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2부)Repositioning 7
유학 이후 프로 X 고졸 얼리 프로
안내사항
*본 창작물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 의 2차 팬 창작으로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 원작에서 안나오는 가상의 모브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본 창작물에서 나오는 프로 농구 및 구단 설정은 현실과 상이합니다. 단 참고 자료로 각 구단 채널 / KBL 채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는 농구 고증을 잘 살리지 못하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오탈자 비문 수정은...진짜 천천히 합니다. 아시죠?
100% 성공하는 슛이란 없다. 덩크도 삐끗하고 그 쉬운 슛도 컨디션이 안좋으면 삐끗하는게 공이었다. 그러니까 최근의 기상호는 공격할 때는 안 들어간 공이 신경쓰이고, 수비할때는 들어간 공이 신경쓰이게 된다. 여기서 내가 더 잘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텐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사실 천성이 그런 탓이었다. 잘하는건 그냥 원래 잘 해야 하는거고, 못하면 다 내탓인것 같은 천성.
그렇기에 코트 위에 서 있을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중력을 끌어모은다. 최대한 실수가 없도록. 턴오버가 나오지 않도록. 그렇게 코트 위를 밟는 시간을 늘여나갔는데. 자꾸만 4라운드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득점 성공, 엔드원으로 위닝샷을 쏘아올릴 수 있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걸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너, 농구가 재미있냐?”
하여간 최종수라는 인간이 코트 위에서 하는 발언들이 문제였다. 쌍용기에서는 뭐 온갖 폭언을 하면서 농구 왜 하냐고 묻더니 이제는 농구가 재미있냐고 묻는다. 이전이라면 좋아한다라던가 그래도 즐겁다라는 말을 할텐데. 쉽사리 답은 안 나왔다. 나는 이걸 재미있어 할까? 물론 이기면 재미있지. 그런데.
“글쎄요.”
확신이 없다. 기상호는 경기 도중 입꼬리를 올리며 반짝이던 눈빛을 떠올렸다. 재미있어하는건 종수햄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하는건 팀을 승리로 이끄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행하는 것. 기상호는 저의 목표를 떠올렸다. 쭉 코트 위에 서 있으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하고, 좋은 성적을 내려면 수비뿐만이 아니라 공격도 성공해야하고. 머릿속에서는 그저 잘 하는 방법만이 떠올랐다.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변질된건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닳는다는 조언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내는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결국 즐기는것도 그만큼의 능력이 되는 사람이 지닌 특권이지.
그래서 농구가 즐겁냐고? 매번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 최종수의 목소리로 재생되는 질문에 기상호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농구는 계속 하고 싶어요.’
나는 햄처럼 즐겁다는 표정 지으면서 할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고. 들려주지 않을 답을 도출했다. 그래 계속 하고 싶었다. 고액의 연봉이라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고, 그냥 프로의 무대를 쭉 밟고 싶었다. 연습해야지. 결국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늦은 밤, 조건반사처럼 시간에 맞춰 체육관으로 가는 기상호를 보며 이젠 거의 문지기가 된 김세형이 말을 걸었다.
“넌 오늘 경기 뛰었는데도 연습하러 가냐?”
“내일 별 일정도 없고, 오늘 출전시간도 얼마 안되니까요.”
오늘 경기가 있긴 했는데, 많이 뛴건 도훈 형이었고, 출전시간 해봐야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던가? 사실 점수차가 많이 벌어진 게임이었어서 평소 출전시간을 부여받지 못했던 멤버들이 코트 위를 밟은 날이었다.
이전의 경기처럼 격하게 달린 것도 아니고, 잘 풀린 덕에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지라 그 체력이라도 소모한 후 푹 자둬서 내일의 일정을 맞이하려고 했던게 기상호의 계획이었다.
“상호야 안되겠다. 잠깐 이리 앉아봐.”
아무래도 경기 뛴 날 개인연습하는건 오버였나. 기상호는 세형을 따라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한숨 한번과 함께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컨디션 관리 잘 해야지.”
“네. 알아요. 그때 아팠던 이후로 주의하고 있어요.”
기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컨디션 보면서 연습을 한다는 어필을 해 보았다. 그야 저번에 아픈 이후로 컨디션 무시하고 연습하면 큰일난다는걸 몸으로 배웠으니까. 나름 자신의 합리적의 판단에 따라 연습을 나가려고 한거지만, 썩 신뢰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던 모양이었다.
