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무아르!

27살이 된 귀하에게

엔딩이 난 후 편지를 주고받지 못했다는 배경입니다.



27살이 된 무아르에게

생일을 축하해!

가능했다면 내가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아쉬울 따름이야. 생일인데 맛있는 건 먹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는 많이 받았고? 생일파티는 했어? 생일을 여러 번 까먹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설마 이번에도 생일을 까먹은 건 아니지?

너무너무 아쉽다! 내가 무아르랑 함께 있었다면 몰래 깜짝 파티를 열어서 놀라게 해주는 건데!

사실 이 편지가 무아르한테 갈 수 있을 진 잘 모르겠어. 무아르도 알다시피, 무아르의 세계 기준 시각으로 2023년 12월 2일에 우편함이 사라진 후로 우편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잖아? 혹시 그곳에는 우편함이 왔을까?

... 우편함이 왔는데도 무아르가 편지를 보내지 않은 것이라면 그건 너무 서운할 거 같아. 뭐, 바빠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무아르에게 편지를 받지 못하는 동안 나는 꾸준히 편지를 써놨거든? 무려 24통이나 된다고. 사실 더 많이 쓰고 싶었는데... 무아르는 시간이 없잖아. 그래서 쓰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하루에 한 통씩만 작성했어. 이 편지들이 도착하는 게 언제일지는 몰라도... (글씨가 꾹꾹 눌러 작성되어 있다. 편지를 작성할 당시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번 편지는 제발, 제에에발 무아르에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무려 생일이잖아? 무아르가 태어난 날이잖아?! 무아르는 내 생일날 축하해 줬는데, 나만 축하하지 못하는 건 너무 억울해. 게다가 반드시 축하해 줄 거라고 호언장담까지 해놨는데 못 해주면... 그건 정말 너무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체통아, 제발 좀 와주라!

아무튼, 나는 오늘 무아르의 생일을 맞이해서 나 혼자서 무아르 생일파티를 개최했어. 물론, 무아르가 없는 생일파티지만!

내 생일 이후로 나는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어서 지금껏 아무런 음식도 하지 않은 채로 살았는데 말이야, 덕분에 오랜만에 또 주방을 가동했지 뭐야? 그러기 위해서 식재료들도 구하러 가고... 무아르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내 생일 때는 초콜릿케이크가 주메뉴였는데 이번엔 오므라이스가 주메뉴여서 구해야 할 재료들도 완전히 달라졌거든. 그래서 오랜만에 재미있었어!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쌀을 구하러 갔을 때였거든. 쌀은 이곳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은 재료란 말이야. 구하려는데 꽤 고생했다고? 자세한 내용은 24통의 편지 중 한 통에 구구절절 써놨으니까 그걸 봐봐. 음,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제부터 벼를 기르기로 했어. 다른 텃밭들도 있긴 한데, 벼는 처음 길러봐서 신기해.

오므라이스라는 음식은 처음 만들어봤거든. 내 데이터에 레시피가 들어있어서 그대로 따라 하긴 했지만, 잘게 재료들을 자르고 함께 볶은 후에 계란을 부쳐서 그 위에 올리는 건 나름 재밌었던 것 같아. 왠지 음식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무아르가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걸까? 이불을 덮은 따뜻한 음식이잖아.

그 후엔 아직 따끈한 오므라이스 위에 초를 27개를 꽂고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무아르의~ 생일 축하합니다~ 하고선 박수까지 열정적으로 쳐주고 말이야. 무아르가 초를 불 수 없어서 내가 초를 불긴 했지만... 아무튼 무아르도 그곳에서 초를 불고 소원을 빌었겠지? 무슨 소원을 빌었어? 궁금하다.

아! 최근에 사진기를 찾아냈어. 이것도 24통의 편지 중 하나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아무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어! 그래서 사진도 같이 동봉해서 보내 봐.

(27개의 초가 꽂힌 노란색 오므라이스와 한 쪽 손으로 브이를 한 채 웃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사진 밑엔 '무아르 없는 무아르 생일파티. 즐거워!'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이 사진을 보내면 무아르는 처음으로 내 모습을 보는 건가? 무아르가 그린 그림이랑 꽤 닮았으니까 자세히 봐봐! 매일 매일 사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사진기 폴라로이드 종이가 몇 개 안 남아서 말이야. 정말 정말 중요할 때, 꼭 찍어서 보여주고 싶을 때 가끔 사진을 찍어서 보내줄게. 마음 같아선 쿠키도 머핀도 우리 집도 주인님의 묘지도 다 찍어서 보내주고 싶은데... 아쉽다.

노래를 부른 후에 오므라이스를 먹었는데 맛이 꽤 괜찮더라고. 이게 무아르가 좋아하는 음식이구나... 하고선 접시 하나를 깨끗하게 비웠어. 오랜만에 음식을 섭취하니까 씹는 행위도 오랜만이어서 즐거웠어! 평소엔 무언가를 씹을 일이 전혀 없으니깐 말이야.

이렇게 무아르 없는 무아르 생일파티 끝! 혼자였지만 즐거웠어!

...하지만 외롭긴 했어. 아무래도 혼자잖아. 주인님이 죽은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야. 편지도 끊기고, 혼자만 있으니까 외로워. 물론 쿠키와 머핀이 있지만... 그래도 나랑 대화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깐 말이야. 나는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가 봐. 그렇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인 걸까? 아무래도 이 편지를 보내는 데에 실패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을 찾아 멀리 떠나봐야겠어. 지구상 어딘가에 사람 한 명쯤은 있을 거 아니야. 그리고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거야. 좋은 생각이지? 편지를 보내게 된다면 그 계획은 좀 더 미뤄두겠지만...

무아르 생일에 너무 우울한 이야기를 적었나? 아무튼 무아르 생일 축하해! 27년 전의 오늘 무아르가 태어났을 거란 걸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다. 무아르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은 어땠어? 궁금해. 검은색 눈과 보라색 눈을 가진 예쁜 아기였겠지?

아, 또 딴소리로 빠질 뻔했네. 정말 마지막으로, 무아르 진심으로 생일 축하하고, 오늘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냈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 편지 줄일게.

덕분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 라이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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