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BL] 크로스드 소드 | 주인공이 노예가 되어버렸다 |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사랑은……
벨루냐 님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주인공이 노예가 되어버렸다”였다. 리디 1권무에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읽었던 게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취향이어서 기억해뒀다가 사야지~ 하고 나중에 구매했었다. 그리고 전권 정독, 역시 취향이었다. 그러다가 여러여러 일이 있고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가장 최근 작품)를 읽은 다음, 첫작이신 크로스드 소드가 궁금해서 얼마 전 구매해서 오늘 완독. 하지만 아직 외전을 읽지 않아서 이걸 쓴 다음에 천천히 읽을 예정이다.
각기 다른 내용과 배경, 인물이지만 공통된 부분은 있다고 느꼈다. 일단 키워드가 #떡대수 #키작공(상대적) 라는 것도 있지만! 그 외에 ‘사랑’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본 리뷰 글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이 노예가 되어버렸다
-함께 있고 싶은데 고난이 앞을 막는다면 고난을 부숴버리면 해결!-
배경을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차원관리국의 직원 헤레이스 슐레는 대마법사로 과거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가 차원을 넘어 이곳으로 오게 되어 그때부터 유능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책벌레’에 의해서 판타지 소설 하나의 주인공이 노예로 팔려나갈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헤레이스가 파견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BL 소설이다.
스포일러가 될만한 자세한 내용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헤레이스 슐레는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하는지 모른다. 사랑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모른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연애를 해보긴 했는데 딱히? 좋아하는 건 마법 연구. 모두가 탐낼만한 미모를 가지고 있으나 인간에게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주변에 저에게 흥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중 누구도 헤레이스가 바라는 사랑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헤레이스가 바라는 사랑은 좀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으니까.
반면에 루크는 어떤가. 루크의 사랑은… 직진이다. 브레이크 없는 액셀만 달린 자동차가 핸들조차 곧게 고정되어서 일단 냅다 들이박는 느낌의 직진이다. 생각은 단순, 힘이 세면 머리가 고생할 일이 없다의 정석. 그러나 자신의 사랑만 들이박는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진 않는 법이다. 사랑을 자각하는 건 쉬워도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냥 냅다 부딪쳐서 깨질 뿐이지.
그래서 그런지 헤레이스와 루크의 사랑은 영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한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 방식이 달라서도 있지만(헤레이스는 완벽주의에 의한 회피 성향도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을 막아서는 세계관의 벽이 있다는 거다. 이걸 해결하려고 헤레이스가 뭔갈 해봤다가 여러 가지로 꼬이고 문제가 생기고 거기에 초기에 나왔던 문제인 책벌레에.
하지만 사랑이 있다면 어떻게든! 정확히 말하자면 고난이 있다면 부숴버려서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거기에 사랑이라는 폭탄이 필요했을 뿐. 특히 헤레이스는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데) 상당히 두꺼운 마음의 벽을 가지고 있어서 루크정도 되는 사랑꾼이 냅다 엑셀 밟고 돌진해줘야 부서지는 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사랑을 알려면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부터 쌓도록 해-
세상은 멸망했다. 용사가 사랑을 몰라 성검을 깨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이 마지막 순간, 용사의 앞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 문을 넘은 것은 용사가 아닌 용사의 파티에 있던 곧 죽을 예정이었던 라울 플로렌치다. 바티스타 제르빈 대신 회귀해버린 라울 플로렌치는 결심한다. 내가 용사에게 사랑을 깨우치게 만들어주겠노라고!
