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2부)Repositioning 6

유학 이후 프로 X 고졸 얼리 프로

안내사항

*본 창작물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 의 2차 팬 창작으로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 원작에서 안나오는 가상의 모브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본 창작물에서 나오는 프로 농구 및 구단 설정은 현실과 상이합니다. 단 참고 자료로 각 구단 채널 / KBL 채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는 농구 고증을 잘 살리지 못하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오탈자 비문 수정은...진짜 천천히 합니다. 아시죠?

사실 농구로 먹고살고 농구 외에 별 관심이 없던 최종수에게 있어 ‘캐릭터성’ 이란건 그저 팬 서비스 잘 하는, 혹은 팬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경쓸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캐릭터성을 만들고 유지하는건 개인의 의사도 있겠지만 외부에서 다루는 사람들 입맛대로 먹는 구석도 있었고.

얼굴도 되겠다. 본업도 잘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캐릭터성을 굳이 강하게 어필 할 필요는 없지만, 그 특성을 강화시키거나 변화시키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확실히 그게 화제가 되었나보네.”

연습이 끝난 락커룸, 땀냄새가 그득한 가운데 핸드폰을 보던 누군가가 한마디 하면서 최종수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올스타전의 팀 드래프트 결과 화면. 당연히 Best 5멤버에 뽑힌 최종수와 그 같은 팀의 멤버 엔트리에 있는 기상호의 프로필 사진.

그래서 그게 뭐냐고? 올스타전 컨텐츠 찍는다고 기상호랑 말다툼 했던 영상이었다. 인터뷰 하면 세상 얌전하고 바르고 고운말 하던 선수가 기상호랑 있으면 갑자기 다른사람이 된 것처럼 구는데 그게 또 재미있는 모양이라. 이전에 찍었던 컨텐츠 영상이나 간간히 잡히던 모습들까지 꺼내져와서 화제가 된건 덤이었다. 최종수야 이런 영상으로 화제가 된다고 해도 이전에부터 인기가 있었으니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 선수가 이런 면도 있었다 하면서 원래부터 있던 팬들의 팬심을 자극한다는 것?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어모은건 기상호쪽이었다.

“근데 기상호, 쟤 저런 모습도 있었나? 적어도 형들 앞에서는 막내라고 잡혀사는것만 보였는데.”

“아냐 걔 경기에서 하는 짓 봐. 완전 다른 사람이라니까.”

“그래도 수원 ST애들 말로는 친한 형한테는 가끔 뻗대서 까불고 그런다더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그저 코트 위에서 짜증나는 애 (그것도 다른 팀 선수의 입장에서) 에 불과한 기상호에 대해 다들 이야기를 들어볼 정도가 되었으니, 투표권을 가진 팬들에게 기상호 라는 이름 석자를 잘 인식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이 구구절절한 사연 끝의 결론이 뭐냐면 다시 그 핸드폰 화면으로 돌아와 올스타전의 문턱을 밟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기상호가 마지막 즈음 끄트머리에 합격을 했고 드래프트를 진행한 팀장의 고마운 안배 덕에 기상호와 최종수가 같은 팀으로 있게 되었단 사실이다.

“이벤트때 니들 둘 붙어있으면 재미있는 장면 많이 나오겠네.”

“종수야 카메라 많이 차지할려면 기상호랑 붙어다녀라.”

중계사 인터뷰 외에 구단 유튜브나 협회 유튜브에서 찍는 영상은 잠깐 출연하는것으로 끝난지라. 그래도 아까운 얼굴 어떻게든 활용해주고 싶었던 형들의 조언이긴 했다. 이전에는 너무 붙어다니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었는데 이런걸로 화제가 되다보니 인정(?)까지 해주었다.

“아서라. 최종수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에이 형 요즘 시대가 다르다니까요?”

그래도 요새는 연예인에 관심 가지는 애들도 농구 보다가 팬 되는건데. 최종수 미국에 있을때 형석이 형이 예능 다녀오고 해서 그때 한번 인기 올랐잖아요. 뭐 클립으로 연예인 뺨치는 농구선수 이렇게 뜨면 종수도 좋고 우리도 좋은거죠.

농구선수의 인기도에는 별 관심이 없는 탓에 형들의 이야기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머릿속에 남는 것은 있었다. 기상호와 붙어다닐 수 있는 합법적인 핑계가 생겼다는 것? 그래, 생각해보면 기상호도 나랑 붙어서(대결한것이지만) 올스타전에 오게 된건데 본 이벤트에도 같은 팀이니까 붙어다닌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지 않나? 지금 여기서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이고. 수원쪽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투표결과를 생각한다면 기상호의 팀에서 같이 온 사람은 한명 뿐이니 괜찮지 않을까?

