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꿈이길 바라요

쿠로아이

책갈피 by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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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쿠로.

나는 아이리야. 새삼스러운 자기소개고, 글씨체로도 알아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소개해 봤어. 편지가 갑작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그러니까 혹시나 싶어 말해 두자면, 편지에 별다른 의미는 없어. 그냥 얼마 전에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더라고. 그게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다고 말하니까, 미나가 아무 이유가 없더라도 한번 써보는 것도 좋다고 말해 줬어.

맞아, 그 책을 읽으면서 쿠로 너를 생각했어. 생각해 보니 편지를 써 본 적이 많지는 않더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나가 응원해 준 거야. 미나는 참 신기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서 쿠로를 떠올리는지 다 아는 것 같아. 내가 생각이 읽기 쉬운 걸까 했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러더라고. ‘다 쉬운 게 아니라, 쿠로오 생각하는 네 얼굴이 너무 뻔한 거야.’ 조금은 부끄러웠는데 당당해지기로 했어.

사실 아무 생각 없이 편지지를 꺼내 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할 말이 없는 거 있지. 그야, 우리는 할 말이 생기면 그냥 바로 말하곤 하잖아. 바로 오늘 학교에서 쿠로를 만나고 바로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더 그래. ‘좋은 아침이야, 쿠로.’ 이런 말도 이미 했었으니까 편지에 적진 않았어. 아마 내일도 쿠로를 만나자마자 바로 말하지 않을까? 두 번 인사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생각하고 편지를 쓰려니까 조금 막막해지더라. 인사를 한 다음에는 수업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에는 공부 이야기를 했었지. 점심 식사를 먹으면서 연습 시합 이야기를 했고, 오후 수업이 끝난 뒤에는 함께 체육관에 갔었잖아.

이렇게 적고 보니 우리 정말 붙어 다녔던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내일 아침식사 메뉴를 쿠로에게 자랑할까 했어. 어차피 내일 아침쯤 줄 테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정신 차려 보니 아까 통화하면서 이미 뭘 먹을지 말했버렸더라. 이건 전부 쿠로 때문이야. 통화하다 보니 전부 말하고 싶어지잖아. 아냐, 역시 취소. 내가 더 길게 통화하고 싶었던 거니까. 취소할게. 내 탓이야.

그런 다음에는, 거창한 말을 적을까 고민했어. 여전히 고민 중이야. 그런데 역시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져. 굳이 거창한 말이라고 활자에 꾹꾹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른 형태로 담는 것도 충분하니까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웃길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편지에 쓸 말도 딱히 없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것 자체가 충분한 표현 아닐까 생각해. 우스울지도 모르는 결론이지만 그래, 쿠로. 거창한 말들을 일상적으로 하고 싶어. 미래나, 사랑이나, 너에 관한 것들 말이야.

이런 말들을 하다가 여백이 끝났네. 어떤 게 거창하고, 그런 말들을 어떻게 일상적으로 네게 전달할지는 다시 고민해 봐야겠어. 다음 편지에서는 결론을 말하겠다고 하면, 이것도 꽤 거창한 포부가 될 것 같으니까, 언젠가 결론을 말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쓸게. 그때까지 쿠로가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면 이것도 제법 거창하겠지? 그래도 이건 나름 일상적인 말을 두른 거창함이 아닐까 믿어.

결론은 그래도 늘 그랬던 것처럼 끝내 볼게. 있잖아, 아까 헤어질 때 인사하면서 이 말을 깜빡한 것 같아.

좋아해, 쿠로.

오늘도 좋은 하루 돼.

아이하라 아이리.

추신. 아, 쓴 걸 읽고 나서 웃었어. 정말 서두와 비슷하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편지가 되어버렸네. 이렇게 계획 없이 뭔갈 써 본 적이 없었는데.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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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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