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손톱

박사x팬텀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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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나는 눈 앞에 놓인 가느다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극단은 손톱 하나까지 다 관리하는 걸까? 분명 암살을 포함한 거친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장갑 아래에 드러난 손가락은 가늘고 세심하게 그지 없었다. 이 손가락으로 팬텀은 때로는 적군의 숨통을 끊고 때로는 섬세한 예술을 펼친다. 극단은 이 둘의 차이를 두지 않겠지. 갑자기 드는 생각에 헛웃음을 삼키고 천천히 손톱의 끝을 더듬었다. 날카롭고 단단하다.

“예쁘네.”

팬텀이 고개를 든다.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거 색 말이야.”

알록달록 원색의 메니큐어들은 사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손끝에 정말 이런걸 발라도 되는걸까? 팬텀은 아무렇지 않게 굴지만 나는 진짜 많이 신경쓰인다. 장갑 아래에 가려진다고 해도 말이지. 이런 알록달록한 색으로 손톱을 칠한다고? 손가락마다 다른 색으로?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싸우다가 장갑이 벗겨지면 여기에 눈이 팔려서 적군에게 빈틈이 생길 것 같다. 물론 팬텀은 단장의 작품을 망가트리고 싶어하고 이런 행동은 정말 그런 망가트림에 아주 적절할 하겠지만.

그런데. 싫어!! 이런 건 내가 싫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아서 매끄러운 손에서 시선을 떼려고 고개를 들어 팬텀을 바라본다. 그러면 이제 약간 어긋난 대칭의 둔탁한 귀걸이가 시야에 잡힌다. 아!! 안어울린다!! 안어울려!! 좀 더 레이스나 반짝한 비즈 아니면 큼지막한 알알의 그런. 그런거를 달아주고 싶다. 저런 둔탁한거 말고. 하지만 팬텀은 그냥 시선을 마주하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일 뿐이다. 이와중에 왜 귀엽냐. 이거 중증이네.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면 곱고 얇은 손이 다시 눈에 잡힌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면 손목에 났던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 어떤 흔적도 없다. 은근슬쩍 손목을 매만지고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속으로 아주 긴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귀걸이 이후로 팬텀은 자해하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법. 팬텀은 잘생겨서 저런 귀걸이로 외모를 억누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귀걸이에 익숙해지면 그냥 저런 흠결도 유도한 매력이겠거니 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우리가 목표한 단장의 작품을 망가트리는 결과는 얻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손가락에 알록달록 색을 칠하라니? 지금?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팬텀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기를 바랬을 뿐인데 점점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아니 우리가 왜 이렇고 있을까?

“팬텀. 이번엔 내 취향에 맞는 걸로 고를거야.”

“박사?”

“내 취향대로 할거라고. 내 미감을 믿지마. 그럼 돼.”

무턱대고 대꾸한 다음 팬텀의 손을 잡고 그 끝에 파일을 대고 조심스럽게 다듬는다. 분명 관리를 받으려고 한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로 만지고 싶다. 작품을 다루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그러니까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고 싶다. 그래서 초기 목적을 달성하는 대신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기로 했다. 더 이상 팬텀하고 단장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약간의 질투와 약간의 오기 그리고 스스로는 알지못할 약간의 음습한 감정을 품고 주절거린다.

“어차피 나는 전술이나 서류나 뭐 그런 거에나 능하지 예술도 분석쪽에 가깝고, 손끝이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야.”

이걸 왜 구구절절 변명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팬텀을 닮아가나 보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해주는 걸 받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마. 까지면 나 찾아오고 알았지?”

팬텀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금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뱉은 다음 진짜 심혈을 기울어서 손톱을 다듬어간다.

