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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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6 게시글.

#한사코_손을_거두지_않아

이제 그만 보내야할 시간인데 너는 한사코 손을 거두지 않아 하지만 어쩌겠어 죽은 동물을 인간이 살려낼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걸 그래서 나는 네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주었지 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나 같은 것에게도 가능한 일이어서 

#무엇이든_입에_넣고

무엇이든 입에 넣고 씹는 병증을 보이는 여동생을 위해 나는 우리 집의 모든 것을 부드럽고 질긴 재질로 덮어씌웠다 냄비 숟가락 젓가락 시계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난항은 우리 집 강아지였는데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여동생이 자신을 핥아주고 곁에서 잠을 자는 강아지만큼은 씹지 않았던 것이다 

#눈송이를_반_갈라_먹었다

세상은 망했고 인간의 연결망은 다 썩어서 나자빠진 어느 날 눈이 내렸다 우리는 배고팠고 절실했고 아무튼 목도 말랐고... 눈송이를 반 갈라 먹자는 말을 꺼낸건 그 아이였고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제법 고급스런 동작으로 식사를 끝냈다 식도와 위가 차가웠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_없는_결말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라고 친구는 화를 냈다 나는 현실의 오묘함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물론 현실은 요란뻑적지근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질서있는 무언가를 찾고싶은 거라고! 친구는 식식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는 바라도 되는 거 아냐? 

#그_무엇도_나를_좌절시키지_못했다

그 무엇도 나를 좌절시키지 못했어요 유명 극단의 주연 배우로 발탁된 이는 카메라 앞에서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의 셀링 포인트는 선천적인 재능과 우아한 노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도 연기의 일환이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좌절하는 모습도 셀링 포인트로 삼아보자고 

#두_번_다시_보지_못할_풍경

시간은 흐르고 사물은 조금씩이라도 변하니까 우리에게 같은 풍경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아요 비슷한 풍경을 같은 것으로 묶어버리는 무신경함이 있을뿐이죠 그러니까 조금 발걸음을 늦추고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풍경을 보지 않겠어요 나와 당신이 함께 있는 이 순간에 

#파도가_친다_손이_몹시도_차다

겨울 바다는 다정하기보다는 고요하고 광막하지요 파도가 칠 때마다 찬 기운이 밀려오고 손이 몹시도 차가워졌습니다 하지만 저 아래에도 생명은 존재할테지요 어쩌면 오늘은 날이 시원하다는 생각을 할 지도요 그럼  더위를 타던 사람의 유품을 바다 속으로 보내주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겠지요 

#너는_어느_별이야

우주는 넓고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한다는데 너는 어느 별이야 별들은 유리조각의 폭풍과 황산의 강과 질산가스의 안개로 가득하다는데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론 너라면 어디서든 태연하게 구경하고 있을테지만 말야 편지라도 보내주지 않을래 아 어쩌면 저 별빛이 너의 편지일까 광속의 안부인사 

#다시는_문을_넘을_수_없다며

그 치가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이 문을 넘을 수 없다며 정말 그럴 각오가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어요 거기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면 다시 그 빌어먹을 순환에 뛰어드는 격이었으니까요 그게 십 년 전이군요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마침내 나의 권리를 얻었어요 웃을 권리를 

#교환하자

교환하자 갑자기 날아온 친구의 카톡에 나는 웃었다 좋아 나는 따뜻한 닭강정을 보내줄게 너는 맛있는 햄버거를 찾아봐 좀있다 배달원이 먼저 집에 도착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뭐에 이기냐고 글쎄 우리 사이에 그 정도 소소한 승리 정도는 바랄 수 있잖아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팔배게를_해_줄테니

팔베게를 해줄테니 함께 자지 않을래 물론 너는 독립적인 성격이라 이런거 좋아하지 않는거 알지만 오늘밤은 너랑 같이 나란히 잠들고 싶어 너의 포근함과 숨소리를 느끼면서 말야 그러니까 옆에 와주지 않을래 우리 귀여운 털뽀쏭뽀쏭 할아부지. 

#아무리_머뭇거려도

아무리 머뭇거려도 너는 날 두고 먼저 가는 법이 없었지 그게 얼마나 다정하고 인내심 많은 행동인지 나는 이제야 알았어 누군가의 끝없는 망설임을 잘라주지 않고 옆에서 함께 기다려준다니 말이야 나도 너에게 그런 다정함을 베풀 수 있을까 언젠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연한_빵

우연히 빵을 얻는다는 것은 이 현대사회에서 물물교환으로 무엇을 얻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나는 그걸 해냈다 새로 이사 온 아랫층 사람이 분리수거를 헤매는 것 같아 이것저것 알려주었는데 알고보니 제빵사라는 것이다 오지랖도 가끔은 나쁘지 않군 나는 혼잣말을 하며 빵을 먹었다 

#너를_채우는_우주

우리 안에 우주가 존재한다고들 하잖아 근데 그게 그토록 중요한 일일까 이제 구직 사이트 보기도 질린다는 친구는 화면 너머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중얼거리고 나는 네 안에 존재하는 장미성운의 아름다운 빛깔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게 뭐야 되게 웃긴다 너는 낄낄 웃지만 나에게는 정말 보여서. 

