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끝의 시작—

세포신곡 소설 번역

셒신소설번역 by 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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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신곡 -Stay What That- 

제 1 장 —끝의 시작—

ととり単(토토리탄)저

"편의점 다녀오겠습니다~"

빈말로도 단정하다고 말하기 힘든 글자가 늘어선 메모를 들고, 아토는 침묵하고있다. 빗방울이 쉴 새 없이 건물의 벽을 두드려서, 때때로 바람이 창문의 유리를 흔든다. 도저히 "잠깐 저 앞에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나노는 굳이 나간 모양이다. 모양—이라고 하는 것도 조금 어려운 것이, 아토는 잔업 중에 자버렸으므로 시나노가 나가는 현장은 보지 못한 것이다.

어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워 몇 시간 간격으로 벌떡 일어난 게 원인이리라.  아까 눈뜨기 직전까지도 가슴이 먹먹한 듯 답답한 꿈을 꾸는 중이었다. 그 때 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통에 시달리며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아토는 어깨를 크게 떨구고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하… 나 진짜 근무시간에 여태 한게 뭐지……"

혼잣말이라 하기에는 큰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다. 아토는 책상 위에 있는 메모를 던지듯이 돌려둔 손가락 끝으로 미간을 짚은 채 시나노의 행방을 짐작한다. 시나노의 컴퓨터에 표시되어있는 지도에는 나가토마 4번지 부근이 보인다. 사무소가 있는 4번지로부터 도보 5분 이내. 이런 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디선가 대형견이 산책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오겠지. 타당한 결론을 얻어낸 아토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퇴근할 채비를 했다.

"시나노가 오면 오늘의 업무는 이만 끝이겠군…… 자잘한 것만 정리해 둘까."

시나노 자리의 맞은 편, 카치야의  책상에서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카치야 씨도 시나노처럼 외출했을 리는 없다. 임무라면 꼼꼼하게 처리하는 카치야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은 대충 하는 편이다. 여태까지도 몇번이나 컴퓨터를 끄는 것을 잊고 돌아가, 다음날 오토와 소장의 잔소리를 들었다. 아토는 몸을 굽혀서 마우스로 몇 개의 파일을 조작해 저장과 닫기를 반복한 끝에서야 컴퓨터를 껐다.

"이대로는 또 혼난다고… 카치야 씨도 참 질리질 않으시네."

그 외 정리할만한 물건은 없는 지 확인한 후 테츠토라의 책상 앞을 지나 아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오는 도중, 테츠토라의 책상과 제 책상의 사이, 즉 아토의 모니터 뒤에 쌓인 자료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은 몇 개월 전 실시된 업무태도 조사에 쓰인 자료로, 보고서 작성에 사용한 이후 정리에 정리를 거듭하다가 그대로 장식품이 되어버렸다.

어찌어찌 정리하긴 한건지, 파일에 끼어져있을뿐인 자료들을 넘겨보는 사이 한 장의 명함이 나타났다.

"어라, 여기 있었다니… 꽤 쓰기 편해서 좋았지. 교사란 직위."

【나고야 사립 나가토마 중학교 교사 아소 코우지】

조사 중, 아토는 이 가명으로 임무를 맡았었다. 교사가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서도 아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아토는 그 명함을 자켓의 가슴쪽 주머니에 넣는다. 명함을 넣은 주머니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있는데, 돌연 쿵, 하고 소리가 울렸다.

"응?"

시나노가 돌아온건가? 아토는 출입문 쪽을 봤지만 문이 움직인 흔적은 없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주위를 살피면서 걸음을 옮기는 중, 오른쪽에 늘어선 사원용 로커 가운데 하나만 열려있는 것을 눈치챈다. 물건이 떨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로커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시나노의 로커…… 원래 반 쯤 열려있었던가? 저번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문, 어딘가가 잘못 고장된걸까."

확실하게 닫히도록 문을 강하게 밀고, 두세번 두드려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한숨을 한번 쉬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오니, 새 메일의 수신 알림이 와있다.

"오, 메일인가. 소장으로부터…… 아, 야마무라 씨의 건인가."

