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아마사와
* 언제나 그렇듯 날조 주의 프로암 대학솨
* NPB와 병원 체계를 정말 하나도 모릅니다 오류가 있다면 당신이 맞습니다
* 부상 소재 주의!!!!!!! 그렇지만 전개를 위한 쁘띠부상입니다 픽션입니다 우리강아지튼튽햐요,,~
뒷면이 통통한 텔레비전의 후진 패널로 입원실의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종일토록 야구를 감상하게 된 건 순전히 아마히사 코세이 때문이었다. 정규 경기 시간이 아니면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틀어주는 스포츠 프로그램이거나 고교야구, 그것도 없을 때면 은퇴한 야구인들이 하는 예능 야구. 그게 싫으냐고 물으면 결코 아니라고 하겠지만, 옆 침상의 동향인 할아버지―사와무라의 붙임성이 보우하사, 입원 10분 만에 알아낸 사실이었다―께서 예쁘다며 계속해서 건네주시는 주전부리가 맛있었으니 좋다고 하겠지만, 자연히 그리고 은근하게 쏟아지는 시선 세례가 부끄러운 것도 부정할 순 없었다. 이겨내라, 사와무라 에이준! 나는 미래의 프로 야구 선수가 될 몸! 이런 관심에는 감사해야지, 하고 수없이 자기 암시를 걸어 보았으나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아마히사 코세이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가 틀어질 때였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심각한 건 의사 선생님과 코치님의 표정이었고 제일 가관인 게 뒤늦게 달려온 아마히사 코세이의 표정이었다. 순간 지가 다쳤나… 하고 물을 뻔했는데 용케 입을 다물었다. 그 말까지 하면 진심 울 것 같았는 데다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못생기고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평소 같았음 잔소리랑 이것저것, 재잘재잘 말도 많았을 텐데 팔을 다친 나 대신 말없이 입원할 짐을 챙기는 아마히사 상 어깨가 볼품도 없게 쳐져 있어서는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 물가에 애 내놓는 것처럼 보조 배터리를 3개째 가방에 욱여넣을 때는 좀 말렸지만도.
그리고 정말로 말렸어야 하는 건 입원실까지 따라 들어오는 거였다. 입원 서류 작성할 때 보호자 칸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는 아마히사 코세이가 너무 들떠 보인 나머지 그걸 잊어서. 아마히사 코세이, 고교 시절의 천재,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에 빛나는 신인 투수, 뭐 대단한 칭호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내 남⋯ 남⋯, 아무튼. 도쿄에 살면서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히사 코세이를 모를 수가 없었다. 분명 환자는 나고 질문을 받는 것도 나인데 어째선지 시선은 아마히사 상에게 꽂혀 있는 게 조금 정신이 사나워서 물 흐르듯 짐을 들고 병실로 향하는 아마히사 상을 막지 못했다. 막았어야 했는데!
"테레비에서 보던 것보다 머리가 둥그네~"
"카메라가 그래요~ 실물을 못 담아."
기어이 과도를 뺏어 들어서 잘 하지도 못하는 칼질을 하는 아마히사 상을 바라만 보는 것도, 아슬아슬 선을 넘을 것 같은 스몰 토크에 눈알만 데구르르 굴리고 있는 것도 전부 내 역할인 게 조금 억울해졌다. 4인실― 독실을 달라고 우기는 아마히사를 겨우 말려―에 있는 모두와 그리고 가끔 복도를 지나가는 의료진의 관심을 독차지한 이 보호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알아도 공연히 성질이 날 거 같으니 그냥 입을 다물기로 한다. 휴식일이라서 다행인 건 다행이지만, 병원 밥이 늘 궁금했다고 콧노랠 부르더니 이 인간 정말 병원 밥까지 먹고 갈 생각인가. 할아버지와 아마히사 상이 나누는 얘길 들으며 미간을 꾹꾹 누르고 있자니 아마히사 상의 앞으로 종이가 들이밀어졌다. 오늘로 7번째의 사인 요청이었다. 사과 물이 잔뜩 묻은 손으로 펜을 쥐긴 어려울 거 같아서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티슈를 뽑으려 허리를 숙였는데 아마히사 상이 더 빨랐다. 쓰읍, 같이 애 어르는 소리나 내더니 내 짐가방을 뒤져 꺼낸 물티슈로 손을 닦고 펜을 쥔다. 작년만 해도 괴랄한 지렁이 행색을 한 싸인 시안을 4가지나 들이밀며 정해달라고 하더니 1군 밥 좀 먹었다고 꽤 익숙한 모습을 한다. 사인을 부탁한 사람은 옆 병실의 환자라고 했다. 언제 거기까지 소문이 난 건데? 했지만 고교 때부터 팬이었다는 말에 아마히사 상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그래서 나도 조금 뿌듯했고. 근데 고교야구 봤으면 나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흐름이 자연스럽게 또 야구로 흘렀다. 야구로 만났는데도 야구 얘기를 하는 아마히사 코세이는 언제나 낯설고 아주 조금 멋있다. 다만 프로에서 성적이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라 쓴소리가 들릴 각오를 했는데도 면전이라 다들 말을 아끼는 모양이었다. 저번 등판 정말로 멋졌다고, 한신의 4번 타자를 상대할 때 삼진을 잡아낸 슬라이더는 일품이었다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는 솔직히 나도 고개를 끄덕일 뻔했고. 그런데 오늘의 아마히사 상은―그럴 사람이 아닌데― 겸손하게 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아마히사 상의 표정을 살폈는데 진심인 것 같았다. 나눠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서야 깨달았다. 겸손한 게 아니구나.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거구나.
