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화 - 티타임(3)

“...내가 어떻게 운디네를 붙잡겠어, 감히.”

“그럼에도 자네는 운디네를 붙잡겠지. 아니, ‘제대로 포기하기 위해’ 운디네를 위한 모든 수를 다 쓸 게 아닌가. 나도 마찬가지일세. 언젠가 포기하더라도 지금은 내 모든 수를 다 쓰고 싶을 뿐이네. 자네의 경호도, 중앙의 입김도. 모두 그 아이를 포기하게 될 때를 위한 나의 수일세.”

“대체 그 아이는 누구길래…”

“우리 모두의 업보…라고 하면 알겠는가?”

아르크의 말에 레인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희게 질렸다.

“설마…”

“그 때 퓨처에서 구조된 두 아이 중 살아남은 아이일세.” 

-

외면하고 있던 죄책감을 마주하는건 그야말로 업보였다. 레인은 책임에서 도망쳤고, 망각속에 없는 일로 묻어놓고 있었다. 어떤말을 해도 변명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아르크와 마주한 지금도 어쩔수 없었다고 자신의 마음에 되뇌이고 있었다.

꾹 말아쥔 레인의 주먹이 힘없이 펼쳐졌다. 손바닥에 남은 손톱자국에서 피가 엷게 배어나왔다. 

“왜, 내게 진작 말하지 않았지?”

염치없다는걸 알면서도 레인은 그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아르크가 자신을 향해 화를 퍼붓길 바랬다. 이제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리 묻느냐고 해주길 바랬다. 그래야지 자신이 변명과 함께 이제라도 노아를 책임질 명분을 만들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아르크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제자를 대할때와 마찬가지로 끝없는 다정으로 레인을 바라보았다.

“이미 충분히 힘들지 않았나. 그리고 따지고보면 이건 자네가 책임질 게 아닐세. 그 아이들은 자네가 아니라 이스카리오의 책임이었어.”

“아니, 그 모든 책임은 나로부터 비롯됐어. 내가 시작하지만 않았더라면 이스카리오도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았겠지. 내가.. 내가 물길을 트지만 않았어도 무의미하게 사라질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 길을 선택한 건 이스카리오일세. 갈래길에 서는 순간은 늘 있고, 선택하는 건 길을 떠나는 사람이야. 나는 그 선택의 계기를 제공했다해서 자네가 선택의 결과를 전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네덕분에 그 프로젝트는 폐기될 수 있지 않았나?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중이고.”

“...그 ‘계획’에 네 제자도 포함인건가?”

“남겨질 이들은 모두 포함일세.”

온화하고 다정한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레인은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갖지 못할 아르크의 단단하고 올곧은 성정이 늘 부러웠다. 지금도 이렇게 흔들리는 자신을 붙들어주지 않던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자신에게 노아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아르크의 선택은 옳았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노아를 책임졌다면 그 아이를 지지해줄 수 있었을까.

마법동의 수석마법사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왔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아카데미 이수도 없이 마법사가 된 신 인. 시험장에 들어설 때는 이제 막 임명된 대마법관과 함께였던, 고작 15살의 아이. 그런 와중에 시험 성적은 수석이어서 본 실력이 아니라는 의혹이 늘 붙어다닌 인정받지 못하는 수석 마법사… 그것이 노아였다.

걷잡을수 없이 불어나는 소문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부정하기만 하면 끝내는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럴 때는 그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기만을 바란다. 

아르크는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온유함으로 사람을 감싸안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온기가 노아에게 지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온기가 노아의 삶의 궤적에 전부 영향을 미칠수는 없었다. 그래도 노아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르크가 있던 덕분이었다. 

레인은 그 역할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간신히 붙들고 있는 계획이란것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속죄를 위해서였다. 

남겨질 이들을 위한다는 건, 레인에게 무척 벅찬 일이었다.

“그래.. 왜 네가 지금껏 비밀로 부쳤는지 알겠네.”

고개를 뒤로 젖힌 레인이 손으로 눈을 덮었다. 커피 한 잔으로는 피로를 완전히 억누르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친우를 바라보던 아르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 찻잔을 내려두었다. 쉬라고 해도 제 말은 흘려보낼 그를 알고 있었다.

커피향이 방 안에 가득찰 즈음, 손그늘 아래에서 아르크를 바라보던 레인이 결의를 다진 듯 입을 열었다.

“아르크, 지금 한 얘기 계속 비밀로 해줄 수 있겠나?”

“노아에게?”

“그래. 언젠가 알게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생각에 잠긴 아르크가 연신 턱을 쓸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더 늘겠구만. 의심이 생기면 뭐든 파고드는 아이일세. 비밀이 유지되려면 정보에 가는 길을 막아야겠어.”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똑-똑-’

은밀한 대화 사이에 불청객처럼 노크 소리가 끼어들었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한 레인이 노아가 돌아왔음을 짐작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 갖다둔 커피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식어가고 있었다. 테이블이 흔들리며 표면에 파동이 일었다. 

응접실을 나서는 레인의 뒤로 아르크가 걱정스레 말했다.

“부디 조심하게. 중앙이 지금 어떤지 알지 않은가.”

“위험은 처음부터 있었어. 나보다는 네가 조심해. 너도 나 못지 않게 주목받는거 알거아냐.”

“대마법관을 쉽게 건드리는 이는 없을걸세.”

