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13
#13. 수색
노먼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로비로 들어왔다. 드러난 목은 멍 자국으로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라운지 한 편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팔짱을 끼고 앉은 퍼킨스는 제게로 다가오는 노먼의 모습을 관찰했다. 걸음걸이는 다소 불편해 보였으나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몸은 좀 어때."
퍼킨스의 질문에 노먼이 툴툴거렸다.
"염증 주사 맞고 파스 붙이고 끝났어. 3주 정돈 계속 쑤실 거래. 시대가 어느 땐데, 타박상에는 치료 약이 없다는 게 말이나 돼?"
퍼킨스가 코웃음을 쳤다.
"징징대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보군."
노먼도 싱겁게 마주 웃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PL600에게선 아무것도 못 알아낸 거야? 테오랬던가?"
"그래. 장치 한 가운데로 총알이 제대로 관통했고 떨어지면서 메모리가 완전히 박살 났어. 복구 불가래."
노먼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졌다. 짧은 침묵 후, 그가 다시 물었다.
“아까 주변이 시끄러워서 잘 못 들었는데 클라인 의원에 대해 뭐라고 했단 거야?”
“클라인 의원과 접선한 게 자기라고 주장하던데. 묻지도 않았는데 수십번이고, 똑같은 말을 아주 염불을 외더라니까. 기계들 이상행동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솔직히 그땐 좀 소름 돋았어.”
노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식으로 자백한다고? 다른 얘기 없이 그 말만 한 거야?”
“그전엔, 통제 어쩌구 하는 말을 지껄였는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어. 자살하기 전에 한 철학적 고찰이었는지 뭔지. 모르겠네.”
“빌리에게 했던 통제를 말하려 했던 건가?”
“빌리 얘긴 한마디도 안 했어. 접선한 이유도 못 밝혀냈고…. 하, 진짜 이 기계 놈들이 우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노먼도 퍼킨스를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노먼이 직접 보지 않았기에, 테오가 창고에서 목격된 것과 동일한 안드로이드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빌리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클라인의 사망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유일하게 관련이 있는 것은 KR200을 훔쳐 갔다는 빌리의 자백뿐. 문제는 그게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이냐는 사실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빌리의 모든 말은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았으나, 만약 그 진술이 맞다면 최소한 시신을 어디로 데려간 건지 알아내야 했다.
노먼은 이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또 다른 주제를 꺼냈다.
"빌리에게서 회수한 레드아이스는?"
"연구소에 넘겼으니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연락 주겠지. 국장도 해당 건에 대해 알아보겠다 했고. 너는? 뭐 좀 찾아낸 거 있어?"
노먼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 우리가 회수한 게 전부야. 레바졸이 든 건 간간이 발견됐지만 인간의 혈액은…. 그런 게 들어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대. 검거 중에 혹시 수상한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반드시 같이 수색하라고 전달하긴 했어."
"그래. 그 건은 아마 마약단속국으로 넘어갈거야."
"그래야겠지. 그쪽이 우리보다 전문가들이니."
노먼은 어깨를 주무르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코너는 어딨어?"
퍼킨스가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집에 갔어.“
"집?"
"사이버라이프. 수리하러."
"뭐? 어디 다친 거야?"
"그냥. 총에 스쳤어. 심하지는 않고."
노먼은 깜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어쩌다가?"
퍼킨스의 입술이 이상한 모양으로 오므라들었다. 혀에 가시가 돋친 듯 말이 입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어차피 금방 밝혀질 것이기에, 퍼킨스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놨다.
"테오가 총을 쐈고, 코너가 날 밀치면서 지 팔이 대신 아작나버렸지. 그게 다야."
노먼은 턱을 살짝 벌렸다. 멀쩡해 보이는 퍼킨스의 몸을 위아래로 훑은 그가 입 새로 허, 하며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너도, 나도. 그 기계에게 목숨을 빚졌네."
퍼킨스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보단 하루 새에 죽을 고비가 두 번이나 생긴 거지. 요원 직 생활 통틀어 이 정도로 사지를 여러 번 넘나드는 일도 드물었어. 그 자식이 우릴 따라다녀서 저주받은 걸지도 몰라."
노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어제 네 입으로 코너보다 더한 지원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퍼킨스가 울컥하며 반박했다. "그건 네 놈이 자꾸-"
노먼이 웃는 낯으로 말을 끊었다.
"뭐. 솔직히 나쁘진 않아. 다른 안드로이드에 비해 좀 기계같이 구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줄 알고. 내 리서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난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투덜대는 퍼킨스를 보며 노먼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럼, 국장한테 지원 요청 취소해달라 말해. 난 상관없어.”
