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14
#14. KR200
노먼은 그 섬뜩한 광경을 바라봤다. 인간의 것과 너무나도 흡사한 신체 조각들이 주위에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전부 안구가 없거나 파손된 상태로, 최소 스무 구는 넘는 안드로이드의 머리와 몸체가 구석마다 수북이 쌓였고 떨어져 나간 사지 역시 주변에 널려있었다. 오직 KR200만이 손상된 부분 외엔 나름 온전한 형태로 두 손이 가슴 위로 포개어진 채 탁자에 눕혀진 모습이었다.
노먼은 퍼킨스에게 상황을 알린 후 천장을 밟고 올라섰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안드로이드들은 피가 완전히 증발하고 말라붙은 상태였다. 산산조각 난 상·하체는 시커먼 먼지로 본래의 색을 알아보기 어려웠고 벗겨진 인공피부 위로 쳐진 거미줄을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했다. 인간과 다르게 시신이 부패하지도 않는 이들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발견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노먼은 한 안드로이드의 분리된 상체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활짝 열린 복부 안엔 몇 개의 회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분명 무언가 들었던 흔적이었으나 노먼은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습관적으로 또다시 재킷 속으로 손을 가져간 노먼이 이내 답답한 신음을 내뱉곤 코너에게 부탁했다.
“코너. 이 안에 뭐가 들었던 건지 알 수 있나요?”
코너가 시신을 흘끗 보고는 간단하게 말했다.
“티리움 펌프가 있을 위치입니다.”
티리움 펌프라면 안드로이드의 심장과도 같은 부품이었다. 노먼은 고개를 기울여 복강 안을 살폈으나 이미 훼손된 시신을 더 엉망으로 흐트러트리지 않고서야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협소한 작업실 같은 이곳엔 푸른 피가 말라붙은 공구가 두어 개 떨어져 있었다.
노먼은 손전등을 돌려 그가 올라온 구멍 근처에 남은 흔적을 보았다. 상자가 놓였던 것을 보여주듯 네모난 모양으로 먼지가 쌓였고 주변에는 무언가를 지우려 시도한 것이 분명한, 흐트러지고 문댄 넓은 자국이 보였다. 분명 어떤 단서를 제시할 만한 흔적이었으나 맨눈으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노먼은 눈을 찌푸렸다. ARI가 있었다면,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노먼은 또다시 코너를 불렀다.
“여기 좀 분석해 줄 수 있어요?“
코너는 다른 안드로이드의 사체를 살펴보는 중이었으나 노먼의 부름에 바로 일어나 다가왔다.
“어떤 흔적을 지운 자국 같은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자리 끝을 보면 손바닥으로 예상되는 흔적이 있긴 하나 이것만 봐선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래에 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화물용 상자가 옮겨진 것처럼 보이네요. 포개어 쌓을 수 있도록 모서리에 미세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요. 여기도 티리움이 떨어진 흔적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안드로이드에게서 분해한 생체 부품들을 상자에 보관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생체 부품이라니?”
어느새 위로 올라온 퍼킨스가 물었다. 코너는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모든 안드로이드의 속이 비었습니다. 안구부터 팔과 다리, 연산장치와 메모리카드, 그리고 티리움 펌프까지. 심지어 티리움 자체도 극소량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자연스레 증발하였다 보기엔 부품을 적출한 부분이 너무 깔끔해요. 아마 먼저 피를 뽑고 나서 기계가 동작하는 데 필요한 주요 부품을 분해하여 가져간 듯싶습니다.”
퍼킨스가 소리 나게 혀를 찼다.
“불법으로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사고파는 작자가 넘쳐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지저분하게 작업하는 놈이 근처에도 있을 줄이야.”
노먼은 개 중 가장 처참하게 파손됐음에도 상대적으로 부식이 덜한 KR200의 사체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건 안구가 남아있어. 머리랑 왼쪽 팔이 부서졌지만, 멀쩡한 팔다리 역시 그대로 붙어있고…. 코너, 혹시 이 안드로이드도 속이 비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코너가 안드로이드의 복부를 눌렀으나 작동이 멈춘 지 한참이 지난 몸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너가 주변에 떨어진, 끝이 얇고 납작한 공구를 가져다가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홈에 들이밀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복강이 열렸다. 안에는 원기둥 모양의 부품이 들어있었다.
