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닝님이 주신 루테라 : 신데렐라
페닝님의 선물
사이퍼즈 HL 드림 / 루드비히 와일드 X 테트라 지오메트릭
감미로운 클래식,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 여흥으로 가볍게 나누는 춤, 집어 먹기 좋게 내온 음식들, 마실 것, 그들의 입에서 오가는 지적이고 생산적인 대화. 모든 것이 조화롭게만 보이나, 실상은 서로의 지식을 뽐내기에 바쁜 사람. 혹은 진심으로 학술의 발전을 위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 그들 사이에서 투자의 뜻을 내비치거나 역으로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연회장을 살피는 사람. 그렇게 엉망으로 엉켜있는 파티였다. 조화롭진 않아도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모두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꼴이라니. 누군가는 그리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떤 교수의 대리로서 참석한 한 여자는 구석에서 연회장의 상황을 살폈다.
자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걸세. 자력 능력자이자 인류학 교수인 헤나투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테트라 지오메트릭을 추천했다. 그를 대신하여 이번 학술 연구회, 라는 이름의 정신없는 파티에 참석하게 된 테트라는 새삼 그에게 감사를 느꼈다. 정신이 없긴 하나 얻을 것은 참으로 많았다. 이번 파티의 경우 능력자와 비능력자의 구분 없이 참여하여 의견을 나누었고, 능력자인 테트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도 꽤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능력자에게 편견이 아닌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대했다. 급한 일이 있어 대신 참석해달라 부탁한 것이긴 하나, 어쩌면 이런 경험을 해보라는 뜻으로 일부러 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에 얼굴이 더 밝아진 것일까.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대하며 능력에 대한 질문도 했으나, 그녀가 공부 중인 것들이나 입자에 대한 것, 그 외 자신들의 분야와 겹치는 것에 대한 것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가볍게 연회장에 준비된 것을 집어 먹고 있으면, 화려한 내부가 그제야 눈에 들었다. 한껏 갖춰 입고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학술회에 온 건지 무도회에 온 건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나 대화가 잠시 멈춘 지금, 대화가 멈추면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테트라는 제 옷차림을 살폈다. 실례가 되지 않게 단정하고 깔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정장이나 드레스, 구두가 없으면 뭐 어떤가. 그렇게 생각하며 제 신발을 내려다보던 것도 잠시, 눈앞을 지나가는 어떤 남자의 발과 그 발이 신은 구두에 테트라는 고개를 바로 들었다. 한참 밝은 얼굴로 있던 그녀의 얼굴이 굳는 순간이었다.
“잠입하는 사람 맞아요? 왜 그걸 신고 있어요.”
그렇게 고개를 들면 그녀와 비슷한 잿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쟁반에 담긴 샴페인 잔을 주위에 나눠주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샴페인을 건네주려는 듯 가까이 다가오면, 염색이나 가발 같은 것으로는 가릴 수 없는 눈. 그리고 그 눈 위로 슬쩍 내렸다가 올라가는 금빛의 속눈썹이 보였다.
“그 정도 눈썰미는 있었군요.”
테드 파워즈. 그리고 루드비히 와일드.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사냥감을 궁지로 몰아넣고, 더 깊이 숨을수록 빛이 되어 나타나 태워버리는 자. 헌터. 그런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가발과 안경, 그리고 도우미 복장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정체를 감춰두고 왜 구두만 자신의 것을 신었는지. 테트라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든 말든, 루드빅은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입은 건, 어째서입니까?”
루드빅이 지적한 것은 테트라의 복장이었다. 평소에 볼 때보다야 좀 더 격식을 차린 듯한 옷이긴 했으나, 다른 사람들처럼 파티를 즐기러 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설마 이런 곳에 있을까 하긴 했지만.
“지식을 나누는 자리이고, 깔끔한 정도라면 복장은 상관없죠.”
“그탓에 제가 당신을 바로 찾았는데도 말입니까.”
덕분에 찾기 쉬웠다고. 루드빅의 말에 테트라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곳에서 그를 마주한 것에 대한 짜증인가? 아니면, 내심 신경 쓰고 있던 것을 그가 들쑤셨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루드비히 와일드로 인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이 대화를 길게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12시쯤 일이 있을 예정이니, 그전까지만 입 다물어주시죠.”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요.”
“피를 보는 일은 아니니 괜찮을 겁니다.”