퍼킨스가 눈을 부라렸다.
“네 속셈을 내가 모를 거 같아? 됐어. 그냥 경호 안드로이드 고용했다 생각하면 되니까.”
그리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댔다. “애초에 네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머리 아플 일은 없었는데.”
“내가 아니었으면 리처드. 넌 오늘 죽은 목숨이었어.”
“그건 노먼, 너도 마찬가지 아냐?”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퍼킨스의 반박에, 노먼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퍼킨스도 어쩔 수 없이 마주 웃었다.
노먼은 시선을 들어 건물 밖에 짙게 깔린 어둠을 바라봤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배고프네. 그러고 보니 우리 점심도 걸렀어."
"너만 걸렀지. 난 좀 전에 요 앞 타코 트럭에서 먹고왔는데."
노먼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파트너가 척수손상 판정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무신경하기는."
"네놈이 병원에 실려 갈 때마다 굶었으면 난 아사 판정 났어. 살 사람은 살아야지."
노먼은 피식 웃으며 손목을 까딱였다. "한잔하고 갈래?"
"좋지. 네가 사." 퍼킨스가 목에 걸린 사원증을 갈무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둘은 FBI 건물을 나서 자주 가는 술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을 덮은 구름이 햇빛을 산란시켜 건물에 엷은 음영을 만들었다. 정규 출근 시각 20분 전, 퍼킨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너는 어김없이 퍼킨스의 책상 옆에 앉아 있었다. 우울한 눈으로 그 꼴을 바라보던 퍼킨스는 대기용 의자를 복도 밖에 설치해달란 기안을 올리리라 다짐하며 자리에 가 앉았다. 옆눈으로 흘끗 바라본 코너의 팔은 괜찮아 보였다. 똑같은 복장이 여러 벌이기라도 한 건지 팔뚝의 찢어진 부분은 꿰매진 자국도 없이 말끔했다.
퍼킨스가 말없이 메일함을 열어 새로 배정된 사건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어제 일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간략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코너가 모니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퍼킨스는 쉼 없이 손을 놀리다가도 자꾸 어긋나서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다. 기계는 고개를 돌려 퍼킨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애써 무시하고 키보드를 두들기던 퍼킨스의 입가가 시간이 갈수록 씰룩대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의 시선은 이젠 인간의 광대를 뚫어버릴 기세로 빤히 응시해 왔다.
결국, 퍼킨스는 버럭 짜증을 냈다.
"할 일 없으면 노먼 자식 책상이나 치우고 있어!"
코너는 고개를 돌려 퍼킨스 맞은 편에 위치한 책상을 바라봤다. 그 위에는 언제 마신 지도 모를 일회용 커피 컵이 무작위로 쌓였고, 문서 정리함에는 각종 범죄심리학 도서가 사건 파일 사이사이에 아무렇게나 꽂혀있었다. FBI 로고가 박힌 태블릿은 모서리가 살짝 깨진 채 가장자리에 아슬하게 놓였으며 구석에 처박힌 선인장은 바짝 말라 죽은 상태였다. 검은 화분의 매끈한 표면엔, '제이든 요원의 디트로이트 지부 발령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코너가 거절했다.
"저는 청소부 안드로이드가 아닙니다."
"그럼 뭐, 업무 감시용 안드로이드냐? 신경 쓰이니까 딴 데 좀 가 있어."
인간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코너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퍼킨스는 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으려 모니터를 노려봤다. 코너가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천천히 걷는 구둣발 소리가 넓은 공간을 울렸다. 코너는 마치 자신이 이곳의 관리자라도 된 것처럼 출근한 요원들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어떤 요원의 자리에서 우뚝 멈추었다. 요원이 안드로이드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고 코너는 그의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 서식은 잘못됐습니다. 모두 참인지, 혹은 참이 하나라도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두 개의 인수 값 중 하나를 지정해야 하니 이 수식대로 작성할 거라면 괄호 앞에 'OR'이 아니라 'AND'를 입력해야 합니다."
요원은 멍한 표정으로 코너를 올려다봤다. 코너가 요원의 손 아래에 놓인 키보드를 옆으로 옮겨 허리를 숙이곤 엑셀의 함수를 대신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
벙찐 표정의 요원이 입을 열자마자, 퍼킨스가 코너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미안해, 휴즈. 이 자식은 무시해."
