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JH

도시에는 설원이 없다

출퇴근길의 발걸음은 관용이 배어있지 않아서 염화칼슘으로 한 차례 녹은 눈을 다시금 즈려밟고 도로를 트는데, 새로 함박눈이 내리더라도 그 위를 덮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차도는 중앙선에 한 줄 두꺼운 눈이 덮였을지언정 한 겹 빙판을 허락하지 않고, 나무 위 쌓인 눈은 바람 한 번에 흩어진다. 아무리 폭설이 휘몰아쳐도 결국에는 속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 도시에는 설원이 없다. 이려원은 그것이 못내 이상했다.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겨울은 적막한 정지 상태뿐으로 하늘은 회색조였고 내리는 눈은 휘몰아치거나 내리던 상태 그대로 그쳐 있었다. 시야가 닿는 세상의 모든 곳은 한 뼘 눈으로 이루어진 층이 졌다. 발자국은 남았지만, 뒤돌아보면 새하얀 표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뽀득이는 소리가 났다. 눈이 덮은 곳은 아무리 겹쳐 입더라도 뼛속까지 찬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사람이 얼어 죽으면 그것 또한 하나의 정물로 굳었는데, 눈 속에선 온기만 잃었을 뿐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려원은 종종 곁에 두고 그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므로 려원은 재헌의 앞 한 걸음을 뻗을 수 없다.

“미봉책에 그치는 까닭은 유보하는 버릇 때문입니다.”

당신은 시끄럽고 요란하게 눈을 붙이겠구나. 여자는 문장을 품지 못하며 창을 닦는다.

“숙고 없이 알 수 있다면 보고 있지 않아서예요.”

“그래 보입니까?”

“네, 유능하시니까요.”

날카롭게 연마한 것은 뒤를 돌아볼 수 없듯이. 남자의 옆얼굴은 깊으면서도 구분할 수 없이 파리해서 감흥이 있다. 교정을 위한 염려는 전해지지 않고 감상을 내어놓은 말에 침묵이 일음이 함께의 형상을 취한 차집합이겠지. 그대로 굳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으며 그는 부유하는 판자 조각이 파도에 휩쓸려 떠밀리듯이 식어버릴 것이라서, 이려원은 순간을 기다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마음으로 입맞춤을 유보한다. 그렇다면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영원한 겨울을 지나 앓던 대지가 녹아내릴 때까지. 언 손가락에 붙은 은쟁반이 찌르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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