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2부) Repositioning 5

유학이후 프로 X 고졸 얼리 프로

안내사항

*본 창작물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 의 2차 팬 창작으로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 원작에서 안나오는 가상의 모브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본 창작물에서 나오는 프로 농구 및 구단 설정은 현실과 상이합니다. 단 참고 자료로 각 구단 채널 / KBL 채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는 농구 고증을 잘 살리지 못하니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오탈자 비문 수정은...진짜 천천히 합니다. 아시죠?

휴식기.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진행되는 경기없는 날들. 그 시기는 말이 휴식기지 이벤트 게임이 있는 잠깐의 재정비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재정비 시기에 1년에 한번 있는 중요 이벤트가 있긴 하다만.

“진짜로 하는기가”

“야, 누가보면 어디 결승전 나가는줄 알겠다.”

“아이 근데 저 이런거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구요.”

제 뒤를 지나가며 한마디 하는 성준수에게 우는 시늉을 한번 하던 기상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팀 숙소의 로비에 있는 일정표를 한번 보았다. 별표가 여러개 그려진 날짜. 프로선수가 되면서 여태 이런 이벤트와는 연이 없어서 이번에 투표 후보가 되었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뭐 컨텐츠 찍을 때 동원되는 사람이겠거니. 누가 투표관련으로 묻는다면 저희 팀 형들 잘 뽑아주세요 한마디만 하는 그런 역할? 그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나온 결과는 기상호의 예상과 달랐다. 형 이게 뭐에요. 이거 숫자 오류 아닌가요. 상호야 그거 신종 어그로냐? 아니 아무리 봐도 못믿겨서요. 제가 이런 득표수를 받았다고요? 혹시 오류가 아닐까, 나중에 정정 공지가 올라오지 않을까. 했었으나 마주한건 각 팀의 팀장으로 팀에 뽑혀버린 자신의 모습이었다.

“너 그때 찍은거 조회수 많이 뽑힌거 몰랐어?”

진짜로 올스타에 뽑혀버려서 왜 뽑혔지? 궁금해하던 와중 그나마 인터넷 사이트 좀 들락날락 하는 형이 진실을 알려줬었다. 최종수랑 케미 좋아보여서 다들 지나가면서 한표씩 줬을거라고. 그리 말하니 어느정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종수햄이 인기가 좋기야 했지. 그렇게 겨우 납득했던게 약 이주전. 그리고 신년의 몇 경기들을 소화하고 나서 휴식기를 맞이한 지금, 막상 그 이벤트전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런거 나가면 막 다른 형처럼 예능감도 있어야 하고, 다른 쟁쟁한 선수들처럼 막 잘 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거기서 잘 할수 있나. 약간의 의심과 함께 긴장감도 들고.

“그나저나 상호는 오늘도 야간 연습 나가냐?”

“네.”

“내일 리허설이랑 전야 이벤트 할건데 좀 쉬엄쉬엄 해.”

“아이, 그렇지만 내일 일정때문에 연습 못할거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더 해야하지 않나…”

“하여간 무심한줄 알았더니만 이렇게 보면 걱정도 많다니까.”

당장 다가오는 이벤트보단 앞으로의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시선을 달력에서 떼어놓자면 체육관으로 나가는 그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얹었다.

“워크에틱 넘치는건 좋은데 무리는 하지 마.”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거죠.”

“야야 부상이 딱 한순간에 오는줄 아냐? 피로가 쌓이다가 어느 한 기점이 트리거가 되어서 오는거지.”

이리 잔소리를 해도 결국 듣지 않을걸 알기에 다들 한마디씩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말해봐야 뭐하냐. 물론 형들 하는 말이 맞기야 한데. 그 걱정어린 이야기는 머릿속에 제대로 얹혀지질 않고 저의 불안에 날아가버린다. 농구영신 이후, 휴식기 전까지 있었던 경기들은 대체로 아슬아슬한 점수차이로 이기거나 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경기들이야 압도적인 전력차가 아닌 이상 그렇게 되는게 맞긴 한데. 그 아슬아슬한 점수차는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만약 슛 하나가 못들어갔다면, 그때 던진 슛이 들어갔다면.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니 몸을 쉽게 놀릴 수가 없었다. 최근 늘어난 기상호의 연습량을 보면서 다들 제 생각을 말하니 삽질도 그런 삽질도 없다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모든게 니 탓처럼 느끼냐? 그만 땅파라는 소리도 듣긴 했는데, 이전에도 자기때문에 지는 줄 알았던 순간들이 몇 있다보니. 사실 제탓 하면서 땅파는게 천성같기도 했다.

“체육관 문단속 잘 하고.”

“네.”

“그리고 너 오는 시간 볼거니까 너무 늦지는 말자?”

