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2부) Repositioning 2
유학이후 프로 X 고졸 얼리 프로
안내사항
*본 창작물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 의 2차 팬 창작으로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 원작에서 안나오는 가상의 모브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본 창작물에서 나오는 프로 농구 및 구단 설정은 현실과 상이합니다. 단 참고 자료로 각 구단 채널 / KBL 채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는 농구 고증을 잘 살리지 못하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오탈자 비문 수정은...진짜 천천히 합니다. 아시죠?
아무 일 없이 멀어진 관계만큼 어색한 것도 없고, 대응하기 힘든 것도 없다. 시즌 개막 이후, 1라운드의 서울 LC와의 경기 전 날. 기상호는 자신의 20여년 된 인생을 돌아보며 그 인생 내에 있는 인간 관계를 회고하는 시간을 잠깐 가졌었다.
사실 회고라고 해도 별거 없었다. 중학생때 중반부터는 운동부에 들어서 인간관계라곤 같은 학교 선배 후배 동기. 딱 세가지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 한명,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에 진학 한 정희찬 한명 뿐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그래도 고등학생때는 적은 인원끼리 끈끈한 인연을 유지하다보니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 1년에 한번쯤은 얼굴을 보려고 시간을 비웠으니까.
그리고 지금. 프로선수.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아 좀 다르다면 몇년간 지속될 막내생활중이라 형으로 다 통일 된다는 점? 결국 이 형들과의 인간관계를 얘기하면 결국 같은 구단 형은 계속 부대끼고 볼 얼굴이고. 가끔 FA가 되어서 다른 곳으로 이적 한 형은 경기때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 였지.
그래서 시합 전날 밤, 왜 되도 않는 회고를 했냐면, 이렇게 따지고보니 기상호에게 있어 ‘최종수’란 이레귤러인 관계에 놓여진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에 있었고 이후 프로에는 다른 구단에 몸을 담은 형인데 어쩌다 가까워진 사람. 그런데 그 가까워진 정도를 타인이 문제삼아서 잠깐 거리를 두게 된 관계. 그런 경우에는 앞으로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런 얼토당토 않는 고민을 시작으로 기상호는 최종수와의 관계를 재정의 하려 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비시즌 같이 지내다보니 서로 정 들어서 그냥 친한 형동생 관계로 정의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더해서 나랑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사람? 같이 집에서 휴일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을 가진 사람. 그런데 지금은 어떤 관계로 정의 할 수 있을까. 그냥 다른 구단 선수? 그건 좀 너무 정 없지 않나.
사실 몸이 멀어지니 마음이 멀어진 것도 있었다. 자주 하던 연락은 어느샌가 끊기고. 얼굴 볼 기회는 경기장 아니면 없었으니까. 뭐 최근에는 사적 1:1 연락 외 SNS으로도 소통을 한다 하지만 최종수도, 기상호도 개인 SNS를 따로 운영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럼 뭐, 지금은 아는 형 동생 사이 아닌가. 그러면 아는 형 동생이었을 때 경기장에서 만난다면 굳이 인사를 하러 갔던가. 아니면 상대방이 와야 반응을 해주는 정도였을까. 사실 이런건 내키는 대로 하면 될텐데 굳이 관계와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지 타당성을 따지게 된건 눈치가 보여서 그랬다.
“준수햄. 아는 형동생 사이면 경기장에서 봤을 때 인사를 가야하나요. 아니면 그냥 모른척 해야하나요.”
취침 전. 기상호는 잠을 청하다 뜬 눈으로 저 멀리 떨어진 침대에서 누운 성준수에게 물었다. 선수 생활을 저보다 잘 할 사람이라 물어본건데 돌아온 답은 싸늘했다.
“너 안자고 무슨 헛소리야. 내일 경기때 컨디션 안 좋다고 하면 죽는다?”
“힝.”
결국 기상호가 경기 전 날 밤에 자지 않고 했던 회고와 고민 끝에 길 내놓은 답은 ‘애매하면 건들지 말자.’ 였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예전처럼 서로 제 할일을 하다보면 이 시간이 지나리. 그렇게 홈 경기장 내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슛을 넣으며 제 루틴대로 움직이다보면 저쪽에 있는 코트 반대편에서 공태성이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그래도 친한 형인데 잠깐 보는건 괜찮지 않나.
“니, 이젠 다른 팀이라고 인사도 안해주나?”
쭈볏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니 공태성이 등을 툭 치며 1년차는 신입이라 형으로 안쳐주나 봐. 섭섭한 척 농담 섞은 한마디를 한번 해주면 기상호는 그래도 친한 형이라고 멀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니고 저도 아직 막내라 눈치보여서. 해명하고 있자면 봐주는거 없다고 예전처럼 헤드락을 걸었다. 아아 태성햄 저 아파요 이거 오늘 방해 작전인가요, 잉잉 우는 시늉을 해봤지만 이전처럼 괜히 괜찮냐고 눈치보거나 그런건 없었다. 나 지금 걸기만 했는데 안아픈거 알거든. 진짜로 세게 힘 줘봐? 장난조로 으름장을 놓고 있자면 다른 중재자가 찾아왔다.
“연습은 안하고 이러는걸 보면 한가한가보다? ”
“한가하고 자시고, 인사 한번 할 수도 있는거죠.”
“인사 끝났으면 얼른 보내 얘랑 나 슛연습 할거니까.”
“네에- 오늘도 슛 잘 쏘십쇼.”
