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방정식
이그제큐터 단편
공상의 정원 직후. 쌍탑이 오기 전에 급하게 날조.
커플링 없음. 8000자.
이그제큐터 오퍼레이터 레코드 2 혹은 외전 만화 카프리치오의 내용이 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페데리코, 좀 쉬었어? 지형 변수 때문에 항로를 재계산해야 할 것 같은데 검토를 같이……."
말끝이 사그라졌다. 르무엔이 수도원의 작은 휴게실에 바퀴를 들였을 때, 페데리코는 곤히 잠든 리베리 쌍둥이를 한 팔에 하나씩 감싸안은 모습으로 푹 꺼진 소파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시간은 심야와 새벽의 중간, 휴게실은 황야만큼이나 어둡다. 오렌이 구호물자의 초동 분량을 조달해 왔다 해도 수도원의 모든 곳에 빛과 온기가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페데리코의 검은 광륜은 희미한 반사광 같은 번득임을 흩을 뿐 뚜렷이 빛나지 않는다. 너덜너덜해진 덧창 사이로 스미는 달빛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위치를 알아보는 데에 밤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늘에 잠긴 페데리코는 시선으로 설명을 부연하듯이 에렌델과 에스타라를 내려다보았다. 어깨와 뺨에 미약한 빛살이 부딪히며 옆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변함없이도 무표정하다.
"앞으로의 일정에 필요할 휴식을 취하려 이 방으로 오던 중에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하이먼의 행방이 걱정되어 잠들 수 없다고 호소하더군요."
살카즈들이 행장을 챙겨 수도원을 막 떠난 어수선한 시점이었다. 눈을 떼지 않고 아이를 돌볼 만한 여유가 남는 사람은 없었겠지. 르무엔은 끄덕이려다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멈칫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근시일에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거기까지만?"
"예."
제럴드의 부탁을 기억했으므로. 페데리코의 대답을 확인하고서야 르무엔은 안도했다.
"잘 했어. 하아…… 어쩐다."
"라테라노에 도착하면 신원을 등록하고 입양처를 찾아야겠죠. 설령 하이먼이 지성을 되찾았다 해도, 심해 주교와 동시에 자취를 감춘 점을 고려하면 향후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듣겠어."
르무엔이 목소리를 낮추자 페데리코는 품에 기댄 작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매사 쾌활한 아이들이었으나 부연 뺨에 눈물 자국이 얼핏 남아 있었다.
"괜찮습니다. 호흡과 맥박으로 미루어 안정적인 논렘수면 상태입니다."
맥박이라. 이 어둑한 방에 앉아서 작은 존재들의 가냘픈 혈류에 주의를 기울이고 병이나 영양 결핍의 징후 따위를 내내 확인하고 있었을까.
"……보챘을 텐데 어떻게 잘 재웠네."
"아이들이 요청하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옛날 얘기라도 해 달라든?"
"예."
르무엔은 호흡으로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쉬라고 교대한 건데 고생만 하고."
페데리코 쪽으로 다가갔다. 저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까. 깨진 채 방치된 타일이 바퀴 아래에서 이따금 덜걱였다. 그는 소파 곁에 휠체어를 고정한 뒤 페데리코의 품에서 두 아이를 내려 바르게 눕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몸이 맞닿았던 자리마다 겹친 체온이 제법 따끈했다. 페데리코 잘로가 피 흐르는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증거. 르무엔은 아이들의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며 당부했다.
"너한테 많이 의지하는 모양인데, 혹시 부담 되면 언제든 말해."
"당장은 괜찮습니다. 아동들은 대체로 요구하는 바가 직설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응에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도 있네……. 그치만 우리도 조만간 라테라노로 복귀하잖아. 이 애들만 따로 데려가려고?”
"이 둘은 하이먼이 은폐한 탓에 다른 주민들과 연고가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주민 중 위탁을 자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주민들은 당신이 파악하고 있으니, 그 경우 인선에 대한 판단은 맡기겠습니다." "알았어."
르무엔은 휠체어의 고정을 풀고 가볍게 동체를 뒤로 밀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달빛과 광륜의 빛으로 간신히 드러난 페데리코의 안색을 새삼스럽게 보았다. 공감은 물론 닿지 않고, 아직 그의 미세한 표정까지는 읽기 어려웠지만 ―
"……항로 검토는 내일 일찍 해도 될 것 같아. 넌 더 쉬어야겠다."
함께 일어나려던, 다소 수척한, 페데리코는 마른풀이 비어져나온 소파를 짚은 채 멈추었다. "시급하지 않은 과업입니까?"
"아직 시동도 안 걸렸는 걸."
그 말을 듣고 페데리코는 다시 자리에 바르게 등을 기댔다. 흔한 일 중독자라면 아직 괜찮다고 고집을 부릴 법한 시점에 순순히 권유에 따르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특유의 이성적인 판단이겠지.
“다른 일들은 지금 깨어 있는 인원으로 충분한가요?”
“리켈레 있으니까 됐어. 정 급하면 오렌한테 물이라도 끼얹어서 깨울게.”