내일 아침일찍 체육관으로 가야하잖아. 주장인 세형이 딱 그정도로만 참견하고 끝내는 것으로 기상호를 체육관으로 보내주었다. 추운 겨울날. 저 혼자만 쓰게 되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니 한기가 감돌긴 했다. 초반에는 춥다고 난방을 틀긴 했었는데 그것도 다 같이 있을때 할 수 있는거지. 이 광활한 체육관에서 저 혼자 연습한다고 난방을 트는건 사치인지라. 기상호는 익숙하게 혼자 몸을 풀며 워밍업을 한 슛을 몇개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운동을 하니 몸의 열기가 감돌아서 싸늘했던 체육관도 괜찮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연습은 슛 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슛 없다고 섀깅 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감각이 들쭉날쭉한데다, 실제로 노마크 찬스가 흔하게 오는 편은 아닌지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빠르게 릴리스 할 수 있게, 그리고 발 맞추지 않는 상황에도 바로 넣을 수 있게. 기상호는 온갖 상황을 상정해가며 튕겨나가는 공을 주워가며 슛 연습을 했다.

저 혼자만의 연습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가 무거워지고 체력이 떨어져나가는걸 느낄 수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순간은 대부분 자신이 실책을 하던때,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던 때인지라. 기상호는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다시 공을 주워들었다. 몸의 감각도 잊어가며 연습하기를, 시계를 바라보면 늦은시간인지라. 정리하고 씻고 숙소에 들어가면 12시 되는거 아닌가. 그래도 내일 이벤트와 리허설 외에 별 일정 없던데. 그리 생각해보는걸 한번. 그리고 오는 시간을 확인하겠다던 세형의 한마디가 생각나 얌전히 정리하고 나오기로 했다.

씻은 후 체육관의 불을 다 끄고 마지막 문단속까지 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예상한 대로 아슬아슬하게 자정이 넘기 전이었다. 말대로 얌전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형의 모습이 보였다.

“너 자정 넘기나 안넘기나 기다리고 있었다.”

“헤헤…”

매서운 시선에 기상호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른것도 아니고 연습하다 늦은건데 뭔 말을 하겠냐. 세형은 가볍게 한숨 쉬고는 한마디 뱉었다.

”됐다. 내일 일찍 일어나.“

”네. 내일 뵈어요.“

숙소의 방으로 들어가니 성준수는 이미 불을 끄고 자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제 침대에 누운후 기상호는 눈을 감았다. 머리 한켠으로는 자꾸만 제 불안을 가중시키는 생각이 불청객처럼 찾아왔지만 그래도 운동으로 힘을 대 빼 놓은 덕에 잠은 잘 왔다. 몸이 평소보다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오늘 무리한 탓에 그러겠거니. 내일 근육통이 좀 심할려나. 제 컨디션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기상호는 잠을 청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기상호는 잠들기 직전 했었던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제 몸이 평소보다는 다른걸 느낄 수 있었다. 여태와 다른 컨디션.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외에 무거운 몸은 딱 한가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거 몸살 아닌가. 머리도 지끈거리는 느낌. 아 큰일났다. 기상호는 자신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침 일어난 성준수가 기상호의 모습을 한번 보곤 심상치 않은걸 느꼈는지 눈살을 찌풀였다.

“야 표정 왜그러냐?”

“저 몸살난 것 같은데요.”

몸살 때문에 컨디션이 영 안좋은데 지금 오한이 드는건 몸살 때문인건 아닌 것 같다. 기상호는 깊게 숨을 내쉬는 성준수의 얼굴을 한번 보고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의 숨소리 이후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형들이 말했잖아 무리하지 말라고. 너 진짜…

“야 잠시만 가만히 있어봐.”

“네?”

한바탕의 잔소리가 이어진 후, 성준수는 기상호를 침대에 앉히곤 방에서 나갔다. 멍해진 머리로 겨우 상황파악을 하고 있자면 방문을 열고 성준수와 함께 세형이 들어왔다. 체온 좀 재보자. 독감이 도는 때면 귀에 쑤셔넣었던 체온계로 익숙하게 열을 재보니 평소보다 체온이 좀 높은 정도였다.

“열이 높은건 아니라서 애매한데. 어때? 괜찮아?”

“그냥 좀 몸살기운만 있는 것 같아요. 약 먹고 쉬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저희 대구로 갈거잖아요. 약먹고 버스에서 자면 될 것 같아요. 기상호는 나름 자신이 생각해본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둘의 시선은 썩 좋질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어제 좀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너 또 난방 안틀고 연습했지. 번갈아 가며 들리는 잔소리에 기상호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사실 변명도 못하겠다. 야밤에 홀로 연습해가며 무리하다 이 꼴이 났으니. 그래도 아픈 사람을 두고 뭐라 할 수 없는지라, 잔소리는 몇마디로 늘어나지 않고 일단 간단하게 밥이라도 먹고 이동하자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세형의 차를 얻어 타 인근 약국에서 몸살약을 구매. 그리고 약먹고 슬슬 약기운이 돌 것 같다. 싶은 때에 소집하기로 한 체육관 앞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보는건 또 첨이네. 기상호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꾸벅 인사하였다. 약기운때문인지 정신이 멍한지라 누구에게 인사를 하고 안했는지 긴가민가 하였다. 약빨 왜 이래. 몸살기운이 가시는건 확실한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영 이상했다. 오늘이 일반 이벤트 일정이 있어서 망정이지. 경기였으면 큰일났겠네. 다음부터는 진짜 몸조심해야겠다. 저 혼자 생각을 하고 결론을 도출할 적, 누군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상호야 긴장했어? 완전 정신 빠진 것 같네.”