몇년이 지나도 관계성은 그대로 유지된 그 둘의 시비 섞인 대화가 끝나서야 기상호는 해방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경기때 봐요. 어색한 한마디로 마무리를 하자면 머리속에는 문득 태성햄 오늘 엔트리였었는지. 그런 의문도 들긴했지만, 나중에 보자 만큼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으니까. 그리 말하곤 제 코트쪽으로 가자면 뭔가 뒷목에 서늘함이 느껴졌다.
사실 공태성에게 말을 하면서 하면서 잠깐 눈이 마주쳤으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인사는 할걸 그랬나. 입맛을 쩝 다셔봤지만 이미 발은 제 팀이 쓰는 코트위에 올라와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도 뭣한 상황인지라 아무렇지 않은 척 림을 보면서 슛을 던지는데 여전히 뒤는 따가웠다.
기상호는 눈을 꾹 감으면서 애써 뒤를 보지 않으려 했다. 닳겠다 닳겠어. 그렇지만 이제와서 보자니 지금도 기상호는 최종수와 어떤 관계에 놓여져 있고 정의할 수 있는지 애매한 상황인지라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건 마찬가지였다. 더해서 막상 말 하게 된다면… 그래 자제 못할 것 같지. 방금 장난을 받았던 공태성 보단 더 수다를 떨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말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또 누군가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리라. 그런 상황을 가정하며 시선을 떨쳐냈다.
그래, 자제 못할 것 같았다는 판단은 맞긴 했다.
1라운드의 끄트머리, 이틀 후가 일산 SH와의 경기였기에 비디오 미팅에서 들었던 내용을 생각하며 다시 경기 영상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이것만 보고 일찍 자야지. 기상호가 그리 생각하며 영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영상을 띄우던 핸드폰에서 전화 알람이 울렸다. ‘서울 LC 최종수’ 몇달간 본 적 없던 글자가 뜨자 핸드폰을 떨어트리는것도 잠깐. 이 형이 왜 전화를 했대. 내일 만날것도 아닌데. 그나저나 메세지도 아니고 연락인지라 혹시 중요한 일일까. 기상호는 전화를 받으려다 슬쩍 제 룸메이트를 봤다. 침대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는 성준수의 눈치를 보며 저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보고를 한번. 그리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야 걔 왜 그러냐’
그래서 간만에 하는 연락이 다짜고짜 영문 모를 소리. 이어서 상황을 물어보면 남의 뒷담화였다. 뭔가 중요한 말인 줄 알고 받았던 사람만 김 샜지.이 햄은 왜 다짜고짜 자신에게 남의 뒷담화를 하는지. 김샌 사람만 아쉬웠으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좀 웃기기도 했다. 태성햄은 고등학교때도 트러블 메이커더니 이젠 저쪽에서도 문제를 만드네. 대학생때 아무런 말이 안나온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닌가, 사실 주익대 선배들이나 후배들 말 들어보면 얘기는 좀 다를려나.
여튼 그래도 이야기 하다보니 풀렸나본지 짜증 가득한 목소리는 누그러들고 잘 지내냐 로 시작하는 안부 인사가 이어졌다. 평소와 비슷한 무뚝뚝한 톤으로 너 저번에는 나한테 인사 안했더라? 따지니 조금 찔리긴 했지만 요새 잡혀산다고 징징거리니 납득은 해 주었다. 막상 전화를 받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라던가 묻고싶은 근황은 많았는데 더 전화했다간 애인 있다고 오해받을 것 같으니 적당히 다음에 보자는 말로 끝냈다.
다시 돌아오니 성준수는 제 룸메이트가 돌아온 것만 확인할 뿐 별 말은 안하였다. 기상호는 다시 영상을 보았다.
1라운드 마지막경기 대상인 일산 SH의 지난 경기. 모든 경기가 그러하듯 점수차가 많이 나지 않는 이상 안심할 수 없었다. 10점대의 점수를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진행되는 경기가 40분 내내 지속되었다. 사실 말이 40분이지 파울 콜과 자유투를 더하면 시간은 거진 1시간 반 정도 되고, 거기서 유의하게 봐야 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공격 패턴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상황은 어떤지. 그때 나오는 실수는 어떤건지 그런걸 생각하니 2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전화를 받을때 한 저녁 9시쯤이었는데 침침한 눈을 비비고 불을 끈다는 소리를 할 때는 어느덧 오후 11시였다.
“이제 불끈다.”
“네. 준수햄도 잘 자요.”
불이 꺼지자 기상호는 하품을 길게 한번 늘어트리곤 몸을 쭉 뻗었다. 오래 앉은 탓인지 허리가 조금 찌뿌둥했다. 누워서 스트레칭을 한 후 새까만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을 생각해보았다. 경기 전 날이니 비디오 미팅이 있는데, 그 전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자율연습 나가야지. 그리고 비디오 미팅 후에는 연습이 있고… 저녁에는 컨디션 관리해야 하니까 가볍게 몸만 풀고 자야지. 몸이 하나인데 할건 많았다.
사실 농구라면 농구 하나에만 집중하면 좋을텐데. 그건 또 아니었다. 단순한 농구실력으로 살아남은게 아니라 관찰력과 머리로 살아남은 상황인지라 부가적으로 힘 써야 할 곳이 또 있었다. 뭐 이것도 농구실력으로 쳐주긴 하지만. 남들은 너같은 놈이 롱런 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게 맞는지 의구심도 들어서 머리를 벅벅 긁적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내년에 있을 일보다는 지금 당장 다음의 경기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래, 다음 경기 말이다. 1라운드의 마지막 경기. 사실 1라운드로 모든걸 판단할 수 없긴 했지만 강력한 상위권이 나오질 않았으니 승패수는 얼추 비슷했다. 말이 그냥 비슷하다 하는거지, 그냥 춘추전국시대나 다름 없다.