3라운드 맞대결 이후에 최종수가 보지 못했던 기상호였다. 그리고 그 크리스마스 경기때도 영 좋지 않은 상태로 봤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코트 위에서 그런 모습이고. 이런 이벤트 때에는 기상호도 경기때와는 다른모습이지 않을까. 카메라가 들이댄다면 그래도, 기상호가 생각한 자신과의 관계인 친한 형동생 처럼 보여주겠지. 남은 떡 줄 생각도 안했는데 벌써 입안에는 떡고물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최종수의 마음대로 세상일이 흘러가는건 아니었지만.

“야 상호 괜찮나?”

“버스에서 좀 자면 괜찮겠죠.”

젠장 저놈은 뭔 선수가 몸관리도 안하고 감기에 걸려. 나름 고대했던 올스타 전날의 소집시간. 최종수는 빌빌거리며 먼저 버스로 가는 기상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듣기로는 어제 연습을 열심히 한 탓에 몸살에 걸렸다던데. 브레이크 기간에 무슨 야밤에 연습인지 의문이기도 했지만 중요한건 아침에 만나면 인사부터 하면서 기상호에게 딱 붙을 최종수의 계획이 초장부터 무너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픈 사람 돌봐준다는 핑계로 붙어있게 되었으니 모로가도 서울로 간건 맞았다. 안그래도 여기 참가한 선수진에서 친한 형이라곤 수원 st의 주장 김세형 밖에 없는데 그는 다른팀이니까. 그 다음으로 챙겨줄 구실이 있는건 최종수가 맞긴 했다. 그래서 붙어다녀서 최종수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고.

“햄 진짜 친구 없죠?”

나름 챙겨준다고 열심히 붙어다녔는데 이놈은 친구없냐는 질문이나 해대고. 최종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괜찮다는 투로 말하니 괘씸하기도 했다. 야,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게 뭣 때문인지 알긴 하냐고. 너 내가 아니었으면… 그런 말이 속에서 튀어나올걸 꾹꾹 참으면서 기상호랑 투닥거리기를 잠깐. 기상호는 자연스럽게 최종수와 함께 있는걸 받아들여주었다.

받아들여준다고 해도 기상호는 씻고 최종수가 사온 모과차 마신 후 약기운에 잠들어버리고 말았지만. 솔직히 말해 오늘 하루를 회고해보자면 같이 있다고 해서 최종수가 기대한 그런 장면들이 나오는건 아니었다. 그냥 같이 붙어다니는 키링쯤은 될려나.

계획과는 달랐던 모습에 실망도 할 법 했지만. 최종수는 고개를 돌려 몇센치 정도 떨어진 거리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기상호의 모습을 보았다. 저가 예상한 친한 형동생 같은 장면은 안나오고 옆에 딱 달라붙어서 말 몇마디 하고 기상호가 춤 연습하는거 보면서 픽 웃는걸로 끝나버렸긴 했는데. 그런 것 뿐이어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아서.

근데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괜찮을 수 가 있나? 사실 얘랑 경기 외에는 잘 못보다가 하루종일 있을 기회가 생기니까 그런거 아닐까. 근데 애초에 나는 왜 이 놈이랑 붙고 싶어했는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최종수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보았다. 그냥 얘랑 경기할때 즐거웠고, 함께 있었으면 좋았으니까. 여전히 규정 못할 감정과 저의 기분에에 최종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같이 있는게 목적이었으니까. 딴 생각은 하지말자. 그리 생각하며 눈을 꾹 감았다.

그래, 세상일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제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도 남았는데 운동 좀 할래요?”

근데 이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이놈의 정신머리의 문제 아닌가? 제 머리속으로 이해를 못할 행동에 최종수는 눈살을 찌풀였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나름 최종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아침에 조식 좀 먹고 같이 주변 둘러보면서 올스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그간의 회포를 잠깐이라도 풀려고 했는데. 왠 아침부터 운동을 하는거야 이놈은. 물론 선수니까, 선수가 가지고 있는 루틴이라면 그걸 유지한다는 핑계로 할 수야 있지. 아무리 휴식기간이라고 해도 선수니까.

그렇지만 그제 운동하다 어제 몸살 난 인간이 취할 행동인가?

사실 운동은 그렇다 쳐도 이 녀석이 이렇게 매달리게 된 이유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사람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발언이라던가. 이대로 있다간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진다던가, 자신이 팀에 도움 되는 선수라는걸 증명해보고 싶다는 그런 말.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 그래 열심히 하는거 좋지. 워크에식 넘치는 선수나 노력을 많이 한다는 선수들중 너무 과하게 운동하다가 어디 아팠던 에피소드 하나정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문제가 아니잖아.

최종수는 잠깐 입술을 꾹 깨물고 딱 한마디 했다. 그러다가 망가지는거 순식간이라고.