“뭐 불안한거라도 있어?”
“그냥, 더 잘하고 싶어서…”
“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기상호는 그 말에 입을 꾹 닫았다. 정말로요? 반문할 수는 없었다. 매번 저에게 잘한다 잘한다 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의 답이 신뢰를 주지 않은걸 눈치챘는지 세형의 입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기상호가 현재 어떤 면에서 잘 하고 있는지. 사례를 기반하며 말하니 저,그걸 굳이 다 말해줄 필요가 없어요. 라고 말렸다. 그러니까 자꾸, 저 잘하고 있죠? 하면서 자해공갈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래서.
이후에는 승부욕과 스트레스. 워크에식이 과하면 병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했지만 늘 듣던 잔소리인지라 기상호로서는 일단 네 알겠어요. 라고 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안되겠다. 당분간은 야간연습 금지시킬거야.”
“네? 근데 야간연습 아니면 언제 연습을…”
“하지마.”
세형은 굳은 결심을 한 듯 말했다. 너 그거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감독님한테는 내가 말해둘테니까 그런줄 알아. 기상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벌렸다. 설마 진짜요? 그럼 가짜겠어? 지금 당장 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방에서 경기분석한다고 영상 보지 말고. 얌전히 자.”
“아이 근데…”
“준수한테 말해서 감시하라고 할거니까 그런줄 알아.”
꼭 부모님이 컴퓨터 전원 선 뽑는것 같네. 그런 감상을 가지며 기상호는 황망한 걸음으로 숙소의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머릿속에서 세형의 말의 진위여부를 가리고 잇었다. 정말로? 에이 설마 진짜로 그렇겠어.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리고 잠깐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 아무리 오늘 경기 몇분 안뛰었다지만 바로 연습을 하는건 좀 그랬어. 일단 머리를 식히고 다음 경기를 생각해보자. 조금은 머리를 환기시키며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상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세형은 제가 한 말을 지켰다. 그 당분간이 언제인지도 모른채로 기상호는 야간연습을 금지당했다. 감독님이 말한 정규 연습이 끝나면 얌전히 숙소로 가야했고. 숙소로 들어간 이상 나올 수 없었다. 그나마 허용해준거? 밤산책으로 구단 숙소 주변을 오가는 것 까지는 오케이 해줬다. 단 통금시간을 지켜서.
열심히 연습을 한 기상호에게 있어 강제로 가진 휴식기나 다름없었다. 휴식도 휴식 나름이지, 연습도 못하고 자주 봤던 경기 영상도 풀버전으로 (그래도 하이라이트 편집은 보게 해주었다.) 못보고. 그러니 연습이 끝난 후 할 일이 없었다. 책이라도 볼까. 하면 만화책은 이미 본가의 제 방에 다 보낸 후였고, 게임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자비로운 룸메이트인 성준수가 기상호에게 해외 농구 잡지를 선사해주어서 외국어 번역을 돌려가며 그 쉬는시간을 때우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일. 5라운드가 시작될 즈음이면 민족의 명절 설이 찾아온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도 경기를 했듯 설날에도 경기를 했으니 그냥 남들 쉬는데 우리는 일하네. 같은 기분이었지만. 각자 가족에게 연락을 드리거나, 가족들이 경기장에 찾아오는 것으로 명절을 대신하는 분위기이긴 했다. 겸사겸사 가족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친구들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좀 해두고.
그래서 이건 명절인사인지 아니면 그냥 연락을 한건지. 저녁 이후, 여느때와 같이 야간 연습에는 빠져있는 상황에서 숙소의 방 침대에 누워 멍때리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핸드폰의 진동과 함께 화면에는 최종수의 이름 세글자가 뜬다. 왠일로 전화를 한거지?
사실 최종수의 사적 연락이라면 시즌 초 다짜고짜 공태성 원래 그랬냐고 했던게 처음, 그리고 문제의 먹버 발언 이후로 약속을 잡기위해서 했던게(이건 전화라기 보다는 그냥 메세지로 대화한게 전부지만) 두번째. 이번 연락에는 대체 무슨일이 벌어질지 두려운것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게 너 농구 즐겁냐고 물어본 저번 경기. 그리고 그 전에는올스타전에서 서울가는 버스 타러 가는 길에서 즐겁게 하라고 한다던가, 그런식으로 하다 망가진다는 조언을 해준 일이 있다보니 뭔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으면서 대화를 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못받은척 하고 무시하기에는… 기상호는 할 일이 없었다. 사실 최종수의 전화로 뭔가 시간을 때울 수 있다면 그게 나았지. 몇일 후면 서울 LC와의경기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뭐 별일 있겠어. 기상호는 핸드폰을 들어 숙소 밖,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 돼?”
