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ts] Bloom
페넌트레이스 ~와일드카드~ 에서 배포한 미사와ts입니다
Bloom
미유키x사와무라ts
“고시엔에 가게 되면! 교제 부탁드립니다!"
누구?
미유키는 조용한 제 점심시간의 휴식을 망쳐놓은 외침을 듣자마자 생각한 것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고시엔에 가는 건 야구부다. 그리고 미유키는 야구부의 캡틴이다. 그것은 즉 저 고백의 주인공을 미유키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2군이나 3군으로 내려가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고시엔에 가게 되면 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당연히 1군이겠지. 2군이나 3군이 뻔뻔하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을 하며 미유키는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심심해서였지만.
주인공은 금방 찾았다. 역시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미유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야구부? 아닌 것 같은데? 세이도 야구부원이 아무리 100명이 넘는다지만 그래도 3학년이나 2학년은 2년 가까이 얼굴을 봤고 1학년은 반년 넘게 오다가다 마주치기라도 했다. 즉 아무리 사람에 관심 없는 미유키라도 낯이 익다는 것과 전혀 모르겠다 정도의 구분은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혀 모르겠다에 속했다. 거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다. 가까이 다가가기 싫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얼굴을 한 장본인을 한 여학생이 달래고 있었다. 낯이 익다 못해 머릿 속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이었다.
"사와무라?"
“아아~ 살았습니다. 역시 캡틴!"
아니 그건 역시라는 말을 안 붙여도 될 것 같은데. 딴지를 걸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미유키는 제 곁을 활기찬 얼굴로 걷고 있는 여학생이자 후배이며 야구부의 매니저인 사와무라를 흘겨보았다.
“아까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그 호기심 어린 말을 듣자마자 사와무라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알면서 묻는 겁니까."
성질 나쁜 안경이라며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이며 투덜대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생겼다. 알긴 안다. 고백현장.
“야구부도 아닌 녀석이 왜 고시엔을 들먹이냐는 거지."
미유키의 물음에 사와무라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역시 원흉은 여기 있었다.
“고시엔 가기 전에 누군가와 사귈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그럼 고시엔 가면 받아달라고 한 겁니다."
입술을 삐쭉이며 툴툴대는 사와무라의 말에 미유키는 그제야 주름을 폈다. 의문은 해소됐다.
“너한테도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반년 밖에 차이 안 나면서!"
“하핫, 그 반년으로 내가 선배가 되었으니. 선배 존중을 해주세요. 후배님.”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재미있는 걸 봤다. 야구부도 아닌 녀석이 고시엔에 가면이라니. 꽤, 당차기는 했다.
“쿠라모치."
“귀찮은 일은 사절."
“아니, 사와무라 일인데."
“그 바보는 왜."
“고백받더라고."
“..."
“이야, 놀랐어. 그 말괄량이도 고백을 받다니."
미유키의 감탄에 쿠라모치의 고개가 미유키를 향했다가 반대로 돌아갔다. 그 외면에 미유키는 의문을 가졌다.
“왜?"
“네가 마지막일 거다."
“뭐가?"
“사와무라가 고백받는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간단했다.
사와무라는 인기가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야구부에서야 천둥벌거숭이에 목소리 큰 매니저지만, 야구부 밖으로 나가면 활기차고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그동안 전혀 그런 기미도 없었잖아?"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기본은 있다. 거기다 그렇게 고백을 자주 받는다면 그런 쪽으로 둔한 자신이지만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다들 착각했거든."
“착각?"
“후루야랑 사귄다고."
“...뭐?"
“바보가 바보랑 어울려 다니니까 다들 착각한 거지."
그런데 어느 날 한 용감한 여자애가 사와무라에게 물었다 한다. 너의 그이는 잘 해주니? 라고.
그렇게 진실이 세상 밖에 나오게 되었다.
“그 뒤로 후루야나 사와무라에게 고백 행렬이 줄짓고 있다는 거지."
둘 다 고시엔을 핑계로 모든 고백을 거절하고 있지만.
“후루야는 그렇다 쳐도 사와무라가?”
후루야가 인기 있다는 건 시합을 가면 타교 여학생들도 환호를 지르고 사인을 받으러 오는 거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와무라가? 미유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천둥벌거숭이가 왜?
“미소녀니까."
“미소녀?"
“그래, 미소녀."
누가? 사와무라가? 미유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주변을 오가기 시작했다. 누가 미소녀?
“뭡니까?"
“아니."
“시비 걸고 싶은 거면 지금 거십쇼. 아니면 내일 걸던가.”
바쁜테 거치적거리지 말라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사와무라를 막으며 미유키는 황급히 대답했다.
“네가 미소녀인가 해서."
“싸움 거는 거냐!"
“아니. 진심인데."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으면 대놓고 해!"
