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hine is my hometown

MCU 스티브 로저스X브록 럼로우 2차창작

2차 창작 by 바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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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고 싶다고?"

"네, 캡틴. 영혼의 고향이라, 거기가."

 

럼로우는 스티브의 팔에 안겨 중얼거렸다. 앨버커키의 잘 익은 4월의 햇빛이 창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싸구려 모텔의 창문 프레임에 갇힌 태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했다. 햇빛을 등진채로 받던 럼로우는 스티브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썩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물론 럼로우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일은 아니긴 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길거리에서 싸움질로 연명하던 시절, 초죽음이 되었을 때 피어스의 눈에 띄어서 스카웃 된 거나, 스티브를 죽이라고 파견된 일이나, 스티브의 곁에서 부관으로서 그와 함께 한 시간들 전부 말이다. 공통점이라면 럼로우가 죽을 자리를 골라놓고 임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살 지 고를 수 없다면 어떻게 죽을지는 고르고 싶다는 게 럼로우의 생각이었다. 비록 이전에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할 지라도.

 

하지만 그 전에 바다는 보고 싶더라.

 

왜 하필 바다냐고 하면, 럼로우가 기억하는 걱정없고 자유로운 시절의 마지막 기억이 바다를 보러 갔을 때였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가족이야 없었고, 고아원의 몇몇 친구들과 함께 고아원을 탈출해 무작정 내달렸는데 걸음 닿은 곳이 바다였다. 여름바다에 비치는 느리고 정열적인 햇살은 럼로우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런 바다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뭐, 못 가도 상관없어요."

 

럼로우가 시원스레 입가를 죽 찢으며 웃었다. 스티브는 팔뚝으로 럼로우의 머리를 받친 채 그를 마주보고 있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럼로우는 스티브의 푸르고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한여름 햇살이 비친 바다 표면을 닮은 색이었다. 투명한 듯 깊은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스티브가 고개를 슬쩍 밀어 입을 맞춰왔다.

 

"읍, 흑..."

 

럼로우가 스티브의 목에 팔을 감고 입맞춤에 응했다. 스티브가 느리게 럼로우의 입술을 머금으며 눈을 감았다. 럼로우는 스티브의 입술 끝까지 제 입술을 문질렀다가 웃었다.

 

"이게 당신 70년만의 첫 키스는 아니겠죠? 캡."

"성에 안 차던가?"

"아뇨. 이런데서까지 쓸데없이 다정하시길래요."

 

그 말을 들은 스티브의 눈이 가늘어졌다. 럼로우는 쿡쿡 웃으며 스티브의 앞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겨주었다.

 

"예쁜 머리도 다 흘리고 다니고, 우리 대장은 나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러시나."

"럼로우."

 

스티브가 입으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코로 내쉬었다. 럼로우는 두 손으로 스티브의 뺨을 받치고 그의 눈을 마주봤다. 럼로우가 말했다.

 

"사랑해요. 스티브."

 

스티브가 놀란 눈을 했다. 럼로우가 보기에는 당황한 것에 가까워보였다. 어차피 같은 마음의 온도를 기대하고 꺼낸 말은 아니라 상관없었지만, 막상 눈으로 반응을 확인하니 가슴에 잿가루가 싸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럼로우가 한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가 속삭였다.

 

당신 눈 속에 내가 바라던 바다가 있네요.

 

 

 

-

 

 

다음날 아침, 럼로우는 사라졌다.

 

그가 입고 있던 옷, 쓰던 칫솔, 신발에서부터 심지어 체온까지 사라진 후였다. 마치 그전부터 스티브와 럼로우가 함께 존재한 적은 없었다는 것마냥. 스티브는 럼로우에게 화가 나는건지, 배신감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둘 다 인지. 스티브는 궁금했다. 럼로우가 제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건 진심이었는지, 혹은 그것조차 위장이었는지.

 

스티브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연속되자 지치고 질려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 순간 스티브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타샤?"

"제대로 전화가 될 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받네. 아직 이 비밀회선이 쓸만한가봐."

"때로는 아날로그가 답인 경우도 있으니까. 무슨 일이야."

 

스티브가 침대맡에 떨어져 있던 회색 티셔츠를 주워 몸에 걸치며 말했다. 문득 눅눅하게 젖은 침대 시트에서 럼로우의 체향이 나 스티브가 걸음을 멈췄다. 나타샤가 수화기 너머로 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

 

"지금 당장 뉴욕으로 돌아와, 스티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한 군데만 들리고."

 

스티브가 가죽재킷을 어깨에 들쳐매고 말했다. 나타샤가 즉각 되물었다.

 

"어디?"

"내 고향."

 

스티브는 침대 옆 탁상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 태양을 바라봤다. 태양의 흑점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 곳에 존재했다. 스티브가 대답했다.

 

"캠프 리하이."

 

 

 

 

스티브가 뉴욕까지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진 않다며, 나타샤는 그와 캠프 리하이에서 합류했다. 내륙을 따라 가는 경로라, 스티브가 가는 길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스티브는 럼로우가 스트라이크팀과 합류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스티브의 예감은 적중했다. 스티브와 나타샤가 캠프 리하이에 발사된 하이드라의 미사일을 피하고 난 뒤, 럼로우는 캡틴의 생사를 확인하라는 명을 받았다.

 

"참 난장판을 만들어 놨구만."

 

럼로우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난 잔해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혀를 츳 하고 찬 럼로우가 팀원들에게 수신호로 수색을 명령했다.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잔해를 바라보던 럼로우는 잿더미 사이에서 스티브가 쓰던 선글라스를 발견했다.

 

"스티브..."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린 럼로우가 미간을 좁혔다. 럼로우는 검은색으로 탄 얼룩이 섞인 회색 잿더미 사이에서 선글라스를 주워들었다. 문득 럼로우는 스티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네도, 무사하길 바랬다고.'

 

'브록, 자네가 살길 바랬어.'

 

럼로우는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태양은, 지금 곁에 없어도,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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