가장 먼저 들려온건 이번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이 형도 첫마디가 웃겼다. 일단 전화를 하고 난 다음 통화되냐고 묻는 꼴이라니. 전화를 해놓고 그리 말하는건 뭔지 대꾸하니 그럴수도 있지. 뻔뻔한 답이 들려왔다.
“일단 받고 끊으라고 할 수도 있잖아.”
“아무튼 돼요. 그래서 뭔 일이에요?”
뭐 별거 아니고, 그냥 해봤어. 참으로 담백하게 아무 용건 없어도 전화를 했다는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연습중이면 바로 나중에 전화 하겠다고 끊을 용건. 진짜로 최종수는 그냥 해봤다는 말 대로 그 말 한마디만 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화제를 고르고 있는건지, 잠깐의 침묵 후 최종수의 말을 기다리다 말고 기상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있죠, 저 야간연습 금지당한거 알아요?”
그리고 시작된 하소연. 왜 금지 당했나면. 기상호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후사정을 설명하며 투덜렸다. 당분간 연습 금지라고 하는데 그 당분간이 언제인지 안알려주는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솔직히 저도 그때 잘못하긴 했는데. 지금 진짜 할거 없어서 형 연락도 받고 그러는거라고요. 생색도 좀 내고. 아무튼 말을 다 하고 나면 최종수의 답이 들려왔다.
“내가 말했지? 너 그딴식으로 하다 망가지는거 순식간이라고.”
그래 남이 보기에도 내가 너무한건 맞긴 맞나보다. 그래도 니들 주장이 신경써서 그렇게 챙겨주는게 어디냐고, 남의 팀 주장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때, 최종수의 말이 맞긴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것도 맞고.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연습을 해야 했는걸. 기상호는 최근 자신이 치른 경기를 생각해보았다.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실적만 올리는 상태. 이대로라면 그냥 무난한 선수로만 남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즐거워서 한다는 놈이 갑자기 왜 그러냐?”
“그건 학생때라 할 수 있는소리고, 지금은 프로라 좀 다르잖아요.”
“뭔 소리야. 프로는 뭐 즐기면 안돼?”
프로는 즐기면안되냐고? 아니, 즐겨도 되는거지. 기상호는 매 라운드마다 최종수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렸다. 웃으면서 저를 뚫어내고 공격을 성공시키는 모습. 막혔을때는 분해하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는 표정까지 지어보였던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부럽기도 했다. 그래, 기상호는 최종수를 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울렁거리고 찝찜한 그 감정을 명명할 수 있었다. 부러움, 질투.
“그건 햄은… 에이스잖아요. 미국에도 가고. 애초에 그럴 운동능력이라던가 스킬이 있는데 저는….”
결국 즐길 수 있는 그런 마인드보다는,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부러워 하는 쪽이 맞았다. 이 형은 유학 다녀올 실력도 되고, 팀의 에이스로 있으니 앞으로 큰 일이 있지 않는 이상 그의 미래에는 재계약 걱정 한번 해본적도 없을거니까.
“누가 너보고 재능없대냐? 정신차려.”
“햄이 뭘 알아요.”
꼭 자기랑 같은 여건에서 뛰고 있는줄 알지. 기상호는 지금 당장 느끼는 불안감과 불합리함을 토하듯 쏘아붙였다. 햄, 저랑 햄의 출발선이 다른거 알죠? 그리고 레이스를 달리는 속도도 달라요. 출발선을 이야기 하다보니 저의 그 힘들었던 시기가 나오는건 어쩔수 없었다. 형이 쌍용기때 했던 말 그거 틀린거 없어요. 재능 없어서 2년동안에는 경기 출전한 적도 없고, 정작 출전한 시간부터는 제대로 된 활약도 못하고 지기만 하고. 이후에 우연히 잘 맞아서 결승전까지 간거 맞지 뭐. 뭔 듣보잡 1학년이 우연히 잘 막고 탑에서 슛 3점 넣고 이긴거 맞아요.
