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카호]정령술사를 알려고 하지 마세요

하스노소라 판타지~

스모어 by mell

마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정령 역시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카호는 자신과는 다르게 항상 정령에 둘러싸인 채로 생활할 코즈에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코즈에는 때때로 카호의 시선을 눈치채고 이쪽을 바라보곤 했지만, 정작 카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서 그저 질문만 덜질 뿐이었다. 무슨 일이냐는 상냥한 질문엔 언제나 대답하긴 어려웠다. 그러면 카호는 제가 기르는 파트너들의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다. 코즈에는 새로운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기에 뻔히 보이는 수법에도 넘어가 줬다. 

마침 정말로 파트너 몇 마리가 코즈에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걸 핑계로 코즈에 곁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었다. 이따금 코즈에는 고양이 형태의 파트너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런 애들을 쓰다듬기 위해 카호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모두 인간을 좋아하는 편이라 코즈에의 손길도 잘 받아주곤 했지만, 그래도 상대는 가리기에 코즈에를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심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카호 씨?"

   

벌써 충분히 파트너들을 만끽했는지 코즈에의 표정에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파트너들이 카호의 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좇더니 멍하니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카호를 불렀다. 코즈에의 모습에 변명도 하지 않고 카호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평화로운 시기이다. 카호는 제 파트너들을 하나둘 돌려보내고 코즈에 옆에 나란히 섰다. 손을 내밀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려고 노력은 하면서 의심 없이 제 손도 내밀어주는 코즈에. 카호는 자신보다 조금 차가운 체온을 느끼고 있으면 실감이 났다. 이 사람이 옆에 있다. 사소한 일임에도 감동할 수 있는 일이 쌓이는 나날이었다.

 

“코즈에 씨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애들이 더 예뻐 보여요.”

“어머, 카호 씨도 의외로 팔불출이었구나.”

“하지만 사실인걸요! 자,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움직일까요? 사야카쨩과 츠즈리 씨가 다음 의뢰를 받으러 간다고 했으니, 지금쯤 도착했을 거예요.”

 

그대로 잡은 손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헷갈리지 않았다. 풍겨오는 냄새를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지점까지 걸어 나갈 수 있었고, 제 손을 잡고 뒤따라오는 인기척이 마냥 기뻤다. 카호는 신나서 앞을 향해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코즈에의 얼굴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카호 씨! 괜찮니?!”

“휴우, 넘어질 뻔했어요!”

 

방향을 틀리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했지만, 길가에 놓여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뒤돌아선 채로 걸어가던 카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바르게 서면 코즈에가 손을 잡아당겨 꼭 껴안았다.

 

“미안해, 정령들이...”

“어라? 정령들이 한 짓이에요?”

“...응. 앞으론 그러지 않도록 주의해 놓을게... 정말 미안해, 카호 씨.”

 

도대체 정령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카호는 자신을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는 코즈에의 얼굴을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했다. 어쩐지 코즈에 주변에 일렁이는 게 잠깐 보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혹시 저게 정령일까? 카호는 그런 의문점을 잠시 내려놓고 기세 좋게 코즈에를 마주안았다.

 


 

 

모든 생명체는 제게 호감을 품는 존재에게 더 상냥하다. 말을 할 수 있는 종족에 비해 소통이 다소 불편할 뿐이지, 언어기관을 발달시키지 않은 식물들은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소중히 대하는 객체에 조금 더 너그러운 편이었다. 코즈에는 유독 그 아이 근처에서 꽃들이 빠르게 생장하는 걸 관찰하며 긴가민가했던 상식을 정확하게 설립할 수 있었다.

  

"코즈에 씨? 혹시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란다. 음, 혹시 마력이 부족하지는 않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몸 상태 완전 최상이니까요!"