길길이 날뛰는 사와무라를 피해 미유키는 그제야 슬슬 일어서서 도망갔다. 씩씩대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사와무라는 도망치는 미유키를 한껏 노려보다가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귀엽긴 하다.
살짝 올라간 커다란 눈이라던가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 거기에 묶어서 올린 포니테일은 확실히 귀엽다고 말할 만했다.
“미소녀는 아닌데."
미소녀의 기준이 하향된 것일까. 사와무라가 들으면 길길이 날뛸 생각을 하며 미유키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연습장으로 갔다.
“예쁘잖아요."
“응?"
“작고."
사와무라가 또래 여자애들 보다 큰 축이었지만 후루야의 비하면 당연히 작았다.
“안으면 포근하고."
“...뭐?"
순간 미유키의 머리에 바보와 바보가 사귄다는 말이 돌았다는 쿠라모치의 말이 생각났다.
“무슨 말이야?"
“춥다고 해서."
그래서 안았다고?
후루야의 짧은 말을 애써 해석하며 미유키는 머리를 싸맸다.
“그거 공개로?"
“공개?"
“아니, 아니다."
소문은 절대 허투루 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바보와 바보 사이가 좀 가깝기는 했다. 그것이 여자와 남자라는 것이 아닌 아이와 아이라서 주변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지만.
“앞으로 금지.”
포옹이나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금지다.
“...”
후루야는 당연히 침묵으로 거부했다. 그러나 미유키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여자애라고."
“여자애...”
“그래. 여자애 그것도 나이 먹을 만큼 먹어가고 있는 여자애."
미유키의 설명에 후루야의 얼굴이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나는 왜 1살 차이 나는 이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미유키는 갑자기 제 앞에 놓인 난관에 머리를 싸매고 싶어졌다. 그나마 풀죽은 모습을 보니 이해는 제대로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인가. 그렇게 미유키는 낙관했다.
“미유키 카즈야!"
“왜?"
"후루야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한 겁니까!"
이번엔 너냐.
미유키는 굴이 있다면 파고 들어가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피곤했다.
“애가 시무룩해져서는 울상이 되었잖습니까."
어쩐지 동생을 과보호하는 누나를 본 기분에 미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소중한 에이스님이니 뭐니 하더니 뭡니까!"
이젠 아주 팔짱을 끼고 제 앞에서 인왕상처럼 버티고 선 사와무라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미유키는 스코어 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유키 선배!"
호칭의 변화가 무쌍하구나 사와무라. 이왕이면 선배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별소리는 안 했는데."
“그런데 애가 왜?!”
“인식을 좀 하라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인식?"
“남자와 여자라는 인식."
도대체 나는 무슨 죄가 있어. 이런 말을 해야 하는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하물며 중학생도 아닌 고등학교 2학년에게 이런 말을 왜 해야 하는 건가.
“...뭣?"
“후루야는 남자. 너는 여자. 그것도 둘 다 나이가 있지."
“무,무,무,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6살 애가 아니란 말이지."
“...”
입술이 삐쭉 튀어나온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엄하게 말했다.
“헛소문 돈 것도 너희들 행동 때문이란 거 알지?"
“그렇지만!"
“당연히 그런 사이는 아니겠지. 그렇지만 남의 시선 정도는 인식할 나이는 됐잖아?”
우는 줄 알았다. 미유키는 한숨을 쉬며 스코어 북을 덮었다. 매몰차게 말했다는 자각은 있다. 둘러서 얘기해도 되었고 달래도 되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고 잘 끝낼 방법은 많았다. 아무리 사와무라라 하더라도 막무가내는 아니었고 차분히 얘기하면 잘 이해하고 끝났을 거다.
“나도 아직 멀었다는 거지.”
쿠라모치한테 부탁해서 좀 달래 달라고 해야 하려나.
미유키는 미안함을 담은 푸딩이라도 사야 할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무슨 짓을 벌인 거냐?”
“나?”
미유키는 저를 추궁하는 쿠라모치의 말에 미유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다 어제 일이 생각났다. 어제 결국 쿠라모치를 만나지 못해서 기껏 편의점에 들러서 사온 푸딩은 미유키 방의 냉장고에 아직도 보관 중이었다.
“사와무라?”
“...역시 너였냐.”
“아마도?”
역시 쿠라모치한테 가서 울음보를 터트렸나 보구나. 미유키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덕분에 둘 다 한동안 편해지긴 할 테니 상관없나.”
응? 미유키는 이해할 수 없는 쿠라모치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쿠라모치는 미유키를 보며 차게 말했다.
“바보와 바보가 사귄다고 발표했어.”
네?
바보와 바보의 결단력은 절대 얕봐서는 안 된다.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가, 타인의 시선 같은 것은 바보와 바보가 결정하는 데에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바보 하나로도 버거운데 바보 둘이면 시너지는 몇 배다.
“그래서?”
