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커크] Voyage au bout de la nuit

스타트렉 AOS 스팍X제임스 T.커크 2차창작

2차 창작 by 바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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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날까 의심하고, 태양이 떠오를까 의심하며, 진리가 거짓일까 의심하되, 내 사랑은 의심 마오. 사랑하는 오필리아.
- 셰익스피어, <햄릿>
 


우주의 기원이 거대한 폭발에서 비롯되었다는 빅뱅 이론을 진실이라고 가정할 때, 우주는 광대한 유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그 옛날 지구인들이 바다를 일컬어 망망대해라고 표현했듯이, 우주의 크기 역시 당장 인간의 눈에 보이는 인식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다. 대항해시대를 거쳐 인류는 희망봉을 돌아 바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으나 우주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했다. 그리하여 인류는 우주를 최후의 개척지라고 불렀다. 수많은 인간의 자손들이 별빛을 쫓아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설령 그들이 바라보는 별보다 스스로의 수명이 더욱 짧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생의 유한성은 개척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온 생애를 다해 도달한 지점을 스타플릿이 기록했고, 새로운 탐사원은 그 지점부터 다시 탐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스타플릿은 문명의 빛을 찾아 나아갔다. 제임스 T. 커크 함장이 지휘하는 엔터프라이즈 호도 그러한 탐사선 중 하나였다.

무한하게 느껴지는 우주에서 유한한 삶을 지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죽음은 언제나 아가리를 벌리고 크루원들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엔터프라이즈는 바다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피하듯 매번 죽음을 종잇장 차이로 비껴나갔다. 커크는 위험이 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날 때 부터 죽음과 이웃하여 태어난 커크는 천상 뱃사람이었다. 커크가 두려워하는 건 오직 하나, 엔터프라이즈의 식구들을 잃는 것이었다.

반면, 그의 부함장인 스팍의 우선순위는 조금 달랐다. 스팍은 최우선 지휘자인 커크가 있다면 엔터프라이즈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건 스팍이 커크와 연인 관계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스팍은 판단에 있어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었다. 스팍이 보건대, 커크가 있다면 배의 피해를 수복하고 크루원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었다. 한마디로, 커크가 없는 엔터프라이즈를 스팍이 상상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거문고자리 알파(α)인 베가 행성을 떠나면서 스팍과 커크가 언쟁을 벌이게 된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커크가 베가 행성을 조사하다 길을 잃은 크루원의 셔틀을 끌어오다 팔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생물학적인 자살행위를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캡틴."
"아니, 그럴리가."
"그럼 왜 엔터프라이즈와 조난 셔틀이 랑데부할 수 있는 지점까지 기다리자는 제 의견을 기각하신 겁니까."
"그러면 너무 늦으니까, 스팍!"

커크가 소리를 질러도 스팍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스팍의 완고한 눈빛을 본 커크는 한숨을 쉬었다. 겁날 것이 별로 없는 커크도 때론 스팍의 침묵이 두려웠다. 스팍은 지능이 보통 머리로는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까지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적부터 많은 일들을 혼자서 결정해야 했던 스팍의 성장과정이 그를 더욱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팍의 논리에는 거의 오류가 없었다. 커크는 그래서 스팍이 안타까웠다. 스팍이 항상 완벽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해도 커크는 그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이번 경우에는 커크가 틀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커크는 크루원을 구했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점이 중요했다.

"소리질러서 미안한데, 네 말대로 랑데부 포인트까지 도달하길 기다렸다면 베가 행성의 적외선이 폭발했을지도 몰라."
"당시 우주 기상 조건 하에서 베가 행성의 적외선 폭발 확률은 1.7%였습니다."
"무시할 순 없는 수치네."
"함장님이 조난당할 확률 14% 보다는 낮은 수치죠."

커크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스팍을 바라보았다. 스팍은 뒷짐을 진 채 미동도 없이 커크를 마주보았다. 커크가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스팍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넌 크루원의 구조보다 내 안전을 우선시 했다는 거네?"
"절대적인 수치상의 비교로도 함장님을 말리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아니, 아니! 계산은 필요없어. 목숨을 퍼센트로 달지 마. 스팍."