  

카호는 비스트테이머이다. 카호 곁에서 빙글빙글 제자리 뜀을 하며 주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들이 그걸 대번에 말해주고 있다.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꽤 어려운 편에 속하는데 카호는 숨겨 놓은 아이들까지 헤아린다면 족히 6마리는 넘겠지. 코즈에는 카호 주변에 넘실거리는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혹여나 이 아이가 무리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담은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령들이 종종 카호를 향해 짓궂은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정령을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 정령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싶어했다. 왜 자신들을 봐주지 않느냐며 투정을 부리는 것뿐임에도, 그건 때론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으니 코즈에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식물도 사랑하고 동물도 사랑한다. 몬스터까지 사랑하는 그 아이를 정령도 사랑하고 싶은 모양이지. 코즈에는 제 정령들이 종종 카호를 향해 속닥거리는 말을 들으며 그 아이가 너희를 보지 못해서 유감이네, 와 같은 말로 달래곤 했다. 지난번처럼 돌부리 같은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막아뒀지만, 언제 마음이 바뀌어 제멋대로 바람을 흘려보낼지 모른다. 코즈에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제야 한 수 접으며 코즈에한테 늘어지게 달라붙는 정령들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코즈에 씨, 탐사 의뢰를 둘이서 가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러네. 마침 자리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지.”

 

최근엔 단체로 움직였기 때문에 희소한 의뢰들만 줄줄이 처리했었다. 이렇게 위험 부담이 높지 않은 의뢰는 정말로 간만이라 코즈에도 카호도 마음을 놓고 잡담을 할 시간도 있었다.

이상징후로 인해 북쪽에 주로 자생하는 변이종이 이 근방에 관측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정말로 변이종이 꽃을 피웠다면 해당 모습을 관찰하여 기록 후 바닥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오는 의뢰였다. 착각하여 살아있는 꽃잎을 떼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하는 의뢰주에게 그럴 일은 없다고 카호가 호언장담을 했다.

 

“앗, 저기예요! 저쪽의 붉은 기운!”

 

정령들이 가고 싶지 않다며 속닥이는 걸 겨우 달래고 있으니, 카호가 먼저 특이종을 발견했다. 꽃들을 살펴본 카호는 제 파트너들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독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 모습은 듬직했다.

 

“카호 씨,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모든 꽃이 마치 태양을 갈구하는 해바라기처럼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이정표라도 되는 듯한 모습에 발걸음을 옮기면 가장 안쪽에 당당하게 꽃을 피운 변이종이 서 있었다. 그건 어쩐지 위험한 향기로 나그네를 유혹하는 듯했으며, 주변 땅을 척박하게 가물게 하여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카호가 먼저 걸어 나갔다. 작게 말라버린 잎을 밟는 소리도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특이종이 이쪽을 바라보며 눈을 떴다.

마치 불청객을 쫓아내려는 듯한 눈빛에 코즈에도 카호도 침을 꿀꺽 삼켰다. 코즈에가 서둘러 카호의 앞을 막아섰으나, 변이종이 빨랐다.

 

“카호 씨!”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충격에 변이종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풀썩 넘어졌다. 카호 역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부터 한참을 떨어진 곳으로 밀려 넘어졌다. 잠깐이라도 틈을 놓치면 안 되었기에 코즈에는 재빨리 정령을 시켜 바닥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를 채취했고, 넘어진 카호를 부축했다. 힐을 사용하려면 최대한 변이종으로부터 벗어난 장소까지 가야 했다.

 

“카호 씨, 이건...!”

 

주변 토지가 순식간에 독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질려할 틈도 없이 카호의 팔을 살피던 코즈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심부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변이종이 남긴 흔적이 짙어졌다. 이건 더는 어쩔 수 없다며 카호가 말려도 코즈에는 목적지를 변경했다.

 

“카호 씨가 그랬지. 식물에겐 비, 태양, 바람이 필요하다고.”

“네? 네... 그랬, 죠...”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이지 않겠니. 저 변이종에게도.”

 

코즈에는 카호를 조심스럽게 나무 뒤에 앉혀놓고 정령들을 소환했다. 언제나 비가시 상태인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위가 고요해졌다. 변이종도 경계를 하는 모습에 코즈에는 제가 펼칠 수 있는 장막을 자신이 아닌 카호에게만 둘러주었다.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버프 효과는 사치였다. 그렇게 긴 영창을 외우고 있을 틈이 없었기에 코즈에는 제가 가진 최대한의 편법을 부리기로 결심하고, 카호를 안심시켰다. 멀리서 부르는 목소리에 작게 정령의 대답을 둘려주고 나면 카호는 잠깐 잠에 들테지.

