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olony

블루 콜로니. 15

CN by BX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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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메모리

“고기 듬뿍 넣어서.”

“전 기본으로 주세요. 코너, 당신은요?”

그러다 노먼은 멈칫하곤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그것만 계산해 주세요.”

음식은 금방 나왔다. 퍼킨스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동안 노먼은 두 개의 샌드위치와 음료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왔다. 인간이 식사할 동안 안드로이드는 그들이 입을 우물대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오전에 기계와 한차례 씨름한 퍼킨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움직였으나, 노먼은 익숙지 않은 그 시선에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너.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안 먹어요?”

“네.”

칼로 자른 듯한 즉답에 할 말이 없어진 노먼이 다시금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가 음식을 꿀꺽 삼키고 또다시 물었다.

“그럼 충전은 언제 해요? 밥 대신, 기계도 먹는 시간이 있잖아요.”

“경찰서에 티리움 보급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매일 마셔야 해요?”

“아뇨. 한 팩이면 기본적으로 한 달까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별다른 동작을 하지 않으면 반 년 이상도 시스템이 돌아가죠.”

“티리움을 섭취하지 않으면요?”

“강제 절전 모드가 설정되고, 대기상태에 들어갑니다.”

“대기 상태엔 뭘 하는데요?”

파트너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그치질 않자, 퍼킨스가 대신 대답했다.

“하긴 뭘 해, 그냥 잠드는 거지. 인간이랑 똑같아. 얘네도 밥 굶으면 에너지 떨어지고 잠만 처자는 거야.”

노먼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코너를 바라봤다.

“그럼,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요?”

퍼킨스도 시선을 돌려 기계를 쳐다봤다. 방금까진 관심조차 없던 일이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그도 궁금해졌다.

코너가 입을 열었다.

“네.”

“뭐? 정말? 네놈도 꿈을 꾼다고?”

퍼킨스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코너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인간의 뇌는 낮에 했던 행동이나 생각을 수면 중에 복기하고 재구성하죠.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로 하루 동안 습득한 수억 개의 정보 가운데 중요한 건 저장하고 필요 없는 건 삭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단계에서 최근과 과거의 데이터가 혼합되고 얽혔다 풀어지며 새로운 정보 값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인간의 상상력과 비슷한 처리 과정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노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코너의 반듯한 미간을 바라봤다.

“당신이 최근에 꾼 꿈은 뭐예요?”

코너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입을 열자 두 인간의 귀가 쫑긋 섰다.

“제가 최근에 꾼 꿈은…….”

그리곤, 곧바로 입을 닫았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답이 없자 퍼킨스가 재촉했다.

“꾼 꿈은?”

코너가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

퍼킨스는 김빠진 얼굴을 했고 노먼은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코너도 왠지는 몰랐으나, 딱히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하기 싫습니다.”

허탈한 웃음을 지은 퍼킨스가 노먼을 돌아봤다.

“웃긴 녀석이네. 시답잖은 비밀도 있고.”

노먼도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는 눈을 내리깐 코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마의 LED가 아주 잠깐 노란빛으로 변했다가 푸른색으로 돌아오는 걸 지켜본 노먼은, 손에 들린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곤 음료를 쭉 들이켰다. 노먼이 말할 동안 이미 식사를 마친 퍼킨스는 지루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 먹었어. 가자.”

그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FBI 건물은 바로 근처였기에 곧장 사무실로 돌아온 두 인간이 잠시 자리에 앉아 서류작업을 처리할 동안 코너는 퍼킨스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뒤, 깁슨이 돌아와 셋을 국장실로 호출했다.

퍼킨스와 노먼이 오늘과 어제 일을 포함하여, 그 전에 조사하고 찾아낸 정보까지 간략하게 보고할 동안 깁슨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메모리 조사 관련 얘기가 나오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빌리의 메모리는… 오늘 아침에 승인 되자마자 기술팀이 바로 열어봤는데 잠금이 걸려있었다고 했어. 억지로 해제하려 하니 데이터가 날아갔고, 건진 거라곤 그가 한참 전 군부대에서 일할 때 기억뿐이었다네.“

“잠금이라뇨?“

퍼킨스의 질문에 코너가 대답했다.