이 소리를 누가 들으면 무슨 평가절하를 이렇게 하는거냐고, 프로의 세계를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거 아니냐고 의아해하겠지만, 그냥 말하다보니 울컥해져서 그런 탓도 있었다.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을 해야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봐야 내 주제를 알고 악착같이 굴겠지. 그랬어야 했는데 주장은 되려 걱정이나 하고, 이 햄도 뭐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착각 해서 즐기면서 하라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나 하고 있다.
“알아. 니가 말하는 그 병신같은 시절.“
벤치에만 있고, 뭐 도움 하나도 안되는것 같고 슛은 에어볼이지. 섀깅 당하지. 수비 잘 해도 공격에서 먹히지 않으면 점수차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고.
“근데 니가 그 상태의 그대로 지금까지 온거냐?”
분명 겪은건 자신인데 그 시절 이후의 성장에 대해서 변호를 해주는건 최종수였다. 꼭 자기가 겪은것처럼. 사실 그러니 더 화가나는 것도 있었다. 지가 뭘 안다고. 그 경험은 온전히 저의 것인데. 꼭 내 경험을 뺏는것 처럼 느껴서.
“종수햄이 직접 겪은거 아니면 말 하지 마요. 그거 진짜 불쾌하거든요?”
햄은 모르겠죠? 남들은 코트에 뛰어다니는데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남들 지켜보고 있고, 이 팀에서 역할 하나 부여받지 못하고 쓸모없다는걸 40분을 넘어선 시간동안 인정해야하는 기분이요. 이제 그 시절에서 벗어났다 싶었는데 다시 그걸 겪어야 하는 기분. 이렇게 쏟아내고나니 머리 한켠에서는 이 부분이 최종수에게 화를 내야 할 부분이 아니라, 그냥 감정적으로 제 기분만 쏟아내고 있는걸.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드러내보이면서 실은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전시하는것과 다름없다는걸 판단하고 있었지만. 이미 서로 감정적으로 격해질대로 격해진지라 그걸 차분히 정리하고 말할 틈은 없었다. 씩씩거리는 기상호의 숨소리가 가라앉을 즈음, 최종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냐? 그러면 내가 뭐 풀타임을 벤치에 앉아서 어땟는지 말해줘?”
“뭐?”
이건 또 뭔소리래. 기상호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수화기를 든 채로 벙쪄있었다. 풀타임을 벤치에 앉아서?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최종수는 이미 통화를 끊은 뒤였다.
“최종수 저번에 발목 다쳐서 인대 늘어났다고 하잖아.”
가벼운 염좌이긴 한데 한 1~2주는 쉰다고 하더라.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기상호는 기찬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최종수의 풀타임 벤치’가 뭔가 해서 경기날에 최종수의 소식부터 들어보니 이전에 그가 얻은 부상소식이 들려왔다. 체력관리 하나는 튼튼하게 했어서 부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그날 유독 골 밑 몸싸움이 많다더라, 그 부상의 전말도 가십거리처럼 들려왔지만 그런 소식은 별로 귀에 와닿지도 않고.
뭐 그게 이거였냐? 이건 풀타임 벤치도 아니고 그냥 엔트리 제외잖아. 경우도 다르고. 대체 그런걸 가지고 어떤걸 알아보려고 하는건지. 그냥 무작정 우기는거 아닌가. 하기야 말 아무거나 막 해보고 우기는게 이전이랑 똑같지 뭐. 기상호는 어제 최종수와의 통화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잠깐 생각하곤 크게 숨을 내쉬었다. 최종수는 엔트리에 들어있지도 않았지만 남들 나올시간에 출근하여 벤치 뒷쪽 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이스박스나 타올 들고오는 잔 신부름도 하고 오는 최종수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꼭 초심을 찾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쨋든 그런 잡일도 하는걸 보니 큰 부상은 아닌건 확실해 보였다. 뭐 보나마나 선수 보호차원에서 경기 몇개는 결장하는 정도로 끝날 부상이겠지. 그리고 그 결장하는 경기가 오늘이고.
벤치도 아닌 자리에 앉아서 이해하든 말든.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물품정리를 하는 최종수를 잠깐 보다가 고개를 훽 돌려 몸을 마저 풀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상호에게 있어 최종수는 그저 잠깐 신경쓰고 마는 인물이었지 그 ‘신경쓰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매번 매치업할때마다 더럽게 잘 넣는 슛 짜증났었는데 오늘 안보이니까 컨디션 좋겠네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던게 전부였을까.
