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생일 축하해. - D.A

프리마베라 : 더 비기닝 / 다이앤 아르터스가 보르도 스노우에게 / 2021.02.21 업로드

보르도 스노우에게.

정기적으로 사절단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라지만, 미리 말하자면 이건 그런 편지가 아니야. 봉투 겉면에 적은 글자를 봤으면 알겠지만…. 아니다. 사과가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당일에 네게 이 편지가 도착했어야 했어.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깨닫고 부랴부랴 펜을 드는 꼴이… 영 멋있지가 않네. 깜짝 선물답지도 않고. 용서해라. 일이 너무 바빠. 최근에 제2차 평화협정 건으로 단장과 함께 서류에 파묻혀 있거든. 너도 그 자리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받았을 테니까 알겠지만. 뭐, 서문은 이쯤 할게. 너도 지겹게 어려운 이야기 듣고 싶지 않을 거 아냐. 나도 친구한테 부치는 편지에서까지 일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생일 축하한다, 보르도 스노우. 요새 널 보면 노란 털이 이제 막 빠지기 시작하는 청소년 오리쯤 돼 보여서 기특하더라. 웃기다고 해야 할지, 뿌듯하다고 해야 할지. 둘 다일지도 모르고. 이제 너도 20대 후반에 들어서지? 순례길이 벌써 한 세기 전처럼 느껴지네. 내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렇게 체감하는 것도 알 만해. 너는 그 시작에 네가 있다는 걸 영광으로 여겨야 돼. 농담이다. 너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오진 못했지. 고맙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줘서. 너도 좋은 사람이야.

생일이라는 게 참 별거 아닌데, 막상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려면 아쉽고 그렇더라. 나만 그런지도 몰라. 난 어렸을 때부터 사절단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 생일을 챙겨왔으니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생일은 순례길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릴리움으로 올라오는 통에 그 이후로 한 번도 생일을 집에서 보낸 적이 없어. 그래도 7월 중순쯤 되면 고향에서 내 이름을 달고 날아오는 편지가 몇 통 되는데, 아마 내가 익숙지도 않은 릴리움의 뜨거운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편지 보내는 거야. 너도 이즈음을 사랑해보라고. 딛고 선 들판에 봄이 찾아들기 직전, 겨울 망토 한 자락을 붙들고 있는 이 날을.

시간은 너무 빠르고, 사절단에 속해 있을 때처럼 밤낮으로 얼굴을 볼 수도 없으니 아쉬운 게 사실이더라. 가끔 릴리움 광장 한가운데에서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애를 보면 너인 줄 알고 놀라. 네가 수도로 잘 안 오니까 그렇잖아. 좀 놀러 오고 그래라. 앉아서 책만 쓰는 애가 뭐가 그렇게 바빠? 아, 이 말은 취소. 나도 앉아서 서류만 들여다보는데 바빠 죽겠으니까. 그래도 내가 무단결근하고 페리오로 내려갈 수는 없잖아. 합법적으로 그러려면 이렇게 바쁜 와중에 눈치 보이게 휴가 써야 한다고. 네가 좀 와.

잔소리하려던 계획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누가 나보고 네 보호자래. 그래서 그런가 보다. 왠지 자식이 다 커서 독립해서 나간 뒤에 집에 남겨진 부모 같은 기분도 가끔 들고. 이 말은 일부 농담으로 들어라. 고향을 떠난 건 정작 네가 아니라 나니까. 페리오는 요즘 어떻냐. 이쯤이면 눈이 많이 쌓였겠지. 최고의 보석 세공사가 사라졌으니 시장에 나오는 장식품들은 떼 가뭄이 들었을 테고. 이것도 농담이야. 넌 안 알려주면 매번 진담인 줄 아니까.

편지랑 같이 선물도 보냈다. 아마 내 예상으로는 지금 선물은 포장째로 놔두고 편지부터 뜯었겠지. 안 봐도 다 알아. 다 읽으면 뜯어봐. 선물이랑 같이 리셸 초콜릿 한 박스 챙겨 보냈다. 이번 탄생제를 기념해서 새로 나온 거야. 리셸 얼굴이 그려져 있다나, 뭐라나. 모르겠고 그냥 너 좋아할 것 같길래 넣었어. 입에 안 맞으면 다른 사람이랑 나눠 먹든지 해. 참, 선물은 단장이 같이 골라줬으니까 마음에 들면 나한테 고맙다고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단장님은 바보입니다- 해.

근무 중에 사적인 일 처리하는 것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부관 하나가 깐깐해. 너는 안 만나봐서 모르겠지. 만나지 않는 걸 추천한다. 30분이면 충분히 쓸 줄 알았는데 내가 날 너무 과대평가했네. 못다 한 말은 나중에 덜 바빠지면 하자. 편지로 하든, 만나서 하든. 그 전에 평화 협정이 재개되는 편이 빠르겠지만. 뭐, 하여튼. 만일 릴리움에 올 일이 생기면 페리오에서만 파는 과자 좀 종류별로 사 와. 늘 말하지만 여긴 그게 없거든. 누구 올 때마다 사 오라고 하는데 최근에 또 떨어져 버려서. 야, 이제 정말 그만해야겠다. 미리암이 더 썼다간 아침까지 야근이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봐.

마지막으로, 한 살 더 먹은 걸 축하한다.

다이앤 아르터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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