 

“이 정도는 봐주길 바란단다, 카호 씨. 카호 씨의 파트너 분들, 부탁해도 될까?”

 

힐러가 최전방에 나서는 일은 파티 편성의 가장 기초적인 룰로 모르는 초짜나 하는 짓이라고 메구미가 말하곤 했다. 코즈에가 단순히 승려직뿐만 아니라 정령술이 가능하다고 항의해도 언제나 후방으로 밀리기 일쑤였지. 그래도 지금은 카호 씨뿐이고, 장막도 제대로 설치해두었으니 정령의 장난에 휩쓸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카호 씨의 무의식의 발현으로 파트너 몇 마리가 코즈에 옆을 지켜주고 있었다. 카호의 말이 아니면 따르지 않던 아이들이 코즈에의 움직임을 읽고 함께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변이종을 퇴치하면 추가 보수를 받을 수 있을까. 코즈에는 카호의 독성을 막아주는 스킬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비를 퍼부었다.

 

 


 

무사히 끝낸 의뢰를 보고하고, 보상까지 챙기면 하루가 벌써 다 끝나 있었다. 밤이 늦었기에 어디 여관이라도 묵을 거냐는 길드 사람의 말에 갈 곳이 있다고 둘러댄 카호가 코즈에의 손을 잡았다. 정령들이 또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호가 그걸 눈치챌 리가 없으니 오로지 코즈에가 감내해야 하는 불만이었다.

카호가 향한 곳은 여관도 아니고, 으슥한 골목길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마을의 중심부인 분수광장엔 밤인데도 시끌벅적했다. 겨우 자리가 난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떨어지는 분수를 잠깐 감상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종종 바람의 정령이 코즈에의 귀를 간지럽혀서 카호가 막 꺼낸 축제 이야기는 반 정도는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코즈에 씨.”

“응, 카호 씨.”

“휴... 정말이지,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카호의 정예부대가 지켜줬다고 하나 코즈에 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수는 없는 전투였다. 카호의 팔에 남은 흔적은 말끔하게 없앴으면서 코즈에는 자기 몸에 남은 상처는 하나도 치료하지 않았던 터라 카호의 눈초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카호 몰래 힐을 쓰려고 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저도... 저도 뭔가 하고 싶으니까요.”

“응, 카호 씨.”

“누가 힐러를 싸우게 하냐고요.”

“...그렇기도 하지.”

 

역시나 카호도 코즈에가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을 납득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효율만 따진다면 비전투인원이 아닌 코즈에가 굳이 후방에 있을 필요도 없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정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게 맞다는 판단 하에 움직였을 뿐이다. 조용히 코즈에의 어깨에 기대어 오는 카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카호의 고양이 몬스터 한 마리가 코즈에의 무릎 위에 올라왔다.

 

“앞으론 이러지 마세요.”

“응, 알겠단다.”

“약속!”

“응, 약속할게.”

“그거 말고요!”

 

말로 하는 약속은 믿을 수 없다는 카호의 말에 코즈에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카호가 이번만 봐준다는 듯이 코즈에 입술에 입 맞추었다.

날은 쌀쌀했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누구 하나 둘에게 시선을 주지는 않았으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는 약속이란 이처럼 대담해야 하는구나. 코즈에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불현 듯 당한 키스였지만 질끈 눈을 감고 카호의 온기를 느꼈다. 결의가 느껴지는 감각이기도 했고, 사랑이 느껴지는 감각이기도 했다. 천천히 눈을 뜨면 카호가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코즈에는 그 모습에 치사하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카호네 고양이가 코즈에를 부르는 바람에 항의 한 번 할 수 없었다.

 

“약속이에요. 꼭.”

“그래, 이런 것도... 약속이겠지.”

“이런 거라고 부르지 마세요~!”

 

고양이 울음소리와 동시에 들린 카호의 말에 코즈에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령들이 적당히 하라는 듯이 코즈에 어깨를 밀었고, 그 반동으로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추어 버린 일은 단순히 흘러가는 촌극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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