코너가 그것을 빼내어 눈앞에 들어 올렸다.
“이건 그대로네요. 장치가 망가지지도 않았고요. 펌프 내에 남은 티리움의 양을 보아하니 강제로 피를 빼내어 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미 머리와 몸의 파손된 부분으로 과다 출혈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티리움을 뽑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지도요.“
“티리움만이 아니라 다른 부품도 가져가지 않았단 게 이상하네요. 왜 KR200만 사라진 모습 그대로인지…. 혹시 다른 안드로이드의 사망 시각을 알 수 있나요?”
코너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기본적인 에너지원이 비어버려서 작동 정지 일자도 현재로선 확인이 어렵습니다. 메모리 가동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고요. 다만 여기 KR200은….”
코너가 안드로이드의 목을 옆으로 돌려 두개골과 닮은 내피 안을 들여다봤다.
“메모리가, 아직 들어있네요. 추가적인 회로가 연결된 걸로 봐선 이미 누군가 열어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잠시뿐이나마 가동할 만큼의 티리움도 남았으니 운이 좋다면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 가동 상태를 유지해서 메모리를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의 말에 퍼킨스가 눈짓했다.
“좋네. 한 번 확인해 봐.”
코너가 티리움 펌프를 KR200의 복부에 장착하고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손끝이 하얗게 변하고 강제 작동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노먼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코너가 돌아봤다.
의아한 기계의 눈빛에 노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퍼킨스에게 말했다.
“승인받지 않은 메모리 조사는 불법이야. 자칫하면 기껏 알아낸 증거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어. 일단 수습해 가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낸 후에 조사해야 해.”
파트너의 합당한 지적에 퍼킨스는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납득하고 수긍했다. 코너도 결국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딘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먼이 바닥에 난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현장 감식반이네. 네가 불렀어?”
“그래. 빨리도 왔군.”
퍼킨스가 다시금 상자를 밟고 내려가 감식팀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고, 노먼은 위에 남아 올라온 요원에게 몇 가지 세부 사항과 살필 곳을 말해주었다. 붕괴 우려 때문에 몇 명만이 올라와 사진을 찍고 수상해 보이는 흔적 주변에 노란 증거 표식을 올려둔 후 시신 조각을 모두 수습해 갔다.
“전부 해결된 건가요?”
내려와서 창고 바닥을 딛고 선 노먼과 퍼킨스가 코너를 돌아봤다. 인간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코너가 말을 이었다.
“의원의 사망 원인은 특수하게 조제된 레드아이스로 인한 중독이었고 그와 접선해 약을 건넨 자도 찾아냈습니다. 제겐 테오의 자백이 담긴 영상이 있으니 증거물로 제출하겠습니다. 또한 사라진 안드로이드를 훔쳐 간 자와 그 시신 역시 찾아냈으니, 사건은 이걸로 종결된 것이 아닌가요?”
노먼이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죠. 하지만 아직 중요한 게 남았어요. 범죄 동기가 빠졌잖아요.”
“동기요?”
“네. 클라인과 접선한 자가 테오가 맞다 쳐도, 약을 건넸다는 자백을 하진 않았어요. 게다가 그 말을 내뱉은 경위도, 상황도 조금 미심쩍고요. 또 빌리가 얘기한 것처럼 KR200의 피를 뽑아가기 위해 그 사체를 여기로 옮겼다면 적어도 다른 안드로이드처럼 부품이 사라져야 하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이런 짓을 한 자가 누군지에 대해선 또 다른 조사가 필요해 보여요. 굳이 따지자면, 한 사건이 닫히고 새로운 사건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겠죠.“
노먼이 어깨를 으쓱하며 추가했다.
“위에 남은 단서가 많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
코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서요?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매매하는 자라는 것 외에, 다른 단서가 있나요?”
“자가 아니라 자들, 이에요. 인신매매범이 흔히 그러하듯 그들 역시 조직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요. 안드로이드를 분해하는 전문가와 함께 부품을 수급하고 판매하는 공범이 최소 셋 이상은 존재할 겁니다. 현장에 어떠한 지문도 남기지 않은 데다 유의미한 흔적을 모두 지운 걸로 봐서는 일반적인 범죄단체가 아니에요. 적어도 한 명 이상, 지능이 높은 자가 끼어있을 겁니다. 안드로이드의 사체와 바닥에 먼지가 쌓인 정도를 봐선 저 공간은 버려진 지 오래됐지만 모종의 이유로 KR200을 이곳에 다시 데려왔어요. 여태껏 신경도 쓰지 않던 감시 카메라가 갑자기 지워진 것도 수상하고요.“
거기까지 말한 노먼이 깜빡했다는 듯 퍼킨스를 돌아봤다.