사실 결말을 아는 이야기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놈의 증명 때문에 몸 다 갈아서, 갈아버릴 체력이 없다면 정신력으로 버티고. 그러다가 수면은 다 망가지고, 꿈은 포기할 뻔하고. 온갖 부정적인것만 따라왔지. 물론 얻은게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실력이야 크게 올라오긴 했지. 그때 그냥 농구 하나만 잘 하는 놈. 딱 그뿐이었다는게 문제였지만.

물론 저의 결말이 기상호가 겪을 결말과 똑같으리라고 생각된건 아니다. 그냥 그 전조가 보여서 기분이 나빴을 뿐이지.

잠깐의 짜증 후, 운동시간을 핑계로 기계를 끄면서 먼저 방으로 돌아가니 눈치빠른 기상호가 화 났냐고 물어보며 제 눈치를 보았다. 화난건 아니고 짜증난거에 가깝긴 했지만. 최종수는 제 표정을 살피는 기상호를 쳐다보았다. 사실 왜 그렇게 무리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진지한 상담은 저에게 잘 안맞기도 했고. 묻는것도 뜬금없어서 그냥, 씻고 나오는 걸로 그 이야기를 끝냈다.

완전히 끝낼 수 없고 잠깐 일단락 시킨거지.

“유난이라뇨.”

올스타전이 끝난 이후. 그래도 마지막까지 챙겨야 하니까 아직 버스에 탑승 안한 기상호를 찾으러 다녔더니 우연히 그 지상고 멤버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사실 이야기야 뻔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더니 말은 네 그럴게요. 하지만 실제로는 딴 마음 가지는거. 사실 저도 그랬으니까 기상호가 할 행동 패턴이라던가 말이 뻔히 보이기도 했다.

물론 최종수가 본건 기상호가 무리하는 부분의 단편이기 때문에 완전히 파악 할 수도 없고 저의 그 암흑기나 다름없던 시기와 지금의 기상호가 겪을 시기가 온전히 같지 않은건 안다. 그렇지만, 자꾸만 겹쳐보이는 기분이 드는건 왜인지.


올스타전 때 기상호가 신경쓰이는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휴식기가 끝난 지금 다른 팀원을 신경 쓸 여유가 있는가 하면 아니었다.

“얘들아 이번 경기에서는 집중 좀 하자.”

경기 전 브리핑 타임. 나름 보살이라는 소리 듣는 감독 김순호가 화를 꾹꾹 누르며 말하는 태가 났다. 작년 시즌에 10등 찍으며 진행된 긴 연패기간동안 소리 한번 지른 적 없다는 사람이니 나름 보살이 아니라 보살이지. 그러니까 그 보살이 이번에도 집중 못하면 화 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된다는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었다.

감독의 말대로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은 맞긴 맞았다. 3라운드까지 어째 잘 나간다 하던 팀이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까. 원인이야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주전의 문제가 크긴 했지만 당장 경기를 앞두는 상황의 연속이라 완전한 해결보다는 당장 급급한 잠깐의 신경전을 덮어두는 쪽에 가까웠다.

지금도 그런 식이긴 하다. 일단 집중 하자는 말로 주의를 준다. 그 이후 오늘의 경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전술판의 자석이라던가 선들이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며 작전을 지시.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코트위로 나설 준비를 한다.

경기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본인의 컨디션, 팀의 컨디션. 상대 선수나 팀의 컨디션. 그러니까 이 경기의 변수에서 최종수는 오늘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턴오버가 생기는건 아니지만 바로 들어갈 슛이 인앤 아웃이 된다던가, 마무리가 잘 안된다던가 설상가상으로 3점슛은 잘 안들어가고. 쿼터 초반부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

상황에 따라 팀의 전체적인 슛 난조가 있는 날이 있다. 그건 차차 감을 잡아가면서 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가면 되겠지만 여러번 공격이 안풀리다보면 플레이가 꼬이고 패턴이 꼬이고. 그리고 분위기라는 것이 안좋아지면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늘 강조하는 ‘기본적인 것’이 안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바로 타임아웃.

“얘들아 내가 말했잖아. 집중 좀 하자고. ”

긴 한숨소리와 이후 슛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찬스 나서 넣은 슛이 안들어가면 리바운드라도 잡아야 공격 기회가 다시 오는거잖아. 다시 차분히 시작해보자. 그리고 공격 안된다고 수비 놓지 말고. 차분한 말 끝에 다시 게임이 진행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분위기 반전이 되는건 아니었지만. 하프타임이 지난 이후에도 감독의 말은 똑같았다. 기본적인걸 해야지. 집중안해? 로 시작되는 피드백. 그 이후 한숨과 함께 이어지는 패턴지시. 그 이후로 잠깐 바짝 집중해서 패턴이 성공하고 리바운드를 따내긴 했지만 이미 벌어진 점수차를 어떻게 무마시키기는 힘들었다.