“어제 밤에 연습하다가 몸살났댄다. 약기운때문에 제정신 아닐거다.”

“아 그래?”

근데 오늘 일정 있는거 알면서 연습했단 말이야? 올스타에 얼마나 잘 하려고 연습이야.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 한 것 같지만 기상호는 그저 헤픈 웃음을 지어볼 뿐이다. 그래 차라리 처음 가는 올스타라고 의욕 넘쳐서 미련하게 연습하다가 몸살 난 정도면 좀 귀엽게 보였지. 휴식기때 못하는 연습 아까워서 늦게까지 연습했다 하면 뭔 미친놈 일화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 추우니까 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쉬고 있을래?“

단순한 몸살기운이지만 몸이 재산 그 자체인 선수였다. 추운곳에서 오래 세웠다가 감기라도 들라, 부산 TX의 조형석 선수가 그리 말하니 다들 그 의견에 별 의의는 없는지 기상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세형이 먼저 탑승할 버스로 끌고 가서 좌석까지 안내해주었다. 그래도 난방 틀어져 있어서 다행이네. 버스 내에 감도는 건조한 온열에 안심하며 기상호를 앉혀 준 후 나중에 보잔 말로 버스에서 내렸다.

약기운에 몽롱한 정신탓인지 잠깐 눈을 감으면 꾸벅꾸벅 잠이 몰려왔다. 진짜 약 잘듣네. 그렇게 생각한것도 잠깐. 그리고 그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떳다고 생각했는데 귓가에는 차의 바퀴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무슨 마취 3초컷처럼 잠든것 같은데. 눈을 꿈뻑꿈뻑뜨며 슬쩍 고개를 돌리자면 제 옆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괜찮냐?”

“에. 종수햄?”

동그랗게 뜬 눈이 간만에 보는 얼굴을 담았다. 왜 여기에있지. 의문도 잠시 뿐이었다. 올스타전에서는 같은 팀이니 같은 버스를 타는게 맞긴 하지. 왜 자기 옆자리인지 그런 궁금증도 들었지만 라인업을 생각해보면 최종수가 옆자리에 앉아서 덜 피곤할 사람이 자신뿐이었기에 제 옆자리에 있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다 풀리게 되었다.

“몸은 좀 괜찮냐?”

“네? 뭐… 약 먹고 자니까 좀 괜찮은데.”

“좀 있으면 휴게소니까 먹고 싶은거 있음 말해.”

어째 목소리 톤이 다른 것 같은데 느낌탓이려나. 3라운드 경기때 만난게 마지막이고 그 이후로 연락 하나도 없어서 그냥 이전처럼 데면데면한 느낌이었던 최종수였다. 잠깐의 이벤트전이지만 같은 팀의 선수라 그런건가. 아니면 원래 내한테 이러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뭐, 단순히 챙겨먹는다는데 목소리 왜 이리 부드러워요? 같은 말을 하면 니가 약에 취하긴 취했구나. 라던가 몸살났더니 머리까지 어떻게 된거 아냐? 같은 쿠사리 먹을 것 같아서.

“그냥 따뜻한 음식이면 좋을 것 같아요.“

딱 이정도로만 대답했다. 버스 안에서 나오는 철 지난 인기곡들을 듣다보면 푹 잤던 저의 눈동자는 말똥하고, 몇분 전만 해도 떠들던 사람들은 다 넉다운 되어 자고 있었다. 하기야 장거리 이동하면 할 수 있는게 잠자기 밖에 없었다. 슬슬 하나 둘 꾸벅거리던 고개가 들리기 시작하면 휴게소에 도착했다는 운전기사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들 화장실 들리고 호두과자나 간식거리 사갈때 최종수가 기상호를 끌고 우동하나와 김밥 하나를 시켰다.

“저 근데 여기서 먹고가는거에요?”

“당연히 들고가서 먹을 수 없잖아.”

“아니 우리 일정도 있는데 괜찮아요?”

“몰라. 신경쓰이면 얼른 먹던가.”

대책없이 그냥 막 시킨거였어? 기상호는 주변의 눈치를 한번 보고 언제 음식이 나오나 푸드코트 내의 음식 받는곳을 한번 보었다. 그래도 다행히 몇분 되지 않아 최종수가 시킨 음식이 나와 흡입하듯 먹을 수 있었다. 사실 흡입하듯 먹어서 얼른 그릇 비우고 일행에게 합류하는건 희망사항. 푸트파이터가 아닌 이상 목구멍을 오픈해서 음식물을 그냥 집어넣을 수 없으니 먹는데 시간이 걸리는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형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푸드코트 내, 음식점 의자에 앉은 기상호에게 다가갔다.

