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케틀바이] How to train your dog (3)

롤 초능력 특공대 스킨 - 사미라, 바이 (케이틀린)

바이는 거울을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백발을 가로지르는 검은 밴드가 영 익숙하지 않다. 군의관은 완전한 회복을 위해 며칠간 두르기를 권유했다. 바이는 군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드는데 가져도 됩니까?”

바이는 가벼운 걸음으로 부대로 향했다. 고생한 만큼 휴식을 즐길 생각에 들떠있었다. 퇴원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그 순간, 긴급 호출이 기지를 울렸다. 바이는 스피커를 향해 눈썹을 치켜떴다. 

사령관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한동안 예의주시하던 목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막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투입된 바이는 불퉁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대령은 눈이 마주치고도 꿋꿋이 말을 이었다. 작전을 다 세워뒀으니 직접 몸을 쓰는 일은 없다며 바이에게 몰이를 부탁했다. 바이는 전투에서 땀을 흘리지 않을 일이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대령의 뜻대로 진행한 후, 증거를 잡아 그 이후에 따져도 충분했다.

“작전 끝났습니다.”

바이는 멀뚱히 선 채로 두 눈을 깜빡였다. 사령관 말대로 정말 몸을 쓸 일이 없었다. 건틀렛을 끼고 적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 무리는 싸울 의사가 없는 듯 바이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경로로 도망쳤다. 몇 분 후 바이의 무전기에 불이 들어오며 상황 종료가 전달되었다. 바이는 무전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대령이 위치한, 마지막 도주 경로로 달렸다. 멀리서 봤을 때도 의아했으나, 거대한 그물에 잡힌 무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대령은 바이를 발견하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거봐요, 내 말이 맞죠? 작전만 잘 짜인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인계자를 부르며 유유히 지나가는 사령관에 바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특공대원을 곳곳에 배치해 단계별로 적을 지치게 만든 다음, 싸움을 피해 도망가는 적을 한곳으로 유인하고 항복하게 만드는 전략이라. 바이는 대령의 방식을 인정했다.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함께 하고픈 사람이었다. 바이는 대령의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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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의 영원한 적. 반란군이 용병으로 검은 장미 군단을 끌어들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검은 장미. 바이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스쳤다. 작전 지역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이 덜컹거린다. 바이는 불안한 직감을 무시하며 창을 바라보았다.

이번 임무는 기습당한 기지를 지원하는 작전이었다. 무방비한 채로 습격을 당한 터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사람들을 대피시킬 시간이 부족했다. 바이는 이목을 끄는 것을 맡았고, 건물 중앙을 점령한 검은 군단 소속 요원을 상대하기 위해 정문을 밀고 모습을 드러냈다.

”개싸움에 온 걸 환영한다, 이 자식들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도발하자 검은 군단 소속 요원들이 민첩하게 달라붙었다. 훈련을 받았는지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바이는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예리한 날에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건틀렛의 출력을 높여 상대의 턱을 강타하고, 그를 방패 삼아 쏟아지는 총탄을 막았다. 무너진 파편 뒤에 숨어 퍼붓는 총알을 피하고 시간을 쟀다. 셋, 둘, 하나. 폭발 보호막이 돌아오자 바이는 그림자에 숨어든 적을 향해 주먹을 꽂았다. 

무전이 켜지고 대피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곳에서 벌집이 되기 전에 후퇴해야 했다. 연구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대신, 반대편으로 따로 탈출하는 게 나아 보였다. 총알을 피하며 기다란 복도로 달려나가자 그림자 속에서 다른 인영이 또 보였다. 바이는 습관적으로 어깨를 풀고 전투 자세를 갖추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유령 같은 보랏빛 눈. 바이는 불길한 직감을 느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친밀하게 말을 거는 상대에 바이의 눈매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웠던 목소리와 이 어투.

“안타깝지만 받은 게 있으니.. 명성 값을 해줘야겠지.”

걸음걸이. 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

모든 걸 털어놓고 훌쩍 떠나버린 상사와 똑같았다. 단 하나 다른게 있다면, 이번엔 망설임 없는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는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왜… 당신이 왜.”

