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2차 창작 단편 모음

[커크스팍] 하필이면 벌칸인을 사랑한 남자

커크는 스팍을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이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예감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이런 문제에 부딪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커크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스팍이 과연 나를 좋아해 줄까, 하는 문제와 그가 과연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커크의 걱정은 기우였다. 커크의 단도직입적인 고백에 스팍이 망설임 없이 오케이를 보낸 것이다.

“스팍, 진심이야? 너 진짜로…, 너도 날 좋아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캡틴.”

“…그럼 표정 좀 풀고 말해. 웃거나 울거나 감동 받았다거나 아님 최소한 동요하는 표정이라도 좀 보이면 안 될까? 누가 벌칸인 아니랄까 봐 이 순간에도 무표정이냐!”

“벌칸인은 감정을 억제할 수 있을 뿐이지 감정을 느끼지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내지 않을 뿐 저도 충분히 캡틴께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봤자 하나도…. 아니, 됐다. 근데 너 정말 괜찮아? 난 남자고 너도 남자잖아?”

“‘사랑’이란 인간의 언어적 정의로는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인데 이는 대상의 성별이 같거나 다르다고 해서 옳고 그르다고 판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 간의 사랑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도 않으며 지구에서는 2xxx년 이래로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런 논리 밖에 모르는 벌칸인 같으니라고! 내가 이런 놈을 어쩌다가…. 아무튼 스팍 너도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거지? 그럼 우리 이제 사귀는 거 맞지?”

“그렇습니다, 캡틴.”

그리고 스팍이 입을 다물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고 말했다.

“저도 좋아합니다, 커크.”

그 순간 커크는 마치 아무런 장비 없이도 대기권을 뚫고 은하계 너머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흥분과 환희를 느꼈다. 기쁨을 주체 못 하고 스팍을 끌어안았다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가를 반복하는 커크를 바라보는 스팍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한 인간과 한 벌칸인이 연인이 되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냐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적어도 한 인간한테는.

커크는 신체 건강한 20대 인간 남성이었고, 현재 눈만 마주쳐도 먹던 밥상까지 뒤엎고 물고 빤다는 연애 초반이었다. 게다가 스타플릿 출신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커크는 소문난 바람둥이다. 따라서 평소 커크의 연애 페이스 대로라면 만리장성을 쌓아도 진작에 지구 한 바퀴는 감을 만큼 쌓고도 남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커플의 스킨십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물론 시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함대 내 대원들의 눈을 피해서-하지만 이미 모두가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슬쩍 스팍의 엉덩이를 만진다던가, CCTV의 사각지대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것 정도는 커크가 이미 시도했던 것들이었다. 문제는 어떤 스킨십을 하더라도 스팍이 목석같이 꼿꼿하기만 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입술을 부딪치고 타액을 섞고 설왕설래 해봐도 스팍은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멀뚱히 있기 일쑤였다. 그나마도 커크가 적극적으로 나서니까 적당히 상대해주는 느낌? 커크 입장에선 속이 터지고 미칠 지경인 게 당연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대놓고 묻기도 했었다.

“스팍, 솔직히 말해 봐. 나랑 키스하거나 스킨십하는 게 싫어? 그게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는 거라면 제발 알려 줘.”

“솔직히 말하자면 전 그 행위들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커크.”

“…뭐?”

커크는 말문이 막혔다. 뇌가 고장이라도 난 건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 한 채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 있는 게 다였다. 반면 스팍은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진지한 표정이어서 커크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커크의 뇌가 다시 활발히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커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대체 무슨…. 아니, 잠깐만! 방금 한 말은 나랑 스킨십을 하기 싫다는 거지? 그럼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아닙니다. 전 확실하게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서로 입술을 부대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낍니다.”

그 순간 커크가 뒷목을 잡은 건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날, 커크는 어째서 벌칸과 인간의 혼혈이 희귀한지 이해하게 되었으며 스팍의 어머니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사랑하는 사람하고 왜 스킨십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데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커크에겐 고작 돌아가는 길에 본즈에게 들려 혈압약을 잔뜩 챙겨오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제임스 T. 커크가 아니다. 아무래도 벌칸인과 사귀는 건 처음이라 자신이 너무 배려만 했던 것 같단 생각에 커크는 이번에야 말로 좀 저돌적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샤워도 하고 제복도 단정하게 차려입고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커크는 스팍의 개인실 문 앞에 도착해서 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오늘만은 반드시 거사를 치르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스팍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노크를 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잔뜩 긴장해있던 커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 깜짝이야! 스팍!! 왜 이렇게 문을 갑자기 여는 거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리고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문을 벌컥 열면 안 되지! 나 말고 엄한 놈이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대체 나인 건 어떻게 안 거야?”

“발소리를 들었으니까요. 당신 발소리는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있어요.”

