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카호]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어려진 당신과 함께

스모어 by m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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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당연하다는 듯이 아침 연습을 하기 위해 몸단장을 하고 부실로 향했다. 전세계 사람들이 기념하는 날을 앞둔 전야제였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코즈에는 평소처럼 움직였다. 이브는 내일이니까.

정각에 딱 맞추어 오는 일은 잘 없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힘내서 일찍 일어나는 카호를 보고 있으면 그 노력에 칭찬을 마구 해주고 싶은 기분도 든다. 코즈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실 문 앞까지 도착했다.

혹시나 누군가가 먼저 도착했을까 봐 노크하면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카호 씨가 일찍 온 걸까.

코즈에는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연습이 알차게 진행될 느낌이 들었다. 코즈에는 웃으며 카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답지 않게 당황해 버렸다.

 

“카호… 씨?”

“어….”

 

누가 보아도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할 체구가 아닌 아이가 부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대답하려고 했던 아이는 코즈에의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몸을 움츠렸다. 카호의 이름을 불렀는데 반응을 한 게 이상했다. 코즈에도 일순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물어볼 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일 당황한 건 아이겠지. 코즈에는 아이의 얼굴이 익숙해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괜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안녕?”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자랐는지 인사를 무시하지 않고 고개마저 꾸벅 숙이는 모습에 코즈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도 카호가 어렸을 때 만났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코즈에는 아이를 안심시킬만한 대화거리를 고민했다. 집안에서 막내다 보니 자신보다 작은 어린이들은 귀엽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 겪기 때문에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언니는… 어떻게 제 이름을 알아요?”

 

코즈에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아이가 먼저 질문했다. 그리고 그 말에 코즈에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 아이도 이름이 카호구나. 라고 넘기기엔 너무 우연이지 않은가. 생김새도 카호와 똑 닮았는데.

 

“혹시… 성을 물어봐도 되니?”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알려주는 거 아니랬어요.”

 

코즈에는 아이의 똑부러진 말에 감탄했다. 부루퉁하게 고개를 돌린 아이는 쉽게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다. 코즈에는 곤란해하면서도 상황 파악을 위해 계속 말을 걸 생각이었다. 소중하게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에 잠깐 츠즈리의 친구를 빌리기로 했다.

 

“그러면 그 친구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련? 이 아이는 베이징덕이라고 한단다.”

“와, 귀여워!”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행동 때문일까. 순식간에 눈을 빛내며 제 품에 안았던 토끼 인형을 조심스럽게 옆 의자에 앉힌 아이는 코즈에가 데려온 오리 인형에 시선을 빼앗겼다. 당장에라도 품 안에 안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에 코즈에가 아이쪽으로 인형을 뒤뚱뒤뚱 가까이 움직이면, 아이는 서둘러서 제 토끼 인형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 애는 우사기쨩이야.”

“귀여운 이름이야!”

“너는 어디에서 왔어?”

“츠즈리라는 다른 친구가 데려왔어,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

“와, 우사기쨩은 있지, 지난번 생일 때 엄청 엄청 아파서 엉엉 울고 있었더니, 엄마가 짠! 하고 데리고 와줬어! 음, 음, 뭐라고 했더라, 응! 울면 안 된다고 했어! 그리고 달달한 핫초코도 줬다?”

“멋진데! 나는 종종 과자를 주곤 해.”

“과자! 부러워. 어떤 과자야?”

“음~ 때에 따라 다른데.”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에 아이는 볼을 붉히고 열심히 베이징덕의 말에 집중했다. 흥미진진해 보이는 표정이 귀여웠다. 코즈에는 이걸로 아이가 조금은 이 장소를 편하게 느끼길 바랐다.

한참을 떠들고 있으면 아이가 색색거리며 피곤해 보이는 기색을 띠었다. 볼이 붉어진 게 단순히 신나서 열이 오른 게 아니라 몸이 별로 안 좋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적 카호와 유사한 상황인 것 같은 아이를 그저 두고 볼 수 없어서, 코즈에는 베이징덕을 아이 품에 안겨 준 다음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면 우사기쨩의 친구님, 이제는 정말 알려줘야 할 때가 되었단다. 여기는 하스노소라 여학원이라는 학교야. 너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니?”

“아…. 학교…. 모르겠어요. 눈 뜨니까 여기였는데….”

