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비녕] 새벽편지
너 에게.
영아. 나는 편지가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음을 먼저 밝힌다. 펜으로 적어내는 문장은 마음을 얼만큼 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와 표정으로 전하는 마음도 한없이 부족한 것 같은데 글로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네게 보이기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들었다. 오늘 출근을 해보니 내 책상 위에 휴가를 다녀온 막내가 기념품으로 엽서들을 사왔더라. 예전이었다면 책상서랍에 처박아뒀었을텐데, 엽서의 앞면에 그려진 겨울 자작나무 숲이 아름다워서 꺼내들었다.
네게도 아름다운 겨울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아. 나는 근래에 들어서야 계절이 아름다움을 알았다.
나는 이제 봄의 매화향이 얼마나 달큰한지를 안다. 여름 태양 아래 익어가는 공기의 향기와 가을의 서늘하고도 축축한 공기의 향을 안다. 그리고 겨울이 내는 그 다정하고도 시원한 향도 이제는 안다. 하얗게 쌓여있는 눈 위로 남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얼마나 제각기의 속도로 걷는지. 눈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눈사람들 따위가 얼마나 많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지. 나는 너와 함께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알고 있던 계절의 다른 면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그것도 매년,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기쁜지.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표현하기엔 알고있는 단어가 부족한 것이 슬플 따름이다.
영아. 사실 받아둔 엽서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달리 겨울의 숲을 집어든 것은 네가 겨울을 닮았기 때문이다. 너는 꼭 겨울을 닮았다. 겨울처럼 너는 어딘가 다가가기 어려운 냉해보이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눈이 내리는 한낮처럼 따듯하기 그지 없다. 하얀 눈이 내리면 새카만 빛을 가진 도로도 하얗게 물들만큼, 너는 누군가를 충분히 물들일 수 있는 사람이고. 또 어느 순간에는 다 녹아버린 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 문득문득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래.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것처럼.
네가 당연하게 내게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 아닌 깨달음이었는데 그냥. 어느 날 당연히 눈을 뜨는 순간에 네가 있어서.
나는 이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영아. 창 밖으로는 겨울이 한창이다.
창 밖으로 겨울이 가득하니 너의 계절이 가득한 듯 하다. 집에 돌아가면 네가 있을 것을 알면서도 막연한 그리움을 느낀다. 시간이 어서 흘러서 네 곁에 고일 수 있으면 좋겠다.
편지글이 서툴러 끝맺음을 고민하게 된다.
네가 글의 마지막을 고민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할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너의 영역에 가까워서 펜을 들고있는 것 만으로도 네가 곁에 있는듯 하다. 그래서 그리움만 깊어진다. 이상하지. 왜 매일 보는데도 더 같이 있고 싶은걸까. 나 혼자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네게 물어보면 더 좋은 대답을 네가 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영아. 아침이 밝아오면 금방 갈테니 내가 없는 네 밤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이 편지를 읽는 밤에도, 그 이후에도. 줄곧 그러기를.
너의 룸메이트, 이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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