순식간에 커크의 얼굴로 열이 올랐다. 딱딱하게만 굴던 스팍의 입에서 저런 낯간지러운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제복을 벗고 편한 옷을 입고 있어서 인지 스팍의 얼굴도 평소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왠지 예감이 좋다. 오늘 밤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여기 서있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며 커크가 능청스레 스팍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확실히 잠근 다음 왠지 좀 더운 것 같다며 괜스레 제복 위 단추를 몇 개 풀었다. 그러면서 스팍을 힐끔 보았지만 스팍은 신경도 안 쓰며 방을 찾아온 손님에게 대접할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약이 오른 커크가 그대로 다가가 스팍을 뒤에서 껴안았다.

“…커크, 갑자기 그렇게 달려들면 위험합니다. 하마터면 뜨거운 차가 당신 손에 쏟아질 뻔했어요.”

“괜찮아, 그런 거 안 마셔도 돼. 그거보다 스팍, 뒤돌아서 나 좀 봐봐.”

스팍이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신의 허리에 감겨 있는 커크의 팔을 살짝 떼어낸 후 뒤를 돌아 커크를 마주했다. 커크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대로 스팍을 끌어안아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동시에 스팍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며 옆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스팍은 두 팔을 어정쩡하게 들어 올린 채 커크의 애무를 받았다. 여전히 별다른 반응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단 일념으로 커크가 스팍을 침대 위로 넘어뜨리려 밀었다.

…밀었다. 분명히 밀었다. 근데 미동조차 없다. 너무 살짝 밀었나 싶어 좀 더 세게 밀었다. 그래도 안 밀린다. 다시 한번,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침대로 밀었다. 젠장, 그래도 안 밀려! 이게 뭐야! 단단한 벽을 들이받는 기분이야! 커크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한 채 스팍을 바라봤지만 스팍은 한 쪽 눈썹만 올리며 갸우뚱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커크는 잊고 있던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다. …맞다, 얘 나보다 힘 세지.

“큼, 크흠! 저기, 스팍? 미안한데 침대로 좀 가주면 안 될까? 그래, 그래. 옳지, 바로 그거야! 그렇게 똑바로 누우면 돼. 아주 좋아.”

커크의 시커먼 속내는 모르는지 스팍이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동그란 눈동자로 커크를 올려다보는데 여기에 너무 동해서 커크는 순식간에 중심부로 피가 쏠리고야 말았다.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기에 허겁지겁 상의를 벗어던진 커크가 스팍의 위로 올라탔다. 잔뜩 흥분해서 평정심을 잃은 커크에 비해 스팍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커크를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런 스팍에게 커크가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이제 진짜 쇼타임이야, 베이비.”

그리고 커크는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커크가 간절한 듯 애타게 스팍의 입술을 물고 빨자 스팍이 살짝 한숨을 쉬더니 입을 벌려 주었다. 금세 닫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 됐는지 커크가 허겁지겁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더욱 깊고 질척하게 입 맞추며 스팍의 맨 가슴을 쓸었다. 스팍의 상의는 재빠른 커크의 손에 진작에 벗겨진 후였다. 입은 떼지 않은 채 가슴과 옆구리를 지분거리던 손이 허리를 거쳐 스팍의 중심부로 내려왔다. 커크가 맞닿은 입술을 떼더니 씨익 웃으며 입술에 쪽쪽 가볍게 키스해주곤 스팍의 허리를 들게 하더니 바지를 벗겨냈다. 그 순간, 욕망에 허덕이던 커크의 얼굴이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굳었다.

“…스팍.”

힘겹게 꺼낸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충격과 공포가 가득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스팍 마저도 상처 받은 게 분명한 커크의 얼굴에 답지 않게 당황했다. 커크가 거의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제임스 T. 커크. USS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이자 스타플릿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플레이보이. 하지만 지금은 벌칸인 연인을 둔 탓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침을 하면서도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처량한 신세. 누굴 탓 하리오. 이게 다 하필이면 벌칸인을 사랑하게 된 내 탓이고, 벌칸인의 성생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내 탓이리!

차라리 독수공방이라도 하면 나을 텐데. 지금 이 상황은 오히려 커크에겐 고역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숨소리도 들릴 만큼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도 한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데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잠만 자야 되다니! 제임스 커크 인생에선 ‘손만 잡고 잔다’는 말 따윈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신이시여, 왜 하필 제가 벌칸인을 사랑하게 두신 겁니까!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왜!!

커크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분이 풀릴 때까지 복도를 질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없었던 건, 자신의 옆에서 얌전히 누워있는 사랑스러운 연인 때문이었다. 강제로 고자가 되어버린 기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커크는 스팍이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다. 어쩌겠는가, 이미 벌칸인을 사랑해 버린 것을. 아직 폰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데 억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신 커크는 어떻게 해야 스팍에게 ‘인간은 종족 보존의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쾌락과 심적 만족을 위해서 관계를 갖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납득시켜서 다음번엔 기필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쉬운 마음에 커크는 붙잡고 있던 애꿎은 스팍의 손만 세게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며 주물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같은 방, 같은 침대 위에서 잠 못 드는 인간과 더불어 잠 못 드는 벌칸인도 있었다. 자신이 스팍의 손을 쓰다듬을 때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녹색으로 달아오르고 있단 사실을 커크는 전혀 알지 못 했다. 

- 201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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