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 그랜드 오더

당신께서 두려워 하신다면

드림 제4의 벽 테마 앤솔로지 『THE 40URTH WALL』 참가작. Fate/GO 아시야 도만 논커플링 드림

1차 지인제 제4의 벽 테마 드림 앤솔로지 『THE 40URTH WALL』 참가작입니다. 주최분의 허락을 받아 8월 3일 공개합니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등장인물 아시야 도만과 독자적인 설정이 있는 마스터 드림주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후지마루 리츠카가 아닌, 드림주가 인류 최후의 마스터인 원작의 평행세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설정 요약

드림주: 유진
본명은 모건 로드리게스 마르멜라도바. 편의상 가명을 쓴다. 인류사의 이치, 인리를 지키는 기관 칼데아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유진은 칼데아의 생존자 중 유일하게 인리를 구할 수 있는 적성자(마스터)였다. 역사와 전설 속 인물을 사역마(서번트)로 소환하여, 인리의 위기에 맞서는 임무를 받았다. 무기력하고 느긋한 성격이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강력하다. 자신을 배신했다가 돌아온 서번트, 아시야 도만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 소유욕과 증오 위주의 감정. 확실히 연정은 아니다.

 

드림캐: 아시야 도만

10세기 일본의 법사 음양사. 생전 아시야 도만의 악한 모습에 여러 신령이 섞인 형태로 칼데아에 소환되었다. 마스터 유진이 신뢰하는 서번트였으나, 칼데아를 배신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 인류악이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인류악이 되려면 모순적이게도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했기 때문. 유진 일행에게 패배, 소멸 후 재소환되어 유진과 다시 주종 관계를 맺었다. 생전 시간 여행자였던 유진의 할머니를 제자로 들인 적 있다.


“도만.”

“네.”

“얼터에고 아시야 도만.”

“네에, 마이 마스터. 말씀하시죠.”

유진은 치즈 쿠키를 오른손으로 하나 집어 들었다. 네모 베이커리가 마스터 개인실로 보내준 치즈 쿠키와 오렌지 티에서 좋은 향이 올라온다. 함께 담소를 나누는 상대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간식이었다. 도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아시야 도만은 마스터와 서양식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자주 말을 섞었다. 당장 이틀 전에도 마스터는 가르침을 청해 도만을 방으로 불렀고, 방금까지만 해도 음양도의 활용 방식에 대해 떠들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종복은 눈치껏 분위기를 읽어낸다. 이토록 갑작스레 자신을 나직이 부른다면, 제 허물을 따지려는 짓이다. 그래도 이름을 불러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림보나 나찰왕이라고 하면 멸시와 조롱을 섞겠다는 선포였으니까.

치즈 쿠키를 느릿하게 씹어 삼키던 입이 열린다.

“어제 꿈에서 너랑 나를 보았어.”

“그러셨군요.”

“내용은 안 궁금한가 봐?”

“으으음. 어쩐지 소승의 꿈일 것 같았기에.”

비어버린 오른손이 찻잔을 쥐었다. 한 모금 들이킬 듯 느릿하게 들어 올리더니, 테이블 위에 얹어둔 도만의 왼손 끝을 내리누른다. 아주 힘을 주어, 썩어가는 검지와 중지 첫 마디에 열기를 전한다. 길고 뾰족하게 다듬은 손톱이 아래로 휘어 무게를 견뎌낸다. 평범한 인간의 육신이었으면 바로 손을 내빼며 기겁했겠지만, 갈고닦아 짐승까지 꿈꾸었던 영기는 강하다.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걸고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서번트가 너만 있는 게 아니긴 해. 하지만 네가 아니면 이딴 걸 꿈으로 안겨줄 녀석도 없지 않을까.”

“오호, 말씀이 심하십니다.”

악념으로 가득 찬 정신은 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되짚어 본다. 마스터와 서번트는 소환과 동시에 끈끈하게 연결된다. 동시에 같은 꿈을 꾸거나 서로의 적나라한 정신세계를 엿보는 일도 드물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마력이 충분하다면 서번트에게 수면은 필요 없을 터였지만, 유진의 역량과 칼데아의 마력 리소스 절약으로 인해 종종 졸음을 느끼는 서번트가 숱하게 있었다.