스팍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커크를 바라봤다. 커크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커크가 주저하는 사이 스팍이 말했다.

"캡틴이 무모한 행동을 하면 말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그 때문에 당신이 절 미워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커크는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스팍과 마주보고 선 제 발 아래에 구멍이 생겨, 우주의 거대한 공허를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팍이 반석처럼 온기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캡틴의 안위가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커크는 함장실에서 홀로 버본 위스키 잔을 기울이다가 치웠다. 한손으로 제 얼굴 반쪽을 덮었다가 쓸어내리며 커크가 책상 위로 무너졌다. 무너지는 커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본즈가 말했다.

"얼음도 안 넣고, 스트레이트로 마셔?"
"본즈."
"내가 너 팔 빠진 거 맞춰준 지 얼마나 됐다고 술이야, 짐."

본즈가 맞은편에 앉으면 커크는 잔을 하나 더 꺼냈다. 본즈의 잔에 위스키를 눌러 담아 따른 커크가 버본 병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스팍이랑 싸웠어."
"오, 저런."

본즈가 잔을 받았다. 한모금 들이켜고 크으 하는 소리와 함께 콧등을 찌푸린 본즈가 커크에게 되물었다.

"구출하는게 너무 무모했다고 그러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 땐 메디베이에서 선내방송으로만 들었는데도 네가 위험하게 하고 있더만."

커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버본을 들이켰다. 본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스팍의 속은 오죽 상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커크는 똑같이 행동했을거라 씁쓸함이 더했다. 잔을 손가락으로 감싸듯이 쥐고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커크가 말했다.

"스팍이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위가 우선이라고 했어."
"...아."

이제 알겠다는 듯이 본즈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소리를 듣고 커크가 고개를 들었다. 본즈가 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스팍이 널 정말 많이 좋아하나 봐."
"그렇게 생각해?"

커크는 스팍이 생각하는 바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상대가 스팍이라 괜히 너무 꼬아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커크 역시 스팍을 사랑했지만, 그와 가치관이 너무도 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면 견딜 수가 없었다. 커크의 생각에, 크루원을 구조하는 건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팍은 커크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길 바랬다. 커크는 스팍을 이해하기 위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부함장이라면, 그 상황에서...

가정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아무리 커크가 머리를 굴려도 생각이 그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스팍은 스팍이었고, 커크는 커크였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의 맛은 버본 위스키보다 진하고 독했다.

"스팍이랑 내 사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까봐."

커크가 무심코 말하면, 본즈는 잔을 들이키다가 쿨럭였다. 본즈가 탁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여간 둘이 똑같아. 대화 좀 하면 어디 덧나냐?"
"그렇지만 스팍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무모함에 질렸다던가, 그런."

본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커크는 목이 화끈거렸다. 취기 때문인지 올라오려는 울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본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흔들리는 건 네 쪽이야, 짐. 스팍을 아직 사랑하면 어서 가서 잡아."



커크는 달렸다. 스팍이 있는 선실을 향해 달려갔다. 스팍의 선실로 향하는 도중에도 커크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리에 없으면 어쩌지, 먼저 사과를 해야 하나. 차갑게 쫓아내면 어떻게 하나.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는데, 커크는 진지한 관계는 정말 젬병이었다. 하지만 스팍은 커크를 대할 때 늘상 진지했다. 스팍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커크는 문득 그가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완벽한 연인은 되어드리지 못해도, 언제까지나 진실된 사랑은 드릴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

그건 커크가 평생을 찾아헤맨 것이었다. 스팍이 그 사랑을 주겠다고 했을 때 커크는 제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웃고 있었나? 울고 있었나? 그도 아니면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척 하고 있었나? 분명한 건 커크가 스팍처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애 두번은 없으리란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기에, 그의 고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대관절 너에게 무엇을 해줬던가.

