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블

갈림길 w.메이블

미션

로나OC by 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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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몸집이 작았고 웅크린 채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풀어달라며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람 옆에서 유독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는 듯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들을 무릎 꿇린 자리는 밀런이 선 곳과 멀었으며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밀런은 확신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부디 아이들이 이 자리에 없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되뇌었기 때문에.

어떻게 꾀어냈을까, 하는 의문은 의문이라 할 수 없이 쉽게 풀린다. 나라가 얼마나 평화로운들 세상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행복할 수만은 없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늘 존재했다. 황성에서 시종으로서 일할 수 있게 해준다거나, 좋은 입양처를 구해주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성당은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결한 의지로 가여운 처지를 돌보아 살피는 그들도 결국 사람이라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을 터였다.

"동정은 필요 없다! 한 사람도 살려두지 마라!"

[아이들이 황성을 구경하고 싶다며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 뭐예요.]

황제의 외침과, 얼마 전 만난 헬비나 수녀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눈앞이 아찔하게 일렁였다. 하지만 선뜩한 날의 빛이 시야에 걸리는 순간, 밀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밀런의 손과 바닥이며 천장, 이미 절명한 누군가의 몸까지 이용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간 와이어가 메이블의 창을 휘감아 멈춰 세웠다. 까득-! 단단한 얼음이 와이어에 갈려나가는 소리는 영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리에 불만을 품는 게 아니라 이 정도로 막혔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때였다. 밀런은 어금니를 질끈 악물었다가, 이내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것도 빚으로 달아둘 거야."

이미 몇 번의 공방을 거친 붉은 얼음 창이 밀런의 어깨에 파고들어 가 있었다. 막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힘을 주어 내뻗은 창이 완전히 관통했거나, 그어내린 궤적을 따라 팔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흘러나온 피는 얼음을 혼탁하게 물들이고, 창을 타고 내려가 메이블의 손끝을 적신다. 하지만 메이블의 시선은 여전히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무고한, 혹은 무고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다른 기사와의 충돌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도? 지금 말하라니까."

메이블은 창을 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을 쓰고 밀고 들어오진 않았다. 흥미가 동한 걸까? 어떤 이유에서든 밀런에게는 좋은 신호였다. 밀런은 어깨를 타고 오르는 통증에 자꾸만 구겨지려는 표정을 애써 폈다.

"네가 까맣게 잊어버린대도 내가 기억할 거니까. 너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약까지 먹게 생겼잖아."

"아, 그러고 보니 쓴 걸 싫어한댔던가요. 잘됐네."

"잘되긴 개뿔이..."

밀런은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고성이 오가는 혼란한 방 안에서, 하나둘 얼굴을 가린 두건을 벗고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성당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것들이 안쓰러웠는지 어느 여인이 몇 사람들과 함께 몸을 추슬러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일반인보다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기사들의 손이 닿는 게 빠를 것이란 사실은 자명했다.

"...이 정도 놀았으면 됐겠지? 나는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누가 놔준대요?"

살벌한 냉기가 솟구쳤으나, 덕지덕지 이어붙인 와이어로 적어도 메이블의 발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밀런은 창이 박힌 어깨를 억지로 빼내곤 사람들 사이에 달려가 끼어들었다. 낯선 폭발음과 살이 베여나가는 소리, 비명이 뒤섞여 거대한 지하 미궁을 울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황제가 지금까지 신일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에게 소수의 피를 바쳐 다수의 목숨을 구해냈다면, 이 5천 명분의 피는 대체 어떤 재앙을 막기 위함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런은 납득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아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없진 않았으나 그런 경우가 아니었더라도 밀런은 똑같이 행동했을 게 뻔했다.

당연하지, 이상하잖아!

이 수많은 사람이 모두 죄인일 리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동의도 구하지 않은 죄 없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운명에 내걸렸단 말인가. 게다가 지금 5천 명을 죽인다면, 다음 재앙에는 대체 얼마나 큰 희생을 원할지 어떻게 알고. 숨 가쁜 마음으론 그 신이 목숨을 취하려고 일부러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밀런은 등을 돌렸다. 황실기사단으로서의 명예가 실추될지도 모르고, 다시는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보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관심을 둬 주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처럼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굴던 밀런 크레이스는 타인의 시선보다도 자신의 신념을 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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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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