요원은 입을 헤벌린 채 감독관에게 뒷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 가는 기계를 바라봤다. 퍼킨스는 자신의 책상 옆에 안드로이드를 앉히고 삿대질을 하며 호되게 꾸짖었다. 기계는 눈을 깜빡이며 얼굴 앞에 놓인 인간의 손가락을 따라 눈알을 도륵도륵 굴렸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휴즈 요원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어서 수식을 작성하려던 그는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가, 잠시 멈칫하곤 마우스를 긁어 몇 글자를 지웠다. 그리고 그 위치에 'AND'라는 글자를 입력했다.
"왜 또 아침부터 성질을 부리고 그래?"
노먼이 느긋하게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의 손엔 어김없이 커피가 들려있었다. 퍼킨스가 이를 갈았다.
"빨리 사건 종결시키자. DPD 놈들한테 지들 물건 회수해 가라 해야지, 귀찮아서 안 되겠어."
노먼이 싱긋 웃으며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코너. 좋은 아침이에요."
코너도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이든 요원."
"다친 곳은 좀 괜찮나요?"
"네. 수리를 마쳤습니다."
"잘됐네요. 사이버라이프에 아직 직원이 남아 있긴 한가 봐요."
"아뇨. 그곳 연구원은 거의 퇴사했고, 절 수리해 줄 만한 사람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대신 다른 곳을 추천받아 갔습니다."
"다른 곳? 어디요?"
"세인트 루시 병원이요."
노먼은 불과 한 달 전, 디트로이트시에 최초로 건립된 안드로이드 병원에 관한 뉴스를 기억해 냈다.
"아아, 하긴. 거기도 있었네요."
과거 안드로이드의 수리와 서비스를 담당하던 사이버라이프의 운영이 점차 어려워지자, 회의를 느낀 수많은 연구원이 회사를 나갔고 개 중 몇은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살려 사설 안드로이드 수리업체를 창설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이버라이프 수석 연구원이었던 클라인 의원의 주도로 개발자와 기술자가 모여 안드로이드 의료 재단이 설립되고, 기계만을 위한 병원이 세워졌다.
이미 수많은 안드로이드를 고용한 관공서와 대기업은 빠르게 움직여 병원과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커넥션을 만들었으나 그와 반대로 대부분의 개인 안드로이드는 혜택을 제공받지 못하고 막대한 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노먼은 빌리가 수리공을 찾아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떠올라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
"빌리의 메모리 검사는 승인받았대?"
퍼킨스가 모니터 너머로 텅 빈 국장실을 바라봤다.
"아직. 그렇게 빨리 결정 나진 않을 거야. 그전까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안 그래도 조사할 곳이 한 군데 남아있어."
"어디?"
"그린스 브라이어 공장. 어제 집에 가는 길에 그곳 경비원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폐기된 안드로이드가 전부 사라졌다네.“
“폐기된 안드로이드라니?”
“예전에 공장에서 일하던 안드로이드가 망가지면 따로 반납하거나 하지 않고 한 곳에 모아두었나 봐. 내가 거기 찾아간 다음 날 전체적으로 한 번 순찰했는데, 그때 발견했대. 확인 안 한 지 일 년 가까이 되어서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던데.”
퍼킨스가 눈을 내리깔고 턱을 매만졌다. 노먼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빌리가 풀라스키에서 수리공을 만났다고 했잖아. 거긴 그린스 브라이어 바로 옆이야. 내가 갔던 공장, 적어도 그 부근에 뭔가 있긴 있어."
퍼킨스도 동의했다.
"그래. 나도 한번 들러봐야겠다 싶긴 했어. 은밀한 접선지가 필요하다면 다른 곳도 널렸는데 왜 하필 거기인지. 그리고 빌리든, 아니면 다른 안드로이드였든 간에 어째서 그곳까지 KR200을 데려간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긴 해."
코너가 고개를 갸웃했다.
“폐기된 안드로이드가 사라진 것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건가요? 그리고 KR200의 흔적 역시, 그때 제가 전체적으로 훑어봤을 때 별다른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거기 물건이 엄청 많던데요? 상자랑 구석까지 다 살핀 게 맞나요?”
“안드로이드의 몸체가 숨겨질 만한 곳은 대충 둘러보긴 했지만… 작은 상자들까지 유심히 보진 않았습니다.”
“그럼, 이번에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보죠. 우리가 놓친 게 있을 수도 있으니. 창고 자체를 조사하다 보면 안드로이드의 시신을 찾을 또 다른 단서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어제 말했듯, SQ800의 발자국과 함께 KR200의 티리움 흔적이 그곳까지 이어졌다면 우리가 창고에 들어서기 전날 보안카메라 영상에 담겼을지도 몰라요. 저는 클라인 의원이 방문한 날의 기록만 찾아봤을 뿐이라서요.”