이것이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의 도입부다. 그리고 읽으면서 솔직히 말해 웃었다. 라울 플로렌치, 이 녀석은… 본인도 사랑을 모르면서 지금 누가 누구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거야? 사랑이란 게 일단 사람과 사람을 붙여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읽으면서 라울의 등짝을 몇 번이나 때리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라울은 사랑을 모른다. 일단 냅다 붙여 놓는다고 자라는 게 아닌데 냅다 사람을 붙여놓으려고 한다. 누구에게? 사회성이 지극히 떨어진다고 소문난 모험가의 왕 바티스타 제르빈에게. 그런다고 사랑이 키워진다면 이미 진즉에 사랑을 깨우치지 않았을까? 세상은 멸망 안 했겠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진정한 사랑을 멀리서 찾으려 하니 계속 헛발질하고 또 헛발질한다. 거기다가 본인의 상태가 어떤지도 알지 못해서 바티에게 보살핌까지 받는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덕에 바티는 사랑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바티에게 사랑이란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 지켜주고 싶은 마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인 듯 하니까. 그리고 라울이 적극적으로 바티에게 접근하면서 바티는 라울을 향해 그런 마음을 길러갈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엔 신뢰가 영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라울의 업보라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라울의 사랑은 PTSD와 바닥을 치는 자존감때문에 빛을 발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라울이 눈을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겪어온 일들 때문에 자신은 엑스트라, 바티는 주인공―같은 느낌으로 대했다. 하지만 라울은 시작부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게 꼭 성애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사람이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혼자 울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게 사랑이지.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 사랑을 탐구해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사랑에서, 감정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직시할 것. 의심하지 말 것. 일단 사랑을 알려면 자기 자신부터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울의 등을 바티가 몇 번 때려줘서 만족했다.
크로스드 소드
-지극히 개인의 사랑 이야기, 그러나 그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눈을 떠보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감금 당했다. 나가려고 하는데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이런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야 당연히 도망쳐야지! 그런데 나를 가둔 사람에게 점점 눈길이 간다면? 음. 조금은 더 있어도 괜찮을지도.
슈(애칭이다. 다른 애칭으로는 멜, 본명은 아시스 슈더 리베라)는 정신을 차려 보니 기억을 잃은 채 러디어드 테이론 빌렛 공자에게 감금당한 채였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참고로 수는 테이론이다. 시작부터 냅다 공을 감금하는 수라니, 제법 흥미가 당기는 편이지 않나?
중간 내용은 스포일러니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못 나오는 방”에 가둬두고 싶은 사랑을 한다. 솔직하지 못해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얘기하기가 두려워서,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는 게 무서워서 외면하고, 화내고, 오해하고, 엇갈리고… 그러나 그 모든 건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외면했다. 솔직해질 수 없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에게 배신 당하는 게 두려워서.
그러나 아무리 두렵더라도 직시해야하는 것이 있다. 특히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상대에게 상처만 되는 일이라면 더더욱 똑바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후회해봤자 그때는 늦는다. 지금 당장 바라봐야 했다. 그러니 바라보고, 얘기하고, 또 상처 입지 않게 달래주고 포옹하며 서로를 끌어 안는다. 이 사랑은 신뢰를 쌓아가면서 견고해지는 사랑이다. 신뢰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으나 신뢰가 없다면 사랑은 견고해질 수 없으니까.
이 이야기는, 그런 두 사람이 사랑을 직시할 수 있게 되며 많은 것이 바뀌는 이야기다.
사랑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벨루냐 님의 소설의 공통점은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는 애초에 주제부터가 사랑을 깨우쳐서 세상을 구하자고, “주인공이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사랑을 때문에 사람의 세계가 변하는 이야기, “크로스드 소드”는 사랑을 직시해 세상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세상을 구할 힘이 있고, 세계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
물론 이건 BL이라는 장르 특성일 수도 있다. BL은 기본적으로 로맨스를 담고 있는 장르, 즉 사랑이 중심이 되는 장르니까.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런 세계이기에, 그리고 그런 세계니까 사랑의 위대함 때로는 사소함을 담아 사랑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은 세상을 구하는 힘이 맞기도 하고.
그래서 즐겁게 읽었다. 사랑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니까, 또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모이고 쌓이고 견고해지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니까. 오늘도 한껏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하며, 사랑 이야기를 하며 살자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얘기해보라. 그 사람의 세계가 변화하고, 세상을 구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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