“맞아. 영상 복원이 가능할지도 모르니 하드를 수거해 가야 해. 경비실로 가서…”
“이미 감식팀에 말해뒀어. 평화롭게 망한 공장 부지에 FBI가 쳐들어왔는데, 증거품 회수와 함께 상황을 설명해 줄 요원 하나쯤은 보내줘야지.”
당연한 걸 말한다는 듯 시큰둥한 퍼킨스의 대답에, 노먼은 든든한 파트너를 곁에 둔 게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콴티코에 발령받고 미제사건을 담당한 후부턴 거의 모든 경우에 그는 지원을 받기보단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파트너라고 배정된 자들은 수사에 방해가 안 되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였기에, 그는 그 기간 ARI에 의존하는 것 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
“리처드, 너도 나랑 같이 프로파일러에 지원하지 그랬어. 그럼 나 혼자 그 고생 안 해도 됐는데.”
노먼의 뜬금없는 투정에 퍼킨스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적성이랑 안 맞아. 그리고, 누구 좋으라고? 거기까지 가서 네 뒷바라지라도 하라는 거냐? 너 가고 기껏 편해지나 싶었는데 왜 하필 또 디트로이트로 따라와선….”
속이 뻔히 보이는 투덜거림에 노먼이 씩 웃었다.
“왜 그래. 내가 듣기론 국장이 파트너 배정 건에 관해 물어봤을 때, 네가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던데.”
퍼킨스가 기가 막히단 듯이 외쳤다.
“웃기지 마!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어. 정 파트너를 배정받아야 한다면 기존에 같이 일하던 인간이 편하다고 했을 뿐이야.”
“그거나 그거나. 애초에 같이 일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나 말고도 후보군이 수두룩….”
“입 닥치고 분석이나 마저 해.”
얼굴을 일그러뜨린 퍼킨스가 등을 돌려 다른 요원에게로 갔다. 노먼은 오랜만에 퍼킨스를 당황시켰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는 기분 좋은 고양이 같은 얼굴로 노먼이 미소 지었다. 코너가 멀어지는 인간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퍼킨스 요원이 화가 난 것 같은데, 괜찮나요?”
“걱정마요. 부끄러워서 그런 거니까.”
노먼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디까지 말했죠? 아아, 맞다. 그들, 아니 적어도 하나 이상은 아마 코너, 당신과 제가 창고로 왔을 때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KR200이 사라진 다음 날 우리가 곧바로 여길 찾아왔으니 도망갈 시간도 촉박했을 테고. 무엇보다 카메라의 영상을 지운 것만 봐도 꼬리가 잡혔단 사실을 알아챈 거니까.“
“하지만… 저는 그때 여기서 어떠한 생체 반응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자는 당신의 감지를 피할 만큼 기척을 완벽히 숨길 줄 아는 존재, 즉 안드로이드였을 겁니다.”
노먼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던 코너가 말을 받았다.
“하긴, 인간이 안드로이드의 메모리를 조사하려면 특수한 장비와 컴퓨터가 필요해요. 위에는 장비를 설치할 만한 공간도, 장비를 치운 흔적도 없었고 KR200의 메모리는 단순한 외부 회로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조사한 게 맞겠네요.”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피해자학에 가까운 접근이지만, KR200은 그자들에게 좀 더 소중한 존재였을지도 몰라요.“
“소중한 존재요?”
“산산조각 난 다른 안드로이드와는 다르게 KR200의 시신에선, 어떤 존중이 느껴졌어요. 부품이 그대로 들어있던 점이나 가지런히 눕힌 모습, 포개놓은 손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KR200과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네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 위에 버려두고 간거죠?”
“소중한 존재라고 해서 모든 위험성을 감수할 만한 건 아니에요. 시신을 수습해 갈 시간이 없었을 수도, 혹은 그 이상의 수고를 들일 만하다곤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죠. 인간이야, 땅에 묻거나 하는 식으로 죽음을 애도하지만 안드로이드도 같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선 코너를 돌아봤다.