오토와로부터 오는 메일 문구는 매우 간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정보와 용건만이 써있다. 그것은 오토와 본인의 어딘가 시스템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며, 공사를 혼동하지 않는 그의 규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어디… 수사 대상의 관련 정보…… 지고천 연구소? 뭔가 들어본 것 같은데… 꽤나 거룩한 이름이구만. 종교 법인인가?"

현재 아토가 받은 안건은 야마무라 슈지라는 중년 남성의 실종에 관한 조사다. 야마무라 씨는 실종되기 일 년쯤 전까지 종교에 심취해있었다는 듯 하다. 그 종교의 본거지가 이 지고천 연구소라고 한다. 지고천 연구소는 가톨릭 계 신흥종교단체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고천을 목표로 하는 고결한 정신을 갖고서 세계를 구하는 것을 숙원으로 삼고 있다.

지고천, 즉 엠피레오라는 것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저서, 신곡에 등장하는 천국의 말단같은 곳이다. 지옥을 빠져나와 연옥을 넘어선 끝, 천국 안에서도 항성천, 원동천보다도 더욱 저 멀리의. 신이 기거하는 장소이면서도, 작중에서는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신의 사랑을 단테가 목격했다는 곳. 아토에게 지고천은 그 정도의 지식뿐이다. 지고천 연구소가 그 존재를 확신하고 진지하게 세계를 구원하려 하는거라면 신자들의 마음, 즉 신앙심은 아토의 이해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는 것이다.

애초에, 아토는 무신론자다. 자신의 특수한 본질이나 처지,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봐도 신의 사랑을 느낄만한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아토의 인생은 엄청나게 불행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결코 원만한 환경이었다고도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아토를 구해준 것은 언제나 주위의 인간이었다. 현재 오토와 탐정 사무소의 나고야 영업소를 관리하는 오토와 소장과, 그의 아버지인 사장께는 특히 의리와 은혜를 느끼고 있다. 오토와에게는 중학교 부터 소꿉친구로써 지금까지 여러번 도움을 받아왔다. 아토에게 있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결정하게 된 어떠한 큰 사건 또한,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사장님 역시 아들의 친구일 뿐인 아토의 인품과 능력을 평가해 탐정 사무소의 근무를 추천해주신 은인이다. 연줄이 생겼단 이득보다도, 아토는 이 사람들을 알게 되어 감사한다. 그들의 인품을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이지, 신이 아니다.

"하츠토리 하지메와 우츠기 노리유키. 시조와 교주란 거군. 종교 그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전파하려는 정신은 지금으로써도 공감되지 않는데."

자료를 읽어내려가며 포인트가 될 법한 키워드를 머릿속의 메모장에 적었다. 두 이름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 뒤 쪽에서 울리는 듯한 두통이 느껴져 한 순간 눈앞이 번쩍거렸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두통과 함께 걸어온 아토지만, 요 며칠 간의 두통은 드문 수준의 강도와 빈도의 것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피로겠지. 그래서 그런지 딱딱하게 느껴지는 목울대를 매만지며, 또다른 첨부자료를 열었다. 이 자료는 임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나노에 관한 상세 정보였다.

"시나노 에이지, 26세. 오토와 탐정 사무소 도쿄 본사에 작년 중도채용…… 아사다 선배도 시나노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으니까, 우리 사원인 건 정말이겠지……"

아사다는 수 년 전, 오토와 탐정 사무소의 본부가 도쿄로 이설되어 , 원래 본부였던 나고야의 사무소가 나고야 영업소로 바뀔 때 사장과 함께 도쿄로 간 베테랑 사원이다. 사장의 오른팔로써 오랫동안 근무하여 아토도 몇 번인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 아사다가 사장과 함께 작년 말 개최된 나고야 영업소의 망년회에 와서는 시나노를 포함해 도쿄 본부의 사원에 관해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사다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개를 닮은 신입이 있어'라는, 배려 없는 내용의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설마 그 때로부터 수 개월 후, 이야기에 나온 개를 길들여 돌보게 될 줄이라곤 당시의 아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녀석, 뭘 하러 간거지? 슬슬 돌아와도 좋을 시간인데도."

『초능력을 바르게 익히자』라는, 아무래도 수상쩍은 POP 글씨체 문구가 움직이고 있는 페이지를 인터넷 창 째로 닫고, 입구 쪽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인기척이 없다.