그러다보니 저번 시즌 플레이오프 우승자가 되어 디펜딩을 해야 하는 수원 ST에게는 어떤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순위가 미끄러지지 말아야하는 그런 압박감.
따지자면 모든것이 압박이긴 했다. 연승이면 연승을 끊지 말아야 한다. 연패면 이번에 연패를 끊어야 한다. 한번 승리하면 연승으로 이어가야 하고, 한번 패배하면 연패하지 말아야 하고. 모든것에는 다 이유가 붙어서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주어진다. 뭐 그런건 굳이 수원 ST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실이기는 했다.
팀 사정 외에도 개인적으로 입빅을 하는건 많았다. 그 어려운 등용문을 헤쳐서 프로의 세계로 왔으니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가 주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붙이려면 얼마든지 붙일수 있는 이유들로 압박을 받는건 개인이나 팀이나 똑같았다.
어쨋든 기상호는 경기 당일인 그 날도 자신이 프로에 필요한 선수인걸 알려주기 위해 경기 중 코트 위를 밟지 않아도 초 집중 상태라는 뜻이었다. 일산 SH의 슛 컨디션이 좋은 탓에 상대편에서 오픈 찬스가 나면 3점슛을 맞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수원 ST의 빡빡한 디펜스 탓에 찬스 내는게 힘들긴 했다.
보통 이럴때면 선수교체 시켜서 뛰게 해줄텐데.
기상호는 경기를 보다말고 잠깐 제 앞에서 저를 등지고 경기를 보고 있는 감독의 표정을 살폈다. 영 불만족스러운 모양이지만 아직까지 선수교체를 하지 않은걸 보니 좀 더 두고보자는 뜻이겠거니. 사실 2년이 넘는 신간을 지내다보니 어느정도 감독의 눈치를 볼 수 있었다. 모든걸 다 아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이런 표정이면 경기를 뛰게 해주겠거니 하는 쪽으로 발달한 것이지만. 다시 한번 실점을 허용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감독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상호야, 3쿼터에 다시 나오자.”
“넵.”
하프타임에 몸 풀고, 일단 매치업은 저기 재영이가 될텐데. 체력만 떨궈놓으면 되니까. 아마 선수 교체를 한다면 민유가 되지 않을까. 몇번 매치업 하다보면 한번쯤은 기회 날거다. 알겠지? 2쿼터 끝나기 1분전, 영 점수차가 나지 않는 것에 불안한 감독이 벤치에 앉은 기상호쪽으로 가며 얼굴을 마주 하지 않은 채로 지시를 해준다.
점수는 여전히 쫓고 쫓기는 상황을 반복하며 2쿼터가 끝난다. 원정팀 락커룸으로 가면 상대팀 컨디션 좋은 상태니까 집중해서 잘 해보자는 말과 공격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패턴이 몇개 그려졌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 엔트리에 있는 멤버는 감각을 잃지 않게 코트 위에서 슛을 던질 시간도 있었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하프타임이 끝나면 또 경기 양상은 달라진다. 잘 유지된 경기력이 끌어올려진다던가, 아니면 맥을 못 추리고 떨어진다던가. 어짜피 사람 하는 일이 다 일정하지 않아서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그게 초인이지. 3쿼터 초반, 코트위를 밟은 기상호가 잘 비축해둔 체력을 기반으로 수비를 하고 있지만 일산 SH가 오늘 컨디션이 좋은 탓에 수비하는데도 체력이 빨리 깎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매치업 상대인 윤재영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닌게 다행이지. 빡빡한 마킹을 할 수 있으니 상대는 샷클락에 쫓겨서 무리한 슛을 넣거나 아니면 실수를 몇번 유발할 수 있었다. 이어진 오펜스때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해 두니 점수가 벌어진건 당연하고.
뒤이어 상대팀의 작전타임이 선언되고 감독은 이제 다시 점수 벌려놓자며 기상호를 빼두고 스타팅 멤버를 집어넣었다.
아, 교체구나. 조금 더 뛸 수 있는데. 아쉽긴 했지만 이젠 수비에서 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걸 아는지라 얌전히 벤치에 앉아 팀 저지를 입고 나머지 지시사항을 들었다. 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해도 나중에 뛰게 된다면 도움이 되겠거니 하면서.
상대팀의 컨디션이 좋긴 했지만 이미 벌려놓은 점수가 4쿼터에서 10분 내로 완전히 따라잡기는 힘들긴 했다. 물론 10점차나 20점차를 뒤집어 놓은 경기가 몇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극적인 경우고. 점수를 따라잡으려면 공격뿐만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잘 막아야 하는데, 수원 ST도 그리 만만치 않은 상황인지라. 천천히 시간을 보내면서 득점을 해주면 수원 ST의 점수는 따라잡힐 기세가 안보였다.
진행되는 경기 상황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경기는 4쿼터의 1분 내로 접어들고 있고 점수는 10점차가 여전했다. 이러면 다시 나올 일은 없겠네. 기상호는 입맛을 쩝 다시며 경기를 뛰는 형들의 모습을 보았다. 프로 3년차이지만 중요할때 활약 해주는 식스맨. 출전시간이 꾸준히 보장받고 있는 멤버라 해도 스타팅멤버도 아니고 주전에서 몇십분을 뛸 정도로 기용 되지 않는 상황.