“…”

조용한 방 안에서 손톱이 갈리는 소리만 샥샥 난다. 영상에서 봤을 때에는 이렇게, 사선으로 기울어서 문지르고 또 이렇게 눕혀서 긁으면 되었던 거 같다. 조심스럽게 파일을 이리저리 손톱에 대보고 아주 천천히 슥슥 움직인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영상만큼 쉽지가 않다. 영상에서는 엄청 쉽게 팍팍 움직이던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어? 파일에 닿는 감촉이 이상해서 손을 거두면 손톱이 아니라 팬텀의 피부가 까져서 붉게 부어있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박사 무리하지마라.”

“조용히 해. 집중하고 있으니까.”

점점 멈칫거리고 갈팡질팡 하는 나에게 보다못한 팬텀이 말을 건다. 아오 진짜. 나도 내 솜씨 최악인거 알아!! 부끄러움에 치솟아서 팬텀의 말을 잘라버리고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손톱을 눈 앞으로 가지고 왔다. 분명 분명 이렇게 하면 깔끔하게 나왔는데… 왜 이렇게 된거지? 조용히 하라는 말에 바로 입다물어 버리는 팬텀의 행동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차마 미안하다거나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팬텀의 손톱이 점점 아작나고 있으니까. 집중하고 신경쓰고 노력했는데 왜 더 못나졌지? 너무 처참한 광경에 눈을 꾹 감고 심호흡한다. 그래 내 손끝 야물지 못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알고 싶진 않았어!! 차라리 팬텀에게 스스로 하라고 시키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망했네.”

“…”

팬텀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눈치를 본다. 손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꿋꿋하게 다음 손가락으로 옮겨가 파일로 삭삭 문지른다. 이번에는 잘 할거야.

“…”

말을 하지 못하는 팬텀에게서 안절부절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걸까 싶어서 황급히 파일을 다시 떨어트리자 이제는 손톱 사이로 피가 스며나왔다. 아.

우린 왜 매번 피를 보는 걸까.

“으악 미안해!!”

“…”

팬텀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몸짓으로도 충분하게 의사전달이 와서 박사는 머리를 짚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왜 내가 받을 충격을 걱정하냐!!

“말해. 말해도 돼. 아프면 말해야지!!”

“아프지 않다.”

아니 첫마디가 그거면!!!!! 물론 화살 맞고 동상 걸리고 하는 일이 일상인데 이정도의 살 까짐이야 통증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통증은 원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 때문에 고통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역치가 점점 낮아져서 고통을 받으면 받을 수록 생존을 위해서 같은 강도의 자극이 오더라도 더 큰 고통을 받기 마련이야! 고통은 적응할 수 없어. 고통에 노출 될 수록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받게 되어 있다고. 이런 작은 고통으로는 도망치지 않으니까. 살기 위해서 고통을 더 늘린단 말이야!!

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인상을 뭉그러트리고 혀를 강하게 깨물었다. 따진다고 되겠어?

“아프지 않아도 말해야 해.”

팬텀은 묵묵하게 손끝에 맺히는 피를 바라볼 뿐이다.

“보는 내가 다 아프니까.”

“알았다.”

“상처나 통증을 숨기라는 뜻이 아니야…”

이 평행선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처참한 손톱의 끝을 보면서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다. 나의 목표는 팬텀이 다치지 않는 거고 팬텀의 목표는 단장의 작품을 망가트리는 거다. 나는 팬텀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는 단순히 상처만 이야기 하는게 아니다. 그의 스스로를 향한 태도나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포함이 된다.

“팬텀.”

다친 손가락을 쥐고 그와 시선을 맞춘다. 하지만 팬텀은 시선을 마주하다가 결국 고개를 돌려 바닥으로 숙이고 만다. 고통을 마주하는 자세는 그렇게 늠름하기 그지없는데 사람을 마주하는 자세는 이렇게 소극적일 수 없다.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어서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팬텀은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마주하고 반발하고 있다. 그 과정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그의 의도가 아니다. 알고는 있다. 이렇게까지 단장의 작품에 오점을 남기고 싶은거라면. 차라리. 그래 그냥 인생에 오점을 만드는게 어떨까.

가령.

“나랑 결혼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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