“군용으로 보급된 안드로이드는 보안의 중요성 때문에 웬만한 방법으론 메모리를 조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연구소가 몰랐을 리도 없고, 암호 해독 기술이 부족할 리도 무방하니…. 아마 해방된 후 추가적인 잠금 프로그램이 깔린 모양입니다.”

코너의 말에 퍼킨스가 오묘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젠 KR200에게 걸 수밖에 없겠군요.”

깁슨이 또다시 머리를 가로저었다.

“KR200의 메모리는 이미 클라인 사망 당시에 조사를 요청했었어.”

“그런데요?”

“반려됐어. 얼마전 수사당국에서 피해자들의 메모리를 헤집어 놓은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아직도 거세니, 법무부 입장에서도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지.”

어쩔 수 없단 식으로 얘기하는 깁슨의 말에, 답답해진 퍼킨스가 따져 물었다.

“왜죠? 안드로이드가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도 그 죽음의 이유를 풀기 원할 거 아닙니까? 대체 그 작자들은—”

깁슨이 눈살을 찌푸리고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그냥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과 달라! 메모리 조사는 그 자체로 엄청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안드로이드 수정 헌법에 따라 범죄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승인해 주지 않는 게 원칙이야. 누가 자네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서 했던 모든 행동과 생각들을 영원히 증거 자료로 남기고 보관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응?”

퍼킨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혀를 강하게 찼다. 깁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해해 줘. 나도 더는 요구할 수가 없어. KR200은 그저 무고한 피해자고 클라인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법원은 그의 메모리를 들여다보는 걸 절대 승인해 주지 않을 거야.”

“그 증거가 KR200 안에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막상 깠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감당할 자신은 있고? 쉽게 해결하려 하지 마. 여태까지 메모리 조사 같은 거 거치지 않고도 잘만 풀어왔잖아.“

“그건 상대가 똑같은 인간이었을 때나 가능했죠. 이 자식들은 진짜 골치 아파요.”

“그러니 안드로이드 전담팀이 생겼지. 지원이 더 필요하면 말해. 다른 쪽도 손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대한 방법을 찾아줄 테니.”

“지원 문제가 아닙니다. 관련 법안은 대체 언제쯤 정립이 되는 겁니까? 수사고 자시고, 손발이 완전히 묶였잖아요.”

“왜 약한 소릴 하고 그래? 이번 사건도 꽤 빠르게 마무리했잖아. 클라인은 레드아이스때문에 죽었음이 명백하고, 마약 거래자도 알아냈어. 안드로이드를 훔쳐 간 자와 그 시신까지 찾아냈고. 전부 완벽하게 해결했는데, 또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노먼이 끼어들었다.

“너무 간단하단 생각이 들진 않나요?”

“뭐가?”

“인과관계가 매끄럽지 않고, 삐걱댄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어요. 빌리가 돌변했을 때부터 테오의 죽음까지. 뭔가가 더 숨겨져 있는 기분이 듭니다.”

깁슨은 노먼을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제이든. 자네가 올해로 요원 생활 몇 년 차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국장을 보며, 노먼이 잠깐 생각해 보곤 대답했다.

“수습 기간까지 포함하면… 대강 10년쯤 됐네요.”

“그럼 어떤 사건은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풀리는 경우도 있단 걸 충분히 봐왔을 텐데. 모든 사건이 그렇게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진 않아. 우리에게 중요한 건,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못하도록 막고 범죄자에겐 법의 심판을 받도록 인도하는 거야. 범죄 동기나 피해자의 억울함도 중요하지만 그건 우리가 맡은 역할이 아니야.”

노먼은 눈을 내리깔았다. 깁슨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으나, 완전히 동의하진 못했다. 그가 고개를 젓곤 단호하게 말했다.

