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이름

오즈여현

특별히 죽음의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야, 평화롭고 평범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이 세계와는 다르게, 달이 재앙으로 불리는 것도 없는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아키라는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성인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은 있었다. 일상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한 모험을 꿈꾸니까. 실제로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작은 속임수라고나 할까.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단지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까, 그들이 너무 절박해 보여서, 동료를 구하고 싶은 선한 마음을 믿고 싶어서. 이유야 여러 가지 댈 수 있다. 어찌 됐든 제일 중요한 것은, 아키라는 그들의 손을 잡았고, 도와주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이끌림 끝에 오즈를 만났다.

‘현자여, 손을.’

그의 앞에서는 모든 생명이 바람 앞 촛불과도 같다.

끄는 것은 간단하지만, 굳이 끌 가치조차 없는― 켜져 있는지 아닌지도 관심 없을 자그마한 불꽃들. 불꽃을 꺼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그가 실제로 지금까지 꺼온 생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은 아키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손짓 하나로 대지의 모양을 뒤틀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또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마치 완전무결한 마왕. 항상 고독을 두르고 있는 듯한 차가운 청년.

아키라는 망설이다 끝내 그의 손을 맞잡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가운 손. 꽉 쥐면 바스러질 것 같은 물건을 잡는 것처럼 조심히 다루며, 오즈는 아키라를 끌어당겼다. 그는 생명의 가치나 덧없음은 모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시야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 무척이나 간단한 이유다. 언젠가 그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삶에 대한 열망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아키라는 오즈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되새긴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가끔 어째서 이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지기도 한다. 올려보면 그저 아름다울 뿐인 달을 두고, 이 세계에서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탑의 꼭대기에서 창밖으로 몸을 내밀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공격을 피하기 위해 주변 건물, 그것도 탑 안으로 돌아온 시점에서 이렇게 될 결말이라고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반쯤 올라온 시점에서, 꼭대기 층까지 도착하면 위험하겠는데,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품에 쥔 것을 놓아줄 수는 없었다. 당장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놓치게 된다면 훗날 큰일이 벌어지는 물건이다. 물론, 해결책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희생된 끝에 수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냥한 모두도 그렇게 말해줄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던가, 그 순간 현자님이 죽었다면 더 큰 일이 되었을 거라던가. 그래도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는 가까워질 뿐.

어쩔 수 없잖아, 나는 현자니까.

그녀가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다. 원래는 달을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달이 재앙의 상징이 아니었던 시절.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나는……

쾅!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잠금장치가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방 안에 남겨진 것은 드디어 도망갈 곳을 잃은, 불쌍한 현자 하나.

‘……지 마라, 현자.’

현자는 결정해야만 했다.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이 물건을 지켜야만 할까, 아니면 우선 이 물건을 건네준 다음 돌아가 계획을 변경해야 할까? 현자의 결정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현자는, 그저, 결정해야만 했다.

‘너의 이름을 잊지 마라,’

떠오른 것은 ‘죽는 것은 간단하다’는 사람의 말. 죽는 것은 무척 간단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키게 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던 말했던 남자.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는 한, 타인의 이름도 기억할 것이다. 이름을 불리지 않으면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현자를 잡기 위해 누군가의 손이 뻗어온다. 하지만 그것은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었다. 아키라는 사람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탑 밖으로 몸을 던졌다.

“오즈, 손을!”

잡아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때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라서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키라는 오즈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자신의 마법사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현자로서 썩 좋은 행동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키라는 오즈가 이 손을 잡아주었으면 했다.

갈색 머리카락이 어둠이 걷혀가는 하늘에 팔랑인다. 아키라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돌아온 것은, 수많은 자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붉은 눈동자. 촛불을 끄는 것처럼 간단하게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손. 시끄러운 빗소리를 일순에 지워버릴 것 같은 강력한 낙뢰와도 같은 목소리. 

“……《복스노크》”

아키라는 오즈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 누구의 온기도 바라지 않고, 고독한 눈 폭풍 속에 혼자 살아가는 사람. 겨우 소중한 것 하나를 찾았는데, 그마저도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 세계를 알았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사람. 그 누구의 손도 맞잡을 일 없었던, 모두가 경외해 마지않는 마왕 오즈.

그가 드물게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잡고자 하는 것은 현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현자’이기에 뻗은 손을 붙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름이 불려졌기 때문이다. 아키라가 오즈의 이름을 크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서서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던 오즈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오즈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손을 붙잡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최대한 간단한 마법으로 붙잡는다던가, 아슬아슬한 범위에서 이동시켜 마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던가. 재앙의 기묘한 상처 때문에 실패하지 않도록, 조절했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

이름을 불린 순간 그것에 답하고 싶었고, 손을 잡아달라고 했기에 당장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마왕이라 불리며 세계를 파괴했던 자가, 이름을 불려 손을 뻗었다. 그것은 마치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오즈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서, 결코, 용기만으로 뛰어내린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 떨림은 결코 오즈를 향한 공포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손을 뻗은 것은 언제나 작고 약한 생명이었다. 간단히 살해당하지 않을 만큼 강한 마법사가 아닌, 변변찮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것 같은 생명이었다. 작고 평범한 촛불 하나가 그의 어둠을 밝힌다. 그것은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한 빛이었지만, 기나긴 밤을 끝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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