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영
가벼운 백스토리
눈발이 날리던 설산 속, 거진 어른의 무릎만큼 쌓인 눈을 헤집고 나아가는 어린 아이의 이름을 누가 기억할까.
아이는 머리가 새하얗고, 피부가 새하얬다. 춥다고 표현하기엔 애석할 정도로 세찬 바람과 낮은 온도에 입술은 푸르딩딩하게 식어갔고, 거친 바람에 사납게 갈겨진 양 볼이 불긋하게 달아올랐다. 이런 눈발을 막아주기엔 얇은 겉옷을 여미는 한 손은 손가락이 몇 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맏이라고 불렀다. 부모는 금방 죽을 것 같았던 장남에게 굳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는 건 정을 붙이는 행위이고, 정을 붙이면 헤어질 때 힘들어지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어미의 피와 고혈을 전부 빨아먹고 태어난 아이는 동상으로 손가락이 한두개 없어지고 사시사철 기침을 할지언정 목숨줄 하나는 끈질기게 잡았다. 그러나 정말 남은 영양을 다 먹고 태어났는지 밑의 동생들은 꼭 장남처럼 든든하게 자라지를 못했다. 돌이 오기도 전에 얼음덩이가 되던가, 날이 풀리는 봄에 빼짝 말라 죽던가. 살아남으면 돈 많은 집이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태어나는 동생의 얼굴도 익히기 전에 눈무덤에 묻어야했던 나날 속에 맏이의 이름은 첫째였고, 겨우 살아남아 살림을 위해 집에 남긴 여동생의 이름은 둘째였다.
둘째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고기로 집에서 묽은 탕을 끓이면, 첫째는 뒷산을 올라 뭐라도 찾아왔다. 그것은 종종 다 죽은 동물의 사체이기도 했고, 아직 얼지 않은 나무의 열매이기도 했으며, 날이 풀릴 때에는 녹은 식물의 뿌리이기도 했으나 대부분 덜 자란 나무의 가지를 꺾은 궁핍한 땔감이었다. 첫째는 어린 동생을 함부로 산으로 보내지 않았다. 산은 어두워지면 길을 잃어. 산짐승도 얼마나 많은데. 그나마 볕이 드는 마을과는 다르게 얼어 죽을 정도로 추울걸. 가끔은 아이들을 잡아가는 산귀가 오기도 해. 온갖 말로 겁을 주면 여동생은 잔뜩 긴장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부엌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저녁에는 든든하게 탕을 끓일게. 어머니가 팔아서 마련하신 약재가 조금 남았거든. 오빠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염원을 말하기엔 그건 너무 허황된 것이라, 둘째가 건낼 수 있는 말도 그저 한미했을 뿐이다.
약재는 개뿔. 그건 닷새 전에 아버지 기침하실 때 전부 털어넣어 남은 게 없을텐데. 첫째는 굳이 보지 않아도 자기가 없는 사이에 둘째가 무엇을 할지 뻔히 보였다. 눈 아래에 묻힌 독을 파내고, 얼음과도 같은 온도에 꽁꽁 얼어 상하지 않은 제 동생들의 사체를 주워들거다. 낡은 가죽에 감싼 그것을 옆집의 고기와 바꿔오겠지. 유독 기름진 차림을 올릴 때마다 마당 구석의 눈이 고르지 못하고 흙과 얽힌 것을 눈치챈 밤 어린 아이가 호기심에 땅을 파 본 것은, 알아서는 안될 이야기이기도 했으나 언젠가는 알 이야기였다. 첫째는 질문을 하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넘겨 모르는 척하는 걸로 평온을 지켰다. 이것은 잘못됐다던가, 주저앉아 전부 토해내기엔 이곳은 그런 사소한 걸 따져갈 수 없는 곳이니까.
산에 올랐을 때, 유독 온화한 날씨라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내려갔어야 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고, 쌓인 눈이 살짝 녹아 질척거리고, 바람이 불지 않아 숲이 고요하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차라리 산에 오르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건 보통 늦어서 지금처럼 뒤에는 바위가 있고 앞에는 조금 일찍 일어난 집채만한 곰이 있어야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동생한테 제 저녁은 준비하지 말라고 할걸. 저녁식사가 외로울텐데. 미리 땔감을 많이 가져다 놓을걸. 둘째처럼 까만 머리는 이런 설산에서 순식간에 눈에 띌텐데.
두 발로 일어나 저를 찢어발기려는 곰에 겁먹고 움츠러든 순간, 하얀 날이 눈 앞에 번뜩였다. 겨울잠을 일찍 끝낸 곰을 잡으러 온 사냥꾼일까. 눈 앞까지 날아온 칼날에 죽진 않더라도 얼굴에 흉 하나는 짓고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궤적을 그린 검은 저에겐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우뚝 멈춰섰다. 피가 흩날리며 갈라진 곰의 몸통 사이로 비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겨울마다 털가죽으로 빽빽하게 몸을 감싸고 늘상 술을 마셔 새빨간 얼굴을 하고 다니는 산만한 덩치의 사냥꾼은 없고 웬 귀공자가 있었으니까.