“상호, 니 최종수가 쌍용기때 우리 영상 보는거 알고 있나?”
공태성이 굳이 메신저 역할을 해주며 듣고싶지도 않았던 소식을 전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그냥 뭐 갑자기 너 관련으로 묻기도 하고 뭐 그러고 있다.”
보고인지, 아니면 왜 그러는지 짐작가는 바가 있는지 묻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폼롤러로 겨드랑이 사이를 꾹 누르며 스트레칭 하고 있는 와중, 기상호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러 온 공태성은 딱 그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였다. 기상호가 왜 그런대요? 같은 말을 하기도 전에 공태성이 괜히 최종수 눈치 보면서 먼저 떠나버렸기에 의중은 전혀 짐작 할 수 없었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만 알게 된 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걸 알게 되어서 괜히 신경만 쓰였다는 쪽이 맞으려나.
그래 괜히 신경만 쓰이게 된다.
경기때에는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파울 콜이 불리거나, 혹은 판정때문에 잠깐의 틈이 생기는 그 시간. 그 시간동안 괜히 신경쓰이고 마는것이다. 아니 어쩌면 상대의 그 시선이 느껴져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몇초 안되는 그 시간동안 기상호의 시선은 상대편 벤치, 뒷좌석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최종수를 보았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최종수를 볼때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코트 위도 아니고 벤치조차도 못 든 자리였는데. 오늘 경기를 뛸 일도 없는데. 정말로, 농구를 좋아한다는게 표정으로 보였다.
종수햄은 그곳에 있어도 이게 좋아요?
그 표정을 마주할때마다 의문이 들다가 기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종수햄 은 그럴수 있어. 부정해보았다. 나처럼 언제 경기에 몇분 뛸지 모르는 상태로 있는 것도 아니고, 발목만 나으면 바로 뛸 수 있으니까.
절대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있었던건 아닐거다. 그리 생각하는것도 잠깐.
그래서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더라.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건 왜였을까.
자꾸만 최종수의 표정을 볼때마다, 그 옛날에 최종수가 말한 ‘병신같은 시절’에 벤치에 앉아있던 모습이라던가 마음가짐은 어땠는지. 자꾸만 생각이 나버린다.
그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정말로 지켜보기만 했던게 맞을까.
머릿속으로 자꾸만 떠오르는 의문과 과거의 기억이 경기를 방해할것 같아 그 이후로는 경기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부러 최종수를 안 쳐다봤던 것 같았다. 경기때야, 그렇게라도 집중을 다른 곳으로 끌어내어 부러 생각을 차단 할 수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 최종수의 얼굴을 한번 보니 또 차단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뭐. 당장 벤치 뒷쪽에 있는 최종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도 없잖아. 그냥 무시하자. 괜히 얼굴보니까 그런거라고. 기상호는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부러 락커룸으로 가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 이후로는 언제나와 비슷했다. 락커룸에서 피드백을 받고 퇴근길을 통해 구단 숙소로 가는 그 과정이. 시즌에서 경기가 끝난 이후의 모습은 거의 비슷했다. 승리냐 패배냐에 따라 디테일이 조금 달라질 뿐이지. 그래서 오늘의 달라진 디테일이 있다면
“상호야 오늘 저녁에 일정 없지?”
“네? 네. 없기야 한데...”
갑자기 약속을 잡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일까. 기상호는 눈을 깜빡 뜨며 저에게 슥 다가와 말을 거는 감독을 보았다.
“그럼 간만에 밥이라도 좀 먹자.”
이거 그거 아닌가. 단독 면담 그거. 그 눈치를 알고 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냥 감독님이 밥 사줄 때 먹어라. 하면서 적극 권장 할뿐. 어디 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남이 밥 사준다고 해서 좋은 일이 아님을 다 알고 있는 셈이니까. 식사시간을 빙자한 상담교실이 진행될 수도 있고,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그걸 알고 있을텐데 누가 이 식사자리에 끼고 싶겠어. 그저 기상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날의 저녁식사. 주말의 2시 경기였기 때문에 정리하고 나와서 같이 식당으로 가니 딱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그래도 마냥 거절 할 수는 없는게 밥 사준다는 약속이었다. 그래도 옛날 사람 티 내기 싫었는지, 감독은 기상호를 데리고 어디 젊은 애들 잘 간다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동남아 음식 전문점인데, 저번에 동남아쪽에 전지훈련 갔을때 음식 잘 먹은것 같아서 데려왔단다. 그래서 메뉴 뭘 시킬까? 너 그때 잘 먹은게 뭐였지 감독은 기상호에게 메뉴판을 건네주며 직접 주문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사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돌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었으니 먹은거고 실제로 맛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냐? 그럼 적당히 인기있는거나 시켜.”