멍하니 사미라를 응시하던 바이는 눈앞에 달려든 화려한 칼날에 반사적으로 방어를 취했다. 건틀렛의 금속과 칼날이 뒤섞이며 나는 광음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반갑다고, 보고 싶었다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말들이 입속에서 부딪혔다. 

사미라의 과격한 싸움 스타일은 위험했고 파고들 빈틈이 있었지만 바이는 싸울 의사가 없었다. 공격을 막고, 충격을 견뎌내는 것에 한계가 찾아왔다.

탕-

타오르는 통증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른 어깨를 관통한 총알에 오른팔을 들 수 없었다. 총구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도 잠시, 이어지는 사미라의 일격에 바이는 다른 팔로 칼날을 잡았다. 총상에서 흘러나오는 출혈과 군단과의 싸움으로 지쳐서 쓸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칼날은 간격을 좁혀가더니 조금씩 복부로 파고들었다. 금속이 살을 파고드는 아픔에 바이는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힘을 짜내 사미라를 밀쳐내고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피가 흐르는 복부를 감싸 쥐어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홧홧한 어깨가 주체할 수없이 떨렸다. 죽음을 앞둔 바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사미라는 완전히 제압당한 적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권총을 돌렸다.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온 검은 장미 대원이 말을 이었다.

“물러터진 건 여전하네. 비록 전우였다 한들 본분을 잊으면 안되지. 죽으면 끝인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이니까."

사미라는 엎드린 바이를 옆으로 밀었다. 발밑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신음이 울린다. 천장을 바라보는 얼굴은 붉게 물든 눈가와 총상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엉망이었다. 흠. 사미라는 짧은 감상을 마치더니 비어진 탄환을 새 탄환으로 채웠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바이는 기도에 몰아차는 피를 내뱉으며 쿨럭였다.

“난.. 당신을 죽일 수 없어요.”

총구 끝이 바이의 이마로 향했다. 목표를 겨냥한 사미라가 대답했다.

“난 가능해.”

바이는 흐릿한 시야로 검은 총구 속을 들여다보았다. 암흑. 공허에 대고 물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기도로 고여드는 핏물에 말문이 막힌다. 오르락 내리는 정신을 유지하던 바이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미라는 눈을 깜빡였다. 바이의 목덜미에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군번. 정부군을 떠나며 버린 군번을 바이가 지니고 있었다. 사미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총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어린놈한테는 더 차갑게 굴어야 한다니까. 

“그래. 이게 네 방식이라면.”

잘 바랜 무기보다 때로는 순수한 감정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사미라는 바이의 목에 걸린 군번을 뜯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이는 오늘 죽지 않을 것이다. 사미라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바이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살아남으면 다시 내게 찾으러 와.”

케이틀린은 불안했다. 작전에 참여한 특공대원이 속속히 도착했으나 미끼 몰이를 한 바이는 무전을 쳐도 대답이 없었다. 케이틀린은 소수의 인원을 데리고 건물로 들어섰다. 중앙 건물은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듯 시체가 늘어져있었다. 케이틀린은 좌표계를 보며 바이의 마지막 신호를 따라 잔해로 들어섰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복도에는 피 웅덩이 위로 축 늘어진 바이가 있었다. 케이틀린은 다급히 뛰쳐나갔다. 바이는 정신을 잃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서 아주 희미한 맥박이 감지되자 케이틀린은 긴급 후송을 지시했다. 이송하는 차량 내에서도 수혈을 진행하며 케이틀린은 바이를 홀로 보낸 자신의 결정을 깊게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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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갇혔네."

바이는 입안에 찬 먼지를 내뱉으며 낮게 읊조렸다. 이번 임무도 잘 끝날 줄 알았는데, 폭탄의 여파로 돌무더기 속에 갇히게 되었다. 다리를 짓누르는 무게가 묵직하다. 힘을 주어도 몸 위로 내려앉은 파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감상은 가벼웠다. 차갑구나.

“기다렸냐, 애송아?”