사무소 내에는 폭풍 소리만이 울린다. 아토의 두통은 멈추지 않고, 유일하게 열려있는 보고서의 포맷 안 커서가 점멸한다. 책상에 한 쪽 팔꿈치를 올리고 손바닥을 이마에 댄 채로 아토는 눈을 내리깔았다. 머릿속을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쳐 간다. 오토와는 무사히 도쿄에 도착했을까? 지금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유는 뭘까? 보고서의 수정도 해야 하는데… 그건 내일 한다고 치고. 시나노는 언제 돌아오는 거지?

"전화……해볼까."

그렇게 정하고 책상에 방치되어있던 스마트폰을 들었다. 구매 후 1년 정도 되었지만, 벌써 액정 끝 부분엔 금이 가있다. 화면이 파손되기 쉬운 기종이라곤 들었지만, 편리한 기능에 져버려 사기로 해버린 자신의 판단을 이제서야 원망스레 생각한다. 배터리의 잔량을 나타내는 퍼센테이지는 한자릿수지만, 몇 분의 통화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사무실 의자로부터 일어서서 입구 쪽으로 몇 걸을 걸어가며 발신 이력을 스크롤한다. 몇개의 이력 중 시나노의 발신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귀에 대니, 수 차례의 착신음이 울린 후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대답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전파가 닿지 않는 장소에 있거나 전원이 꺼져있기때문에……"

"이 자식…"

혀를 찬다. 엄지로 통화를 종료하니 상단 알림바에 메일의 수신 알림이 보였다. 송신자는 시나노다.

「아토 씨! 제대로 편의점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계절이지만, 오뎅을 샀어요!

아토 씨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방향치에다가 길치인 제가 탐정이라니

사실인지 불안하네요^^;

일단 지금부터 돌아가겠습니다☆」

보통의 직장상사에게 보내는 문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화면 안에서 반짝거리는 별모양 특수기호 탓에, 아토의 입꼬리 끝은 내려가서 일그러졌다. 말을 잇지 못한 채 메일을 닫으려고 하는 참에, 메일의 착신 시간에 눈이 멈춘다. 8시 반. 벌써 40분 하고도 더 전이다. 도보 5분정도의 편의점에서 돌아온다고 말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다.

아토는 핸드폰을 움켜쥔 채 문을 응시한다. 지금 당장 저 문을 열고 시나노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 불안한 예감을 없애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에 빠져있는데, 등 뒤에서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지만 역시 그 어떤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 하나. 상태를 확인하듯이 아토의 시선이 방황한다. 손님을 마중하듯이 장식되어있는 노란 조화. 파일이 늘어선 책장. 창 밖의 거리를 흐리는 비. 구동음을 내는 아토의 컴퓨터. …책상에 쓰러진 서류의 흰 색깔도, 무언가 기어들어온 듯한, 검정색도.

"……"

또다시 자신의 책상 앞에 선다. 오브제처럼 우뚝 솟아있던 서류의 산은 쓰러져, 책상을 난잡히 보이게 한다. 백과 흑의 협주곡. 손을 대려다가, 찌르는 듯한 두통에 가로막혔다.

"윽…… 펜의 잉크라도 흘린건가… 정리해야, …아, 그렇지만, 그것보단 먼저 시나노를……"

정리되지 않은 말의 끝이 새어나와,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 번 발신 이력을 눌렀다.

만약 시나노가 후배일 뿐이었다면 그대로 두고 퇴근한다는 선택지도 있었겠지. 그 진지하지 않은 메일에 한마디 답장해보는 것도 좋고. 그렇지만, 상대는 시나노다. 아무 일도 없으리라 단언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한 요소가 너무 많다. 전근 이래, 불과 일주일 간. 병 수준으로 심각한 방향치인 시나노가 길을 잃지 않았다고 한정짓기도 어렵다. 또, 시나노가 반 년 분의 기억을 잃어버린 원인과 관계가 없으리라 말할 수도 업서다. 사태는 이미 아토가 해결 가능한 영역을 넘었다. 아토가 이 상황에 얘기해야 하는 상대는 한 명밖에 없다.

귀 가까이에서 계속 착신음이 들린다. 아토의 바람이 통했는지, 얇고 작은 은으로 된 상자를 통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말해오기 시작했다.