아픈걸 알고 있기에 뭘 해도 이해해주고 넘어가주는 편이긴 한데 꼭 오면서 한마디씩 하는게 좀 부담스러워서. 게다가 저를 빤히 쳐다보는 최종수의 시선도 이렇게 쳐다볼거면 왜 이걸 시켰나 싶기도 했다.

“얘들아 애 체하겠다.”

자꾸만 기상호에게 다가가는 다른 선수들을 보며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그냥 들어가서 기다리자 어련히 시간 보고 들어오겠지. 고마운 소리를 해주는 형이 있는 한편 근데 이렇게 둘이 놔두고 출발해도 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살벌한 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낙오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 하나로 겨우 우동을 하나 다 먹고 (사실 면을 좀 남기긴 했다.) 김밥 반절은 싸가면서 다시 차에 탑승. 그리고 시간이 지났는지 또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기분에 점심 분량의 약 두알을 삼켰다. 휴게소를 지난 이후의 버스 풍경은 여전했다. 초반에는 이리저리 떠들다 다들 한순간 자게되는 그런 풍경. 기상호 역시 약기운에 그냥 눈을 감고 편히 잤다.

그래서 눈을 뜨고보니 올스타전이 열리게 되는 대구에 도착. 리허설 전, 사전행사로 스폰서 홍보를 겸한 일정이 하나있어서 버스가 내린 곳은 체육관 앞이 아니라 어떤 거리의 음식점이었다.

“각종 먹거리중 대구 실내 체육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로 시작한 멘트가 모두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정답은 닭강정입니다. 닭강정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이곳에서 직접 팬분들에게 치킨을 판매하는 이벤트를 할까 하는데요. 그러니까 다 같이 일일 식당을 몇시간 정도 한다는건데 그래도 다행인건 단순히 몇시간동안 주문을 받는 종업원을 한다는 점 아니였을까.

“어휴 그래도 직접 튀기지 않아서 다행이네.”

누군가가 한마디 말을 했다가 주변에 있는 선수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야 여기서 그런 말 하면 다음에는 진짜로 실현될 수 있다고. 촬영을 하던 피디와 관계자가 수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음에는 반영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는 말이 영 불안했다.

어쨋든 식당에서 지급되는 유니폼(이라고 해도 티셔츠와 앞치마뿐이었지만)을 갈아입고 오니 각자의 역할이 배정되었다. 손님에게 자리 안내를 해주는 역할. 그리고 주문을 받는 역할. 나온 음식을 전달해주는 역할 등등. 기상호는 서빙조인 형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에서 한두칸 정도 떨어져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거 완전 대학 축제 주점 하는거 같네.”

“야 그것도 직접 하는 애들 이야기 들어보면 쌩 고생이라더라.”

“그래도 우린 오는 사람들신청 받고 하는거잖아. 몇팀 온다고 했지?”

“1시간당 4명 1팀해서 10팀 정도 온다고 한다니까. 한 30팀 정도?”

그래도 안내하고 서빙만 하는 정도니까, 이벤트인데 뭐 큰일 있겠어?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실제 이벤트는 정신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상호 혼자 정신이 없었다는게 맞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선수 형들은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직업체험과 함께 미소를 팔고 있는데 한편 이쪽에서는 팬서비스 제공과 함께 직업 체험까지 하고 있었다. 몸은 하나인데 해줘야 할건 많았다. 사실 이리 바쁘게된건 여기저기서 저와 제 옆에 찰싹 붙어있는 그 누구씨 때문일것이다. 기상호는 제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최종수를 봤다.

“햄 이거 저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있거든요?”

“아까 사이드 하나 떨어진거 다 봤다.”

“아이, 그건 그냥 여러개 들고 가다 그런거고…”

대체 뭐가 불안한지, 아니면 마음에 안드는게 있는지 최종수는 거의 감시하듯 옆에 딱 달라 붙어서 같이 음식을 서빙하였다. 인기스타와 함께 하다보니 사진찍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최종수와 팬이 함께 하는 사진을 찍어주는건 이젠 이 얼마 안되는 시간의 부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딱 붙어다니는거 아니야? 니들?”

감사하게도 주변을 서성이던 형들이 한마디 했지만 최종수는 딱 한마디로 일관된 답변만 해줄 뿐이었다. 얘 아파서 좀 봐줄려고요. 그 봐준다는게 챙겨준다는 뜻인지 단순히 보기만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최종수가 밀착마크하는 덕에 괜히 일이 늘어나 안좋은 몸이 더 안좋아지는 기분도 들었다. 이쯤되면 그냥 종수햄한테 직접 말하는게 낫지 않을까. 햄때문에 손이 놀 수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저 환자인데 배려 좀 해달라고. 속으로 삼킨 말을 뱉을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 이벤트는 다 끝이 나, 정리시간이 되었다.