잠깐 머릿속에서 딴 생각을 하고 있자면 어느새 벤치 앞에 있는 감독은 자켓을 입었다. 아 이겼구나.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은 역시나가 되어, 승자는 수원 ST가 되었다. 그리고 기록지의 기상호는 10분 좀 넘는 출전시간에 적절한 활약. 식스맨으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긴 하지만 딱 그뿐이긴 한게 조금 불만족스럽긴 했다.
그야 당연한건가. 저기 각 팀에 한명씩 있는 에이스들, 그러니까 30분을 뛰어서 중요한 득점을 해주는 멤버만큼 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그리 납득할 뿐이었다. 한탄할 시간에 슛 연습이라도 더 하는게 나았다.
어찌되었든 1라운드의 마지막 경기였다. 마지막까지 승리로 마무리를 했으니 숙소에서는 있는 사람들 끼리 기념이랍시곤 저녁을 따로 시켜먹었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포장해서 넓은 홀에 앉아 먹고 있자면 회식과 비슷한 자리이긴 했다. 좀 다르다면 술은 안마신다는 점? 그리고 집과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빠진다는 점일까. 그냥 기분좋게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것 뿐이지 일반적인 식사자리와 비슷해서 농구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오늘 이야기. 다음 경기 이야기 등등.
“다음 경기 누구랑 하더라.”
“서울 LC.”
“그러고보니 저번에 부산이랑 해서 이겼다는데 어떻게 이겼냐?”
“최종수가 완전 날아다녔댄다.”
한번 보자. 핸드폰으로 지난 서울 LC와 부산 티렉스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니 죄다 최종수가 명실부상한 에이스임을 알려주는 모습들이었다. 돌파나 슛 모두 수비 하나 달고 하는건 당연하고. 수비 둘 끌고 가면 바로 빈 곳 찾아서 패스 넣어주니까 득점과 어시스트 숫자가 두자리를 넘어가는건 당연했다. 중간중간 서울 LC팀의 턴 오버가 몇번 있었지만, 그걸 무색하게 할 정도로 혼자 다 해먹는 수준으로 최종수가 득점을 뽑아내니 결국 경기의 승자는 서울 LC였다.
“이번에 더블더블 몇번째더라.”
“이 경기가 아마 네번째 더블더블 아니던가. ”
“와. 근데 최종수 억제하지 못하면 서울 LC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겠네.”
“이번 1라운드 MVP따는거 아냐?”
“에이. 보통은 팀 성적 따라서 주는건데. 개인 점수로 치는거면 저기 강릉에 있는 제프가 받겠지.”
“2라운드 끄트머리면 상무에서 선수 복귀하던데. 그쯤되면 또 팀 성적 달라질테고. 그때면 라운드 MVP거의 따놓을거 아닌가.”
“아. 그러고보니까 거기 남현이 형 복귀하지?”
작년에 시즌아웃 되었던 선수도 재활 마친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느샌가 이야기는 서울LC와 라운드 MVP후보가 될 최종수로 가득했다. 작년에도 잠깐 서울 LC가 반짝 반등했을 때 한번 따 놓은 적도 있고, 신인상도 따 뒀으니. 못할건 없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족발과 닭구이를 둘러싼 선수들이 화젯거리를 서울 LC팀에 복귀할 선수라던가 최종수로 집중하는 새, 기상호는 입을 닫은채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영상 속 최종수를 보았다. 이전에도 일산 SH 경기참조용으로 한번 봤었는데 진짜 대단하네. 이 햄은.
작년에 우스갯소리로 그냥 체력만 깎아두는 수 밖에 없다 그리 말했었는데, 최근 했던 부산 티렉스와의 경기는 진짜 미친거 같았다. 컨디션 좋으면 여까지 할 수 있는건가. 이거 진짜로 죽자살자 따라잡아도 수비를 할 수 있긴 한건지.
“야 저번에 우리가 이겼잖아. 상호야 니가 최종수 억제 못할게 뭐 있어. 그치? ”
“네?”
영상에 몰두하며 어떻게 막을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 어느샌가 제 옆에 있는 형이 어깨에 팔에 두르며 말했다. 암만 서울 LC가 잘해도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 하면 된다고. 뭐 그런 뜻이긴 했는데, 기상호는 멋쩍게 웃는 수 밖에 없었다. 뭐 실제로 저번 경기에서도 몇 번 억제하기도 했고. 물론 최종수만 공략하는 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공략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흩어놓는 방향이긴 했지만. 여튼 방금 본 영상 속의 플레이를 보니 좀 겁나긴 했다. 그나저나 왤케 컨디션 좋대.