코너가 결국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목적지가 결정 되자, 퍼킨스는 컴퓨터를 끄고 간단히 주변을 정리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커피를 한번에 들이킨 노먼이 빈 컵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퍼킨스를 따라나섰다.
코너는 더 이상 공간이 남지 않은 노먼의 책상을 보고 손가락을 조금 꿈틀대다가, 그대로 인간들의 뒤를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퍼킨스가 소리쳤다.
"아침에 좀 미리미리 일어나서 갖고 왔으면 됐잖아!"
"나 아파. 환자야."
노먼은 턱을 치켜들고 푸르딩딩한 제 목을 가리켰고, 퍼킨스는 그와 정반대로 혈압이 올라 시뻘게진 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또다시 주차장에서 의미 없는 실랑이를 벌인 퍼킨스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파트너를 공장까지 모셔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퍼킨스 스스로가 그곳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 파트너가 지 차를 회수하기 위해 수작질을 부린 거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오늘로써 이 귀찮은 짓거리는 전부 끝이었으니 퍼킨스는 바닥난 인내심을 간신히 발휘해 마지막 남은 관대함을 베풀었다.
잠시 뒤, 그린스 브라이어 공장에 도착한 퍼킨스는 짙은 남색 쉐보레 옆에 자신의 차를 주차했다.
이틀째 으슥한 공터에 버려져 있던 06년식 임팔라는 다행히도 파손되거나 털린 흔적 없이 멀쩡했다. 노먼은 보닛의 나뭇가지를 치우며 말했다.
"디트로이트 치안도 좋아졌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 이렇게 두고 가면 바퀴 빼고 다 털렸을 텐데."
"30년 된 골동품을 누가 가져가. 제발 차 좀 바꿔."
"어떻게 바꿔? 너, 이 차가 나랑 동갑인 건 알아?"
"정말. 하나도. 안 궁금해."
퍼킨스는 대꾸하기도 싫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음을 옮겼다.
노먼이 공장 재수색에 대한 허가와 보안 카메라 영상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경비실에 다녀올 동안, 코너는 거침없이 창고 건물로 향했고 퍼킨스는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박스와 천장 타일 사이로 드러난 철골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다소 흐린 탓에 불 꺼진 창고 내부는 어둑했다. 퍼킨스는 시선을 내려 바닥에 남은 흔적을 관찰했다. 육안으론 이게 발자국인지 아니면 그냥 이상한 모양으로 먼지가 쌓인 건지 전혀 구분되지 않을만큼 희미한 그 모양을, ARI와 저 안드로이드는 매우 예리하게 잡아냈다. 확실히 기술이 편리하긴 하다고 생각한 퍼킨스는 왜 노먼이 안경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둘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노먼이 돌아왔다. 자못 심각해 보이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퍼킨스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보안 카메라에 아무것도 안 찍혔어?”
“응. 전부 지워졌대.”
“지워졌다고?”
“분명 엊그제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영상은 남아있었어. 녹화본을 덮여 씌워야 할 만큼 구식 카메라도 아니었고. 문제는, 어제 공장 부지 전체를 연결하던 전력기가 말썽을 일으켜서 정전이 일어났다나 봐. 관리 시설도, 컴퓨터도 전부 멈췄고. 듣기론 그 때문에 파일이 깨진 것 같다고 얘기하던데, 글쎄…. 그가 경비실을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퍼킨스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것참.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정전 사고네. 그 경비원, 이 일과 관련이 없는 거 맞아?”
노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확인차 몇 가지 질문해 보긴 했는데 그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수색 허락은 받았어. 창고든 공장이든, 원하는 만큼 둘러보래.”
퍼킨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일단 뒤져보자고. 이 조그마한 공장에서 일이 벌어졌다면 설마 단서 한두 개쯤이야 못 찾아내겠어?”
그 말을 마치고 셋은 본격적으로 창고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구역을 나누어 구석을 차례대로 둘러보고 창고 내 모든 상자를 열어보며 입구부터 시작해 쥐구멍 안쪽까지 손전등을 비춰 본 두 요원과 한 대의 안드로이드는, 장소를 옮겨 다른 창고 건물과 공장 내부마저 모조리 확인했다. 공장 안엔 제작 후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채 버려진 각종 부품만 수두룩했고 퍼킨스의 장담과는 달리 수상한 물건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장장 다섯시간에 걸쳐 수색했지만 별 소득이 없는 탓에 노먼은 지친 얼굴로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날리는 먼지에 잔기침이 나왔다. 그는 저 반대편에서 상자를 거칠게 닫는 퍼킨스와, 대체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모를 거대한 유압식 기계 위에 서서 틈새를 살펴보는 코너를 바라봤다. 안드로이드의 머리는 천장에 닿을 듯 말듯했다.