경기를 지고 난 이후 락커룸으로 들어가니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감독은 깊게 한숨을 쉬며 딱 한마디 했다.

“너희들 이렇게 뛸거야?”

잠깐의 침묵 후, 아닙니다. 부정으로 한명이 말하니 다 같이 아니라는 답을 내놓았다.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말도 섞여서 들어오고.

“다음에는 이런 경기 보여주지 않을거라고 믿는다.”

그 말을 끝으로 감독은 먼저 락커룸에서 나왔고, 서로 눈치를 보며 탈의를 하려는 가운데 짝 하고 손뼉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남아서 얘기 좀 하자.”

오늘 경기에 여러모로 불만이 많은 사람 인호가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감독의 피드백에 대한 선수들 끼리의 대화였다. 가장 안되는 부분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각오가 주를 이루긴 했지만.

다음에는 이러지 말자. 그리고 굳이 말 안해도 되겠지? 제발 경기에 사적 감정 끌고가지 말고. 그 말에 유독 사이 안좋은 둘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게 보였다.

그래도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 한다는게 나름 효과는 있었다. 주의가 집중되기도 하고. 그날 이후로 경기력은 올라와서 감독이 말한대로 ‘다음에는 이런 경기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보답한 셈이 되긴 했다. 길었던 연패를 끊고 연승을 겨우 이어나가는 시기. 4라운드 마지막 대결은 수원 ST와의 경기였다.

“이번에는 이겨보자.”

제아무리 공고한 1위팀이라 해도 힘든 싸움이 될거라고 하지 질 싸움을 하지 않는게 사전 브리핑이긴 했다. 수원 ST의 주의사항은 언제나 빡빡한 수비였지만, 이번에 또 추가된 주의사항이 있다면 최근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기상호에 대한 이야기었다. 수비만 조심할게 아니라 공수 양면으로도 집중해서 대응해야한다는 점.

“알지? 저기는 틈 하나 발견하면 그거 가지고 물어 뜯어서 턴오버 유발하는거.”

그 어느때보다 공격에 집중해야한다는걸 강조하는 인호의 말로 브리핑 시간은 끝이 났다. 연승의 기세도 있었고, 다들 컨디션이 괜찮은 편인지라 매번 수원 ST의 스코어링 런을 따라갔던 경기 양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서울 LC의 드문 점수리드로 1쿼터가 마무리 되었다.

물론 그것도 잠깐의 달콤한 순간뿐이지.

최종수는 깊게 숨을 내쉬며 전광판을 한번 보았다. 남은 경기시간 7초. 그리고 점수차이는 딱 1점차. 그렇지만 엔드원이 불린 상황이라 2점차가 될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샷클락 버저비터.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간 터프샷 하나. 수원 ST의 버저비터. 그리고 그 주인공인 기상호. 최종수는 자신의 컨테스트때문에 중심이 잠깐 무너져 넘어진 기상호를 보았다. 분명 위닝샷이 될텐데 그의 표정에서 기쁨보다 안도감이 느껴지는지. 마치 이걸 당연히 해야한다는 것 처럼.

“너, 농구가 재미있냐?”

최종수는 넘어져 숨을 헐떡이고 있는 기상호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사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냥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글쎄요.”

볼멘소리로 들려온 답. 그리고 그것에 반문하거나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 자유투를 던지기 위해 라인에 섰으니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최종수는 깔끔하게 던져진 자유투와 그걸 던진 기상호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 진짜 구리네. 뭔 이기는 놈의 표정이 그래. 사실 남의팀 선수의 표정이 어떻든 알 바 아니지. 그냥 내가 잘하는 경기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 팀이 져가는 상황이고 당장 이 7초 안에 슛을 하나 쏴야 연장을 가든, 이기든 하니까 태평하게 누굴 걱정하고 그럴 상황이 아니란거 알고 있다.

7초안에 넣은 서울 LC의 슛 하나는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엔드원이라도 따냈으면 좋았겠지만 당연히 그걸 허용하지 않았겠지. 수비 잘한다는 팀이니까. 40분동안 쭉 유지된 집중력이나 경기력이 연장전이라는 추가 경기 시간에 조금씩 무너졌다. 이번에는 이기자고 다짐했건만 서울 LC의 전 구단 상대 승리를 막는건 수원 ST였다.

최종수는 이 경기의 수훈 선수로 인터뷰용 마이크를 쥔 기상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쁜기색 하나 없이 지친듯한 표정. 락커룸에 가는 와중에도 코트 위에 서 있던 기상호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원래 그런 모습 아니었잖아. 그 빛나던 순간이 다시 상기되었다. 저번 시즌 플레이오프때 빛나던 그 모습. 그때는 정말로 좋아하고, 즐거워한다는 표정이었잖아.