어제 도만이 눈을 붙인 이유도 이와 같았다. 일부러 잠자리에 들어 마스터의 속내를 엿보거나 겁줄 기회를 노리려던 게 아니었다. 치졸한 악의와는 거리가 먼, 거역할 수 없는 휴식이었다. 눈을 감고 마주한 것은 우연이나 다름없는 계시, 무의식이 자아내는 욕망. 꿈속에서 마스터는 죽어 있었다. 평소 빳빳하게 치켜들던 고개가 앞으로 푹 꺾인 채, 열 개의 손톱에 목을 꿰뚫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살육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같은 꿈을 본 마스터에게는 그런 아쉬움이 와닿지 않았겠지만.

“실망스럽진 않았어. 내 서번트라고 전부 나랑 사이가 좋은 건 아니잖아. 하지만….”

“웃어넘길 만한 꿈은 아니겠지요. 이해합니다. 많이 놀라셨을 테지요. 사과드립니다.”

“잠깐만, 네 이해나 사과 따위를 구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잔잔하던 낯에 서서히 노여움이 떠오른다. 도만의 손가락을 짓누르던 찻잔을 거두는 대신, 허공을 움켜쥐듯 반대쪽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그냥 악의라면 괜찮아. 네가 악의에서 안 끝나서 문제지.”

유진이 찻잔을 놓은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들어 도만과 눈을 맞추었다. 자연스레 도만도 시선을 낮추어 유진을 가만 들여다본다. 그의 주인은 무력한 양 한 마리 같은 자였다. 어느 서쪽 구세주가 난 땅에선 오래전 번제에 어린 양을 바쳤다던가. 양털 같은 머리카락, 아둔하고 겁 많은 눈, 그리고 가냘픈 목.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육식수의 앞발 앞에 뜯겨나가야 했을 텐데. 이런 종복의 속내는 제쳐둔 채, 유진은 말을 이어나갔다.

“칼데아 라이브러리에 접근했다고 들었어. 고약한 망상에 수상한 짓까지 하면, 의심할 만하지 않아?”

“얼마 전 무라사키 시키부님께서도 라이브러리 자료를 열람하셨지요. 음, 지하 도서관에 새로 들일 책을 찾아두신다고 하셨고요. 저만 나무라실 일은 아닙니다.”

“시키부 얘기라면 나도 알아. 그럼 넌 뭘 찾아보려고 한 건데?”

“으으음. 그야 단순한 지적 호기심입니다. 인리의 편에 선 이상, 더 배워서 도움이 되기 위함이죠.”

“거짓말.”

턱을 괸 오른손에 긴장이 깃든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서 손등 위에 새겨진 붉은 문양이 꿈틀댄다. 마음만 먹으면 저것을 휘둘러 도만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겠지만, 유진은 망설이고 있었다. 밥 먹듯 그를 책망하고, 위계로 짓눌러 왔음에도 매번 주저한다. 인류애의 증명이다. 사람을 사랑하다 못해 사람 모양새를 취한 것을 해하길 꺼린다. 마주 앉은 나찰왕이 갖지 못하여 안달 났던 마음이고, 가증스러워 견딜 수 없는 정신이다.

“그럼 무얼 열람했는지나 들어볼까.”

“으음. 으으음.”

“대답해.”

마스터의 왼손이 테이블을 두들기며 재촉한다. 크게 간격을 두어 두 번, 짧게 한 번. 다시 짧게 톡, 길게 툭 툭.

“… 마스터에 대한 정보 전반을 읽어 보았습니다.”

“…… 왜?”

잠깐의 정적. 유진의 짙은 눈썹이 잘게 떨려왔다. 콧등과 뺨에 핏기가 가실 듯 말 듯하고,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진다.

“그야 방금 말씀드린 대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이곳 칼데아에 계시기 전부터, 가장 최근의 격전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눈에 담았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참, 대단한 지적 호기심이네. 네가 딱히 건질 것도 없을 텐데.”

“그렇더군요. 정말이지, 소승의 충의를 의심하셨다면 아주 헛다리 짚으셨겠습니다.”

“닥쳐.”

긴장이 사그라든 공기 속, 치졸한 악의가 뛰논다. 뻔히 속내를 알면서 떠보는 말. 의미 없는 대화에 서로 잔가시를 심어 주고받는다. 이런 말 몇 마디로 두 사람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테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을 테니 변함없이 미워한다. 대놓고 불신을 선언하며, 비꼬다 못해 더욱 자극한다.