“선수분들 수고하셨어요. 원하시는 메뉴 하나씩 선택해주시면 되어요.”

정리시간이 끝난 이후 내일 올스타 준비를 하기 전 저녁식사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저녁식사까지 한 곳에서 진행되었다. 스폰을 받은 티를 팍팍 내는 저녁식사가 되겠지만 그래도 뭐 이상한걸 먹는 것보단 안전하게 모두가 잘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낫긴 했다.

다들 무난하게 저녁식사를 단백질로 채운 이후 체육관으로 가 올스타 준비. 사실 준비라기보다는 입장 퍼포먼스에 쓸 춤 연습을 하는 정도였다. 천성이 춤꾼인지라 잘 추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간단한 안무를 해버리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저, 시선이 부담스러운데요.”

“즐겨 상호야.”

이런 상황을 우예 즐기나요. 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기상호가 울상인채로 저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몸짓을 최대한 따라해보았다. 그래도 잘 따라하시는데 박자가 좀 안맞네요. 어정쩡한 자세뿐인건 덤이었고. 그래도 안무는 잘 외울 수 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은지라 더 우스꽝스러운 춤사위가 되었다.

자 다시 한번 해볼게요. 원 투 쓰리. 박수를 짝짝 치면서 박자를 맞춰본다. 기상호는 필사적으로 외운 안무를 해 보았지만 역시나 어색한 몸짓이 되었다. 몸치끼가 있다는걸 이런식으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수 차례 가르쳐준 안무 선생님은 항복선언을 하며 난이도를 낮춰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춤으로 승부를 보자 하였다. 노선을 틀어 귀여운걸 해보자고. 그렇게 노선을 틀어 배우기를 몇분. 187cm의남성이 귀여운 척을 하는 입장 퍼포먼스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춤 연습을 얼추 다 마치고 나서야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났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였다. 각자 배정된 방의 키를 받은 이후, 기상호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 문을 열어 내부를 살펴보았다. 넓찍한 방 내부. 그리고 잘 정돈된 침대 두개. 기상호는 자신의 뒤에 있는 룸메이트에게 물었다.

“종수햄. 궁금한게 있는데요.”

“어.”

“저희 버스 좌석도 같은 열이었죠?”

“그렇지.”

“그리고 햄 저랑 같이 주문받고 다녔죠?”

“어.”

“그리고 지금 여기 같은방인데 이거 뭔가요.”

“왜. 불만있어?”

“아니 불만이 아니라…”

기상호는 오늘 하루동안 최종수와 거의 붙어있다 싶이 한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거의 소집장소의 버스에서부터 쭉 붙어있지 않았나? 자꾸만 붙어있는 기분이 들어서 좀 부담스럽다고 해아하나. 아니 부담스러운건 아니지만 그냥 하나하나 함께하게 된 사안을 신경쓰다보니 묘했다. 이동 좌석에도 붙어, 이벤트 할때도 붙어있어. 그리고 지금 숙소까지? 생각해보면 리허설도 춤 선생님이 기상호를 거의 전담하다싶이 해서 신경을 못썻지만 나름 안무는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셈이었다.

그런데 숙소까지 같은 방이면. 그냥 의도적으로 붙었다는 티가 팍팍 나서. 기상호는 이걸 물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최종수가 붙어다니며 기상호에게 무엇을 했는가. 그걸 따지면 그냥 같이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굳이 같이 있었다는 것에 태클을 걸 필요는 없긴 했다.

“기왕이면 연차 차 안나는 사람끼리 있는게 좋잖아.”

그건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도 있는데… 굳이 저를? 게다가 같은. 팀에 재석햄도 있엇고. 조재석이라면 같이 청대도 했었으니 엮일 구석도 있었고. 다른 팀에도 아예 동기 선수들이 업는 것도 아니었는데. 라고 해도

“햄 진짜 친구 없죠?”

결론은 이것이었다. 쭉 붙어다닐 친구가 없으니 내가 종수햄의 대타라도 된건 아닌지. 올스타전의 엔트리를 생각한다면 역시 그게 자연스럽지도 모른다. 잘 지낸다던 그 청대 멤버라곤 조재석 밖에 없고, 동갑인 선수? 국민햄이 있긴한데 프로에서도, 이 올스타전에서도 다른팀이라 친하게 지낼 구실도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정도 납득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붙어다니는건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하는 기상호를 보며 최종수가 어이없다는 투로 반문 했다.

“야. 너도 친구 없잖아.”

“전 그래도 친한 형들 있거든요.”

“여기엔 없잖아.”

“아니 지상고 멤버 아니더라도…”

“누군데? 나만큼 더 친해?”