먼지로 뒤덮인 얼굴 위로 가느다란 빛이 내려졌다. 찌푸린 시야 넘어 특유의 미소를 띤 사미라가 보였다. 사미라는 파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바이도 합세하자 파편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어 나올 틈이 생기자 사미라가 사이로 손을 불쑥 내밀었다. 바이는 픽 웃음 지었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빠져나오니, 권총을 쥐고 자신을 겨누는 사미라가 보였다.

“대장님?”

서늘한 총구에 불빛이 번진다. 뜨거운 화약이 얼굴을 강타하자 바이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허억-

깊게 숨을 들이쉬자 칼날에 찔린 폐부에 통증이 밀려왔다. 바이는 붕대가 감긴 복부를 움켜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동하는 약품 냄새. 병실이다. 살아있었다. 바이는 과거와 현실이 뒤섞인 복잡한 머리를 되짚었다.

사미라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과거를 떠올리자 끔찍한 절망이 바이를 죄어들었다.

바이에게 사미라는 지휘를 받았던 상사 그 이상이었다. 혹은 잊어버린 가족에 가장 가까운 느낌 그 무엇이었다. 그녀가 부대를 떠났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아닌 다른 감정이 몰아쳤다. 이건 배신감일까, 비등하지 않은 마음을 알게 된 슬픔일까. 바이는 숨을 헐떡이며 버릇처럼 쥐던 목덜미의 금속을 찾으려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손에 걸리는 익숙한 느낌이 없었다. 늘 메고 다니던 군번이 사라져있다. 봉합된 상처가 뜯어지자 다시금 후벼파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원망의 말을 내뱉어보지만 여전히 마음은 진한 그리움을 그리고 있었다. 바이는 막을 길 없이 차오르는 눈물에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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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케이틀린은 바이가 깨어있자 놀란 모습이었다. 바이는 붉게 젖은 눈가를 다급하게 문질렀다. 바이는 곧장 대령에게 경례를 했으나 대령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녀의 제복은 흐트러져 있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바이에게 다가온 케이틀린은 등을 끌어안으며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바이는 눈물을 참아내는 케이틀린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대령이 바이를 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바이는 꿈에서 보았던 총구가 다시금 눈앞에서 발포되는 것 같아 질끈 눈을 감았다. 바이는 가까스로, 다시 숨을 골랐다.

“검은 장미 대원을 마주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따랐던 지휘관이었습니다. 적을 상대하는 법, 이기는 법, 모두 그 사람에게서 배웠죠.”

그리고 살아남는 법도. 한차례 멎었던 울음이 다시금 울컥였다.

“난 그녀를 의지했어요. 난.. 그녀를 죽일 수 없어요.”

바이는 점점 젖어가는 말끝을 간신히 삼켰다. 조용히 바이를 바라보던 케이틀린은 힘이 풀린 어깨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손을 감싸던 온기가 부드럽게 등을 토닥였다.

“이해해요. 괜찮아요, 괜찮아.”

바이는 온기를 찾아 사령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붉은 피를 뿜어내는 상처보다 후벼파진 마음이 더 아팠다. 행동을 되돌아볼 새도 없이, 저도 모르게 케이틀린을 끌어안았다.

“상처는 나을 수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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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아지트에서 규칙적으로 철컥이는 소리가 울린다. 여러 부품으로 분해된 총신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흔들리는 등불 아래, 사미라는 총기를 다듬으며 바이와의 조우를 회상했다.

어리바리한 티를 벗은 바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총구를 닦는 손길이 점점 느려진다. 언젠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하염없이 떨리던 두 눈동자가 어쩐지 눈에 선명하다. 쉽사리 잊히지 않는 상황에 사미라는 혀를 찼다. 정에 휘둘려, 급소를 찌르지 못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총기를 조립한 사미라는 생각에 잠겼다.

사미라는 바이의 이름이 적힌 군번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이 될 요소가 생기면 끊어내려 노력했다. 바이도 그중 하나였고, 계획은 성공이었으나 동시에 실패했다. 보랏빛 눈이 깊은 생각으로 반짝인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데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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