2라운드 첫 경기. 수원 ST와 서울 LC. 서로 연승을 이어가야 한다는 그럴싸한 말로 진행되는 경기. 직전 경기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흔히 말하는 ‘경기를 찢은’ 최종수에 대한 기대. 수원 ST의 특색인 수비를 어느만큼 잘 보여줄 것인가. 각자 관심을 가지는 포인트가 있다 하는데 그건 어디 전문가의 이야기고,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그냥 오늘 컨디션을 확인하면서 집중해야하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오늘 매치업 상대가 최종수니까 출전시간은 늘어나려나. 작년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서울 LC의 경기때마다 에이스스토퍼로서 활약을 기대하며 출전시간을 늘였으니까. 기상호는 약간의 기대를 품었다. 뭐 이렇게 기대하면서 출전 기회가 있다해도 중요한건 실전이었다. 제아무리 수비를 잘 해도 공격까지 잘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일은 없으니까. 제대로 해야지. 기상호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가며 슛을 던졌다. 그럭저럭 잘 들어가는 공이 오늘의 부담감을 줄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슛 연습을 좀 더 하면서 몸을 풀고 있으면 온 선수들이 하나 둘 코트 위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전 인터뷰를 하거나, 스트레칭 하면서 몸 풀다 다른 팀 선수 오면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는 시간. 그래서 기상호가 마저 몸 풀고 있으면 저쪽에 있던 공태성이 슬쩍 다가왔다.
“야, 상호 니 최종수랑 뭔 일 있었나?”
“네?”
대체 이 둘은 내한테 왜 이러는지. 저번에는 최종수가 뜬금없이 공태성 뭐냐고 전화를 걸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다른게 있다면 전번의 전화는 따지듯이 물었다면 지금은 놀리듯한 말투로 묻는다는 점? 기상호는 고개를 기울이며 영문 모를 표정을 지어보았다.
“저번 경기때 내한테 뭐라캈는지 아나.”
너한테 감사하라고. 공태성은 픽 웃어보면서 경기 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최종수를 흘금 보았다. 기상호 역시 따라 보다가 공태성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저번의 통화. 분명 공태성 뒷담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말하는 걸 보면 그리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지는 않고. 아닌가. 종수햄의 일방적인 비호감인가?
어쨌든, 그 뒷담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적당히 받아치고 나니 나중에는 흐지부지되어서 결국 나중에 보자는 인사로 끝났다. 그 전에는 서로 농담도 좀 했지. 종수햄에게서 너랑 전화하니까 괜찮아졌다는 말도 듣고. 그래, 그때 마지막엔 기분이 좀 좋아보였던 것 같은데.
설마 전화 한번 했다고 기분 좋아서 다음날 컨디션 좋아진거 맞나? 에이 설마. 기상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 한번 짓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뭐 별일 없었어요.”
“그렇나? 그럼 나한테 한 말은 뭐냐.”
“종수햄이 태성햄 대해서 묻긴 했는데...”
굳이 뒷담 했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하긴 뭣해서. 그냥 적당히 형 얘기 좀 하니까 오해가 풀린거 아닐까요? 하고 얼버무렸다. 뭐, 실제로도 맞기도 했으니까. 어짜피 도착지만 같으면 되는거 아닌가. 기상호가 그리 말하니 공태성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 이후로 누구 노는 꼴 보지 못하는 성준수가 나서서 여유롭나보네? 한마디 하니 코트 위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끝났다.
“야 기상호.”
누군가가 나서서 다가오지 않으면 말이지. 기상호는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앞에 다가온 인물을 봤다. 농담으로 아쉬운 사람이 먼저 오는거라 말 하긴 했는데 진짜로 올 줄이야.
“종수햄 여까지 어떤 일로...”
“왜, 난 인사하러 오면 안돼?”
“그건 아니지만.”
유니폼 위에 저지를 입은 최종수가 공을 가볍게 튕기며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위협적인건 최종수였기때문인지. 아니면 최종수를 보는 이 상황이 묘하게 눈치보게 되는 상황이라 그런건지. 기상호는 슬쩍 눈을 돌려 주변을 보았다. 다들 한번 보곤 제 할 일을 하는데, 그 한번 보는 시선이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누구와도 눈 못마주치다가 다시한번 최종수를 슬쩍 보면, 묘하게 못마땅한 표정인지라. 기상호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희 잘 해봅시다?”
“어, 그래.”
잘 해보자. 딱 한마디만 남기고 최종수는 다시 제 팀의 림쪽으로 갔다. 꼭 말이 두고보자는 것 같네. 기상호는 남 몰래 숨을 한번 깊게 내쉬자 한번 시선을 둘에게 주었던 형들이 슬금 다가왔다.
왜 왔대? 그냥 인사하러 왔어요. 오는건 꼭 시비거는 것처럼 보이던데. 그냥 분위기가 그래서 그렇지 별 말 안해요. 그렇냐.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굳이 말을 얹을 건 아닌지, 그냥 아는 얼굴이라 한번 인사하고 가는구나. 그정도로 여기는 셈인 모양이었다. 사실 인사 말고 또 뭔가 말 하고 싶었던게 있는 모양인데.
그렇지만 그런 사적인 관계에 관한 사소한 일을 머릿속에 둘 정도로 기상호의 머릿속은 여유롭지 않았다. 당장 몇시간 뒤면 경기가 진행될거고. 그리고 그 경기속에서 막아야하는 상대가 최종수였으니까. 선수면 경기에 집중해야지. 경기 전 루틴에 집중하는 시간을 지나 본 경기의 시작이었다.
경기 양상은 팽팽하게 진행이 되었다. 최종수의 경기력이 평균이상을 찍는 것에 비해선 팀 효율은 별로인지라. 극적인 수비 성공에 더해서 수원 ST가 턴 오버를 끌어내기도 하고. 그럼에도 농구의 수비가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2쿼터 초반, 기상호는 벤치에서 코트 위에 섰다.
“공격은 패턴대로 하고, 수비는 알지? 지금 최종수 외에는 득점 잘 안나오니까 마킹 잘 하고.”
“넵.”