경기가 끝나고 락커룸에서 피드백을 받고 퇴근하는 길목, 최종수는 기상호의 표정을 떠올렸다. 마침 제 앞으로 아이스박스를 들고 퇴근을 하는 공태성의 모습이 보였다.

“야. 공태성”

“네?”

이름이 불리니 일단 뒤를 돌아보긴 한데 떨떠름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뭔 일인가요? 저에게 말도 다 거시고? 꼭 곱게 한마디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태도였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기상호가 말했으니까. 속으로 울컥 차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물어보았다.

“기상호 걔 원래 그랬어?”

“형은 말 할거면 좀 명확하게 말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그 뒤로 공태성의 불만이 튀어나왔다. 야, 너, 이거해 저거해. 일단 명령해놓고 모르겠다고 하면 답답한 표정 짓는거 알아요?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줄지는 좀 명확히 말합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돌아오는건 열마디급 핀잔이라 다시 한번 꾹 참고 말했다.

“걔 원래도 무리하거나 그러는 성격이였냐고.”

저번에 몸살 난 다음날에도 뭐 운동하려고 하질 않나. 요새는 무슨 뭐 몰아진 것 처럼 굴잖아. 최근 달라진 모습에 대해서 최종수가 느낀 바를 말하니 공태성은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글쎄요.“

고등학생때야 뭐 꾸준히 연습하긴 했는데 형이 말한것처럼 무리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었죠? 들고 있던 아이스박스를 내려놓으며 팔짱을 끼곤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걔 연습하는 스타일이나 그런건 잘 신경쓴 편은 아니라. 나름 친한형이라고 하니까 잘 아는 줄 알았더니 꼭 그런 모양은 아닌가보다.최근에 신경쓰여서 연락하거나 소식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썩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에 공태성이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기껏 말했더니 그 표정은 뭐에요?”

“별 도움 안되니까.”

“하 씨.그럼 종수형님께서 알아보던가요.”

“어 그럴련다.”

최종수는 툭 한마디 내뱉곤 아이스 박스를 드는 공태성의 옆을 지나가 먼저 퇴근을 하였다. 뒤에서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뭐 어쩌라고.

결국 공태성의 말대로 직접 알아보는게 좋긴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최종수는 기상호의 연락처를 한번 눌러보곤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가려다가 말았다. 막 경기가 끝난 직후이기도 했고, 이렇게 뜬급없이 연락을 하면서 너 요새 왜 그러냐. 묻는것도 영 이상해서.

애초에 기상호를 신경쓰는 행위 자체가 이상하긴 했다. 그걸 신경쓰는 이유도. 그 녀석의 모습에서 자신의 옛 모습이 겹쳐보인다는 이유로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이렇게 생각을 하는게 정상적이긴 한가?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을 내 옛모습을 투영하는것이 맞긴 했는지.

그나저나 내 옛 모습은 어땟었지? 이제는 기억하기 싫었어서 어디 한쪽에 치워두었던 시절을 한번 쳐다보았다. 먼지가 잔뜩 쌓인 그 기억은 몇년 안되긴 했는데. 방치하다보니 흐릿하기도 했고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농구를 했었지? 남들 눈에 봤던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지?

그때의 나에 대한 고찰. 물론 지금까지 연락하는 녀석들은 그 시절을 잘 알고 있었으니 가장 잘 아는건 그 쪽이긴 하겠지만 물어보면 괜히 놀리기만 할 것 같은 녀석 하나, 배려랍시고 솔직하지 않은 답을 내놓을 것 같은 사람들 나머지.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친구만 존재하는건 아니고 선후배도 존재했어서.

마침 구단 내에 장도고 출신의, 딱 윗 학번의 선배가 있는게 다행이었다. 최종수는 아침 일찍 나와서 몸을 푸는 형을 한번 바라보다 제 뒷머리를 어루만졌다. 형, 혹시 저 고등학생때 어땟나요. 뜬금없는 질문인지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를 한번. 그리고 꽤나 담백한 답을 내놨다.

“사실 난 니가 그러다가 부상당할거라고 생각했었다?”

“네?”

“너 그 일화 있잖아. 새벽에 슛 500개 채워야 한다고 밤샌거.”

아. 이규가 영웅담이랍시고 여러번 떠든 일화이긴 했다. 사실은 그냥 그거 아니면 힘을 뺄 수 가 없어서, 도저히 잠이 안와서 했던 짓이었는데. 남이 보기에는 엄청난 업적일 수도 있고,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겠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긴 하지만. 좀 거칠었잖아.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고. 연습하는 방식도 그렇고.”

그랬던가. 역시 남의 시선으로 들어보니 또 다르긴 했다. 물론 거칠게 군 적이 있긴 한데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는걸. 라이벌.까지는 아니어도 같은 학교 내에서 신경전 벌이는 놈이 그렇게 구니까. 그래도 되는줄 알고. 물론 이건 다른쪽의 문제이긴 하다만.

