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떠나자
서카닥터 (서카박사)
눈을 떴다.
눈을 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울었다.
울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이 울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사람만, 없었다. 그것은 처음, 울부짖는 나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내 눈물이 그치지 않자 그것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울음 섞인 비명으로 저리 가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 모습은 지금이라도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이 선명한 그녀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스카디. 네가 바란 것들이… 정말 ‘이거’야?! 그렇게 소리쳐도, 그녀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내 언어를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탐색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바다.
어느새 내 눈은 바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박사, 어디를 보고 있어?“
하지만 금방 눈을 돌리고 아무도 없는 해안가를 돌아다녔다. 혹시 아직 무언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것들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계속 해안가를 벗어나 육지로 향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까지 다다랐을까? 나도 그들처럼 여기를 버리고 떠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육지를 향해 걸으면, 그것이 내 뒤를 따라온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내가 이 바닷가에 남으면, 그녀를 이 바닷가에 묶어둘 수 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테라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안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곳으로 가고 싶은 거야?“
눈을 감았다.
조용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자.“
눈을 떴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당신과 함께할게, 박사.“
눈을 감았다.
여전히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함께 떠나자. 공기 중이라도 헤엄쳐서, 우리,“
눈을 떴다.
그녀의 그림자가 보인다.
”드디어 나를 봐주는구나.“
그것은 내 곁에 남아있다. 내가 어디로 도망가도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선물상자를 들고, 이것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는 지쳤다. 힘들다. 그저,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로도스 아일랜드로, 나의 집으로, 켈시와 아미야가 반겨주는 곳으로. 그녀들이 있는 곳은 알고 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그날, 켈시가 말했다. 너는 결코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아미야가 손을 맞잡고 울며 애원했다. 박사님은 저 멀리로 떠나달라고. 하지만 나는 떠나는 법을 몰랐다.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마지막 등대조차 빛을 잃었고 우리의 함선은 바다에 녹슬어 기동을 멈추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 나에게는,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으며, 행복했던 과거는 외로움을 더해가는 고통일 뿐이다. 눈을 뜬 순간부터 그들과 함께한 탓에, 이 넓은 대지에 동포가 없다고 한들 그들이 내 가족이었기에,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기에……
처음으로 그녀의 입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내가 곁에 있으면 방해가 될까?”
참혹한 과거가 되살아날까?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었고, 차마 거부 같은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밀어내기에 내 고독은 너무나 깊었다. 사실은 밀어내야 하는데, 내 손은 그녀를 향해 뻗어있었다. 이제 알 수 없다. 나는… 여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바다에 갇혀있는 것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걸 허락해 주었으면 해.”
아, 그저 그녀를 거절하기에 나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가 사라져 버린 세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갈증은 느껴지지 않으니, 상관없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손은 바다보다 따스하다.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때가 오면 이런 곳에서 함께 도망치자. 어때?”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가 줄 테니까.
어디든 좋아.
어디든 같아.
네가, 오직 너만이 달라.
나는 밀려오는 파도를 피할 줄도 모르고, 그저, 휩쓸려 떨어졌다. 깊은 곳까지, 아주 깊은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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