선수교체가 선언된다. 간만에 코트 위에서 보는 것인지라 긴장감이 확 올라온다. 사실 서울 LC와의 경기는 두번째이고, 최종수 매치업 상대 하는건 여러번 했던건데 괜히 긴장이 되는건 그 전에 봤던 영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쫄지말자. 기상호는 온 신경을 경기로 집중시켰다. 코트 위로 달려오자 등장곡이 나오고 환호성이 들려왔다. 기상호는 숨을 한번 들이쉬면서 제 매치업 상대인 최종수를 따라다녔다.
수비는 진짜 상대를 죽자살자 따라가는, 서로의 집중력 싸움이긴 했다. 턴오버를 유발하는 플레이를 한다던가, 기습적으로 공을 빼앗는 쪽은 기회가 있다면 하는거고. 사실 초반부에는 수비를 성공시키는 것보단 체력을 깎아내는 작업과 비슷하긴 했다. 그러니까 수비가 완벽하게 잘 들어가도 득점을 허용하는건 그냥 최종수의 기량이고.
그래 그 기량이지.
플로터로 띄운 공이 들어가는걸 보며 기상호는 혀를 한번 찼다. 오늘은 왜 이리 컨디션이 좋대. 다들 수비 괜찮았다고 어깨를 툭 치고 갔지만, 빡빡한 마킹에서도 최종수에게서 실점을 당하니 괜히 수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먼저 고찰해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단순히 기량이나 컨디션이 좋다고 하는건 핑계고, 일단 프로 무대에 섰으니까 뭔가 유의미한걸 보여줘야 하는데.
전광판을 한번 본다. 스코어는 42 - 36 두포제션 게임 차이. 수비만큼 공격을 성공시켜야 스코어링 런도 가능하니까, 공격 패턴에 집중한다. 빠른 패스플레이를 통한 3점 플레이. 다시 백코트. 핸드오프로 공을 받은 최종수가 윙쪽에서 공격을 시작하려고 한다. 돌파냐 패스냐 아니면 바로 3점을 꽃느냐. 기상호의 머릿속에서 경우의 수와 그간 보였던 최종수의 플레이를 생각하자면 코트 위 바로 기상호의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갔네?”
저번 시즌때는 진짜 인상 팍팍 찌푸리면서 득점 할때만 빤히 표정 쳐다보더니 이제는 먼저 말도 걸고 햄이야 말로 여유롭나 보네요. 속에서 튀어나올 말을 삼키곤 입을 꾹 닫았다. 사실 쌍용기때도 뭐 말을 많이 하긴 했다. 사실 말이 아니라 폭언을 다 해댄거지만. 뭐 지금은 그에 비하면 산들바람이지 완전. 그럼에도 답없이 묵묵히 수비하는건 지금 코트 위에서 시덕거릴 틈도 없는데다 잠깐 쳐다봤을때 보였던 벤치쪽에 있는 감독의 표정 때문이었다. 현재까지의 결과를 봤을 때 영 불만족 스러워 보이는 표정인지라. 분명 지금 이순간까지 유의미한 뭔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교체될 각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묵묵히 마킹하는 기상호가 마땅치 않은지 최종수가 잠깐 눈살을 찌풀이다 드리블 몇번 치고는 안쪽으로 파고든다. 기상호가 팔을 벌려서 따라 잡으면 바로 헬프 디펜스가 온다. 돌파를 차단하고 림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내면 바로 거리를 벌려 슛을 시도한다. 슛 컨테스트를 뚫고 득점. 아쉬워 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며 공격을 위해 상대 코트로 넘어오면 백코트를 하는 최종수와 눈을 마주쳤다.
마주친건 순간인데, 그 순간 속 기상호는 최종수의 웃는 표정을 보았다. 전처럼 비웃는다던가, 기선제압도 아니고. 그냥 웃고 있었다. 그냥 농구 한게임 할때 웃으면서 하는 것과 같은 그런거 말이다.
종수햄 즐거워 하고 있네.
그 표정을 읽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면 좋은거지. 좋은건데 왜 이리 속이 울렁거리는지. 기상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남이 게임 즐긴다는데 그거에 속이 불편한건 괜히 심통이 나서 그런건가. 웃기다 전에는 그냥 내가 즐거우니까 농구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완전…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 사고의 흐름을 일부러 차단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쓸데없는 감상이라 판단하며 상대의 코트 위에서 배치된 자리로 가 다시 패턴플레이에 집중하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20여초. 샷클락과 게임시간이 엇비슷할때 빡빡하게 시간을 다 써가며 공격을 시도하였고. 이번에도 성공. 사실 공격이 잘 이뤄졌다기보단 상대측 수비에서 사인 미스가 있으니 쉽게 득점허용을 했던거지만.
곧이어 몇초 후 장포가 던져지고 버저가 울렸다. 2쿼터 종료. 큰 점수차는 아니지만 리드를 가져가고 있는 수원 ST. 하프타임의 시자과 함께 각 선수들은 제 팀의 벤치로 갔다. 그리고 서로 지나가는 그 과정에서 기상호는 여전히 웃고 있는 채로 제 팀 벤치로 넘어가는 최종수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그는 자신과 잠깐 눈을 마주치자 잠깐의 미소를 지었다가 제 팀의 벤치로 들어갔다.