"오토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소장님, 출장 중에 죄송합니다. 지금 전화 괜찮으신가요?"

"이런 시간에 직장인가? 외에 다른 사람도 있는건가?"

"직장입니다만, 지금은 혼자입니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말해주도록. 아무래도 듣기 간지러우니."

"하하… 고마워, 루이. 어때? 도쿄에는 도착했어?"

"아아. 연착은 있었지만 어떻게든 말이다. 지금부터 아버지와 합류해서 식사할 계획이다. 그래서, 용건은? 설마 내가 신경쓰여서 전화한 건 아니겠지."

"응. 사실은, 시나노가 돌아오지 않는단말이지. 내가 졸던 사이에 편의점에 간다고 메모를 남겨두고 그 이후로. '8시 반 경, 오뎅을 샀으니 지금부터 돌아간다'고 메일이 오긴 했지만, 아까 전화를 걸어보니 받질 않았어. ……어떻게 생각해?"

오토와가 전화기 너머에서 흠, 하고 중얼거린다. 뒤에서는 사람들의 대화가 웅성거리는 파도가 되어 밀려오고, 이따금 경적음이 그 리듬을 흐트러뜨린다. 도시의 떠들썩함. 그 흐름을 나누듯 선 오토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아토는 대답을 기다린다.

"공교롭게도 시나노인가…… 버려둘 수 없겠군. 조금 떨어져있는 편의점에 갔다, 란 가능성은? 며칠 전엔가, 홍차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건 오늘 사왔다고, 그 녀석. 잊지도 않고 말이야. 거기다, 이 시기에 오뎅을 판매하는 편의점이라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그 곳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확실히, 그렇군."

짧은 침묵이 찾아온다. 아토는 주체하기 힘든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감싼 채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서로 입을 열고있지 않지만, 아마 아토와 오토와가 생각 중인 제안은 동일할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 말을 꺼내는가. 그것뿐인 이야기라면 도화선을 끊어야 할 사람은 아토겠지. 짧게 숨을 내뱉고, 고개를 든다.

"…역시 내가, 찾으러 가볼까."

"괜찮겠나? 그 쪽도 아직 비가 심할테지. 또 상태가 악화되는 건 아닌가?"

"음-. 루이가 '괜찮다, 내버려 둬.'라고 말해줬다면, 그 말에 기꺼이 따랐겠지만. 실은 조금 기대했어."

"훗.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도 하는군."

"시나노를 살펴봐달라는 의뢰의 범위 안이니깐 말이야. 임무를 도중에 던져버리는 조사원은, 오토와 탐정 사무소엔 없지."

"믿음직한 일이다. 라고는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도록, 하루키.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전화해라. 곧바로 응답 가능하도록 할테니."

"고마워. 아버님…… 이 아니라, 사장님께도 안부 잘 부탁해."

"아아, 전해두지. 그럼."

아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오토와의 음성은 전자음으로 변했다. 불필요하게 일을 끌지 않는 것도 오토와의 장점이라고 아토는 생각한다. 핸드폰의 배터리는 5퍼센트의 선을 끊었다.

"자, 그럼… 열쇠 챙기고. 참, 손이 가는 후배구만……"

푸념조로 중얼거리지만, 대화로 생각을 정리하니 아토의 마음 속은 약간 맑아졌다.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도 깨끗하게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이런 비였지."

"……그, 날?"

무심코 새어나온 말을 반복한다. 지금 나온 목소리는, 제 것인가?

입에 손을 보내, 타인보다 조금 얇은 입술을 매만지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잠시 잊고있던 아픔이 머리를 찌른다.

"젠장…… 아까 그런 꿈을 꿨으니. 분명 혼란스러운 거겠지……"

이마를 만지며 몸을 조금 구부리면서. 물어보듯이, 토해내듯이 입 밖에 낸다.

감았던 눈꺼풀의 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리플레이된다.

'하루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언젠가의, 어머니의 목소리.

"이건, 나쁜 꿈."

어린 아토가 무서운 꿈을 꿔 울면서 불안하다 울먹이니, 어머니는 이미 정해져있는 듯 아토를 안아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는, 하루키."

"너의 이름은"

"아토 하루키."