음 그건 아니고 그냥 안면식 있고 이야기 좀 나눌정도죠. 기상호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기로 했다. 입을 여는 순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저주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마치 평생 따라올 저주인형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어라. 지금도 나 저주인형을 들여놓은거 아닌가? 실없는 생각을 한번 하면서 최종수를 슥 훑어보았다. 뭐하냐? 아뇨 우리 햄 혹시 안 본 사이에 뭔가 달라졌을까 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상호는 얼마없는 제 짐을 풀며 오늘 하루의 룸메이트이자 거의 오늘 하루의 파트너가 된 최종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이런때도 있는거지 뭐. 언제 종수햄이랑 이런 관계로 지내보겠어.

숙소의 룸메이트라고 해도 별거 없었다. 사실 기상호가 최종수의 집에서 몇번 자고 갔기 때문에 같은 공간 내에서 잔다는 그 상황은 어색하진 않았다. 숙소라고 해봐야 씻을 순서 정하고, 내일 아침 일어날 시간 조율 하는 것 외에는 이전에 기상호가 최종수의 집에 놀러갔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었으니까. 그래도 평소와 다른점이 있다면 나름 제 몸 상태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기상호는 씻고 온 사이에 협탁 위에 놓여진 병으로 된 모과차를 보았다.

“왠 모과차에요?”

“따뜻한거 마시면 잠 잘오니까.”

오늘 밤은 푹 쉬어두어야지.

평소보다 조금 유해진 최종수의 배려 덕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먹었던 약이 잘 들었기 때문인지. 기상호는 되찾은 컨디션으로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잃어봐야 소중한걸 깨닫는다고, 어제의 몸살기운과 약기운이 섞인 하루를 보내고나니 아프지 않는것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알게 되었다.

눈이 뜨이고 나서 몇분 뒤 알람소리가 울렸다. 이때 일어나서 조식을 먹어두자고 약속을 했던 시간이었다. 호텔의 조식이 오픈하는 시간에 식당으로 가 적당한 아침식사를 먹은 후, 소집시간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기상호는 오늘도 저의 껌딱지처럼 딱 붙어다니는 최종수와 함께 어제 못 둘러본 호텔 내의 시설을 구경 하였다.

사실 시설이라고 해도 둘의 눈에 들어오는건 유산소 기구와 간단한 근력운동기구가 있는 실내 운동시설 딱 한곳 뿐이었지만.

“시간도 남았는데 운동 좀 할래요?”

“야 어제 몸살난 놈이 제정신이야?”

“아이, 저 오늘은 괜찮은디”

기상호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게다가 오늘 몸 풀어야하지 않나요. 체육관 가면 몸 풀 기회도 얼마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경험자 조언이 우선시 되는 시기었다.

“콘테스트 할때 스트레칭이나 해. 그정도만 하면 되니까.”

“그건 종수햄이라서 괜찮을지도 모르고. 저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저 이런곳에는 처음이라 몸 안풀고 들어가면 막 긴장해서 경기 제대로 못 뛸지도 몰라요. 처음이라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니 최종수의 한숨소리와 함께 겨우 허가가 떨어졌다. 유산소만 사용할것, 그리고 30분 이상이 되면 그냥 끌것.

딱 몸 풀정도로만 쓸 목적이었으니까. 기상호는 쉽게 수긍하고 실내 운동시설 안으로 들어섰다. 최종수 역시 감시역이랍시고 같이 들어갔는데 함께 바닥에 누워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후 러닝머신을 나란히 탔다. 인터벌 뛸거면 속도 5에서 9까지만 뛰어라. 누가보면 트레이너, 아니 최소 같은 팀의 감시역인줄 알겠네. 아 이틀 한정으로 같은 팀이긴 했지?

어쨋든 형은 형이다. 얌전히 하는말에 잘 따라줘야지. 기상호가 단번에 속력을 올리고 나서 1분이 지난 후 다시 천천히 쉬엄쉬엄 걷는 구간 서로 침묵뿐인 유산소운동에 최종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대체 뭘 했길래 몸살에 걸린거냐?”

“쫌 무리해서 연습하다가요.”

“진짜 올스타전 긴장해서 그런거냐?”

“네?”

“너 어제 버스에서 잤을때 그런 이야기 돌았잖아.”

그러고보니 형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올스타전에 처음 참여해서 무리하게 연습하다 몸살 걸렸다고. 이 햄도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아니 다들 정말로 그렇게 오해하는건가? 기상호는 볼을 긁적였다.

“그냥 요새 좀 그렇게 해야만 할거 같아서 그런 것 뿐이에요.”

다들 한번씩 그럴 때 있잖아요.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거. 슛 하나 못넣은거 아깝고, 남들이 부족하다고 하는거 채워야 할거 같잖아요. 그래야 뒤쳐지지 않는데. 뭐 그런거 말이죠. 기상호는 여태 자신을 괴롭혀온 불안을 한번 말하고는 흘금 제 옆에서 같이 속도를 낮춰 경보로 걷는 최종수를 보았다. 이리 말해도 무심하게 그렇냐? 라고 반응을 할 줄 알았는데 그 표정은 뭐래. 기상호는 시선을 돌려 러닝머신의 타이머를 주시하였다.