대화 내내 아마히사 상은 무의식적으로 내 쪽을 살피거나 내 다친 팔을 도닥이거나 어깨를 감싸거나 했다. 괜찮은 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 바보는 내가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답잖게 귀여운 짓을 한다. 아마히사 상의 대답이 짧으니 으레 야구 이야기도 짧게 끝이 났고 아마 그게 아마히사 코세이가 의도한 거였을 거다. 아니었어도 뭐. 괜히 간지러워서 얇은 이불을 쥐었다가 놓았다. 언제 이렇게 지 혼자만 컸지.
"못 들었지?"
"넵?"
그렇게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 팬은 병실을 떠났고, 아마히사 상만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뭘요? 저 사람, 너도 응원하는데 다쳐서 말을 못 꺼냈대. 아. 한동안 입을 열질 않았더니 멍청한 소리가 나갔다. 얼른 나으라더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주제에 표정은 그렇지를 못했다. 얼른 나아야죠. 근데 아마 대답하는 내 표정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괜히 아마히사 상이 박살을 내놓은 사과만 포크로 잘게 잘랐다(이마저도 손 쓰지 말라며 금방 뺏어갔지만).
"근데, 무슨 사이야?"
그러다 차라리 정적이 낫겠다 싶은 질문이 할아버지로부터 난데없이 날아들었다. 정말 평범하게 굴고 싶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굴었어야 했는데, 내 인생은 이렇게도 드라마틱해서 쥐고 있던 포크를 툭 떨어트렸다. 이래서야 그저 게이 치정극이잖아. 아마히사 상은 저런 질문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건지 새 포크로 사과를 찍어 내 손에 들려줬는데 그 평온함 덕분에 정신이 조금 차려졌다. 사와무라 에이준!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스몰 토크잖아 스몰 토크!!!!!!! 정적이 길어지면 진짜 이상해진다!!!!! 하고 씹던 사과를 꿀떡 삼키곤 입을 열었는데 아마히사 상이 이번에도 더 빨랐다.
"친한 형이에요."
그치. 답변을 종용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아마히사 코세이의 얼굴. 나보다도 생각이 많아 보여서 섭섭할 틈도 없었다. 아니 왜 섭섭해? 웃기다 사와무라 에이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맞다고, 고등학교 때 시합 몇 번 같이 했었다며 맞장구를 쳤다. 뭐어? 시합 몇 번? 우리 그것보다 더 친했잖아~ 곰살맞고 또 정신 사나운 그 살가움 때문에 할아버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거짓말을 믿는 것 같았다―어쩌면 형제와 친구 밖의 선택지는 떠올리지 못하셨을 거다―.
나머지 시간은 예상 밖으로 평화롭게 흘렀다. 할아버지의 막내 손녀 이름과 병원 밥이 지겨울 때 갈만한 병원 근처 식당의 추천 메뉴까지 전부 알아내고 나니 할아버지의 낮잠 시간이었고 같은 입원실의 다른 환자들도 산책을 나가서 그 넓은 병실에 딱 둘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건지 목이며 어깨며 뻐근해서 기지개를 켜려 했는데 또 그게 다친 팔에 무리가 갔는지 조금 아파와서 앓는 소릴 냈다. 솔직히 참을 수도 있었는데 아마히사 코세이 들으라고 냈다. 저자세의 아마히사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럴 때 누려야지. 의사를 불러야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애인을 보고 있는 건 즐겁기도 하고. 웃음이 샜더니 아마히사 상은 놀림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불퉁한 표정으로 좁은 침대에 자기 몸을 가득 구겨서 기어이 내 옆으로 올라오려고 애를 썼는데 다친 팔을 건들기라도 할까 애를 쓰는 탓에 한참이 걸렸다.