문고리를 잡은 레인의 어깨너머로 미소가 희미하게 비치는 듯 했다. 

*

문틈사이로 푸른 머리카락과 단복이 일렁였다. 아직도 풋풋하게만 보이는 제자의 뒷모습에 아르크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르크의 등을 바라보던 아이가 이제는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제는 저 등을 밀어줄 차례다. 

책상 앞에 앉은 아르크가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모서리가 닳은 낡은 사진속에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두 아이가 서 있었다.

-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복도에는 출근하는 마법사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소란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들어서던 마법동이 아닌 그 반대 방향에, 이제부터 노아가 상주하고 있을 목적지가 연구동에 있었다.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자 노아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층계를 안내하는 홀로그램 표지판에 연구동 통로로 안내하는 화살표가 보였다. 방향을 따라 이동하자 얼마지나지 않아 커다란 문이 보였다. 연구동과 마법동 통로 끝을 가로막는 문이었다. 노아가 단복주머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찾아 문에 파인 홈에 얹었다. 아침에 마법동 행정실에서 새로 발급받은 것이었다. 홈 안에 새겨진 마법식이 신분증을 인식하자, 중심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문 전체에 새겨진 마법식에 퍼졌다.    

‘우르릉-’ 

모든 확인을 마친 문에서 육중한 소리가 나더니 양 옆으로 벌어지며 사람 하나가 드나들만한 틈이 생겼다. 틈 사이로 들어간 노아가 거침없이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연구동으로 향하는 길목은 꽤나 번거로웠다. 통로는 별칭인 ‘철벽’답게 보안 샬레인이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어서, 샬레인을 마주할 때마다 신분증을 스캔해야 했다. 덕분에 노아는  주머니에 카드를 넣으려던 것을 포기하고 아예 손목에 신분증과 연결된 목걸이 줄을 감고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노아의 발소리와 보안이 해제되는 소리가 운율처럼 번갈아 들렸다. 그렇게 10번을 반복한 끝에 모든 보안 샬레인을 통과하고나서야 신분증은 노아의 손에서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연구원이 실종되었다,라-”

지나온 길을 둘러보는 노아의 눈에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마법사다”

“마법사가 왜 여기있어..?”

너무도 익숙한 시선과 말들에 노아는 헛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마법동도 마법동이지만 연구동은 그보다 더 경계심이 가득한 곳 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마법동은 ‘노아’를 거부하는 것이고 연구동은 마법사 자체를 꺼리는 듯 했다. 

이유야 어쨌든 노아는 공식적으로 연구동 출입을 허가받은 상태라 내쫓길 염려는 없다. 하지만 노아와 마주친 연구원이나 공학자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기 바빴다. 혹여나 품에 있는 문서 한 자라도 볼까봐 꽁꽁 싸매고 들어가는 모습에 있던 어이마저 가출해버릴 지경이었다.

어차피 노아가 봐도 모르는 것들이었고, 관심도 없건만. 

“이렇게 일찍 올 필요는 없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레인이 노아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밤새 연구를 한 것인지 흰자위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이런꼴로도 연구소를 가려나 싶어 노아는 팔짱을 끼고 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꺼운 책을 품에 안은 그의 손에는 보기만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새까만 액체가 가득 든 머그컵이 있었다.   

“일찍도 아닙니다. 이미 마법동의 마법사들은 출근했을 시간이기도 하고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계는 어디 둔 겁니까?”

“방에.. 어차피 연구소갈땐 잘 안 챙깁니다. 거슬리기도 해서.”

“창문이라도 보고 사시죠. 해가 뜨고 지는건 보실거 아닙니까?”

“제 연구실은 지하라 창문이 없습니다만.”

노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차피 제가 옆에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는데.. 당신, 그러다 다른 이유로 단명할겁니다.”

“노아, 나는 당신 스승과 친우입니다.”

“그래서 뭐요, 신체나이와 외견상의 나이가 꼭 일치하란 법도 없습니다만.”

레인과 아르크. 두 사람을 그냥 두고 보면 노인에 가까운건 아르크였다. 하지만 아르크에게는 활기가 넘쳤다. 어찌나 활력이 대단한지 그 많은 자료들을 조수도 없이 혼자 옮겨오고, 새로운 마법을 시험해보겠다고 타 구역의 아카데미까지 포탈이 아닌 제 발로 직접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레인은 지난 번 시내에서 습격받고  도망친게 용하다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품에 안은 책 무게를 못 이겨 휘청이고 있지않은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레인이 조용히 문고리를 쥐었다. 

“쉴 땐 쉬십시오.”

“...그건 내게 사치입니다.”

“내게 무리하지 말라 했던건 레인이지 않습니까?”

“....세 시간뒤에 연구소로 이동할겁니다.”

노아의 시선이 여전히 레인에게 머물러 있었다.

“..눈 좀 붙이고 갈 겁니다. 계속 그렇게 볼 겁니까?”

“뭐..믿어보겠습니다. 그럼 세 시간뒤에 봅시다.”

어깨를 으쓱이며 레인의 방을 향해 손짓한 노아가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방 안까지 들어갈까 싶었지만 사생활은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진짜 거기 그러고 있을겁니까?”

“원하신다면 당신 잠버릇까지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만.”

“노아-!”

흘겨보는 레인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자 레인이 고개를 가로 젓고는 방 안으로 사라졌다. 

생각보다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저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아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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