“전 이곳에 안드로이드 프로파일링 연구를 위해 파견됐습니다. 제겐 범죄 동기를 밝혀내고 피해자에 대한 조사까지 완벽하게 마칠 책임이 있어요. 전부 범죄자를 잡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자네의 역할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이번 사건은 특수한 케이스야. 퍼킨스가 초반에 말했듯이 원래라면 자네들에게 배정될 만한 사건도 아니었어. 테오는 의원에게 약을 판매했을 뿐이야. 그가 살아있더라도 살해 혐의 대신, 마약 거래 죄목으로 붙잡혔겠지. 사건의 직접적인 범인이라고 볼 수도 없어.”

노먼은 여전히 찝찝한 표정이었으나, 결국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깁슨이 달래듯 얘기했다.

“연구를 위해서라면 리서치에 도움이 될 만한 사건이 이미 차고 넘쳐. 오늘도 열다섯 건 가까이 안드로이드 관련 신고가 들어왔어. 하나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건들도 같이 진행하면서 찬찬히 살펴봐.”

“창고에서 발견한 단서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퍼킨스의 질문에 깁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안 그래도 안드로이드 판매가 금지된 후, 기계를 대상으로 한 실종 신고가 많아져서 관련 팀을 하나 꾸려 조사하고 있었어. 여태까진 단순 납치 사건인 줄 알았는데……. 범인도 당연히 사람인 줄 알았고. 그런데 안드로이드가 끼어있는 불법 유통 단체라니…. 하기야, 인간을 사고파는 존재가 같은 인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

깁슨이 태블릿을 책상 위로 넘겨주었다.

“몇 개월간 조사한 내용을 간추려 놨으니 보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뭐든 얘기해 봐.”

노먼이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그가 손을 놀려 서류를 확인하곤 말했다.

“실종자 대부분이 관공서에 고용된 안드로이드네요…. 흔한 모델에 가족은 없고, 신고도 고용주가 했고요. 이것과 이것은 관련이 없는 범행인 것 같으니 따로 조사해야 하고, 여기에서 여기까진 범죄 유형과 방식에 동일한 패턴이 보입니다.”

그가 펜을 들어 화면에 간략하게 표시하며 설명했다.

“출퇴근 시간대를 노린 걸 보면 피해자의 동선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었을 겁니다. 실종 장소가 다양하고 범행 간격이 짧은 것에 비해, 납치는 신속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네요. 증거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어요. 구성원은 최소 다섯, 아니 그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로 이루어진 단체일 수도 있지만 지능이 높은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조종간을 잡으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이 끼어있다면, 아마 알선책 혹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한 연막일 거예요.

지금은 폐쇄됐지만 안드로이드 부품 폐기장이 있던 장소에 근래에 버려진 시신이 있는지 조사해 봐야 합니다. 안드로이드 병원과 사설 수리업체에 공급된 부품의 고유번호도 확인해서 비교 대조해 보세요. 불법으로 납품되는 루트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빌리의 얘기와 오늘 저희가 발견한 단서를 보면, 수리공이 그들과 한 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안드로이드에게 묻는 방법이 빠를 거예요. 다쳤거나, 혹은 수리 흔적이 남은 자일수록 무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먼의 분석이 이어질 수록 깁슨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 몇 개는 이미 파악이 완료된 것이었지만, 한동안 막혔던 수사 국면에 새로운 활로가 뚫린 기분이었다. 깁슨은 흡족하게 웃으며 퍼킨스를 돌아봤다.

“이래서 자네가 제이든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 거군.”

퍼킨스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노먼은 파트너를 힐끗 쳐다봤지만, 국장 앞인지라 말을 아꼈다. 놀릴 기회는 아주 많았으니 필요할 때 써먹자 생각하며 노먼은 깁슨의 말을 뇌리 한구석에 꼭꼭 눌러 저장했다.

깁슨이 태블릿의 화면을 끄고 말했다.