“소승이 무얼 알까 봐 이리도 겁내십니까?”

“겁내는 게 아니야. 경계하는 거지.”

도만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찻주전자를 쥐었다. 제 손가락을 짓이기던 무게, 제 몫의 차를 따라낸다. 식어버린 차가 악담을 준비하는 혀를 적신다. 온기가 사라져 무뎌진 향과 떫은맛이 악성(惡性)을 부추긴다.

“하지만 경계하시면서도 소승에게 베풀어 주시지요. 만능의 원망기(願望器)를 다섯 개나 하사해 주셨고요.”

“거기까지만 해. 성배를 다섯 개나 주었는데, 사람을 사랑하긴커녕 주제 파악도 못 하지.”

유진이 파르르 떨리던 눈썹을 추켜세웠다. 나른해 보이던 얼굴이 구겨져, 미간에 골이 생긴다. 턱을 괴던 손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잡는다. 똑바로 노려보기 위함이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늘 분에 넘쳐 감사하고 있지요. 차마 부끄러워 내색하실 수 없고, 겁을 내시면서 소승을 아끼시는 마음….”

“그만하라고 했어.”

내려둔 손이 테이블을 더듬어 찻잔을 쥐었다. 한 번 손잡이를 집고도 몇 번씩 고쳐잡는다. 휘두르기 위해 무게와 방향을 가늠하는 짓이다.

이를 아는 도만은 머지않아 일어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인상을 구겨주실까. 얼마나 오랜 시간 어울리지도 않는 진노에 휩싸이실까. 저것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지극히 아끼고 곁에 두면서, 오롯이 손아귀에 넣지 못해 심술을 부리고 두려워한다. 사랑이 낳은 악성의 발현이다. 사랑 없는 자는 이를 즐겨 제 주인을 자극한다. 싸구려 유흥이 시작된다.

“… 그래도 한 번쯤은 좋은 말씀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이 한 마디가 곧 방아쇠였다. 절반도 남지 않은 오렌지 티가, 찻잔 속에서 뛰쳐나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대로 치즈 쿠키가 담긴 접시를 넘어. 도만의 이마 위에 안착했다. 미지근한 물기가 희고 검은 앞머리를 적신다. 콧등을 타고 흘려내려 은은한 향이 스친다. 도만이 소맷동으로 눈가를 닦아내고 나면, 맞은 편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유진이 보인다. 잔뜩 구겨 시뻘게진 낯짝이 볼만하다.

“맞아, 나는 네가 필요해! 그런데도 너를 미워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겠어. 네가 누구보다 강했으면 좋겠어. 네 힘을 믿고 있는데, 네게 어떤 기쁨도 주고 싶지 않아.”

“… 으으음. 계속 말씀하시죠.”

“…… 너를 곁에 두고 싶지만, 네가 다가오면 가증스러워 죽을 것 같아.”

도만의 마스터가 떨리는 손으로 빈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양손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고르며 마구 뇌까린다. 외침이라기 보다 흐느낌에 가깝게 읊조린다. 과거에도 그를 부추겨 몇 번이고 보았던 표정이다. 예전에도 참지 않고 쏟아냈던 말이다. 들을 때마다 종복은 흥이 오른다. 이대로 눈물을 흘리시려나. 아니면 지극히 약한 주먹을 휘둘러 주시려나. 따귀를 세게 때려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주인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짓밟았다는 증거면 무엇이든 좋을 테다.

그러나 유진은 더 끓어오르지 않았다. 몇 번은 더 잡아먹을 듯이 굴어야 할 텐데, 손을 올리거나 속사포처럼 쏘아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맞춘 채, 이를 악물고 숨을 고를 뿐이었다. 매서운 눈길은 그대로지만 점차 노기가 잦아든다. 눈을 깜빡일 때 두어 번씩 몰아쉬던 숨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유흥은 여기서 멈추었다.

“투정은 끝나셨습니까?”

도만이 넌지시 비꼬듯 말을 걸어 본다. 유진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림이 사라진 손을 뻗어 찻주전자의 뚜껑을 슬며시 열어 보았다.

“… 찻주전자가 비었네.”

명백한 혼잣말이었다. 동시에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유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제 방 벽에 걸린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만지작거렸다. 잠깐 수신음이 오간다.