“근데 고등학생 시절은 왜?”

“그냥 궁금해져서요.”

“뭐 채널에서 컨텐츠 더 찍는건 아니고?”

“네?”

“전에 기상호랑 찍은거 있었잖아. 그거 후속같은걸로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보자. 같은 그런 컨텐츠라도 찍나 했지.”

“그런건 아니에요.”

“뭐 그때 시절이라고 하면 몇년 안 되었으니까 경기 영상도 있지 않아? 아직 쌍용기 영상들 다 남아있던데.”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기도 했다. 경기 영상이 모든걸 대변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의 영상을 보게 된다면 또 떠오르게 되는 것도 있어서.

오전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난 후 점심시간을 겸한 휴식시간, 낮잠을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얼마 없었기에 최종수는 체육관 구석에 앉아. 고교리그 유튜브 채널을 한번 보았다. 이전 영상이 삭제라도 되는건 아닐까 리스트를 쭉 내리자면 관리는 잘 된 덕에 몇년 전의 영상은 아직 남아있었다.

물론 화질은 썩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촬영기술이나 지금의 기술이 다른것도 있으니까. 감안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렇게 찾은 5년전의 쌍용기 경기들. 예선부터 본선 결승까지 잘 정리된 경기 리스트. 최종수는 4강의 영상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이때 경기시간에 잠 보충한다고 기상호네 경기는 못보고 바로 원중고랑 붙었지 않았나.

이때 경기는 어땟었지? 보지 못했던 것에 호기심이 생겨 최종수는 경기 영상을 클릭하였다. 진훈정산 과 지상고의 경기. 그리고 초반부를 보다가 이런 놈들이 고등학교 결승에 올라왔다고? 싶은 감상이 많았다. 수비는 왜 이렇게 쉽게 뚫리는건지. 파울은 왜 이렇게 쉽게 범하게 되는지.

런앤건의 특성상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이긴 하는데. 사실 장도고 시절 그냥 가볍게 이긴 상대를 이렇게 힘들게 대응하는걸 보니 좀 어이없기도 했다. 게다가 어이없게 턴오버가 나오기도 하고 슛은 얼마나 잘 안들어가는지. 하기야 이때 다들 초보자 수준의 선수라고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최종수는 기상호의 등번호에 집중해 보았다. 선수의 표정보다는 코트에서의 움직임이 주를 이루는 영상이었다. 다양하게 공격을 시도해보고, 상대의 움직임을 바로 파훼하는 그런 모습은 그때도 똑같았다. 다만 이때는 좀 어린탓에 서투르기도 하고 힘에 밀리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이런 걸 봐도 최종수는 기상호가 이때 농구를 즐기고 있었는지 뭐했는지는 영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알수있는거? 진짜 프로에 와서 많이 발전했다는 점?

“뭐봐요?”

차례차례 오후 연습 때문에 체육관으로 오는 사람들 중 공태성이 저에게 괜히 기웃거리며 물어본다. 이거 고등부 영상 아닌가? 그렇게 묻는 순간 영상속에서 휘슬이 울리고 공태성이 머리를 쥐어싸매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너 5파울 당하는거.”

“윽.”

최종수는 보던 영상을 일시정지 시킨 후 공태성을 한번 바라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멍청하게 달려들어서 파울트러블 걸리는건 비슷하네. 한숨 한번 쉬니 공태성이 왜 한숨 쉬냐고 괜히 발끈한 목소리로 투덜대기를 한번. 야야 공태성 종수가 형인데 그게 뭐냐. 쿠사리 먹는 소리와 함께 오후 훈련이 재개되었다.

그 이후로 최종수는 간간히 지상고의 쌍용기 영상을 찾아서 보았다. 보았다고 해도 몇 경기 못 보는 수준이긴 했다. 그야 지금 당장 다른 팀과의 경기가 있으니 남는 시간에 연습을 하지 누군가의 옛적 영상을 부러 보지는 않으니까. 어쨋든 강문고라던가 상평고의 경기영상을 보게 될 때도 이전과 마찬가지인 감상이었다.

더 이전의 경기 영상을 볼 수록 기상호가 더 못했던 영상이 보이니 빠르게 배운 녀석이구나. 같은 감상? 이런 놈이 갑자기 자기의 부족함만을 이야기하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실은 더 잘 할 수 있는데. 당장 기상호에게 닥친 문제인 FA를 굳이 걱정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

그 의문은 해결되거나 심층적으로 강화될 일은 없었다. 당장 빡빡한 경기일정이 다가왔으니 남 생각보다는 당장 닥친 앞날을 헤쳐나가는 일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남 걱정도 여유있을때 하는거지. 플레이오프 안정권도 아니고 일주일간의 퐁당퐁당. 그리고 백투백 총 4번의 경기. 경기의 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참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야 한데. 그 첫 단추가 잘못 꼬매지면 이후도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저번에 4라운드에서 수원 ST에게 진걸 빼고 연승을 하며 다시 승수를 쌓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어째 최근에는 또 집중력이 무너지기 시작한채로 첫 단추를 잘못 꿰매어서 아슬아슬하게 진 것이 이번주 화요일의 첫 경기.