귀공자는 둔하지는 않되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첫째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비록 피를 뒤집어쓰고 긴장해 몸이 벌벌 떨릴지라도 몸에 상처는 없었다. 괜찮으면 됐다며 몸을 돌리고 사라지려는 귀공자를 잡은 건 첫째였다.
"혹. 혹시, 이 곰을 집에 가져다 놓으면. 동생과 제가 굶을 일도, 부모님이 언 땅을 헤집어 나무뿌리를 캘 일도 없을텐데, 선사님께서는 도와주실 수 있나요? 동생이 저녁을 짓고 있을테니 괜찮으시다면 식, 식사 대접이라도..."
그 저녁 식사가 대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잊어버렸다지만.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첫째를 한 손에 안아올렸다. 너덜너덜한 곰은 어떻게 가져왔는지, 집 앞마당에 내려질 때까지도 그의 고고한 흰 옷은 더럽혀지지 않았다. 동생은 보다 일찍 귀가한 첫째를 맞이하다 피투성이의 몰골에 한 번, 누가봐도 죽은 게 뻔한 곰에 두 번,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 세 번 놀랐다.
급히 닦을 것을 찾아온 동생이 자기의 뺨을 닦아주고 있음에도, 첫째는 계속 그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 설명은 해주지 않았지만 저들을 바라보는 얼굴이 꼭 괜찮느냐고 묻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눈에 위로받은 것인지, 혹은 자신을 구해줬음에 가슴이 뛰었는지. 그도 아니라면 세상사 모르는 시골동네에서 나고 자란 어린 아이의 치기였는지. 동생이 몸을 녹이라며 방에 자기를 밀어넣을 때도 첫째는 저 선사님의 곁에 있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사람은 하루이틀이면 이 동네를 떠날텐데. 그러면 다시 평소의 삶으로 돌아갈테지. 다음에는 누구도 산짐승에게 습격당하는 나를 구해주지 않을거야. 동생은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다가 산에 오를지도 몰라. 그게 아니어도 먹을 걸 찾으러 올지도 몰라. 차라리 내가 저 사람을 따라간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수많은 미래였다. 따뜻한 옷, 매끼마다 든든한 식사, 궁핍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일상. 동생의 모습이 한 순간 스쳐갔지만 달콤한 유혹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내가 어서 강해지고,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돈을 보내주면 괜찮아. 하다못해 데리고 바깥 세상을 구경시켜줘도 좋을 거야.
반쯤은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동생이 그 때까지 기다려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음.
더 써야하는데 도통 생각나지를 않아서 그냥 설정적으로 남기자면 저렇게 해서 쫓아갔고 아마 뒤따르다가 뒤처지고 이거의 반복이었을듯.
도착하고 나서 저는 이제부터 뭘 하면 되나요(어디를 청소할까요 무슨 일을 할까요 등등의) 라고 했다가 일단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라 했더니 그대로 제자 됐을듯... 본인도 이때를 생일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이 기억을 못하는 관계로... 적당히 날 좋고 괜찮을 때 태어났을 것 같음 크게 문제 없이 유년기 잘 보내서 큰 거 보면. 날이 풀리지 않은 겨울이기 때문에 새로 생긴 생일은 1월 ~2월 정도이지 않을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존께서 쫓으시던 것들이...? 확인하려고 하셨던 것들이 고향마을을 습격해서 동생도 부모도 마을 사람도 다 죽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적영은 이후에 자기 이름도 받고 글자도 떼고 이래저래 잘 컸지만 고향에 있는 사람들 중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너무 오지라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거의 안되고 찾아가기에도 본인이 덜 컸고 그러한 이유로 죽은 것도 모르다가 사존이 없어질 때쯤해서 알게 되었다.
동생을 아낀 것도 사실이고 너무너무 사랑했고 자기가 없으면 동생이 죽고 동생이 없으면 부모도 죽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정에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사존이 그것보다 일단 중요했음.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가. 또래에 비해 영민한 부분이 많고 상황파악에 능한 부분이 있어서 자기의 부재로 인해 벌어질 일을 예측했고 좀 일찍 예상치 못하게 왔을 뿐이지 다 들어맞기는 했음. 근데 그걸 생각해서 그래도 내가 가정에 남아있어야지 하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라는 느낌. 어린 아이가 배부르고 등따시고 안전한 보호자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음 그것도 첫만남에 반해버렸다면.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성년이 될 때쯤에 마을에 돌아가서 동생을 만나고 데리고 같이 여행을 가거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을 것 같음. 물론 이런 계획을 짤 당시에는 나이가 어렸고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동생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할텐데 찾아가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죽었다. 살아있었어도 동생이 그렇게 좋게 반겨주지는 않았을듯 애초에 나이차 많아서 잊어먹었을 수도 있음...