순간, 빛이 번쩍였다. 고막을 찢는 굉음이 울려퍼지고, 사무소 내의 조명이 일제히 꺼진다. 익숙했던 사무소의 풍경이 어둠에 잠겨, 아토와 현실을 갈라두었던 막이 사라졌다.

"뭔… 번개? 정전?"

창밖에는 가로등의 불빛이 흘러넘친다. 아무래도 정전된 것은 건물뿐인 듯 하다. 어스름 속에서 주위를 살필 수 있을을 확인한 후, 아토는 머리를 싸매고 쪼그려 앉았다.

"뭐냐고, 진짜… 악재인가……"

악몽. 두통. 팔과 팔 사이에 머리를 끼우고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연이 많은 후배. 공교롭게도 도쿄에 출장 중인 친구. 움켜쥔 오른쪽 손목에서 자신의 맥박이 전해져 온다.

수십 초, 수 분, 공중에 떠다니는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비. 바람. 멀어져가는 번개. 점차 발끝이 저리기 시작했다.

아토는 눈을 작게 떻다. 머리를 껴안은 양 팔의 사이로부터 거침없는 어둠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어디선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야 해."

무거운 허리를 들어, 새삼 어두운 사무소 내를 바라보지만 밝은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열쇠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올 리가 없다. 미간에 힘을 줘 한번에 눈을 부릅뜨며 신중히 발을 내딛는다. 마치 진흙 속을 걷는 듯 발밑이 불안하다. 피가 몰린 발끝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라, 신경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것 같았다.

책상 위를 더듬는다. 종이의 감촉이다. 손끝을 미끄러뜨리며 도달한 가장자리를 더듬으며 나아가는 도중, 걸쭉한 감촉이 느껴졌다. 

"으엑. 아까 그… 뭐더라, 이거. 축축하네……"

닦을 것 조차 찾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는 재킷 자락에 문지르는 것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두 세번 닦은 손끝을 허공에 털고, 희미하게 남은 기억에 의지해 열쇠를 찾지만 만져지는 것은 필기구, 계산기, 클립 뿐으로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물체들 뿐이다.

"시나노, 그 녀석…… 설마 내 열쇠를 가지고 나간 건 아니겠지……"

최악이 머리를 스친다. 시나노가 아토의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나갔을 경우, 아토에게는 방법이 없다. 사무소의 안, 오토와 소장의 책상 부근에는 금고가 설치되어 있어, 고객에 관련된 기밀을 포함해 여러 귀중품이 수납되어 있다. 열쇠를 소지한 사람은 아토와 카치야, 오토와 세 명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열쇠를 꽂지 않으면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문도 잠그지 않은 채 밤의 사무소를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토는 위기감이 낮은 편이 아니었다.

이젠 다 틀려먹었다. 그런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지만, 이런 곳에서 포기할 일이었다면 아토는 이미 퇴근길에 올랐을 것이다. 정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쉽다.

짐작가는 장소는 이미 찾아봤다. 남은 곳은 가방이나 서랍 안, 혹은 로커에 넣어둔 코트의 주머니인가. 한 개씩 순서대로 해치워야 하니, 셋 중 제일 가까운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깊숙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효율이 오르겠지만, 손전등이 있는 곳이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오른손을 넣고 좌우로 뒤적거리니 차갑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상처투성이라서 거스러미진 널빤지 형태의 물건을 쥐고 얼굴에 가까이 가져온다. 고의적으로 손상된 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액정에 아토의 가느다란 눈이 비치고 있다.

시나노가 발견된 때, 유일하게 소지하고 있었다던 스마트폰. 본인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으니깐~ 하고 재빠르게 새 기종을 구입했지만, 이렇게 회사의 책상에 넣어놨다는 것은 시나노 자신도 기억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세 번, 어떤 소리가 났다.

새된 전자음과 함께 찾아온, 몸에 깊게 울리는 진동 때문에 아토의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 앞의 핸드폰은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내, 내 폰? 시나노의 전화인가?"

오토와와 통화한 후, 어디에 넣어뒀던 걸까. 바지의 주머니에 더러운 스마트폰을 넣고, 재킷의 좌우 주머니를 동시에 툭툭 쳤다. 진동이 느껴진 왼손으로 꺼낸 단말의 액정에는 『공중전화』의 글자가 표시되어있다.