커크는 스팍이 저와 살갗을 부비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팍과 커크의 연애는, 말로 대립하고 몸으로 화해하는 식이었다. 커크는 스팍이 제 위에서 본능을 드러내는 순간도 좋아했고, 여느때처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좋아했다. 스팍은 커크를 흡사 유리구슬처럼 대했다. 손 위에서 가지고 놀면서도 깨질까봐 함부로 쥐지도 않았다. 커크 역시 이걸로는 스팍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스팍과 커크의 관계는 지금 이 상태에서 더욱 나아가야만 했다. 설령 앞에 어떤 정체불명의 것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탐사 나갈때보다 더 떨려.'

스팍의 방문 앞에서 커크는 각오를 굳히고 노크를 했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커크는 문 너머에서 스팍의 인기척이 제게 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냉전중인 상황에서 커크는 이기적이게도, 스팍의 반응이 기뻤다. 설령 그가 다시 제 목을 조른다해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팍과 문을 사이에 둔 커크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가 한 말 다시 생각해봤어."

스팍은 당장 대답이 없었다. 단지 조용히 커크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커크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내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한 것 같아. 너는 날 걱정해서 그런건데, 스팍."

커크가 말을 마치자 스팍이 먼저 방문을 열었다. 막 말을 마친 커크는 놀라 스팍을 올려봤다. 스팍이 고개를 숙이고 커크를 응시하다가 팔을 붙잡고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커크는 저항할 수 있음에도 순순히 그에게 이끌려갔다. 방 문이 닫히자마자 스팍은 커크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밀었다. 스팍이 어찌나 정확하게 힘조절을 했는지 커크는 등이 약간 쓸릴지언정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스팍의 그림자 아래에서 커크가 고개를 들었다. 스팍이 커크를 응시하며 이마를 맞댔다. 스팍의 앞머리가 제 눈썹 위를 간질이는걸 느끼며 커크가 눈을 감았다 떴다. 입술이 맞닿을듯한 거리에서, 스팍이 말했다.

"당신은 제가 어떻게 당신을 생각하는지 모를겁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애절하고 진지해서, 커크는 목만 삼켰다. 한손으로 커크의 턱을 어루만지며 스팍이 속삭였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제 사랑을 받아주기만 하십시오. 당신의 불확실한 우주에 제 사랑이 확실한 절대값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스팍은 이미 커크의 사정을 전부 헤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크의 앞에서 항상 악역을 자처하는 것은 스팍이 커크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커크에게 미움받아도 상관없다고 했던 말은, 나약함의 표출이 아니라 커크가 어떻든 간에 스팍의 애정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그제서야 커크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스팍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스팍은 눈을 감으며 커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스팍의 품 안에서 커크가 말했다.

"나 사실 네 앞에선 겁이 많아. 스팍."
"알고 있습니다."
"네가 무서워서가 아니야, 단지. 나는."

스팍에게 있어 커크와의 사랑이 새로운 감정의 경지를 여는 것처럼, 커크에게 있어서도 스팍을 사랑하는 건 감정의 지평선을 넓혀가는 일이었다. 한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건 우주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이었다. 커크가 줄곧 두려워했던 건 기껏 들어간 스팍의 세상에서 자기 혼자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스팍의 팔 안에서, 커크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사랑해. 스팍. 내 가장 연약한 부분과 유일무이한 믿음으로 너를 사랑해."

스팍의 손이 커크의 앞머리를 빗어넘기면 커크는 웃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커크의 눈웃음에 스팍이 커크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커크는 스팍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어깨 언저리까지 부드럽게 쓸어냈다. 스팍이 고개숙여 제게 입을 맞추려 할 때, 커크가 속삭였다.

"한번 갈 데 까지 가보자. 우주 끝까지, 우리 둘이서."

스팍이 소리내서 웃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커크는 느낄 수 있었다. 두사람의 항해가 흠결없이 완벽하리란 법은 없었다. 때로는 싸우기도 할테고, 엉망진창이 되었다가 좋은 순간도 올 것이다. 항상 밝은 날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항상 어두운 날만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항상 함께일거란 사실이었다. 커크와 입술을 맞붙이며, 스팍이 대답했다.

"분부대로, 캡틴."

그렇게 두 사람은, 삶의 항해를 함께 할 것이다.

* 제목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밤 끝으로의 여행>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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