그때나 지금이나 훈련 후에 밥 먹는건 같은데. 하긴 그렇죠. 기상호는 테이블에 부착된 벨을 눌러 직원을 부른 후 BEST라 표기된 메뉴 두개를 시킨 후 수저를 세팅하고 물잔을 따랐다. 사실 매번 밥 먹으러 올때야 어디 형들이랑 같이 갔던게 전부였는데, 이렇게 감독님과 독대하는 자리가 되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니 조금 정도가 아니라 매우 많이. 그나마 다행인건 이러는게 거의 연례 행사나 마찬가지라 다들 잘 얘기하고 오라는 조언을 해줬다는 점일가. 기상호는 물컵에 따른 물을 조신히 마시며 감독의 눈치를 보기 한번. 상대방도 애 눈치를 보는지 헛기침을 한두번 하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너 프로 처음 왔을때 기억나냐?”
“네.”
역시나 상담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뭐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흑역사 같은게 아니라 다행일까. 나름 얌전하고 성실한 선수였으니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말로 그 처음의 이야기었다. 어리버리한데 하는건 잘 따라오고, 머리도 좋지. 열심히 하려고 하지. 나름 분위기도 잘 잡아주어서 좋았다는 감독의 평가는 좀 쑥쓰럽기도 했다. 무슨 얘기가 이어질려고 이렇게 띄워주나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도자를 해보면 아 얘는 어디까지 오겠구나. 같은거 보여. 사실 지도자가 아니어도 연차 좀 먹으면 얜 이만큼 하겠구나 하는건 보이기도 하고.”
물론 그게 다 맞는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감독의 말은 죽 이어져서 기상호의 기량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한계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걸까. 대화의 빌드업 끝에 피라미드 꼭대기 위에는 무엇이 세워질까. 바싹 목이 타오르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말하는 사람도 목이 마른지 어느샌가 양쪽의 물잔은 다 비워져있어서, 기상호는 물잔을 채워넣고 한모금 마셨다.
“처음에는 도훈이 역할을 기대해서 뽑았던게 맞아.“
명확한 수비롤이 필요했던 팀 상황이었다. 학교 사정상 체력 훈련도 잘 해놨으니까 다른 애들처럼 체력이 문제되는 것도 아니고. 더해서 이름난 선수를 막은 경험도 있겠다. 잘 키우면 그래도 누군가의 체력 보장 해줄 만큼은 되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메인으로 써보니 생각외로 더 잘하면서 우리 성적도 올라가니까 더 욕심도 생기고 그랬다고. 차분히 이어지는 감독의 의도라던가, 평가를 들으니 기상호로서는 뭔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도훈이도 복귀하고 나서 감 잡아야 했고, 너는 얼마 안되는 시간으로도 잘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으니까. ”
그러니까 이번 시즌때 기상호가 홀로 땅파게 만든 그 출전시간에 대한 진의를 들으니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시즌 전부터 다들 FA니까 잘 해야한다, 잘 보여야한다. 그런 압박감에 알게모르게 시달렸었다. 더해서 점점 떨어지는 출전시간에 관한 숫자를 보면 괜히 불안감만 커지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저 뭐 출전시간 적다고 시위하듯이 오버워크한거 아니에요.”
“알아. 욕심 있어서 그렇잖아.”
오히려 그런 욕심때문에 프로생활에서 더 발전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고. 헛기침 소리와 함께 작은 사죄가 이어졌다. 기상호의 출전시간 줄어들면 되려 다음에는 더 잘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그걸 통해서 욕심을 자극해보려고도 했지만 지금 하는걸 보니 확실한 오판이었으며 마음쓰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덤덤히 말하며 사과를 했다. 사실 사과라기 보다는 지난 잘못에 대한 정정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요지는 출전시간 줄어든건 니탓 아니야. 알지?”