“이건 당신이 더 잘 알겠네요. 만약 소중한 사람이 당신을 떠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코너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을 받은 탓에 눈만 끔뻑거릴 뿐, 한참 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이건 그가 대답하기에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요.”
기계의 말에 이번엔 노먼이 눈을 끔벅였다.
“소중한 사람이 없어요? 경찰서에 같이 수사하던 형사도 있고, 동료 안드로이드도 많잖아요?”
“아. 같이 일한 동료는 전부 소중한 사람이 되는 건가요? 그럼, 당신과 퍼킨스 요원도 소중한 사람이겠네요.”
“아니. 우린 며칠 전에 처음 봤잖아요. 그런 거 말고, 그러니까 소중한 존재란….”
노먼은 이 보편적인 관념을 막상 말로 풀자니 혀가 매끄럽게 돌질 않았다. 그가 띄엄띄엄 말했다.
“음.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라든지, 혹은 편한 사람이라든지, 옆에 있으면 안정감이 들고 행복해지는 존재라든지…. 뭐, 그런 게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요?”
노먼이 다소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그는 수사관이지 철학자가 아니었으니 이 정도 설명이 그로선 최선이었다. 하지만 코너는 이런 빈약한 설명으로도 대강 알아들었다는 듯, 노먼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대답했다.
“제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서늘할 정도로 냉정한 즉답에 노먼은 무안한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그는 코너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봤다. 안드로이드의 얼굴엔 어떠한 유감도 슬픔도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지극히 당연하고도 평범한 사실을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노먼은 사과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여겨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노먼이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언젠간 당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나타날지도… 아니, 나타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제 질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겠죠…….”
할 얘기가 떨어진 노먼은 조금 멍청하게 말을 끝맺었다. 코너는 여전히 무감한 눈빛으로 그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머쓱해진 노먼은 코를 매만지곤 괜스레 퍼킨스를 찾았다.
“리처드! 여기도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자.”
퍼킨스가 현장에 남을 요원에게 몇 가지를 지시하곤 몸을 돌렸다.
“그래. 국장에게 보고할 것도 생겼으니. KR200은 부검을 위해 바로 연구소로 옮겨놓으라고 했어.”
“좋네. 메모리 조사 허가가 나면 거기서 열어보기도 용이하고.”
노먼의 말에 퍼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이러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굶게 생겼군. 점심이나 간단히 먹고 들어가지.”
“스타라이트, 어때?”
“좋지. 거기서 봐.”
그들은 창고에 남은 감식반을 한 번 둘러보고 입구를 나섰다. 코너가 따라 나오고, 셋은 나란히 주차된 차로 향했다. 먼저 운전석에 올라탄 퍼킨스가 자연스레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너를 흘겨보곤 창을 내려 노먼 쪽을 향해 턱짓했다.
“또 옆에서 귀찮게 굴 생각 말고, 이번엔 저 차 타고 와.”
노먼이 차의 지붕 위로 외쳤다.
“코너! 이리 와요. 괜히 거기 있다가 불똥 튀지 말고.”
코너는 제 앞에 있는 퍼킨스의 넓고 쾌적한 차량과 노먼의 낡고 볼품없는 차를 번갈아 보았다. 공간 자체는 크건 작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사고 났을 때 탑승객이 부상을 입을 확률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코너는 대답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퍼킨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문을 잠가버리고 창문을 닫은 뒤 출발했다. 코너는 떠나는 차량의 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먼은 지붕에 팔을 기대고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같은 꼴을 한 코너를 구경했다. 코너가 어쩔 수 없이 노먼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자신의 차에 얻어 타는 것을 기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노먼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조수석에 오르는 코너에게 쾌활하게 말했다.
“리처드의 차는 주인처럼 너무 정석대로 운전해서 재미없을 거예요. 제가 수동 운전의 스릴을 알려줄게요.”
“저는 스릴보단 안전한 운행이 좋습니다.”
코너의 불안 섞인 대답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듣고도 무시하는 건지, 노먼은 아무런 대꾸 없이 안전벨트를 맨 후 곧바로 출발했다. 코너는 몸이 뒤로 급격히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팔을 들어 위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