목요일에는 선두를 달리는 부산TX와의 경기로 초반에 슛이 터진 팀에기선제압을 당해서 벌어진 점수차를 어떻게든 따라잡는게 겨우였던 패배.

그리고 토요일 광주전자와의 경기. 그래도 접전의 경기를 펼치다가 3쿼터부터 흐려진 집중력 탓에 턴오버를 유발하여 4쿼터에 작전타임에 화 안내고 차분히 말하던 감독이 ‘이렇게 경기 운영 할거면 나와.’ 라는 선언을 해버리니 다들 느낀바가 있었는지 겨우 이기긴 했다.

그래서 일요일. 대구전력공사와의 경기. 이 날은 경기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었다.

유난히 슛감이 안 좋은날. 3점슛은 무슨 가까이서 넣는 슛이 골 마무리가 잘 안되어서 리바운드 놓치는걸 반복하는게 1쿼터의 내용이었다. 전체적으로 슛이 안 좋으면 차라리 몸으로 밀어붙여서 림 가까이에서 던지거나 아니면 골 밑 싸움으로 확실한 마무리를 하는 쪽이 나은데. 골밑 싸움은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그득하다보니 이리저리 부딪히게 된다. 그러니까, 그 골밑 싸움 과정에서 넘어지고, 밀쳐지거나 부딪히면서 신체의 뼈와 뼈가 맞닿는 충격을 받는다던가. 착지가 잘못되어 발이 밟히거나 혹은 돌아가거나.

“악!”

최종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제 발목 부여잡았다. 바닥에 부딫힌 뼈의 튀어나온 부분에서 찌릿하고 올라오는 통증. 그리고 느껴지는 격통. 괜찮아? 같은 팀의 선수들이 종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제 발을 땅에 다시 짚어보았지만 통증이 찌릿하고 올라왔다. 눈살을 찌푸리며 발을 절뚝이자 잠깐 경기의 진행시간이 멈춘다.

일단 교체하자. 최종수는 형들의 부축을 받으며 깨금발로 벤치로 들어왔다. 의료진이 발목을 돌려가며 간단하게 상태를 확인 한 후 응급처치로 얼음주머니를 대 주었다.

“어디 부러지거나 인대 끊어진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쉬었다가 상태 확인하자.”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소식이긴 했다. 간단한 진단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기를 한번. 이후 재개되는 경기를 보았다. 그 이후로 달라지는건 없었다. 여전히 팀은 집중을 못하고 있지. 믿을만한 득점원은 부상 위험으로 빠진 상태지. 공태성이 분투하면서 리바운드 단속을 하긴 하지만 한명이 골 밑에서 분투해도 공이 이어지지 않으면 뺏겨버리는 장면이 여럿 나와버린다.

사실 공격뿐만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문제였다. 감독이 작전타임을 요청하여 수비를 어떻게 할지 직접 지시하고 이거 전에 기본적인 것부터 잘 하자고 했는데 그 이후로도 잠깐의 순간의 상대편의 돌파에 뚫려서 실점하는 장면이 바로 나왔다.

하프타임 즈음 최종수가 간단하게 제 발을 체크하며 감독에게 다시 뛸 수 있을거라고 어필은 해서 후반부에 뛰긴 했지만 다시 뛴다고 해도 안 좋아진 컨디션이 올라오는건 아니었다.

결국 졌다. 그것도 대패. 사실 큰 점수차로 지게되는건 이전 시즌에도, 이번 시즌에도 몇번 있던 일이었다. 뒤집을수 없는 점수차의 경기를 꾸역꾸역 뛰는 시간의 괴로움이야 이젠 면역이 생겼으니 괜찮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무거운 분위기는 어떻게 해야할지. 가시지 않는 땀냄새가 그득한 락커룸. 최종수는 한숨을 한번 쉬고 자신을 쳐다보는 감독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도 다친 애가 앞에 있는 상황인지라 험한 말이라던가 감정을 앞세워 말하지 않고, 딱 한마디를 하는걸로 마무리 지었다. 각자 고쳐야할게 뭔지 생각해봐. 오늘경기 피드백은 내일 하자.

감독이 떠난 자리에는 조용한 침묵뿐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옷을 갈아입어야 할까. 감독 다음으로 선수들에게 지시할 주장의 행동을 살펴보기를 한번, 조용히 있던 그의 입이 열리는걸 보았다.

“얘들아 남아봐. 이야기 좀 해보자.”