“자꾸 불려가는 것도 귀찮고. 어차피 맨날 보는 거니까.”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거짓말이기도 하다. 그걸 이 두 바보가 결행하다니. 미유키는 믿을 수 없었다.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 있고.”
미유키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뭘 들은 거지? 미유키의 놀람과 상관없이 후루야는 제 할 일만 했다.
“누가?”
“네?”
“누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망연한 미유키의 말에 후루야 한박자 늦게 아 하며 대답했다.
“저 말고,”
저 말고 라니 사와무라?
“좋아하는 사람 있댔어요.”
마치 오늘 저녁은 돈가스라는 식의 무심한 말에 미유키는 말이 막혔다.
그 녀석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미유키는 새롭게 안 사실에 경악했다. 그런데 후루야랑 사귄다고?
정확히는 귀찮은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각자가 윈윈인 상황을 말하는 거겠지만.
사와무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 달라졌다.
설마, 크리스 선배?
그렇지만 미유키가 아는 사와무라는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놔두고 그렇게 후루야와 사귄다고 얘기할 정도로 요령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
“뭘 또 고민해?”
“사와무라가 세상사는 요령이 있는가 하는 주제로 고민 중.”
심각한 미유키의 말을 쿠라모치는 비웃었다.
“하아? 그 녀석이 요령 좋았으면 지금 그 고생은 안 하지.”
“무슨 말이야.”
본인한테 직접 물어. 쿠라모치는 미유키를 걷어차며 내쫓았다.
본인한테라니, 저한테 던져진 난이도 높은 일에 미유키는 어깨를 움츠렸다. 사실,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미유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왕 가는 거면 방에 들러서 푸딩이라도 가져오는 게 나을까.
사와무라가 있다.
높이 묶어 올린 포니테일의 끝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미유키는 사와무라에게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후루야와 사귀는 거야?
사정은 알고 있다. 머리로는 그런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둘 다 야구 바보다. 야구에 자신들의 개인사를 끼워 넣을 수 있을 만큼 요령 좋은 녀석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일이 있구나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미유키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선배?”
어느새 제 앞에 성큼 다가온 사와무라의 부름에 미유키는 무심결에 한걸음 물러섰다.
“어.”
“서서 자는 중이었습니까.”
말과 달리 걱정이 담긴 표정에 미유키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프면 쉬십쇼.”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려면 쉬는 날도 있어야죠. 어느새 코치와 감독에게 얘기하러 간다는 사와무라를 미유키는 황급히 붙잡았다.
“후루야랑 사귄다며?”
“네?”
미유키는 당황했다. 이렇게 당황한 게 얼마 만일까 싶을 정도로 당황했다. 거기에 미유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다가 어리둥절해졌다가 어이없어하는 다단계의 표정을 보여주는 사와무라를 보며 더 당황했다.
“누구랑 누가요?”
“너랑 후루야.”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아, 안 사귄다니까요. 선배까지 그러십니까. 저번에 얘기했잖습니까.”
이제는 지겹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그제야 의문을 가졌다.
“안 사귄다고?”
“사귀는 사람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미유키는 안도하면서도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쿠라모치와 후루야의 그 말들은 뭔가. 설마 자신을 속인 건가? 쿠라모치는 그렇다 치고 저 후루야가?! 미유키는 후루야에게 들었던 또 다른 말을 황급히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그거야 당연...히 있죠...”
없다고 얘기 하려다가 있다고 대답하며 작아지는 목소리와 빨개지는 뺨을 보며 미유키는 다시 황급히 물었다.
“누구?”
“네?”
“좋아하는 사람.”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때 물어봐야 한다. 필사적인 미유키를 보며 이번에는 사와무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왜요?”
“응?”
“왜 제가 선배한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말해야 합니까?”
그거야 방해하려고.
미유키는 제 안에서 일어난 생각에 움찔했다.
“선배?”
“미안, 조금만 정리 좀 할게.”
허탈해졌다. 어쩐지 쿠라모치가 한심해 하더라니. 알면 힌트라도 좀 주지. 미유키는 심호흡하며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라운드에 있었기에 그을린 피부, 살짝 올라간 커다란 눈, 질끈 묶어 올린 포니테일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의 끝.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는 얼굴.
조금 전에 빨개졌던 뺨은 아직도 빨간 그대로였다. 그리고 미유키를 피하는 흔들리는 눈동자에 미유키는 아- 하고 깨달았다.
“역시 미소녀는 아냐.”
“이번엔 시비 겁니까.”
“귀엽긴 하지만.”
화를 내려다 말문이 막힌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싱긋 웃었다.
“사와무라.”
“왜요.”
좀 전의 걱정은 어디로 갔는지 이젠 퉁명한 사와무라의 모습에 미유키는 역시 귀엽다며 생각하며 한 걸음 다가갔다.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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