“식수 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니 그런 용도라면 용수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참 합리적이네. 날벼락을 맞은 오렌이 흙먼지가 우러난 빗물을 흠씬 뒤집어쓴 채 역정을 내는 광경을 떠올려 보았다. 유쾌한 기분과 함께, 그 감정에 대한 생소함을 르무엔은 감각했다. 요 며칠간은 잠도 번갈아 자야 할 만큼 분주했던 탓이다. 한동안 이런 맑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르무엔은 기꺼이 잘게 웃었다.
“하하하……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좀 낫네.”
“? 저는 자원의 합리적인 활용에 대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알아. 아침에 깨울 테니까 눈 붙이고 있어."
"예."
르무엔이 물러나면 다시 적막하다. 휠체어가 귀향을 앞둔 수도원을 거듭 살피기 위해 멀어지는 소리. 긴 시간 풍파를 맞아 짚단처럼 성기어진 건물의 틈새를 작은 비스트들이 쏘삭이는 소리. 가느다란 숨소리들.
두 아이가 워낙 작은 탓에 아이들을 눕히고도 소파의 너비가 반은 남았다. 페데리코는 그 남은 자리에 잠시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같은 자세로 한참을 굳어 있던 전신에 고인 피로가 일시에 밀려왔다. 과연 모두가 휴식을 강권할 만한 상태였지만 잠들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두 아이가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휴게실 한켠의 낮은 찻상을 끌어와 소파 곁에 붙였다. 그리고 기온을 살핀 뒤 성도복의 망토를 풀어 아이들 위에 덮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르무엔의 방문으로 잠깐 멈추었던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 그는 아이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했다.
쌍둥이의 눈에 페데리코의 무표정은 '슬픈' 얼굴로 오인된 모양이다. 엄마를 찾으며 한소끔 훌쩍거린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자 미안해졌는지 페데리코의 얼굴색을 살폈고, 딴에는 의젓하게 그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쌍둥이는 자신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대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할 나이였다. 꽃 이야기를 하는 듯싶으면 엄마는 손재주가 좋아서 꽃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페데리코는 그 무지갯빛 탁류의 계통을 찾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에서 끝없이 미끄러지며 두 아이의 한가운데에 붙들려 있었다. 흘려넘길 수 없는 말을 포착할 때까지.
/엄마도 보고 싶고 까만 누나도 보고 싶어. 재밌는 얘기 많이 알았는데.
/맞아, 연주도 잘 했어. 그 커다란……뭐였지……첼로. 첼로랬어.
페데리코는 멈칫했다가 에스타라를 내려다보았다.
/……아르투리아의 연주를 들었나요?
페데리코의 시선에서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 에스타라는 골똘히 생각하며 몸을 좌우로 까닥였다.
/응, 엄청 어려운 말을 하면서…… '아이들은 마음이……'
/나 외웠어! '…마음이 가는 길을 언제나 알고 있으니,' 앗, 뭐였더라.
페데리코는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두 리베리가 아츠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이상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지. 걸리는 것이 없었다. 수다스러움도 이상행동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충분합니다. 당초에 감정을 정제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아르투리아의 아츠가 사실상 무효하다는 의미겠군요.
/……모르겠어!
/페데리코 오빠는 말이 어려워.
/여러분이 이해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러분의 증언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잘 했어?
/잘 했으면 칭찬 받을 수 있어?
거듭 다가붙어 목을 빼는 둘을 페데리코는 난해한 수수께끼처럼 바라보다가, 반응이 너무 늦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답을 찾았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리베리 특유의 결이 뚜렷한 머리칼이 손바닥에 낯선 촉각을 남겼다. 쌍둥이는 언제 엄마를 찾으며 훌쩍인 적이 있냐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오답은 아니었던 듯하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여러분은 성장기이니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합니다. 수면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제가 보완해 보겠습니다.
/또 하나도 모르겠어.
연령대에 맞는 어휘를 판단하는 기준을 페데리코는 거의 알지 못한다. 쌍둥이와 같은 나이였을 때도 이미 비슷한 말투를 쓰고 있었으니까. 문장을 정리하기까지 버퍼링이 4초 정도 필요했다.
/……평소 여러분이 잠들기 전에 하이먼 씨가 하는 일이 있었나요?
/재밌는 얘기!
/옛날 얘기…… 쉬운 거.
다행히 페데리코는 라테라노교의 경전에 쓰인 다양한 알레고리들과 그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을 알고 있다. 오락성이나 난이도는 그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이야기를 각색하는 재능도 없으니, 그저 외운 문장을 단어만 바꾸다시피 해 읊을 뿐이었지만.
/……하얀 날개를 가진 사람과 검은 날개를 가진 사람이 한 마을에 살았습니다. 둘은 자신의 날개를 매우 자랑스러워했기에, 마주칠 때마다 누구의 날개가 더 아름다운지를 두고 다투곤 했습니다. 낮에 싸우면 햇빛 아래 도드라지는 검은 날개가 이겼고, 밤에 싸우면 어둠 가운데 빛나는 하얀 날개가 이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노을이 지는 저녁나절에 마주쳤습니다……
너그러운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주었다. 뒷이야기를 번갈아 재촉하는 지저귐은 이내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되어 잦아들었다.