그리고 너 공격 못한다고 지거나 출전 시간 줄어든 것도 아니고. 추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선수가 기본적인걸 안하지 않는 이상은 팀 구성이라던가 전술에서 잘못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결국 감독을 포함한 팀 전체의 책임이지 누구 하나의 책임이 될 수 없다는 팀 스포츠에 대한 누군가의 지론이었다. 기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옛날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쌍용기 결승때, 마지막 슛을 던지기 전 들었던 말. 모두의 결과가 이어져서 그 승패가 갈리는거지 절대로 슛 하나에 갈리게 되는건 아니라고. 그걸 알기야 하는데. 그런 지론보다는 개인의 불안감이 더 컸었으니까.
“물론 공격 옵션이라던가 스킬이 생기면 좋겠지만 그게 단순간에 확 생기겠냐?”
“그렇긴 하죠.”
“지금 열심히 해서 생기면 좋겠지. 근데 너는 수비만 잘 해도 제 몫을 잘 하는거니까. 다음 비시즌때 스킬 트레이닝이나 그쪽 집중적으로 해보자.”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온 ‘다음 비시즌’이라는 말에 기상호는 눈을 깜빡였다.
“저 다음에도 재계약 할 의사가 있는건가요. ”
“너 내가 방금 전에 한 말 뭘로 들은거냐?”
“그냥 기 세워주려고 하시는 말…?”
어휴.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밥이나 먹자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 이후로 기상호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를 시간을 보냈다. 훈련 후에 먹는 밥이라 배고파서 뭐든 다 먹을만했고, 방금의 대화를 생각하면 괜히 삽질만 하다 주변에 흙뿌리고 그런것 같아서. 그래도 체하지 않고 잘 먹었으니 다행인거 아닌가.
어쨋든 밥 잘먹고, 다음에 잘 하자는 격려까지 받으며 무사히 식사시간을 마쳤다.
“나중에 세형한테 고맙다고 말해. 팀에서 너 제일 잘 챙겨주려고 하는 애니까.”
따지고 보면 이 식사시간도 세형이 부탁해서 가졌다고 하니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였다. 신경써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긴 했지만 저번 야간연습 금지을 포함해서 이런 식사시간까지 만든 것에 대한 작은 원망? 그래도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건 알지만 조금 너무 어린애처럼 보는거 아닌가. 싶은 기분도 들고.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잘 해보자 상호야.”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딴길로 새지 말고 숙소로 곧장 들어가.”
기상호는 먼저 떠나는 감독의 당부를 들으며 그의 말대로 곧장 숙소로 가는 길을 걸어갔다. 설날을 지나 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겨울임을 드러나는 시기는 그래도 사람이 어딘가를 외출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온으로 기상호는 주머니에 양 손을 꽃아넣은 채로 길을 걸어갔다.
누군가의 조언이라던가 격려로 사람이 확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간 앓고 있던 문제에 대한 진상을 들으니 그래도 마음이 놓여지는 부분이 있긴 했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또 불안감이 가중되는 상황이 온다면 달라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적어도 내가 계속 코트 위를 밟을 있을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사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걱정때문에 여러모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매번 그 핑계로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던가. 케어를 하게 만든 사람이라던가.
기상호는 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어 지난 통화내역을 보았다. 온갖 스팸 아래에 최종수의 이름이 박힌 통화내역이 하나 있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곤 용기를내어 그 전화번호에 있는 통화 버튼을 꾹 눌러보았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대기음 끝에 최종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일이냐? 먼저 연락하고?”
“형한테 저한테 말해준다고 했잖아요.”
섣불리 미안하다라던가 반성이나 회고 같은 말은 잘 나오지 않아서, 이전에 했던 말을 들먹이며 물어보았다.
”그냥. 뭐. 거기 앉으니경기 뛰고 싶더라.”
그럼 그렇지. 결국 알아본다 하느니 뭐니 해도 선수는 선수였다. 그곳에 앉아서 뭐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조금은 김빠진 감상을 듣던 와중 으외의 평가가 들려왔다.
“그리고, 니생각 좀 났어.”
“네?”
“중학교때, 계속 벤치에 있었다고 했잖아.”