"누가 보면 어떡해요."
"보라고 해."
"친한 형동생 사이는 안 이러는데."
"속 좁다 사와무라⋯."
"뭐라구요?"
"침대 좁다고."
할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작게 키득거리며 나누는 대화가 너무 평범했는데 그게 우습게도 좋았다. 고개를 돌려 아마히사 상을 바라보니 볼 가득 눌린 주제에 내가 걱정 돼서 죽겠다는 표정인 것도 웃겼고.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아무 일 없는 거 같다.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을 거야. 대답하는 아마히사 상의 말에는 무게가 잔뜩 실려 있어서 꼭 그래야만 한다는 주문처럼 다짐처럼 들렸다. 전부 괜찮아질 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수술 잘 받고, 재활 열심히 하고. 잘 먹고 잘 자면 우리 사와무라는 튼튼하니까 금방 낫겠지. 우리 사와무라.
숨긴다고 숨겨질 동요였으면 아마히사 상이 이렇게 걱정하지도 않았겠지. 날아든 강습 타구를 어떻게 피하냐는 말에 피했어야지! 하고 말도 안 되는 걸 우기던 걸 보면 아마 아마히사 상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거다. 의사 선생님 입으로 뼈만 잘 붙으면 이상 없을 거란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도 제정신 아닐 뻔했지만, 나는 그냥 다친 곳이 왼손이 아닌 게 너무 고마웠는데. 자기 팔도 아니면서 대신 속상해하고 슬퍼하고 화내는 아마히사 코세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할 거다. 기고만장해진 아마히사 코세이는 재수 없으니까.
기어이 아마히사 상은 내 밥을 몇 입 뺏어 먹고서야 병원을 떠났다. 팔만 성했어도 등짝을 때렸을 건데. 귀에다가 밥 맛없다⋯ 이걸 어떻게 먹어⋯ 내가 맛있는 거 사서 보낼게, 하는 게 귀엽다가도 어차피 낼부터 금식이라고 답했더니 그냥 몰래 먹으면 안되냐는 말에 얼척이 없어서 대답도 안 했다. 그리고 한참 주변 눈치를 보면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뽀뽀하고 싶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잘도 참아서는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미련 뚝뚝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떠났는데 그냥 뽀뽀해줄 걸 그랬나 봐.
그리고 그다음의 일들에 아마히사 코세이는 없었다. 시즌 중이니 바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나도 성인인데 앞가림은 할 수 있단 오기가 들어서 오겠다는 걸 부득불 말렸다. 수술에서 막 깼을 때 옆에 있음 아주 조금 도움이 되긴 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나가노에서 급하게 올라온 엄마 얼굴 보는 순간 정신이 팍 들었다. 아이고. 눈물이 쪼금 돌았는데 꾹 참는다. 얼른 나아야겠다.
퇴원 전날은 아마히사의 등판일이었다. 병실 가운데의 텔레비전으로 네 개의 시선이 모였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불안해했다. 그래도 더럽게 잘 던졌다. 못 던졌으면 신경 쓰일 뻔했는데 차라리 엄청 잘 던져줘서 고마웠다. 이대로 시즌 끝날 때까지 쭈욱 잘 던지면 선발 자리는 보장이고 연봉도 오르겠는데? 근데 안 줘도 될 볼넷 주는 건 좀 고쳐야 할 듯. 투구 후 수비 전환도 오늘은 좀 느렸고. 빠져가지고 말이야⋯. 엇. 정신을 차리니 습관처럼 투구를 분석하고 있었다. 공연히 수술 받은 팔을 내려다 봤다가 멋쩍어서 볼을 긁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병실에 퍼졌고 승리 투수의 인터뷰가 이어진다는 자막까지 보고선 병실을 나왔다. 할아버지는 너 얘기 하면 어떡하냐구 얼른 와서 앉으랬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자릴 떠나버렸다. 자리 잡은 벤치는 딱딱했고 병원 복도는 적막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마히사 코세이는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면서 공을 던졌을까. 나는 지금도 당신 생각을 하는데, 아마히사가 투구할 때의 손 끝 대신 볼 캡 그림자에 가려진 표정을 읽으려 애를 쓰던 건 언제부터였는지. 가볍게 내디딘 스트라이드 이후 단단하게 뻗어서는 부드럽게 착지하던 남자의 등은 병원으로 향하던 사람의 것과 분명 같은 건데 달랐다. 후자는 오직 나만의 것이니까 조금 좋아해도 되는 건가. 문득 너무, 너무 사무치게 보고 싶어져서 끌어모으고 있던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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