“야.”

“네?”

“너 그런식으로 하다 망가지는거 순식간이다.”

여태 들어본 적 없던 비아냥. 왜 갑자기 시비래 이 햄은? 타이머를 주시하던 기상호가 시선을 돌리면 저를 쳐다보던 최종수의 눈과 마주칠 수 있었다. 잔뜩 찌풀인 눈매가 짜증의 정도를 나타내니 기상호는 제가 한 말이 뭐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눈알을 도로록 굴려 기억을 되짚어봤다. 한 말이라고 해봐야 그냥 내가 불안해서 연습 열심히 한다. 이정도 뿐인데. 선수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최종수가 걷던 러닝머신이 멈추었다. 야 30분 다 되었으니까 내려와. 최종수는 기상호가 걷던 기계의 정지버튼을 꾹 누른 후 바로 시설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뭐야?”

기상호는 벙찐 얼굴로 최종수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대체 왜 저러는거야. 왜 자신의 말이 트리거가 된 마냥 구는지. 그리고 왜 저한테 실망을 한 것 처럼 말하는지. 기상호가 생각했을 때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최종수였다. 영문을 모를 태도변화에 왜 그렇냐 따질법도 했으나 천성이 막내에 매번 누군가의 눈치만 보면 살던지라. 어쩌겠냐. 일단 굽히고 들어가서 상황 파악이라도 해야하는걸. 기상호는 최종수를 따라 숙소의 방으로 들어가 볼멘 소리로 물었다.

“종수햄… 화났어요?”

“아니.”

그냥 좀 짜증나서 그랬어. 숙소 방까지 가니 걷는 시간동안 마음을 다스린 모양이다. 몇분 전만해도 심상치 않다는 티를 팍팍 낸 최종수는 어느정도 누그러진 채로 무덤덤히 말했다.

그렇지만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보라고. 기상호는 곁눈질로 샤워용품을 들고 욕실로 가는 최종수의 얼굴을 보았다. 화나지 않은건 확실한데, 영 탐탁치 않은 구석이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의 그 말은 뭘 저격한건지. 뭐가 마음에 안들었던건지. 그걸 알아보려고 여기서 이야기를 더 꺼냈다간 긁어부스럼 만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겠냐 최종수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적당히 눈치보고 잘 해줘야지. 일단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최종수가 쭉 붙어다닐 오늘 하루만 잘 신경쓰면 되는거 아닌가. 그 이후로 볼 일일야 경기 외에는 없으니까.

이후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앞으로 벌어질 저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잔뜩 긴장해버린 탓에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고 흘러 보낸 것에 가깝지만. 난생 처음 서보는 무대, 그리고 수만명의 관중앞에서 홀로 춤추는 경험. 그래도 학생때는 다은햄 있으면 적당히 노는 척 하며 출 수 있는데(사실 혼자서 이상한 짓 하는것과 맞장구 쳐줄 사람이 있는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혼자니까 긴장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몸짓은 이게 맞긴 했던가. 어영부영 제가 배운 춤을 선보였다. 정신없이 흘려보낸 입장퍼포먼스 시간이었으나 기상호는 그래도 주변에서 귀엽다는 환호성을 들은 것 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후 진행된 올스타전. 골고루 출전시간을 배분해주려고 하지만 완전한 평등은 없는지라. 결국 다른 경기때처럼 주전 나온 사람들은 주전 나오고, 가끔 식스맨 선수들이 나오는 정도였다. 이 경기가 별들의 전쟁이라 하면 내는 뭐 6등성쯤 되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기상호는 제 팀의선수들이 득점하는 순간에 박수를 쳐주었다.

사전에 합의하여 진행된 이벤트성 쇼라던가, 즉흥적으로 나오게 된 쇼 타임. 그리고 빡세게 달린 4쿼터. 완벽까지는 아니어도 재미있는 경기라 한다면 맞는 감상이었다. 이후 시상식까지 마무리 되고나서야 이벤트의 끝이 고해진다.

이정도면 흥행한거지. 꽉찬 체육관의 객석과 실시간으로 나온 기사. 그리고 당사자의 감상으로 다들 그렇게 만족했다. 수고했다는 한마디와, 다음 경기때 보자는 약속으로 대신하는 인사말. 서로 좋았던 부분의 피드백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기상호는 체육관 복도에서 출구로 빠져나왔다. 체육관 근처라면 아직은 선수들이 남아 있을 시간이었다. 물론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팬들도 그렇기에 체육관 밖으로 나와서 주차장 근처로 가도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햄들 여기 있었네. 기상호는 주차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태성과 성준수에게 다가갔다. 몇년이 흘러도 둘은 만나면 가볍게 투닥거리는게 일상이었다. 보나마나 서로 나간 콘테스트에서의 활약에 대해 한마디 얹고 있겠지. 대화를 안 들어도 표정이라던가 몸짓만 봐도 둘의 대화내용이 예측 가능한 기상호였다.