"…여보세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다.

"시나노?"

흐릿한 잡음.

"여보세요~…"

"————인가"

명백하게 가공된 음성이 어떠한 일을 물어보고 있다.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다. 잡음이 많은데다가, 들리는 목소리도 멀다.

"엥? 저기,안 들…"

"아토, 하루키, 인가"

계속해서 말하려던 것을 삼킨다. 전신의 털이 서고, 움켜쥔 스마트폰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전화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아토의 이름을 불렀다. 상대는 아토를 알고있다.

또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 아토는 조사할 때, 개인 연락처를 이용하지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전화는 오토와 탐정사무소의 직원인 아토가 아니라 개인인 아토에게의 접촉이란 판단이 선다.

장난전화인지 긴가민가해 하며 몇 명인가 지인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만, 그 누구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목소리 너머의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정체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을, 떼라"

"…허?"

"손을, 떼라

                 목이 없는 쥐를 잊고싶겠지"

빨갛게 번쩍인다.

귀에서부터 떨어진 스마트폰에 통화 종료가 표시되며 화면의 빛이 꺼진다.

*이 없는,

*?

"아……"

손바닥의 은판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져선 딱딱한 소리를 냈다.

이마에 손을 얹고 한 걸음 물러선 아토의,

바로 옆을.

금속을 할퀴는 듯한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달렸다.

그것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더 검은 덩어리.

그 꿈에 나온 검정색.

재빠르게 마룻바닥을 기는 그것으로부터 엎질러진 액체를, 천천히 눈으로 좇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넓은 창문.

거친 비바람과 아토를 떼어놓는 투명한 벽의,

얼마 되지않는 앞 쪽.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복합기의 위로부터

'그것'이, 이 쪽을 보고 있다.

작은 체구에 빛나는 빨강색이 둘. 땅딸막한 타원을 그리는 고깃덩이의 끝엔 가느다란 그림자가 펄럭이고 있다.

발목을 좌우로 차례차례 반회전시켜, 양말을 바닥에 문지르듯이 움직여 아토는 '그것'과의 거리를 줄인다. 이윽고 연노란 빛의 그림자가 희미해져, 아토의 시야에 비친 것은.

"…쥐?"

'검은' 눈동자와 벌름거리며 공기의 냄새를 맡는 코 끝, 흔들리는 털의 하나 하나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조금 열린 삼각형 모양의 입 안 쪽엔 두 개의 하얀 이가 엿보인다. 공중을 긁고 있던 앞발로 발 밑 플라스틱에 상처를 내며 길이 십오센치 정도의 설치류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하, 하하… 뭐야, 참. 쥐? 하하하!"

극도의 긴장으로부터 해방된다. 돌연 찾아온 안도에, 그치지 않는 웃음이 북받친다.

바보같은 일이다. 무서워할 필요 따위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겨우 15센치 정도의 생물에게 겁을 낼만한 합리적인 이유따위 보이지 않는다. 겨우 정전, 겨우 쥐. 아까까지의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자신의 거동을 돌이켜 보니 또다시 우스움이 몰아친다.

"흔치 않게, 우연, 우연히 기분 나쁜 꿈이 이어지고, 시나노가 보이지 않고, 정전되기도 하고, 이상한 장난 전화가 오고, 쥐가 나오고! 겨우 그 정도인데! 하하, 하하하!"

어제는 밤낮 관계없이 종일 엄청나게 졸았다. 몸이 피곤하니 체력이 약해졌던 거겠지. 두통도 그렇다. 환절기인데다가, 폭풍과 함께 찾아온 기압의 변화로부터 악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별의 별 원인에 의한 나쁜 상태를 무리하게 연결해 생각해서, 엉뚱한 오컬트 투성이의 공포에 둘러싸인 것이다.

"하… 아, 시시하구만. 어이, 오늘은 못 본 체 해줄게. 히오키 씨가 설치해둔 덫에 걸리기 전에 달아나도록 해."