둘의 얼굴엔 검댕 자국이 묻었고 옷은 뽀얗게 더러워져 있었다. 노먼은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곤 말했다.
“리처드. 뭐 좀 찾았어?”
“…아니. KR200은 커녕, 쥐 사체만 한가득해. 여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당신은요. 코너?”
코너도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노먼이 피로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또 막다른 길이네.”
“돌아가자. 여기서 더 이상 볼 건 없어.”
손을 털어낸 퍼킨스가 주변을 둘러싼 상자를 넘어 입구를 향해 발을 디뎠다. 노먼도 그를 따라 걸어 나갔다. 하지만 그 뒤로 따라붙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먼은 시선을 돌려 여전히 공장 안, 기계 위에 선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코너는 손을 올려 천장 타일을 두드리고 있었다. 텅텅, 하고 울리는 공허한 소리가 넓은 공간에 반향을 만들어냈다.
“코너?”
인간의 부름에 코너가 고개를 숙여 노먼을 내려다봤다. 그러나 그 멍한 눈은 곧바로 시선을 돌려 공장 내부를 향했다. 무언가를 잠시간 생각하던 그가, 최소 3m는 넘는 기계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굉장히 안정적인 자세로 바닥에 착지한 코너는 주저 없이 입구를 나서더니 인간들을 따라가는 대신 몸을 돌려 가장 처음에 수색한 창고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야! 어디가?”
벌써 저 멀리까지 걸어간 안드로이드의 등은 퍼킨스의 외침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창고 안으로 사라졌다. 노먼과 시선을 교환한 퍼킨스가 욕설을 지껄이며 코너를 따라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코너는 창고 한가운데 서서 수색으로 인해 완전히 어지럽혀진 바닥 위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자국의 위치를 기억 속에 떠올렸다. 클라인도, PL600도 아닌 침입자. 즉 SQ800의 것을. 그 발자국은 코너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잠시간 머물다가 그대로 돌아서 밖으로 나갔었다. 그리고, 티리움 자국이 끊긴 지점도 바로 이곳이었다.
코너가 고개를 젖혔다. 건물 내 다른 곳에도 천장 타일이 떨어져 나갔으나, 유독 이쪽에만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코너의 시각 처리 장치에서 밝기와 해상도가 자동으로 조정되고, 어두운 내부가 어슴푸레하게 망막에 맺혔다. 건물의 지붕을 받치는 철골 구조 아래의 공간은 조명 시스템과 환기구의 설치로 인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꽤 넉넉해 보였다.
코너는 바로 옆에 제 키만 한 화물용 상자 두 개가 포개어져 쌓여 올라간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근처에 놓인 다른 철제 상자 몇 개를 딛고 그 위로 올라섰다. 단 차이가 큰 계단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도 올라가기 용이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배치였다. 마지막 상자 위로 올라가니 창고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노먼이 그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퍼킨스도 옆에서 골반을 짚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코너가 허리를 펴 가슴께까지 오는 천장 안쪽을 살폈다. 손전등을 들어 비추니, 불빛에 놀란 쥐가 코너의 눈앞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층고가 낮은 다락 같은 이곳엔 망가진 상자 여러 개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코너가 철골 구조를 잡고 아예 올라섰다. 노먼은 안드로이드의 다리가 위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천장에서 구둣발 소리가 울리고,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노먼이 큰 소리로 불렀다.
“코너? 코너!”
퍼킨스를 한 번 돌아본 노먼이 결국 상자를 밟고 코너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으로 올라섰다. 노먼의 시선이 어둠 속을 향했다. 깜깜한 공간의 바닥에선 뚫린 타일 새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중 가장 밝은 곳을 바라보니 저 구석 한쪽에서 아래로 손전등을 비추고 선 안드로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코너. 거기서 뭐 해요?”
노먼의 목소리에 코너가 뒤를 돌아보았다.
“…찾았습니다.”
그가 몸을 틀자,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얼굴이 노먼의 눈에도 들어왔다. 머리가 으스러진 KR200의 텅 빈 동공이 인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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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포이를 갱생시키는 101가지 방법
※ 본편을 작성하기 전에 안내의 말 소설의 무방비한 공개를 막기 위해, 모든 본 편은 100p의 최소 후원액수를 걸어두었습니다. 1편당 최소 분량 5000자~최대분량 10000자로 연재합니다 장르: 해리포터 2차 패러디 키워드: 빙의물, 성장물, 말포이루트, 드레이코 말포이 갱생물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연재주기는 1주일에 1~2편 정도로 연재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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