#그림자만이_남아있다

우리가 어떤 사이였냐구요 애매하네요 서로 이름도 몰라요 집 주소도 몰랐고요 그냥 놀이터 그네에서 만나서 같이 시간 보내던 사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그 애 그림자만 와있었지요 나는 알아봤어요 머리모양이 딱 걔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림자를 따라왔는데 여기였어요 혹시 걔에게 무슨 일 생겼나요 

#돈으로_산_우정

고마웠어 나는 돈을 주며 그렇게 말했고 이제 친구가 아닌 그 아이는 돈을 받는다 아냐 내가 고맙지 우리는 건조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등이 멀어진다 나는 어느 순간 크게 외쳤다 나는 이걸 잊지 않을거야 네가 내 곁에 있어준 걸 잊지 않을 거라고 걔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_위에_적은_것

네 이름을 수정 테이프로 지웠다 노트 위에 하얀 공백이 생겼고 거기에 무얼 적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그만두었다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펼친 일기장을 봤을 때 난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떠난 사람, 이라는 네 글자를 적었다 

#일부러_한_일

커피를 서류에 쏟은 날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다 못해 그대로 저승에 갈 것 같았고 몇날며칠을 고생했던 선배는 더 헬쓱해졌다 일부러 한 일이 아니라는 말은 이 얼마나 변명같은가 꿀 먹은 내 앞에서 선배가 말한다 그래도 다행인게 뭔지 알아? 이거 끝나면 커피 얻어마실 구석이 생겼다는 거야 

#도망치지_못하는_남자

글쎄 하여간 그 남자는 도망칠 수 없었지 설령 길이 있더라도 그러지 못했을 거야 사람이란건 때로 물리적 조건보다 제 마음의 장애물에 가로막히는 법이니까 여기서 도망치면 넌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거야, 란 말을 듣고 그.자리에 못 박힌 듯 서버린거지 그거야말로 진짜 반복이었는데 

#점심식사

점심식사도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건 저녁 6시가 다되서였다 차라리 잘됐지 더 빨리 알았다면 너무 억울해서 일에 집중도 못했을 테니까 나는 오는 길에 닭강정을 하나 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콜라와 마시는 상상을 했다 이 정도의 사치 쯤은 결제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키득거리며 

#낯선_이를_따라가다

왜 그 사람을 따라갔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야 난 먹은 것만 먹고 입는 것만 입고 보는 것만 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근데 그 사람을 따라가다 고개를 쓱 돌려보니 얼마 전에 잃어버린 우리집 강아지가 펫샵 안에서 날 보고 짖고 있지 뭐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귀인이지 싶어 

#소년의_벽

소년의 벽은 고함과 폭력 앞에서는 끝없이 튼튼해졌지만 반대로 웃음과 농담 앞에서는 한 여름의 얼음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제 자식을 두고 욕하기 바빴으나 학교의 아이들은 그를 친근하게 여기고 항상 아껴주었다 그 아이가 부모를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_만나는_내_가족

내 가족은 내가 어렸을 때 사고로 죽었다. 다행히 나를 맡아주신 삼촌네는 무척 친절했지만 난 늘 겉도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그런 내가 타임머신의 시험권을 손에 넣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사고가 나기 전의 우리 집으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를 오랫동안 들었다. 

#게으를_권리

당첨을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의 스케줄은 1분 단위로 정부의 슈퍼컴퓨터 플래너에 의해 관리될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플래너는 언제나 효율을 추구합니다. 당신의 가치는 이전보다 250%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게으를 권리를 반납한 것에 비하면 정말 멋진 결과 아닌가요? 

#심장은_가운데에_있어

우리의 심장은 가운데에 있어 우리는 균형을 중요시하거든 나의 외계인 친구가 제 몸 가운데를 가리킨다 그럼 우리의 심장이 왼켠으로 치우친 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생각하고 뒤이어 깨닫는다 우리의 심장은 서로를 끌어안았을 때 고동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도록 배치된 거라고 

#잘게_자른_햇빛

봄철 바람을 잘 씻어 말린 다음 봄나물을 조물조물 버무려 간장으로 양념합니다. 그런 다음 따뜻한 노을 국물에 잘게 자른 햇빛을 더해 한 그릇에 담으면 봄내음 물씬 나는 한철 국수 완성입니다. 기호에 따라 상큼한 봄 무지개를 곁들여도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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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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