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ERA_CM

루테라 / 시타 님 커미션

체리꼭지묶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테트라는 구겨지는 미간을 손으로 꾹꾹 짚으며, 루드빅이 흔드는 체리 꼭지를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눈앞에 두고, 왜 굳이 이런 짓에 협조해야 하는 건지 고뇌해야만 하는 이 순간이 그저 굉장히 유감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이는 순조롭게 식고 있을 텐데. 체리 파이는 따뜻할 때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테트라로서는 자꾸만 속이 탈 뿐이었다. 정작 그 장본인은 그런 제 속도 모르는지, 그저 태연한 표정으로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체리 꼭지를 살살 흔들 뿐이었다. 마치 자신을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손짓에, 테트라는 잠시 눈을 감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 오늘은 모처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이번 주 내내 특별히 흠이 가거나 거슬리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주는 메리 파이의 여름 시즌 파이가 도착하는 의미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 도착하는 것은 체리 파이로, 사워 체리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체리 필링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시트지로 감싸 점차 촉촉하게 물드는 그 식감이란! 상상만 해도 없던 식욕이 절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더욱 맛있게 먹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휘핑크림을 함께 사기까지 했으므로, 테트라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분명 그래야만 했는데.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마저 열어보시죠."

"……."

왜 이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걸까. 테트라는 제 양손에 한가득 담긴 파이 상자에 기뻐할 겨를도 없이, 제 앞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이 남자, 루드비히 와일드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그는 테트라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손에 들린 상자를 턱짓으로 가리킬 뿐 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변덕이 들어서 여기에 찾아온 걸지, 테트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 하나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제 행복을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열어 보였다.

아직도 따뜻한 상자 안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체리의 향을 느끼며 뚜껑을 열어보면, 잘 구워진 체리 파이의 자태가 상자 안에 꽉 들어차 있었다. 잘 구워진 격자무늬 사이에 있는 체리 한 방울까지 눈에 담고 나서야, 테트라는 더 이상 제 뒤에 있는 헌터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번 시즌의 무화과 파이도 훌륭했는데, 역시 이번 시즌 파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휘핑크림은 어떻게 얹으면 좋을까, 이번에는 몇 조각으로 나눠서 먹어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테트라에게 매우 유감스럽게도, 첫 번째 불행이 예고 없이 닥쳐왔다. 테트라가 파이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는 사이, 가만히 지켜 보고 있던 루드빅이 체리 파이 위에 장식되어 있던 체리 한 방울을 쓱 집어 가선 그대로 한입에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

"달군요."

파이에 쓰인 체리와는 다른 종인 모양인데. 어느덧 꼭지만 남겨두고 체리의 맛을 평가하는 루드빅을 보며, 테트라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 귀엽게 장식되어 있는 유일한 체리 하나를, 지금 저 헌터가 냅다 먹어 치운 건가? 이건 마치 딸기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빼앗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테트라가 당장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지려던 찰나, 먼저 입을 연 것은 루드빅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혀로 체리 꼭지를 잘 묶는다면, 키스에 능숙하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걸."

"네? 갑자기 무슨."

"어때요, 당신도 해 보시겠습니까? 진짜일지 아닐지."

루드빅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은 갑작스러운 발언은, 테트라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난데없이 남의 체리를 훔쳐 먹더니, 이번에는 입으로 체리 꼭지를 묶어보라고?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이 순간 테트라가 해야 할 말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다. 남의 것에 손을 댄 걸 먼저 지적한 다던가, 당장 나가라며 가차 없이 내쫓는다든가 하는. 그러나 정작 입 밖에 나온 건 테트라로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입에 댄 걸 사람에게 막 건네지 마세요!'

그리고 이것이, 테트라의 두 번째 불행이었다. 테트라의 말을 들은 루드빅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순순히 자신이 입에 댄 체리 꼭지를 말끔하게 씻어 테트라에게 건네준 것이다. 어디 해보라는 말과 함께. 그리하여 지금, 이 상황에 오게 된 것이다.

"…정말 깨끗하게 씻었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테트라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솔직히 말해서, 체리 꼭지를 혀로 묶는다는 발상은 대체 누가 한 것일까. 그리고, 체리 꼭지를 혀로 묶어서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그리고 이 인간은 왜 제게 이런 짓을 시키는 것일까. 키스 얘기는 또 뭐고?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제 속도 모르는지, 루드빅은 어서 빨리 해 보라면서 테트라를 재촉할 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오늘 처음 알게 된 지식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체리를 먹으면 체리 꼭지를 손으로 잡아서 체리만 떼어 먹지, 누가 체리 꼭지를 입에 굴릴 생각을 하겠느냔 말이다. 적어도 테트라는 단 한 번도 이를 시도해 본 적 없는 사람에 속했으며, 그렇기에 곧잘 해내겠다는 말이 선뜻 입에 서 나오질 않았다.