“좋아. 이번 사건 수사보고서부터 올리고 방금 했던 분석, 실종수사팀에 가서 그대로 말해줘. 추가로 알아낸 게 있다면 의견 나눠보고. 팀장에겐 따로 얘기해 두지.”

“팀장이 누굽니까?”

“범죄 수사부의 사라 테일러 책임 요원.”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잊기 전에 바로 연락하죠. 저희가 찾아낸 단서도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좋아. 다음 사건은 금방 배정해 줄 테니 그동안 휴식을 즐겨.”

깁슨의 말에 퍼킨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이 느셨네요. 아까 메일함 확인해 보니 이미 한 건 들어와 있던데요.”

“그건 그냥 단순 강도 사건이야. 용의자도 이미 특정됐고, 피해자 면담 후 영장 발부하면 저녁이 되기도 전에 끝날 일이야.“

퍼킨스는 저녁이 되면 퇴근해야지, 휴식을 즐길 시간이 대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총괄하느라 만성두통을 앓는 국장에게 투덜댈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깁슨은 피로한 눈두덩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코너라 했나? 수고했어. 덕분에 침입자도 잡고 사라진 안드로이드도 찾아냈으니. 파울러 서장에게 자네에 대한 평가 서신을 잘 써서 전달해 주지. 다음에도 필요한 일이 있다면 연락 줄 테니, 그때도 도와주면 고맙겠어.”

코너는 조금 이상한 표정으로 깁슨을 바라봤다.

“다음이라뇨?”

“다음 협조가 필요할 때를 말하는 거야. 왜. 이 녀석들이랑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

“저는… 계속 이곳에서 일하는 건 줄 알았는데요. 서장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뭐? 아냐, 아냐. 뭔가 전달이 잘못된 것 같군. 난 이 사건 하나에 대해서만 공조 서한을 보냈어. FBI에서 일하는 건 다른 문제지. 자넨, 소속이 경찰서지 않나?”

코너는 말이 없었다. 노먼은 코너의 표정 없는 옆얼굴을 흘끔 쳐다봤다. 겉보기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계의 얼굴은 묘하게 시무룩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다음 협조공문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깁슨은 그들에게 손짓했고, 셋은 국장실을 나왔다. 두 명의 인간은 자리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책상이 없는 코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무실을 나가려 했다. 기계의 등을 잠시간 바라본 퍼킨스는 이내 관심을 접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파트너는 코너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모양이었다.

노먼이 안드로이드를 불렀다.

“코너. 보고서 작성하는 것만 조금 도와주고 갈래요?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세세한 사항이 잘 안 떠오르네요.”

퍼킨스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노먼은 그간 마주한 모든 용의자뿐 아니라 수백이 넘는 피해자의 신상까지 전부 외우고 전날 바뀐 법안을 범인의 귓가에 줄줄 읊어대며 체포하던 인간이었다. 게다가 장장 몇 년간 퍼킨스의 모든 흑역사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자기가 불리해질 때마다 들먹이던 놈이,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가 알기로 노먼의 기억력은, 퍼킨스가 노먼의 잘못을 지적할 때만 안 좋아지는 편리한 능력이었다.

저 기계 놈에게 또다시 동정심이라도 생겼구나 싶어 퍼킨스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노먼은 그 점이 장점인 동시에 커다란 단점이었다. 언젠간 그 때문에 단단히 사달이 날 게 분명했으나, 퍼킨스는 바로 그 이유로 노먼을 가만 내버려둘 수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말릴 수도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전부 파트너의 그러한 면 때문이니.

퍼킨스는 발만 움직여 자신의 옆에 있던 의자를 노먼의 책상 쪽으로 쭉 밀었다. 의자의 바퀴가 도르르 굴러 노먼의 옆에 정확히 가 멈췄다. 코너가 그를 바라봤지만, 퍼킨스는 이제 완전히 신경을 끄고 무표정한 얼굴로 키보드만 두드렸다.

코너가 노먼의 옆에 앉고, 노먼은 그가 정리해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또 빠트린 세부 사항을 물어보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드로이드는 인간들과 함께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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