두 다리로 일어나선 목을 돌려 아토의 움직임을 좇던 쥐에게 말을 걸며, 복합기 오른쪽에 위치한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의 자물쇠를 풀고, 왼쪽의 창틀에 손을 얹은 채 지표면에 시선을 던지니 건물 현관에 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 보였다. 역시 건물 전체가 정전인 듯 하다. 열쇠를 찾아 사무소를 잠근다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쪽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자, 여기서…"

고개를 왼쪽으로 비틀어 복합기 위쪽을 본다. 그 생물은 여전히 아토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점은, 그 체구는 찐득거리는 검정에 물들어선 양 눈은 빨갛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엥? 어라…"

목소리를 흘린 찰나, '그것'이 아토를 향해 날았다. 30센치는 충분히 될 듯한 공간을 도약해, 순간적으로 몸을 비튼 아토의 왼팔에 발톱을 세운 탓에 아토는 크게 입을 벌렸다.

"우왓, 뭔…… 아팟!"

왼팔 팔뚝의 중간부에 뜨거운 아픔이 꽂힌다. 왼팔을 내리쳐 그것을 뿌리치려하지만 그 무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흥분한 탓인지 아픔은 벌써 멀어져선, 출혈량의 예측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아직도 아토의 왼팔을 기어다니고있다.

칠판을 금속으로 긁는 듯한, 강한 불쾌감을 주는 울음소리. 아까 아토의 옆구리를 지나쳐 달려간 소리의 정체. 이를 강하게 악물고 전신에 힘을 준다.

"적당히, 하…라고!"

어깻죽지를 향해 재빨리 이동하는 그림자를 오른손으로 잡아, 무리하게 떼어내 힘을 담아서 바닥에 내쳤다.

물 소리와 분쇄음이 섞여 생명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지익, 하고 무언가가 불타올랐다.

'그것'은 더 이상 쥐가 아니었다. 쥐의 형상이었던, 검은 육편이 되었다.

"……네가 나빴던 거라고…"

거칠어진 호흡을 어깨로 들이쉰다. 무언가로 젖은 왼쪽 소매를 오른손으로 잡고, 바닥에 누운 덩어리를 향해 눈을 부릅 뜬다. 머리통의 주변에 퍼진 거무스름한 웅덩이가 아까까진 잔물결이 쳤지만, 이제와선 조용하게 잠잠해졌다.

생물의 완전한 침묵. 흥분이 식어가는 것과 동시에, 아토의 마음에 죄악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자신의 죄를 확인하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고 그것에게 다가가,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숙인다.

"역시, 죽었나…?"

뒹굴, 하고.

고깃덩어리가 주위의 검정색 액체를 묻혔다. 튀어오른 비말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덩어리에 흡수돼,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 뿐이 아니다. 바닥에 퍼져있던 물기도 전부 덩어리에게 돌아가선, 이윽고 덩어리 자신의 윤곽도 증발해간다.

아토의 눈앞에서, 쥐의 형상이던 '그것'은 완전히 공중에 녹았다.

"이건, 꿈, 이야"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입이 저절로 혼잣말을 한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날뛰고, 천 갈래로 사고가 흐트러지며 두통이 그 곳에 끼어들었다.

감은 눈꺼풀의 뒤 쪽에 비추이는, 생리적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새. 어린 자신, 현미경으로 훔쳐본 생명의 파츠.

『이건, 나쁜 꿈』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래, 나쁜 꿈이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

떨리는 손. 만져지는 머릿칼의 감촉. 식은 체온.

폐가 저리다. 산소가 부족해. 헐떡거리듯이 턱을 치켜들고, 입을 벌린다.

어둠을 들이쉰다. 장기에 피가 돌기 시작한다.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어렴풋하게 밝아져오는 백색 천장.

꿈이라면 빨리 깨면 좋겠는데.

전신의 근육이 이완되어간다.

뇌까지 느슨하게 해버린 모양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 않아.

이대로 쓰러져버리면, 현실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토의 몸은 모든 것을 방치해선 기울어져 간다.

기울어져가는 아토를 지탱하는 손이 있다. 아토의 등을 오른팔로 껴안듯이 안아 세운다. 평소 잘 닿지 않는 다른 사람의 체온에 아토는 희미하게 눈꺼풀을 든다.

"        아―――――――――――        "

칠흑의 얼굴이 아토의 코앞 수 센치까지 몰려들어 이상할 정도로 핏발이 선 두 눈이 좌우 각각 제멋대로 시선을 흐트러뜨린다.