"굳이 이런 걸 해야 해요? 과일만 먹으면 됐지."

"글쎄요, 일단 해 보시죠."

"애초에, 하면 뭐가 좋은 건데요?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런 걸 하는 거예요?"

"해 보라니까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테트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드빅을 쳐다보았다. 루드빅은 고개를 삐딱하게 들어 올리며 테트라를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표정에 담긴 오만한 표정이 마치 못하겠느냐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테트라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 얼굴에 대고 차마 못 하겠다는 말만큼은 할 수가 없어서, 결국 테트라는 루드빅의 손에 쥐어진 체리 꼭지를 빼앗아 냅다 입에 넣었다. 딱딱한 막대기가 입안에 감도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곧잘 뱉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덧 자리를 잡고 앉은 루드빅이 어디 계속해 보라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았다. 혀 안에서 굴려지는 꼭지는 자꾸만 입안을 헛돌고, 이빨로 잡고 있자니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실수로 끄트머리를 잘라 꼭지가 더 짧아졌을 때는 난처하기까지 했다. 대체 이걸 무슨 수로 묶는단 말이야? 좀처럼 묶이지는 않고, 잡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니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체리 꼭지와 씨름하는 테트라의 미간이 점점 깊게 구겨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드빅은, 짧게 허,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을 짚고 몸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대로 테트라와 눈을 마주한 루드빅은 제 입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테트라는 그 제스처가 입을 열어보라는 뜻임을 깨달았고, 곧 입을 열어 제 안에 있는 체리 꼭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입 안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설프게 꼬여있는 체리 꼭지가 있었다. 그리고 루드빅은, 그 체리 꼭지를 이로 문 뒤 제 입 안에 넣고 몸을 다시 뒤로 빼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인지하지 못한 테트라가 그대로 가만히 얼어붙어 있으면, 루드빅은 혀를 몇 번 굴리더니 순식간에 매듭이 묶인 체리 꼭지를 입을 벌려 보여주었다. 속임수도 무엇도 없는, 순수 실력이라는 걸 과시하는 것처럼. 그 모습에 기가 찬 테트라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그야말로 당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란 듯이 짓궂게 미소 짓는 루드빅을 보며, 테트라는 자신이 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대로 몸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혀 위에 올려진 체리 꼭지를 도로 가져간 건,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루드빅이 그랬던 것처럼, 입으로 체리 꼭지를 가져간 테트라는 그대로 꼭지를 입 안에 넣고 다시 이리 저리 굴렸다. 풀려있는 걸 꼬는 건 어려웠지만, 꼬인 걸 푸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체리 꼭지를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데에 성공한 테트라는 다시 입을 열어 보였다. 이걸로 됐냐는 것처럼.

"이거라면 무승부죠?"

"…허!"

답지 않게 한쪽 미간을 좁히던 루드빅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테트라는 체리 꼭지를 그대로 뱉어냈다. 서로의 입을 오가며 축축하게 젖은 체리 꼭지를 계속 물고 있자니 아무래도 찝찝해진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행동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간접 키스의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닌가?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테트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아무리 지기 싫었다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람? 제 머리를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테트라를 본 루드빅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창백해지고, 붉어지기도 하는 모습 이 제법 볼거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자신도 제대로 당한 것 같다며, 루드빅은 순순히 결과를 인정하기로 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었으니, 저로서도 나쁠 것이 없는 결과였다.

물론 그건 그거고,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갚아주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일단 그 일환으로, 받아낼 건 받아내도록 할까. 루드빅은 아직도 고뇌에 빠져있는 테트라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근처에 있던 나이프를 들어 눈앞에 있는 체리 파이를 잘라냈다. 이미 다 식은 파이의 안에서부터 체리 필링이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광경을 만족스럽게 지켜보곤, 잘라낸 파이를 들어 입에 넣었다. 바삭하고 쫀득한 시트지 안에 든 체리 필링은 조금 전 루드빅이 먹었던 체리와는 다른 맛이었다.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루드빅은 여유롭게 파이의 맛을 평했다.

"나쁘지 않네요."

시큼하지만 달콤한, 여름에 걸맞은 맛이었다.

시타 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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