안심할 수 없는 점수차로 흘러가던 게임은 쭉 진행되었다. 스코어링 런이라도 했다면 뭐 20점 차에서 잠깐 숨돌릴 수 있겠지만 스코어링 런은 무슨, 초반에 잡았던 리드를 그대로 가져가는게 최우선이었다. 하기야 3쿼터에 갑자기 이변이 벌어지는 허다한데 그 리드 쭉 가지고 가는게 어디야.
하지만 그건 그나마 괜찮은 현실에 안주하는 나약한 생각이었고.
4쿼터 중반, 최종수를 마킹하던 기상호는 코트 위에서 벤치로 들어갔다. 수고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전처럼 수비를 성공하고 들어가는 건 아니고, 공격에서 보이는 체력 저하가 눈에 띄었으니 들어온거라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최종수의 출전시간 줄인답시고 나온 선수가 매치업이 되었을 때 몇번 수비를 성공했다는 점일까.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기 안도적 감정과, 결국 원하던 결과는 잘 못보여줬다는 자신의 실망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벤치에 앉자 형들의 잡담이 들려왔다.
“최종수 아니었음 이미 가비지게임이었겠네”
“애초에 걔 없이 서울 LC가 이만큼 올라왔겠냐.”
“이번에 출전 시간 줄인다더니 지금 이대로 가면 후반 라운드 가면 퍼지는거 아냐.”
“야 그래도 저번에 거의 풀타임 출전하던거 줄긴 줄었다. 게다가 쟤 부상없이 시즌 마무리 했는데 앞으로나 걱정해야지.”
앞으로는 무슨, 지금도 걱정되는데. 기상호는 가만히 앉아 최종수의 움직임을 보았다. 빡빡한 수비에도 불구하고 샷클락에 가깝게 득점 성공. 그리고 백코트. 백코트를 하러 가는 도중, 최종수가 저를 본건 느낌탓일까. 기상호는 그 잠깐의 순간을 생각하곤 눈살을 찌풀였다. 꼭 옛날 생각이 났다. 득점하고나서 저를 쳐다보면서 반응을 확인하려던 그거 말이다. 작년에는 그러지 않더니 왜 지금 그러는지.
아니 그냥 느낌탓이겠지. 그냥 습관적으로 벤치 한번 보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뿐이렸다. 기상호는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리 생각하고 싶었다. 그 우연히 마주친 시선과 표정은 제 속을 자꾸 울컥하게 하니까.
점수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그렇다고 멀리 나가지도 않았다. 87 - 81 딱 2포제션 차이로 수원 ST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승리했으니 전과 같이 형들에게 하이파이브라던가 포옹해주면서 경기 수고했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수훈 선수 인터뷰때 물도 뿌려주고, 홈 경기 이후 팬 서비스를 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기가 많은 형들의 몫이었다. 인기가 없는건 아니지만, 탄탄한 팬층이 있는 다른사람만큼은 아닌지라.
결론을 말하자면 기상호는 어쩌다보니 이른 퇴근을 하게 되었다. 사실 퇴근이라 해봐야 갈 곳이라곤 구단 숙소 밖에 없지만. 내일은 쉬고 또 경기, 이번주 경기 일정은 퐁당퐁당이네. 머릿속에서 이후의 일정과 추후에 나올 피드백을 생각하며 체육관 밖을 나서면 팬들에게 붙잡혀 있는 최종수의 모습이 보였다.
원정팀이라고 해도 수도권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였다. 원정 팬들이 많은거야 여러번 봤었으니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까지 와서 퇴근길 배웅해주는걸 보니 인기도 많다. 그야 국내 탑 가드 소리 듣는 종수햄이니 그렇겠지.
“야. 기상호”
팬들에게 싸인하는 최종수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제 갈길을 가려했었지만 또 언제 봤는지, 그 한마디에 붙잡히고 말았다. 경기 전에도 뜬금없이 와서 인사하더니. 이젠 후에도 무슨 용건이 있다고 부르는지. 기상호는 가던길을 멈추고 최종수가 있는 쪽으로 갔다. 햄 팬이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다른 선수 부르는거 팬서비스에 안좋습니다. 그리 말하려 해도 이미 팬들은 선수님 응원해요! 한마디만 남기고 떠난 뒤였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너 오늘 왜그래?”
“네?”
왜 대화의 시작을 이런식으로 하는지. 갑자기 걔 뭐냐. 라던가, 지금도 오늘 왜 그래. 같은 말로 하질 않나. 상세한 이유를 붙이지 않고 그냥 알아서 잘 이해하란 투로 말을 한다.
“전화할때는 뭐 인정사정 없이 거칠”
“잠, 잠깐 스탑!”
최종수의 6글자 짜리 말을 길게 풀면 어떤 문장이 나올까 머릿속으로 열심히 해석하려는 찰나, 이전의 전화내용을 입 밖으로 직접 내뱉으니 기상호는 황급히 최종수의 입을 막아야 했다. 물론 자신이 한 말이었지만 남의 입으로 나오는건 듣기 좀 뭣했다. 그것도 아직 퇴근 안한 같은 팀의 선수들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기상호가 주변을 슥 둘러본 후 아무도 없는걸 확인 하고 나서야 최종수의 입을 막았던 손을 뗄 수 있었다.
“그 말은 빼고 말합시다. 그래서 와 불렀는데요?”
“너 전화할 때랑 지금이랑 왜 이렇게 다르냐?”
“아니 그야,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는 달라야하니까요?”
알잖아요 저 눈치보면서 사는거. 그리 말하니 최종수는 또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결국 사적으로 통화할때는 그렇게 친한척 하더니 여기서는 왜 그러냐 그 불만인 모양이었다.