“이런…. 널 탓하는 게 아니란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응, 울지 마렴. 응?”

“흑…. 엄마….”

“이걸… 어쩌지….”

 

즐거움도 잠시, 상황 파악이 되어버리자 아이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코즈에가 허둥지둥하며 아이를 달래보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코즈에마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라?”

 

지원군은 정말로 필요할 때 나타나기 마련이다. 코즈에는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침 연습에 조금(정말로 조금인지는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만) 늦은 카호가 서 있었다. 카호는 기운차게 인사를 했다가, 코즈에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코즈에 선배, 그 애는 누구예요?”

“카호 씨, 마침 잘 왔단다. 아이도 잘 모르겠다는데, 눈을 뜨니 이곳에 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어. 혹시 우는 아이를 잘 달랠 줄 아니?”

 

카호는 코즈에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성큼성큼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카호를 보고 눈물도 멈추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딘지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 코즈에가 카호의 이름을 불렀지만, 카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코즈에 선배.”

“응, 카호 씨?”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어요? 이 꼬마랑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아서요.”

“응? 그, 그래도 되겠니? 물론 카호 씨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잠깐만 대화할게요.”

 

카호의 등쌀에 밀려 부실 바깥으로 나가게 된 코즈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문 너머에서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게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하는지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훔쳐 듣는 건 나쁜 일이지. 코즈에는 자신의 행태를 부끄러워하며 문에서 멀어졌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카호가 문을 열어 코즈에를 맞이했다. 카호의 손짓에 코즈에가 서둘러 부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가 눈물을 그친 채 코즈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카호 씨 어릴 적 아이라고?”

“네. 대화해보니까 정말로 저더라고요…. 저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과거인 것 같아요.”

“언니가… 나라는 게 안 믿기는데, 이런 글 읽어본 적 있어요. 시간 여행!”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한 얼굴로 코즈에를 맞이한 어린 카호는 뜻밖에 일에 신나 보였다. 카호도 어딘가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낀 코즈에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가, 카호가 좋아하는 소설 장르를 떠올리곤 이해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 앞으로 할 일은 하나밖에 없겠네요!”

 

카호의 신난 말에 어린 카호도 동조했다. 토요일 하루종일 무엇을 할지 다 계획했다는 듯한 어투에 코즈에가 카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만 봐주세요! 네?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에 코즈에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은 학교 탐험이죠! 미지의 세계! 처음 보는 공간!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는 두근두근 이벤트!”

“두근두근!”

“정말이지… 두 사람은 똑 닮았구나.”

“동일인물이니까요!”

 

의기투합해서 부실 밖으로 척척 걸어나간 카호 두 명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이라서 망정이지, 평일이었다면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과 조우했을 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한참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즐거워 보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코즈에는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겠거니 싶어 두 사람 뒤를 따라다녔다. 이따금 카호의 설명이 모호할 때는 코즈에가 부연 설명을 해야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돌아와서! 여기가 바로!”

“바로!”

“히노시타 카호가 꽃 피울 장소! 스쿨아이돌 클럽의 부실입니다!”

“와아아아!”

“당신들… 정말 손발이 잘 맞는구나.”

“헤헤헤….”

 

코즈에의 말에 멋쩍게 웃음으로 넘긴 두 사람은 한참을 돌아다녀 지쳤는지 의자에 곧장 앉고서 탁자에 엎드렸다. 똑같이 지쳤다는 말을 하며 몸에 힘을 빼는 게 정말로 자매 같아서 코즈에는 두 사람에게 수고했다며 따뜻한 매실차를 꺼내주었다. 홍차가 아닌 향기에 카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찻잔을 들었다. 어린 카호도 조심스럽게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그래서 탐험은 재밌었니?”

“네! 그치?”

“응! 엄청엄청 재밌었어요!”

“다행이구나.”

 

코즈에는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을 훌쩍 지나 벌써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만큼 움직였으면 원하는 건 마음껏 볼 수 있었어도 없던 식욕도 돌 것이다. 이대로 학생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겠지만 역시 어린 카호를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하는 건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있죠, 코즈에 언니.”

“응? 무슨 일이니?”

“언니?!”

“안아줘요. 카호 졸려요….”

“어머.”

“에에!?”