“이야 상호, 간만이다? ”

“햄도요. 저번 크리스마스 이후로 처음 보는거 아닌가요.”

“하여간 바빠서 경기 아니면 못보는 얼굴이라니까.”

“선수가 다 그렇죠. 뭐.”

“그래서 너 몸살났다매? 뭔 일 있었나.”

가벼운 인사와 함께 근황이나 나눌려 했더니, 화제는 또 어제의 몸살 소식이었다. 사실 어제 기상호가 만난 선수들이 다 알게 되었으니 다른 선수들도 당연히 드문드문 소식처럼 알게 될 사실이긴 했다. 그 화제가 익숙한지 몸살 난 이유에 대한 답은 기상호가 아닌 성준수의 입에서 나왔다.

“그제 밤에 혼자 자율연습하다 몸살났댄다. 리허설이랑 이벤트 하는 날이라 망정이지.”

다음에 연습하다 컨디션 난조 오기만 해봐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기상호가 할 일이라곤 그저 미소만 짓는 일 뿐이었다.

“당연히 다음에는 조심하면서 해야죠.”

이번에 아프면서 여기저기서 잔소리 듣고, 올스타전 준비하다 몸살 났다는 이상한 오해도 생겼으니까.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대답이었으나 성준수는 그 대답으로도 불만족스러운지, 한숨 푹 쉬고 잔소리를 해대었다. 경기 앞두고 있으면 컨디션 관리에 더 집중해야지.

물론 그 말이 맞긴 하다. 앞으로 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컨디션 난조를 비롯한 질병에 걸린 몸 상태는 바로 엔트리에도 들지도 못하는 결장 행이 될 수 있으니까.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늦은시간까지 연습하고 유난떠는건지.”

“유난이라뇨. 다른 팀 선수들 중에서 워크에식 넘치는 형들 생각하면 제가하는건 아무것도 아닌데.”

인간승리의 표본들이 되는 선수들의 미담 대부분이 혹독한 노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일화를 생각하다면 제 노력은 그 사람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거라 생각되는지라. 검지로 볼을 긁적이며 그리 말하니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나 먼저 갈테니까 나중에 보자.”

네 나중에 봐요. 꾸벅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나는 성준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제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던 공태성이 기상호의 어깨를 가볍게 도닥여주었다.

“야야, 저 햄이 걱정해줄때 받아라. 말 띠겁게 하는건 여전하다만 그래도 하는 말 들어서 안 좋을건 없으니까.”

적어도 니 손해볼 이야기는 아니지 않냐. 공태성이 성준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잔소리 섞인 조언은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재의 상황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집어주는 쪽인지라. 그래, 이제 휴식기가 끝나가고 다시 경기가 재개될 상황에서 연습 일분 일초 더 한다고 매달리는 것보단 컨디션 관리에 힘쓰는게 더 맞긴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인지, 조금 더 연습을 해야 했던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들어서.

“아무튼 난 가본다. 다음 경기때 보자.”

네. 태성햄도 다음에 봐요. 그렇게 또 다른 형을 보내고 난 뒤, 숙소로 가기위해 먼저 타고 왔던 버스를 찾으려 주변을 둘러볼 즈음, 근처에 있던 최종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야. 좀 있으면 버스 출발할거니까 얼른 와라.”

찾아다닌건지. 최종수는 기상호에게 손짓을 하며 버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여러대의 차와 대절 버스가 주차된 공간 사이를 건너는 와중 최종수의 걸음과 기상호의 걸음이 엇비슷해졌을 때, 대뜸 최종수의 물음이 들려왔다.

“너 뭐 인터넷 댓글 보거나 그러냐?”

“네? 저 그런거 보면서 관리 할 정도는 아닌데요?”

“그럼 뭐, 최근에 밟아주고 싶은 놈이라도 있어?”

“그, 종수햄. 제가 암만 게임할때 좀 사람이 달라보인다고 해도 그정도로 성격 나쁘진 않아요…”

그나저나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건지. 진짜 이 햄은 왜 이러지. 어제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동과 말 투성이었다. 어제 꼭 붙어다닌거야 그냥 친하게 지낼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치는데 오늘 하는 말들은. 전혀 뉘앙스를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즐겁게 해. 니 몸이랑 정신 갈아서 하지 말고.”

그리고 이어진 지금의 이 말도. 기상호는 오늘 아침에 했던 최종수의 말을 떠올렸다. 그냥 무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들인가. 겨우 이해한다면 그런 의중만 파악 할 뿐이라. 기상호는 익숙히 적당한 미소로 무마하며 네. 알았어요. 한마디의 짧은 답을 남기고 버스에 탑승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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