임에 미유키의 어깨가 늘어졌다.
"진짜?"
진짜냐. 도대체 어쩌다, 왜, 자신의 여자친구는 사귀지도 않는 선배가 남자친구로 얼마나 좋은지 열변을 어떻게 토했길래 소문이 쫙 퍼진 것인가.
"어쩌다?"
그래서 우선 원인을 찾기로 했다.
"야구부에서 남자친구로 삼기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냐길래 크리스 선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모르더라고요. 크리스 선배를. 그래서 크리스 선배가 얼마나 멋지고, 상냥하고, 듬직하며 좋은 선배인지 알린거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내려가는 안경을 붙들고 울었다. 네 남자친구는 나거든?
"그럼 난?"
"네?"
"내 얘긴?"
미유키의 물음에 사와무라의 고개가 다시 기울어졌다가 돌아왔다.
"내 얘긴 안했어?"
"미유키 얘기요?"
"그래. 내 얘기."
"했죠."
그제야 알아들은 사와무라의 긍정에 미유키는 안도했다. 크리스를 존경하니 먼저 나온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다음에 자신의 이름이 나왔다면 수긍할만 했다.
"애들이 미유키 선배는 남자친구로 어떻냐고 해서. 별로라고 했습니다."
사와무라는 입술이 툭 튀어나온 채로 교실로 들어섰다. 도대체 뭐가 맘에 안든걸까. 사와무라는 경악하던 미유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때마침 수업시간 종이 울리지 않았다면 반바지를 입으라고 잔소리 하던 때가 반복 되었을지도 몰랐다. 설마, 다음 쉬는 시간에도 올까. 사와무라는 자리에 앉으며 쉬는 시간 종이 땡 치자마자 도망갈 생각을 했다.
- 너랑 사귀는건 나야.
그러다 미유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미유키는 당연한 말을 왜 당연하지 않다는 듯이 얘기하는 걸까.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사랑이다. 그것도 사귈 때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수줍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머릿속에서 미화된 고백의 순간을 떠올리며 사와무라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마치 바람피는 것 같은 취급이라니. 미유키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사와무라는 떠오른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우울했던 얼굴은 환해졌다.
"미유키 선배!"
우렁찬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림과 동시에 등에 충격이 왔다.
"사와무라."
가벼운 충격이지만 예상친 못한 일이기에 미유키의 부름은 곱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반비례해 사와무라의 표정은 밝았다.
"이젠 걱정 안해도 됩니다!"
그 말에 미유키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말괄량이가 하고 외치는 카네마루의 심정이 절절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 일은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어차피 크리스 선배는 곧 졸업이고, 야구부 안에서 자신과 사와무라가 사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헛소문은 곧 유야무야 될테고 제대로 된 사실이 퍼질 것이다. 그러니 괜히 사와무라가 나서면 오히려 오해만 더 커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튀고 말 것이다.
"그치만 미유키를 더 걱정하게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절 믿으시라고요. 그러면서 가슴을 팡팡 치며 우쭐거리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미유키는 저의 뒤에서 울려퍼지는 숨죽인 웃음에 인사을 썼다. 웃을 일이 없는데 사람들이 웃고 있다. 영문 모를 웃음에 미유키가 고개를 돌리면, 저마다 시선을 돌리고는 웃고 있었다. 뭔가 웃을 일이 있는건가? 미유키는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안보이는 웃음 터질 일에 곧 포기를 하고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뭐야 하더니 미유키의 등을 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그제야 미유키는 저한테, 정확히는 제 등에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유키의 손이 등 뒤로 향했다.
- 미유키 카즈야는 사와무라 에이준이랑 사귀는 중!
거칠게 떼어낸 종이에 적혀 있는 글자를 보며 미유키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가는 것과 비례해서 쿠라모치의 웃음 소리가 커졌다.
"그, 그러게 사와무라를 왜 그리,"
말하는 중간, 중간 열심히 웃는 쿠라모치를 보며 미유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원대로 사귄다는 건 전교에 제대로 알려졌네."
웃느라고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쿠라모치는 선언했다. 그리고 선언과 동시에 미유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바보가!
"그러니까! 도대체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누가 이런걸 붙이고 다니면서 교제 선언을 하냔 말이다!"
초등학생이냐! 유치원생이냐! 미유키의 눈물어린 항의에 사와무라는 토라졌다. 나랑 사귀는 건 자기라고 해서 남들도 다 알게 해줬는데, 왜 이러는건가.
"그렇지만 크리스 선배랑 저랑 사귀는게 이미 소문으로 퍼졌다면서요. 그러니까 제대로 사실을 알려야죠."
반성의 기색이 보이는 듯 하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사와무라의 말에 미유키는 절규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교제선언을 하면 되지 왜 남의 등에 이걸 붙여!"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할 수 없잖습니까."
정론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튀어나온 얄미운 말에 미유키는 이를 갈았다.
"그럼 너도 붙여."
"네?"
"너도 붙이고 다니는거다."
미유키의 제안에 사와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모습에 미유키는 팔짱을 꼈다. 이런 벌칙게임 같은 거 혼자 할 것 같냐.
"어, 같이요?"
"같이."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부끄러워 하는 모습에 미유키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커플 선언인거네요."
"그건 이미 네가 했잖아."
그것도 당당하게 남의 등에.
"그치만, 그거 다들 장난이라고 얘기해서."
뺨이 부풀어 오른 사와무라의 투정에 미유키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난? 아니 왜? 아 하긴 장난이나 벌칙 게임같은 선언이긴 하다. 그제야 미유키는 불만섞인 사와무라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게 좀 제대로 의논해서 같이 하지. 미유키는 눈을 반짝이는 사와무라를 보며 웃었다.
"그럼 내 건 네가 적었으니. 네 건 내가 적을까."
그리고 미유키의 제안에 사와무라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