“아, 거기 주방이지? 네모 베이커리 있어? 오렌지 티 남는 거 있어?”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목소리가 짐짓 부드럽고 명랑하다. 방금까지 울렁이듯 털어놓던 어조와 딴판이었다.

“소승은 말차로 부탁드립니다.”

괜히 먹히지도 않을 말을 붙여보지만, 통화에 열중하는 마스터는 반응하지 않는다. 슬쩍 귀에 담았을지라도 무시했으리라.

“아 있어? 다행이다. 바로 가지러 갈게.”

통화가 끊기는 전자음이 가늘고 길게 울린다.

“으음, 아까 더 화내셔도 되셨습니다. 아예 멱살을 잡으셔도 상관없었고요.”

“…… 때리고 싶긴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무서웠어.”

담담한 음성이다. 아주 완벽히 겁먹었다기보다 갑작스레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보는 눈이라뇨? 칼데아 분들이 아실까 두려우신 걸까요?”

언제부터 그리 신경을 썼다고. 칼데아의 스태프 중에서 아시야 도만의 기묘한 처우를 모르는 자는 하나도 없을 텐데. 도만에게는 실로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으나, 적당히 말을 맞추어 주었다.

“저기 있잖아. 쳐다보는 사람들이 아까부터 있었어.”

“이 방엔 소승과 마스터, 저희 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 똑바로 봐. 저기 위, 여기서 5190번째 활자를 보는 눈이 많잖아.”

그제야 아시야 도만은 눈길을 돌렸다. 정말 그의 검은 눈동자를 굴려 목격했다는 게 아니라, 흰 바탕과 검은 선이 자아낸 향연을 인지한다. 모니터와 종이로 관조하는 이들. 군림하되 지시하지 않으며, 즐거이 눈길을 보내는 여러분. 허공에 대고 인사드릴 순 없으니 이대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만, 찬사를 보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넘어가기 전 이것 하나는 따져 보고 싶군요. 마스터께선 제게 당신 본심을 토로하시는 것보다 여러분의 시선이 더 두려우신가 봅니다. 이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으음, 솔직히 질투 나는군요.

“도만, 그만 말해.”

“네에.”

미안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줘 버렸네. 내 서번트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거든.

“여기서 테이블 치우고 나가 있어. 난 주방에서 차나 더 받아올 거야. 아, 그리고 나가는 길에 세이 쇼나곤이 보이면 다과회에 와 달라고 전해줘.”

“으음, 매정하셔라. 그래도 마이 마스터, 내키실 때가 오면 언제든 다시 불러주시길.”

“적어도 오늘은 안 부를 거야. 영기 보관실에나 틀어박혀 있든가 해. 그럼 다녀올게.”

유진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개인실의 문을 열었다. 종종걸음을 따라 한 줄기 바람이 도만의 뺨을 스친다. 이제 방 안에 남은 것은 물세례를 맞은 서번트, 테이블 위 흥건한 물 자국과 남은 치즈 쿠키뿐. 종복은 유진이 찻잔으로 짓누른 검지를 슬쩍 들어 올렸다. 손톱 끝으로 공중에서 가벼이 바둑판무늬를 그린다. 옷과 머리, 테이블에 묻은 얼룩이야 이토록 간단한 음양술로 지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끓어오른 마음은 어떤 술식으로도 덮어버릴 수 없었다. 짧은 희열, 당혹감, 오가는 긴장 그 모든 것이 선명하고 흥미로웠다.

자, 그래서 활자를 헤아리시는 여러분. 소승을 계속 지켜보고 계십니까? 실컷 주군의 마음을 할퀴어 놓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익숙한 일이니까요. 다만 거듭 말하건대, 그분께 여러분만 한 두려움을 선사할 수 없어서 아쉽고 분할 따름입니다. 소승은 지금 어젯밤 본 꿈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손쉽게 꺾어버렸던, 인류를 사랑하는 생명을 가만 그려봅니다. 화가 납니다. 으으음, 할퀴어 목덜미를 찢어내고, 힘없이 늘어지는 육신을 조롱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이런 고약한 심보도 인류를 사랑하는 분께는 당해낼 수 없겠죠.

아, 내키는 대로 너무 많이 떠들어 버렸군요. 뒷정리도 끝났으니 이만 무대에서 퇴장해 보겠습니다. 부디 마스터께는 비밀로 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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