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타와 미오리네

미확인 바이러스성 발열 및 인후통

즉 감기에 걸린 미오리네 씨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슬레타가 귀를 쫑긋 세우듯 고개를 파딱 들었다. 그의 손에는 꾸깃꾸깃한 종이학이 들려있었다. 아이들의 다음 수업 실습에 사용될 종이접기를 슬레타가 먼저 연습하고 있었다.

“미오리네 씨?”

한창 집중하느라 찡그리고 있던 미간이 놀라 펼쳐졌다. 슬레타가 전달받은 미오리네의 귀가일은 약 사흘후로, 예정보다 훨씬 이른 귀가에 기쁘기도하고 당황하기도 하며 몸을 일으켰다.

“…….”

“어쩐 일이세요? 사흘 후에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슬레타.”

“네?”

“…목말라.”

그리고는 풀썩, 미오리네가 현관에서 무릎부터 쓰러졌다. 안색이 파랗게 질린 슬레타가 비명을 지르듯 쓰러진 아내에게 다가갔다.

“미오리네 씨! 미오리네 씨!”

경황없이 허둥지둥 달려간 슬레타가 미오리네의 안색을 살폈다. 얼굴이 발갛고 의식은 없었다. 몸에 손을 대보니 열이 펄펄 끓어 뜨거웠다. 깜짝 놀라 굳은 슬레타를 꺠운 것은 익숙한 언니의 목소리였다.

[ 미확인 바이러스성 발열이래. ]

“에리!”

[ 일단 약은 먹었는데 상태가 안좋아서 의사들이 집으로 돌려보냈어. ]

“그런…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거 아니야?”

[ 하하. 슬레타, 미확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발열과 인후통이라는 건 말야… ]

“이, 일단 미오리네 씨를 침실로 옮겨야겠어!”

슬레타는 번쩍 미오리네를 들어 옮겼다.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달려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올케의 가방에 달랑달랑 매달린 에리가 혼자 중얼 거렸다.

[ …감기라는 말인데. ]

아무튼 저 애는 어릴 때부터 의욕이 먼저 앞설 때가 많다니까. 커서는 좀 나아진 듯 싶다가도 아내가 아프다면 부리나케 이성을 잃어버리니, 한창 좋을 때라고 해야할지 팔불출이라고 해야할지. 에리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재미있으면 엄마한테도 알려줘야지.

머큐리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절대로 지켜주지 않는 장난꾸러기가 오늘도 키득거렸다.

그리하여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간병을 시작했다. 먼저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히고,

“아, 이거 제가 선물한 넥타이핀이네요. 헤헤… 이럴 때가 아니지!“

축축한 몸을 가볍게 닦아주고,

“멋대로 만져서 죄송해요!”

차가운 물수건을 머리에 올려둔 후 침대에 눕혔다.

미오리네는 정말 모든 힘을 다해 집에 돌아온 모양인지, 여태 의식을 잃은 채 끙끙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여러 문제를 직면하며 고단하게 일하는 아내의 부담을 알기 때문에 슬레타는 서글픈 마음이 되어 미오리네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곧 미오리네가 눈을 떴다.

“…슬레타?”

“미오리네 씨! 몸은 좀 어떠세요?”

“…목말라.”

아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슬레타는 허둥지둥 따라둔 미온수를 건넸다. 몸을 반만 일으켜 물을 마신 미오리네는 곧 숨을 뱉었다. 힘 없는 동작에 슬레타의 마음이 미어졌다.

“미오리네 씨, 열이 높은데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갔다 왔어. 약 먹고 집에서 쉬래.”

“많이 아파요?”

“그냥저냥. 감기 수준이지 뭐.”

담담하게 말하는 미오리네였지만 축 늘어진 눈썹에 흐릿한 눈매에서 상태가 엿보였다. 감기, 감기. 슬레타는 병명을 들었음에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몸이 튼튼한 건 제 쪽인데 왜 미오리네 씨를 괴롭힌단 말인가? 못된 바이러스.

아내의 그렁그렁한 눈에서 슬레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낸 미오리네가 피식 웃었다.

“약이랑 밥 좀 줄래? 쉬면 나아지겠지.”

“네에….”

슬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썩 훌륭하다고는 하지 못할 계란 죽이 곧 미오리네 앞에 들이밀어졌지만, 미오리네는 군말 없이 그릇을 비웠다. 부끄러움을 참은 슬레타가 고마움을 느끼며 약과 물을 내밀었다.

“미오리네 씨, 아프지 마세요….”

“쉬면 낫는다니까.”

“그래두요. 저, 내일은 수업 일찍 끝나니까 계속 옆에 붙어 있을게요!”

미오리네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기 위해 입을 벙긋 움직였으나,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않아 결국 우물쭈물하다 입을 닫았다. 열에 몽롱한 탓인지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자기객관화를 끝냈어도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싫었다. 정말 오랜만에 감성의 편을 들어준 미오리네가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

“맡겨만 주세요!”

그 후 몇마디를 더 나누던 둘이었지만 미오리네의 눈이 게슴츠레 감기기 시작했다. 약효가 돈 탓이다.

“슬레타. 미안한데 졸려서….”

“앗, 네. 불을 끌게요. 편히 주무세요.”

불을 끄고 방을 나서려던 슬레타는 슬쩍 다시 미오리네의 곁으로 돌아왔다.

곁눈질로 하는 꼴을 보던 미오리네가 한숨처럼 말했다.

“…너 그러다 옮는다.”

“옮으면 미오리네 씨가 덜 아플까요?”

“그러겠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오리네의 기색이 썩 싫어하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슬레타는 용기를 내 미오리네의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저도 오늘은 옆에서 잘게요.”

“…맘대로 해. 감기 안 옮게 조심하고.”

“물론이죠. 아, 근데….”

슬레타는 우물쭈물하며 미오리네를 바라보았다. 왜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슬슬 수마가 미오리네를 의식의 저편으로 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입을 열 기운도 없었다. 어물어물한 시야 너머로 슬레타가 미오리네의 오른쪽 손을 잡는게 보였다. 쪽.

“…….”

“헤헤, 늘 자기 전에 하는 거 대신에…. 조금 아쉽지만 이러면 감기가 옮지는 않을테니까요.”

“…슬레타.”

“네?”

“…나 감기나으면 각오해.”

“네?!”

갑작스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슬레타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으나, 미오리네는 이미 결의를 다진 채 잠에 빠져들었다. 미오리네 말의 저의를 생각하던 슬레타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간이침대를 가져와 아내의 옆에서 잠들었다.

이틀 후 말끔히 나은 미오리네와 기뻐한 슬레타가 평소보다 알콩달콩 했다고, 에리가 어머니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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