사존이 사라질 때쯤에 성년의 나이에 가깝기 때문에 찾으러 다니면서 동생을 동시에 만나러 가기도 했는데 그 때 알았을 것 같고...? 마을에 살아있는 사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물어볼 곳도 없었고 타지와 교류가 많은 마을도 아니라서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도 잘 없었을듯. 그렇지만 그걸 쫓았던 사존은 알지 않을까? 말을 안해줬을 것 같지만. 그거는 사존에게 뭘 찾으러 그런 동네까지 온 거냐고 묻지 않은 적영 탓도 있다고 봄.
근데 이제와서 뭐였냐고 묻는 것도 좀 이상하다
사존을... 만났을까요? 만났다면 언제 만났을까요
완전 틀어박혔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적영이 거기까지 찾아가기는 했을 것 같음. 그리고 그런 이유탓에 추후에 정파에서도 배척받았을 것 같다. 적진의 본거지까지 들어가서 수장을 만났으면서 죽이지도 않고 본인도 사지멀쩡하게 걸어나오는데 애가 행복하게 웃으면서 나오면... 추후라 함은 지금 나이가 26이니까 얼마 안남았을 것 같다 1~2년 후일 것 같고 당장도 어딜가나 환영받고 좋은 사람보다는 뒤에서 의심스럽다는 말이 한두마디 나오는 상황일 것 같다는 생각.
그렇게 되기 시작하면 자아가 완전히 망가질 것 같다고는 생각하는데... 사유는 정파를 가르친 사존이 사파가 되었고 자기는 자기를 구하고 키우고 성장시켜서 사람노릇을 하게 만드신 사존이 그런 삿된 것에 빠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와중에 너도 그쪽 아니냐 아닌척하지 마라 이런 소리 들으면 어 아닌가 사존이 나에게 처음부터 가르치신 게 정도가 아니었나 하다가 자아붕괴 올 것 같음 쓰레기엔딩 죄송합니다
사존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가족처럼 굴 수는 있을지언정 가족은 아니다 라고 생각할지도... 물론 결혼하면 가족이겠지만
양자는 생각을 안하는걸까... 지금까지 아들은 아니어도 본인기준 조카정도로 굴었던 면모는 있었어서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는 생각을 못해봤을 것 같다. 그리고 구성원이 많지 않은 공동체에서 자라서 아이들은 보통 어른과 그런 관계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줄 알았을 것 같고. 그런 친밀한 관계...
사존이 가족을 아끼는 걸 지독하게 봐서 자기도 그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여기고 살아왔을 거고 진심은 진심이었겠지만 딸이 죽은 거 알게되면서 사존이 자기를 키워주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느낌. 혼인한 게 적영 15살 때니까 한창 사춘기 시절이고(별개로 사존 앞에서 티 안내서 무난하게 지나갔을듯) 자아 형성 시절에 붙어살던 사존에게 나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가족이 있다... 이걸 받아들이느라 노력했을거고 얼마 뒤에 그치 그렇지 나도 고향을 떠나온 게 가족을 위해서니까 사존에게도 그렇게 마음을 붙이고 다잡을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건 좋은거야 하는 걸로... 그렇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때문에 사존이 목숨 버리러 갈 줄은 몰랐었다. 애초에 자기는 자기 목숨 살리려고 가족 버리고 왔는데...
사존에게 딸은 소중한 존재야+근데 더이상 없어+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예전에는 됐는데... 의 조합으로 여성스럽게 입기 시작하고 머리를 높게 묶거나 한 게 아니라 느슨하게 내려묶고... 본인이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나는 사존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존도 딸을 다시 보고 사랑하고 싶으니 이게 가장 합리적 선택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는 타입. 누구보다 본인이 남자라고 잘 알고 있을 것 같고... 근데 걍 미묘하게 아내도 없고 딸도 없어서 그 어중간한... 그거의 어딘가 어쩌고...
별개로 본인이 누구보다 남자라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로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의 기준이 미묘하고 타인과는 다른데 자기 혼자 뚜렷한 타입.
저게 기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부터 일단은...
이때 검을 바꿨을 것 같아요. 이전까지 쓰던 건 그런... 진짜 무협적인 이미지에 맞는 양날검이었을 것 같은데 바꾸면서는 조금 더 리치가 짧은 검을 썼을 것 같다. 그리고 쌍검을 썼을 것 같다... 양날인 건 변함없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검에서 날을 좀 줄였다... 물론 그런만큼 무게가 가볍고 칼자루도 날렵해지고 어쩌고...
원래 쓰던 검도 그대로 있음. 안꺼내서 그런 거겠지...
어떤 설정이 더 필요하지 생각 좀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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