“… 너는 나 보면 할말 없어?”
“아니 뭐...할말이 있었나요? 저희?”
기상호는 기억을 되짚어본다. 최종수에게서 따로 볼일이 있었던가? 하면 아니었다. 비 시즌때 선 그으면서 서로 연락이 뜸해짐. 혹여 잊은 약속이라던가, 받거나 줘야할 물건이 있나?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최근에 한 통화도 그냥 나중에 보자고 마무리를 지었고. 뭐 태성햄이 좀 신경쓰이는 말을 해서 궁금한게 있긴 했지만 그걸 굳이 물어볼 정도는 아닌 궁금증이었으니까. 영문을 모른채로 눈을 꿈뻑꿈뻑 뜨고 있으니 최종수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작은 한탄을 낼 뿐이다. 사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뭐 되는 것처럼 말하는것도 좀 불편했다. 최종수 얼굴 볼때마다 경기 도중 봤던 표정이라던가 저를 자꾸만 바라보던 시선들이 자꾸만 떠오르니까. 실은 지금 안보고 그냥 퇴근하면서 앞으로의 경기에 집중하고 싶었은게 본심.
“뭐 제가 잘못한거라도…“
최종수의 불만가득한 표정이 역력하니 괜히 다른 구단 선수여도 기상호가 눈치보게 되는건 타고난 막내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이어도 형은 형이니까. 일단 엎드려야 중간은 가는 세계. 그래서 그 눈치를 보는 입장서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하고 파악하자면 기상호는 최종수가 대체 뭐가 불만인지 잘 몰랐다. 빠릿한 생활로 쌓여진 눈치로도 파악 못하는 쪽에 가까운데. 아. 근데 종수햄이랑은 같은 팀을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게 당연한가. 머릿속에서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자면 최종수는 짙은 한숨 끝에 딱 한마디 했다.
“니가 그러니까, 나 먹버 당한거 같다?”
이건 또 뭔 소리래. 기상호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떳다. 아니 대체 눈치보면서 공사구분을 하는 일이 어떻게 먹버가 되는건지.
”아니 종수햄,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기상호의 머릿속으로 이해못할 결론도출에 황당해하며 해명을 요구하니 최종수의 입에 나온건 전후 비교였다.
너 비시즌때는 그냥 막 들이대면서 친한 형 마냥 굴더니 지금은 뭐, 공사구분이랍시고 아무것도 아닌 척 하고. 하 씨 나는… 줄줄 나오는 말이 중간에 막힌다. 결국 이 형도 홧김에 한마디 한거 아냐? 딱 보이는 최종수의 그 어이없는 한마디에 대한 견적. 뭔지 몰라도 자신이 최종수의 심기를 거슬렸고 그게 트리거가 되어서 먹버라는 얼토당토 않는 결론을 내게 했구나. 그냥 그리 어거지로 끼워맞추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지금 여기서 얘기하면 저희 큰일날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진정 좀 하고 얘기합시다.“
기상호는 주변을 다시한번 쓱 둘러보았다. 혹시 이 최종수의 한마디를 들은 사람이 있는건지. 뒤늦게야 서로의 이미지에 큰 해를 끼칠 존재가 있는가 보고 있자면 다행히도 지금 체육관 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퇴근길을 기다리는 제 구단의 팬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는게 더 이야기 했다간 지금 홧김에 아무 말무 말이나 내뱉는 (추정) 최종수가 실언을 하고, 만야악에 앞으로 나오게 될 사람들이 듣는다면 괴상한 오해가 생길수도 있었다. 평탄한 선수생활을 위해 기상호는 양손으로 최종수의 어깨를 붙잡고 침착하게 다음을 기약하려 했건만.
“나중에? 넌 선배 눈치본다면서 전화도 없고 경기장에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아닌척 굴거잖아. 뭔 나중에 이야기를 해.”
이게 배려를 해줘도 고집이야.
“하. 진짜 날 잡읍시다 그러면.”
기상호는 핸드폰에 있는 스케쥴 앱을 켰다. 약속을 잡는 제스쳐를 취하니 최종수는 잠깐 노려보았다가 숨을 깊게 내쉬곤 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그럼 나중에 주말 경기 끝나고 봐. 기상호의 스케쥴 앱에 정확한 약속 날짜와 시간을 적힌 후에야 최종수는 연락 씹기만 해보라며 으름장을 놓고 떠났다. 그리고 최종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쯤에야 기상호는 한마디 내뱉었다.
“… 진짜 뭐야?”
그래도 친해졌을때는 나름 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한 또 다른 모습은 전혀 이해 못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급한 불은 껏으니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만나봐서 얘기해봐야 알 것들이니까.
그래. 나중에 만나봐서 생각해보자.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기상호는 한숨을 푹 쉬곤 체육관 부지를 떠나갔다.
이게 Boy's love인지 basketball love인지....
상호가 겪는 상황은 실제로 조금 다를수 있습니다 퇴근길이라던가 ~ 그런 상황들 말이죠 ^^; 제가 보고 있는 어떤사각형의 면을 나름 정육면체로 떠올려서 쓰는거지만 그게 사실은 정육면체가 아니라 직육면체일수도 있고 아니면 사각뿔 형태일수도 있잖아요?
여튼 전번보다 뭔가 나오는 속도가 느려서 마감 맞출 수 있을까 하는데 어쩔수 없어요...저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못 맞추면 4디페로 미뤄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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