차라리 피를 보는 일이 깔끔하지, 그게 아니라고 하니 더 꺼림칙하다고. 테트라는 그 생각을 말이 아닌 얼굴 표정으로 보이고 있었다. 참, 잘 보인단 말이죠. 루드빅은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곳에서 능력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많다. 그렇기에 한 번은 테트라 지오메트릭에게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그 관심을 다시 이용하려면. 그렇게 계산을 하던 루드빅은 대뜸 테트라를 끌고 파티장 뒤쪽의 스태프 룸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잠깐, 어딜 가는……!”
“시선이 쏠리는 걸 원하지 않을 텐데, 조용히.”
“그건 당신 쪽이겠죠!”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막무가내로 테트라를 끌고 온 루드빅은 대뜸 스태프 룸의 옷장을 열더니, 옷 몇 벌을 골라보고, 테트라의 얼굴 아래나 몸에 대어보다 정한 것을 들려주고 근처의 탈의실을 가리켰다. 어쩌라고요. 테트라가 순순히 듣지 않는 것에 직접 갈아입히길 원한다면, 이라고 일부러 운을 띄웠다. 그 순간 테트라가 얼굴을 구기며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드레스 차림의 그녀를 유심히 보던 루드빅은 손으로 치맛자락의 끝을 잡더니 그것을 빛으로 깔끔하게 태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손님 중에 드레스가 상하거나 찢어져 곤란할 때 예비용으로 둔 것인 듯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그렇게 깔끔하게 실밥이나 불필요해 보이는 천을 제 마음대로, 취향대로 재단해낸 루드빅은 마지막으로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구두까지 신긴 뒤 밖으로 그녀를 끌고 나왔다.
“그 눈이 장식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죠.”
무슨 말인지. 그것을 모르는 듯한 테트라를, 루드빅은 일단 거울 앞으로 이끌었다.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체크하세요. 여전히 제멋대로 구는 것에 분노하던 것도 잠시, 테트라는 거울 속의 자신이 영 어색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어색한 것인지, 새로운 것인지. 비슷한 말이나 느낌은 다른 것이라.
“이런.”
이렇게 얌전해질 줄은 몰랐는데. 루드빅은 거울을 보고 있는 테트라의 옆에서 거울에 비친 그녀를 같이 보았다. 제가 거울에 비치는 데도 피하지 않는다. 처음 선물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 같기도, 평소에 보이던 적대심이 아닌 약간의 부끄러움과 수줍음이 있는 것이 묘하기도 해 지켜본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슬슬 움직여야 하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죠.
루드빅은 그대로 테트라가 연회장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사람 사이로 툭 밀쳤다. 휘청이다 중심을 잡은 테트라가 연회장 가운데에 자리하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일부러 바로 위에 있던 작은 샹들리에의 연결고리에 빛을 쏘아 떨구었다. 저 인간이. 그렇게 말하듯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평소 같다는 생각에 루드빅이 픽 웃고선 몸을 돌렸고, 그것을 입자를 굳혀 막아낸 뒤 옆으로 치운 테트라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잠깐, 저기, 저쪽에 저 사람……!”
저 사람 좀 잡아주세요!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테트라의 능력을 본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말을 걸어왔다. 세상에, 위험했네요! 오, 미스 지오메트릭, 방금 그게 당신의 능력인가요? 옷은 또 언제 갈아입으셨담. 드레스가 참 잘 어울리는데 직접 주문해서 제작하셨나요? 자, 파편이 위험하니 일단 저쪽으로 가서 마저 얘기하죠. 그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얼마나 시달렸을까. 겨우 빠져나와 뭐라도 마시려 사람을 부르면, 이번엔 금발의 남자가 주스가 담긴 잔을 하나 건네주었다.
“쉿.”
루드비히 와일드. 이젠 이상한 변장도 관두고 아예 본 모습으로, 도우미 복장이 아닌 정장으로 빼입고 와선 뻔뻔하게 그가 테트라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신, 아니, 야, 너, 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에 루드빅은 태연하게 건배, 하고 잔을 가볍게 부딪친 뒤 웃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으니, 그 옷은 의뢰비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공범 아닙니까, 이제. 루드빅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누가……!”
누가 공범이야! 테트라는 차마 크게 외치지 못해 한숨만 내쉬고,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한 번에 들이켰다. 아, 이건 또 뭐야. 어디서 가져온 건지, 끔찍하게도 시큼한 레몬주스에 얼굴이 도로 구겨졌다.
페닝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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