“카호 씨, 방금 전부터 왜 그러니?”

“아니, 하지만, 예?!”

 

어딘가 당황한 듯한 카호를 내버려둔 채 코즈에는 어린 카호를 품에 안았다. 손을 벌리고 자신 곁으로 다가온 아이를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아이는 코즈에 품에 안겨서 편한 자세를 찾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하긴, 어린아이의 몸으로, 그것도 한창 아플 때의 카호다. 지금이야 다 나았다며 열심히 런닝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는 상태이지만 예전엔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코즈에는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이가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담긴 손길을 알아차렸는지 표정이 평온했다.

 

“코즈에 선배.”

“응, 카호 씨.”

“저도… 졸린다고 말하면 품에 안아주실 거예요?”

“지금은… 곤란하려나.”

“지금 말고요. 다른 때라도.”

“오늘은 어리광쟁이 카호 씨가 두 명이네.”

 

잠들어버린 어린 카호가 깨지 않게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면 카호가 분하다는 듯이 굴었다. 그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카호는 알고 있을까. 품 안에 잠든 아이의 모습은 이전에 함께 잠들었을 때 곁에서 바라본 카호의 모습과 똑같다는걸. 그래서 더욱 품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걸.

어린 카호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손을 바라보던 카호가 저와 가까운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순순히 움직이면 카호가 손목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

 

“카호 씨?”

“오늘은 이걸로 참을게요…. 전 다 컸으니까요.”

 

다 큰 사람의 대응치고는 조금 유치한데 말이지. 코즈에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카호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놔두었다. 부실에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싸늘한 비도, 제설 작업에 골머리를 앓게 한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코즈에는 포근하다는 인상만 받았으니까. 제 품에 안겨 조용히 잠든 어린 카호도, 자신의 손을 붙잡고 한을 풀 듯이 여기저기 키스하는 카호도 추위를 잊어버리게 해주는 존재였으니까.

간질간질한 감정을 참으려고 해도 새어나오는 게 어쩔 수 없었다. 카호는 그런 코즈에를 보고 간지럽냐고 되물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코즈에는 살짝 어린 카호 이마에 키스를 했다.

 

“아! 치사해요!”

“쉬이, 카호 씨. 목소리가 커.”

“히잉….”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응?”

“아…, 네!”

 

코즈에가 어린 카호의 등을 토닥이던 손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그건 조용히 하라는 사인과는 다른 것이었기에, 카호가 기민하게 반응해야만 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는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어린 카호가 어쩌다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카호도 코즈에도 즐거웠으니 된 거 아닐까.

의자를 조심스럽게 뒤로 뺀 카호가 코즈에를 향해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코즈에가 눈을 감았다. 부드럽게 닿는 감촉은 오늘 오전 내내 그리워한 감각이기도 했다. 방금 마신 둥굴레차 향이 났다. 어린 카호의 파우더 향과 섞여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으나, 그건 코즈에[ 홀로 간직할 비밀로 삼기로 했다.

 

“아… 돌아갔네요.”

“그렇, 네….”

“코즈에 선배… 조금만 더 해도 돼요?”

“…물론. 이리 오렴, 카호 씨.”

 

허전한 품을 대신하려 양 팔을 벌리자 카호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방금과는 다른 무게감이 오히려 행복을 느끼게 했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되다니, 이 선배는 무척이나 기쁘단다.

…코즈에 선배가 키우신 것도 아니면서!

 

그런 장난스러운 말도 주고받으며 다시 입 맞추었다. 바깥에 커다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상대방의 체온이 쌓인 눈을 순식간에 녹아내리게 만들 것만 같았다. 코즈에는 문득 탁자에 올려둔 자그마한 상자를 발견했다.

 

“어린 산타였던 모양이야.”

“어라? 그 상자는….”

“그렇지 않니? 고마워요, 산타 씨.”

“제가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지만요. 흥, 지금은 그것보다… 한 번 더요. 네?”

“정말…, 너무 서두르지 마렴. 응?”

 

코즈에는 상자를 다시 탁자에 내려놓고 카호의 등을 안았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숨결에 미소 지으면 카호도 활짝 웃어주니까.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어린 카호 씨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카호 씨도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착한 아이잖니.

코즈에는 눈을 감고 부드럽게 다시 입 맞추는 카호를 받아들였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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