이전과 비슷한 흐름이긴 했다. 감독이 참다 딱 한마디만 하고 나간 후 주장이 나머지 수습을 하는 그런 흐름.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좋게좋게 끝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딱 집어서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시작이었다. 그 신경전의 주인공 둘이 부딫히면서 서로 니탓이네 하며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소리가 커지는 순간 야! 하는 고함소리가 크게 외쳤다.

“야. 니들이 그렇게 잘났냐?”

좀처럼 험한 소리 잘 안하고 웃으면서 분위기를 최대한 좋게 잡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더 좋아질 분위기는 없는지라. 최인호가 한마디 한 후, 뻘쭘하게 서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았다. 잠깐의 한숨소리 후, 한마디 덧붙였다.

“종수야 여기에 있지 말고 애들이랑 먼저 퇴근해“

그리고 3년차 이전의 선수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먼저 가보라 손짓을 했다. 결국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만 보던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은 후 락커룸에서 나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온 후 다들 푸 하는 깊은 숨소리가 나왔다.

“괜찮으려나. 인호형 진짜 화 많이 난 것 같은데.”

전에 본 적 없는 모습들 투성인지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괜히 겁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너무하긴 했다는 말과 함께 그 문제 멤버에 대한 험담도 잠시. 옆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이 해결은 가능하려나.”

주장도 그렇고 감독님도 계속 잘 풀려고 했다가 손 놓았다 이 지경까지 온거잖아. 험담은 험담이지만 팀입장에서 보면 그 관계에 대한 걱정이 드는건 당연한지라. 각자 짧은 한숨을 내뱉을 적, 태평한 말소리가 들렸다.

“뭐, 어른인데 알아서 싸운거 풀겠죠.”

태평한건지, 긍정적인건지. 공태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경기 도중에 싸우지 않는게 어디야. 꼭 누굴 저격하는것 같아서 옆에 있던 최종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바로 그 옆에 있던 이휘성이 덤덤히 한마디 덧붙였다.

“하긴 공태성, 너는 학생때 하프타임에 누구 멱살잡고 치고받았으니 괜찮겠다.”

“아씨 휘성햄, 저 말고도 저기…”

“뭐?”

“아, 여기 학생때 치고받은사람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사춘기라던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이 붙여진게 아니다. 코트위에서 감정이 격해져서 싸우는건 거의 극단적인 예고, 그런 사례 외에도 학생끼리 치닫는 일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거나 아니면 목격자가 되었으니까. 대충 다들 그런적 있지 ~ 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며 퇴근길로 가던 도중, 최종수는 이휘성이 한 말에 호기심이 좀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공태성이 멱살 잡고 싸웠다고? 지상고때의 일인가?

그 궁금증 하나는 계기가 되어 최종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쌍용기 예선 영상을 바로 찾아보았다. 상평고와 지상고의 맞대결까지 보았으니 다음은 원중고와의 대결이었다. 원중고와 했다던 경기. 초반에는 좀 접점이긴 했는데 기상호는 그때 바로 출전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전에 한명이 부상당한 이후로부터 5명이서 풀타임 다 채워서 출전했었다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은 기억을 떠올리며 경기를 보았다.

누군가의 부상으로 안풀리기 시작하다 하프타임때 그 문제의 치고박는 장면. 그리고 그 이후 코너에서 삼점슛을 넣는 모습. 최종수는 기상호에게서 온 노마크 찬스가 섀깅이라는걸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섀깅을 당할 실력이던가?

문득 궁금해져서 최종수는 경기를 다 보지 않고 바로 그 전의 경기를 보았다. 신유고와의 경기. 그때도 6명이었기 때문에 기상호는 처음부터 출전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체력분배를 위해 뛰고 있는 티가 났다. 이때야 공격은 거의 진재유가 다 한 셈인지라, 기상호에게 있던 찬스라고는 진재유가 빠졌을때 뿐이었다. 수비에 기여하는 쪽이 더 컸던 모습.

그러면 전에는? 전에는 어땟었지? 그러고보니 쌍용기 전에는 협회장기도 참여하지 않았던가?

최종수는 스크롤을 쭉 내려 협회장기의 예선 경기를 찾아보았다. 지상고가 치루는 경기. 예선의 3경기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3경기동안 기상호가 무엇을 했는지 알기에는 충분할테니까.

그 긴 영상동안 코트 위에서 6번의 유니폼이 보이는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최종수는 기상호가 주로 벤치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잠깐의 출전시간동안 섀깅을 당하는 모습도. 아니 섀깅을 넘어서 버려지는 모습도.

얜 대체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틴거지?

최종수는 이해하고자 한 대상이 전혀 다른 출발점에 서 있었음을 본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오기까지 견뎌낸 지난한 시간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기상호가 들려줬던 답을 떠올려본다. 쌍용기의 결승때 걔는 농구가 즐거워서 한다는데, 대체 이 시간은 무엇이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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