"        토―――――――――――        "

말문이 막힌 아토의 어깨를 어설픈 손가락이 잡는다.

천천히 상하로 흔들어져서, 그 때마다 시커먼 방울이 스멀스멀 쏟아진다.

"        씨―――――――――――        "

움직임이 갖춰질 일이 없는 양 눈동자가 갖춰져서 아토를 재촉했다.

"    아    "

입 끝이 크게 터져, 새빨간 구강이 드러났다. 

"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도망쳐라 하루키 ! 』

"아—————"

목소리가 겹친다. 어떤 게 제가 내던 목소리가 분별이 되지 않는다.

눈이 보고 있다. 아토를 보고있다. 누군가가 달아나라고 소리치고있다.

안돼. 안돼. 이대로는 안돼. 몸이 움직이지 않아. 말이 나오지 않아. 

도망치지 않으면 안돼. 여기에 있으면 안돼. 이대로는—

"아아아아아아아아 ! "

섬광이 세계를 새하얗게 칠한다.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머리를 감싸안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단단히 닫은 눈꺼풀의 뒤가 빨갛다. 아토의 의식과는 관게없이, 외부에서의 힘으로 몸이 흔들리고있다.

"아토 씨!"

손목을 세게 잡혀선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빛에 눈을 적응시키기 위해 서서히 눈을 뜨자 역광 속에 젖은 갈색 머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토 씨, 아토 씨! 정신 차리세요!"

팔자를 넘어 수직이 될 정도로 처진 눈썹.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혀, 반 열린 채로 대답을 기다리는 입은 조금 떨리고 있다. 목에서부터 등까지 긴장을 푼 채 뒤를 향해 쓰러졌더니, 슬개골의 단단함과 젖은 천의 차가움, 그 안의 체온이 아토의 허리 부근에 닿았다.

"…시나노?"

"넵, 시나노입니다! 시나노 에이지, 스물 여섯살! 알아보시겠나요, 아토 씨 !"

"아, 응, 아니…… 보면 알지"

"다행이다…. 아토 씨,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하고……"

"멋대로 죽이지 마라…"

구부린 왼팔을 눈꺼풀에 얹었다. 아까까지 확실하게 젖어있던 소매는 극소량의 수분마저도 갖고있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말을 이어가던 시나노의 목소리를 듣고있으니, 모든 것이 정말로 악몽이었기 때문인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든다.

"너, 어디까지 갔던거야. 걱정했다고."

시야를 덮은 채로 중얼거리니 아토의 몸을 지탱하는 허벅지가 튀어올랐다.

"헤헤… 요 앞 편의점이었는데 말이죠, 헤매버려서. 계속 지도를 보고있었더니 배터리도 닳아버렸고, 겨우 돌아왔더니 전기가 꺼져버려서~~. 그랬더니 이번엔 열쇠가 안 보여서는~"

시나노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이유라는 이름의 강은 끝이 없다. 아토는 긴 한숨을 뱉고, 눈을 덮고있던 왼팔을 늘려 시나노의 이마를 손가락 안쪽으로 가볍게 쳤다.

"바보. 다음엔 깨워줘라."

"네-엡. 아, 오뎅! 아토 씨 것도 사왔다고요, 시라타키하고 곤약!"

"아—, 그건 고맙다……. 그거 먹으면 오늘은 돌아가자고"

"그러네요. 아토 씨, 내일은 쉬는 편이 낫지 않으세요? 아직 수요일인데다가……"

"고맙다. 내 일은 시나노가 대신 해준단 거겠지?"

"아…… 그건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그렇지? 자, 빨리 먹자. 어쩐지 나도 뭘 좀 먹고싶어졌어."

허리 쯤에 손을 대고 아토가 몸을 일으켜 세우니, 시나노가 일어서서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책상에 향해 간다. 일으킨 한쪽 무릎에 이마를 대고 눈을 내리깔고 있던 아토도 곧 뒤를 따른다.

아토는 생각한다. 어째서 그 때, 원인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을까. 그 때였다면 아직, 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연이은 악몽. 검정색의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중전화. 그것들을 어째서, 잊으려고 했는가.

—후회는 끝이 없다.

이 사건보다도 훨씬 전부터, 사고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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