계속 뛰고 싶은데 뛰지 못하니까 힘들었겠구나. 하는거. 기상호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은 그 시절을 떠올려봤다. 남들 다 뛰고 있을 적, 사람 별로 없으니 나에게도 기회가 있겠구나. 그게 객관적 판단. 풀타임동안 벤치에 앉아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그래, 최종수의 말대로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그 감정으로만 점칠되었나하면 또…
“그래도 지금까지 농구 하고 있는거 보면 좋아 하는 거 같더라.”
“그러게요.”
종수햄에게서 그런 말 나오니까 괜히 낯간지럽네. 어휴 닭살돋아. 야, 편해졌나보네? 괜히 낯부끄러워 장난말도 좀 건네고 그랬다. 힘들기만 했다면 지금 다른 것 하고 있었겠지 왜 여기에 있겠어. 최종수의 말대로 좋아하니까 이 짓거리 하는거겠지 새삼 그런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니까 더 잘 하고 싶고, 욕심나고. 또 비교도 해보고 질투하고… 기상호는 자조하듯 픽 웃었다. 그렇게 분위기도 풀리고 딱딱하게 굳었던 생각이 풀리니 다른쪽으로 생각이 전환되는 것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최종수의 소식이라던가 그런거 말이다.
“그러고보니까 종수햄, 지상고 경기 영상 봤다고 하는데.”
“누가 그러디?”
“태성햄이…”
“그자식이?”
할 말은 아니던가? 기상호는 입을 꾹 닫고 추후에 최종수에게 뭔가를 당할 (?) 공태성에게 아무도 안들릴 사죄를 속으로 했다. 그래도 시즌초에 나름 최종수 앞에서 실드를 쳐준 적이 있도 하니(비록 부분 실드였지만.) 적당히 쌤쌤 쳐주는게 낳지 않나.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 고개를 저어 본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왜 참고하셨는지…“
저희학교 전술이라던 그런거 볼만 하지도 않을텐데. 볼멘소리로 최종수가 굳이 찾아 볼 이유도 없을 영상을 본 것에 대한 작은 추궁을 하니 최종수는 꽤 당당하게 답했다.
“알고 싶어서 그랬어.”
“뭐를요?”
”너에 대해서“
“와 말만 들으면 로맨틱한데 그거때문에 고등학생 영상 본다고 하니까 좀 기분 이상한데요.”
“이게 관심을 가져준다고 해도 난리야”
”아니 애초에 그 관심을 준다는 것 자체가…“
기상호는 침음을 한번 하더니 이 시즌동안 마음 한켠에 걸리적 거리는 사실을 꺼내어 자문해보았다. 최종수는 왜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가. 부터 시작해서 왜 저와 엮이고 싶어서 애를 쓰는가. 뭐 그런 자아비대적 생각 말이다. 실제로는 별거 아닌 이유일 수도 있긴 한데. 최종수의 행동이 점점 깊어진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냥, 신경쓰였거든. 니가 그러는거”
“그 과하게 연습하는거요?”
“어. 그러다보니까 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그거야 당연히 불안감에 휩쓸려서 한 것이긴 한데. 기상호는 후반 라운드에 자신을 지배한 감정과 기분에 대해 잠깐 생각하다가 자조하듯 픽 웃곤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있죠, 자꾸 몰아세우는거 힘들더라고요. 끝은 안보이고. 언제쯤이면 나 자신에게 만족할까 지치기도 하고.”
잠깐뿐이었지만 농구가 아닌 다른 숫자에 매달리게 된 시간을 떠올린다. 그래도 뒤늦게야 누군가가 옆에서 강제성을 띈 금지령으로 말려주니 망정이지. 그렇게 생각하기를 잠깐. 기상호는 올스타전때 최종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꼭 다 안다는 듯 하는 말들이 자신도 똑같이 겪어봐서 안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려와서.
“햄은 그때 어땠어요?”
“진짜 좆같아.”
다신 애기하기도 싫을 정도로. 그렇게 이야기 하니 순수히 납득이 갔다. 하기야 이미 어른인 내가 이러는 것도 주변에서 다 말리면서 그러지 말라고 주장은 감독과 의기투합을 할 정도 (?)였으니까.
“다시는 그러지마.”
“네.”
다음에는 절대로 안그럴게요. 기상호는 가장 확실한 답을 말해주었다. 다음에는, 햄 말대로 즐겁게 할게요. 그렇게 말하니 다음에 보자는 약속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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