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후두암

2010년작.

성대를 잘라냈다. 원인은 후두암이었다. 의사는 왜 좀 더 빨리 오지 않았냐며 안타까워하는 눈치였지만,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내가 목이 오랫동안 칼칼했다는 사실만으로 후두암을 떠올렸을 리 만무했다. 아무튼 성대를 잘라내버린 탓에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요 목 아랫쪽에도 손가락 굵기만한 둥그런 구멍이 뚫려버렸다. 병원에서 잃어버린 성대 대신 구멍 근처에 대면 목소리가 나오는 인조 성대를 주었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괴물의 목소리였다. 차라리 수첩과 펜을 항시 들고 다니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의 재떨이가 몽땅 사라져 있었다. 흡연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가 어지간히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치우면 뭘하나. 내 성대는 이미 잘려나가 버렸는데. 나는 거실 탁자에 외로이 남은 라이터의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반 년 전의 거실 풍경을 회상했다. 아버지는 낮은 탁자에 앉아 사극을 보시며 담배를 태웠다. 오빠는 컴퓨터의 마우스 휠을 굴리며 희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엄마가 앉아있는 화장실에서는 담배연기를 뱉어내는 긴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담배냄새가 난다는 타박은 커녕 대놓고 기침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도 어릴 적부터 있었던 일이라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간접흡연이 직접흡연보다 위험하다느니,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숨을 참고 뛰어가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고작 냄새나는 연기를 가지고 뭐 저리 수선을 떠냐며 언제나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저런 일이 일어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 어릴 적부터 간접흡연을 당한 나도 아직 건강한데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있겠냐는 태연함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익숙해진 댓가로 성대를 빼앗겼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한숨을 쉬려고 했지만 도중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깔끔하게 떨쳐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 질질 달라붙어있는 기침소리는 정말이지 징그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목 아래에 뚫린 이 흉물스런 구멍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왈칵 솟구친 짜증과 분노가 심장을 태우다가 이윽고 묵직한 슬픔이 되어 가라앉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울음소리도 분명 끔찍하게 들릴 것이므로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소파에 앉은 채 나와 같은 환경에 있었던 주제에 멀쩡하게 살아가는 동생을 부러워했고, 내가 담배연기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준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이 세상 모든 흡연자들에 대한 저주를 되뇌었다. 하지만 잘려나간 성대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내 목소리가 가닿을 일은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담배연기로 인해 누군가가 성대를 잘라내야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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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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