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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내가 왜 좋아요? (2)

지게차 운전사 청년 X 구청 공무원 아줌마

공상 합의서. 유현은 본인 앞에 놓여진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현은 지게차 운전자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이었다. 더울 땐 더위와 싸우고 추울 땐 추위와 싸우는 곳. 그 곳이 바로 건설 현장이었다. 유현이 하는 일은 그나마 위험성이 높지 않은 물품 조달 작업이었지만 지게차로 건물 근처를 지나다가 벽돌 더미를 얻어맞은 유현이었다. 희영에게서 전화를 받은 바로 그 날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나쁜 소식도 함께 온다고 했던가. 유현은 지게차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벽돌들을 맞아내야 했다. 비록 업무 상이라고 해도 희영의 목소리를 들어 기쁜 날이었지만 근무 중 일어나서는 안되는 최악의 일과 함께였던 것이다. 

유현은 다행히 내부로의 충격은 있었지만 외상은 없었다. 다만 지게차가 찌그러진 게 문제였다. 지게차는 보통 회사 소유인 것을 쓰거나 개인적으로 대여해서 현장 근무에 나와야 한다. 유현은 후자에 해당했고 빌린 지게차가 망가졌기 때문에 수리비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고 이후로 머리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당장 뱉어내야 하는 금액이 더 크게 다가왔다.

공상 합의서. 그래서 이 종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면 지게차 수리비를 덜 부담해도 되지만 한동안 일터에 나올 수 없었다. 또한 현재 이후에 발견되는 의학적 소견에 대해서는 본인 부담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불법이었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만연한 일종의 관습이었다.

"유현아. 이거 쓰기 싫으면 그냥 지게차 하나 끌고 오면 돼."

작업 반장의 말이었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지만 당장 인력이 급해 유현을 위하는 척 하는 말이었다.

"이거 쓰면, 한 달 월급 만큼은 그냥 나온다고 했죠?"

단순 사고라면 그냥 바로 산재 처리하고 나오는 보상금을 받는 게 이득이었다. 현장에 나오는 만큼은 돈을 못 벌지만 쉬면서 받는 돈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큰 병이 발견되면 턱없이 모자랄 금액이었다.

쉬면 뭐 하지. 유현이 고민했다. 별 일 아니겠지. 설마 큰 병이겠어. 유현이 펜을 들어 이름을 쓰고 서명했다.

서명을 끝낸 유현이 건설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것도 시에서 허가했을 텐데. 아줌마는 그런 것까진 모르나? 할 일이 없어진 유현이 생각에 잠겼다. 평일 낮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된 유현이었다.

유현은 희영을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그 날도 열심히 일하고 땀에 절여저 퇴근한 저녁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쯤 적응이 될련지. 가파른 언덕이 유현을 맞이했다. 친구라고는 없는 유현이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버려진 유현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유현의 엄마는 유현을 본인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고등학교 때 직업 교육으로 배운 지게차 운전을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유현은 나름대로 몇 년 째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 드라이버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종종 공무원들이 찾아와 귀찮게 굴었지만 이 동네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연 문 밖에는 또렷한 눈빛의 희영이 서 있었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환상이었을까. 어머니가 갖고 싶다는 생각은 크면서 몇 번 해봤지만 희영을 바라보는 유현의 시선은 종류가 달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좋아해도 되나?'

염려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유현의 행동은 직설적으로 뻗어나갔다. 희영이 미혼이라는 사실만으로 유현은 설레어 했다. 아줌마. 희영에게는 몰라도 유현에게는 애정 어린 호칭이었다. 유현은 희영과 공적으로만 엮이는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여성 대 여성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쉬는 날 마침 평일이라 구청에 찾아가도 보았지만 아무런 전략 없이 간 건 실수였다. 적당히 둘러댄 핑계는 소용 없었다. 이미지를 망쳤다 생각하며 포기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기적적으로 희영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기분이 좋아서 실수한 것이었을까. 사고는 예상치 못했다.

유현이 폰을 들어 저장한 희영의 번호를 보았다. 희영의 카카오톡 배경은 그의 딸들이었다. 저번에 봤던 배경화면과 다른 사진이었다. 카페 음료를 찍은 프로필 사진이 귀엽게 느껴졌다. 몇 살일까? 딸이 고등학생인 걸로 보아 40대겠지. 그럼 대략 10살 이상 차이나는 건가. 어림 잡아 생각하며 희영이 지나온 세월을 궁금해하는 유현이었다. 40대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 오늘 저녁에 갚을게요. 병원비.

유현이 희영에게 카톡을 남기곤 미소를 지었다.

희영은 오늘 일 처리 속도를 보니 야근이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딸들과 있는 단톡방에 '엄마 오늘도 늦어'라고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고 저녁 메뉴를 고심했다. 오늘은 뭐 먹지? 사거리 앞 비빔국수? 역시 백반집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때에 답장이 온 것이다. 애들인가 싶어 확인했는데 다름이 아닌 유현이었다.

- 오늘 저녁에 갚을게요. 병원비.

맞다 병원비. 얼마 나왔더라. 그때 얘길 했던가? 생각해보니 유현이 영수증을 챙긴 것도 같았다. 카드 내역을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귀찮아진 희영이 여련히 알아서 잘 보내겠거니 생각했다. 근데 오늘 저녁에 갚을게요는 무슨 소리람? 그때 송금하겠다는 건가?

- 네~

- 신한 0000000000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희영이 계좌번호를 보냈다.

- 만나서 갚을게요.

만나서? 현금 밖에 없나? 설마 이 사람 모바일뱅킹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희영이 답장했다.

- 현금이세요? ^^

희영의 예상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 네.

- 현금으로 드릴게요.

- 지금 어디세요?

희영이 저녁을 떼우고 구청 앞으로 돌아왔다. 유현은 굳이 굳이 희영의 직장으로 찾아와 현금으로 돈을 갚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유현이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자리는 비어있었다. 내가 너무 일찍 나왔나 생각하며 확인한 시간은 정각이었다.

"아줌마!"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의 목소리였다. 희영이 돌아보자 꽃다발과 함께 뛰어오는 유현이 있었다.

"받아요."

유현이 품에 안았던 꽃다발이 희영의 품으로 넘어왔다.

"기울이면 물 나오니까, 세워서 들어요."

시들지 않게 물 처리를 했다는 뜻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희영이 꽃다발을 받아들고는 유현을 쳐다봤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아줌마 주려고 샀어요."

아마도 자신에게 주었으니 그렇겠지? 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희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밥 먹었어요?"

"네."

"아, 난 안 먹었는데. 같이 먹어주면 안 돼요?"

"네?"

뜬금 없는 말이었다. 그도 그렇고 돌려준다는 병원비는 어디에 있는 걸까? 유현의 손은 비어 있었다.

"저 오늘 야근이라, 밥도 먹어서요. 죄송합니다."

당연한 거절이었다.

"꽃다발 받고 야근 할 거예요?"

원래 이렇게 능청을 떨었던가? 묘하게 유현의 태도가 달랐다. 전에는 조금 더 예의 없고, 무례하고, 막무가내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희영은 이상하게 이런 유현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음의 패기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가 꽃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가?'

희영이 말이 없자 유현이 발언권을 낚아챘다.

"이건 차에 두고, 짐 챙겨서 나와요. 같이 밥 먹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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