수도원의 공기는 아직 싸늘했다. 페데리코는 어깨에 기대인 아이들에게 체온이 전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안정된 호흡과 맥에 이상징후는 없다. 르무엔이 찾아올 때까지 그는 아르투리아의 의중을 생각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현재로 돌아온 페데리코는 창백한 달빛이 그린 대각선의 끝에 누운 쌍둥이를 내려다보았다. 피부가 희미하게 빛나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뺨에 돋은 솜털이 달빛을 머금은 탓이었다. 이렇게 어리다. 에렌델과 에스타라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평범한 아동들일 뿐이다. 아르투리아가 아무리 상궤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가졌다 해도 이들에게 어떤 책임이나 의무가 있다고 여길 리는 없다.
마르첼로 숙부는 아르투리아가 페데리코를 미워하는 이유를 짐작한 적이 있다. 페데리코의 존재가 아르투리아의 아츠나 그의 사상 자체의 효용에 대한 반례가 되기 때문이라고. 반면 에렌델과 에스타라에게 그의 아츠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유는 페데리코의 경우와는 달랐다 ─ 이미 아르투리아의 지향점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들은 아르투리아가 초래하는 혼돈과 가장 무관한 존재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르투리아는 방화를 앞둔 예배당에 둘을 대기시키고, 즉 아이들을 고의로 위험에 노출시키고는 페데리코가 이들을 보호하도록 유도했었다. 설령 방화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해도 페데리코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던 점으로 미루어 그 의도가 단순한 연민심일 리 없다. 분명 아이들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확인하고자 했을 터다……
단서가 부족하다. 그가 아르투리아의 의중을 알 길은 없다. 페데리코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르투리아가 이들에게 저지른 폭거가 지극히, 지극히 부당하다는 사실뿐이다.
성도의 축복을 받은 두 리베리가 새하얀 망토의 온기 속에서 기분좋게 깨어났을 때 페데리코는 자리에 없었다.
에렌델과 에스타라는 아이들에게는 텐트나 다름없을 커다란 천을 이고지고하며 수도원을 누빈 끝에 페데리코를 발견했다. 그는 검은 재킷 위에 붉은 영대만을 휘감은 단출한 모습으로 세르필리아와 무언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화창했고 두 산크타의 광륜은 오전의 햇빛 아래 빛무리를 둘렀다. 고사한 덩굴이 감긴 기둥에 비스듬히 기댄 세르필리아가 팔짱 위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으으음. 아동복지가 제6청 업무가 맞긴 한데, 지금 확답은 어렵고 나도 돌아가서 알아봐야 돼. 집행자가 고위험 직무다 보니 자격이 될지 어떨지.“
"그렇군요. 후견인의 자격조건에 안정성도 포함되니까요.“
"응. 네 신변을 걱정하는 사람이야 별로 없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지적이 나오겠지. 일 땜에 자주 자리 비우는 점도 있고."
"알겠습니다. 라테라노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문의드리죠.“
"으윽, 휴가는 틀렸네. 좋은 일 한다는데 뭐랄 수도 없고…… 당사자들 온다. 에렌! 타라!"
쌍둥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차, 뛰진 말고……." 뒤늦게 말렸지만 말을 들을 턱이 없다. 둘은 용케 깨진 포석이나 잡초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뛰어왔다. 어린이는 뜀박질을 하면 으레 저도 모르게 웃는다. 먼저 도착한 에스타라는 밭은숨과 웃음을 동시에 가누느라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어른은 대화를 멈추고 그 양을 기다려주었다.
"후, 하. 역시 페데리코 오빠 거였어."
이어 다가온 에렌델이 품을 다 차지한 천꾸러미를 고쳐들며 끄덕했다.
"응! 여기엔 이런 많이 하얀 옷 입는 사람은 없으니까."
페데리코는 그제야 에렌델이 양팔 가득 안아든 눈뭉치마냥 둥근 덩어리가 자신의 망토라는 것을 알았다.
“……저를 찾으셨나요?”
“응! 옷 돌려 주려고 왔어!”
숨을 다 고른 타라가 뒤쪽을 삿대질했다. “그리고, 그리고 저기, 오빠랑 같이 있던 까만 상자가 길을 잃은 것 같아, 그래서 계속 우릴 쫓아오고……,”
“……그것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고 잠시 여러분을 호위하도록 제가 지시했을 뿐입니다. 일단, 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렌이 두 손으로 자랑스럽게 천덩어리를 내밀자 얼굴이 다 가려졌다. 그는 소년이 건네준 망토를 동작 한 번으로 펼쳐 둘렀다. 매끄럽게 다가온 검은 드론이 매무새를 정리하자 금세 단정해졌다. 그리고 페데리코는 근사한 볼거리에 눈을 반짝이던 쌍둥이를 향해 몸을 낮추었다.
"마침 여러분이 라테라노에 도착한 뒤의 처우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하이먼이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이니, 누군가가 대신 여러분을 양육해야 합니다. 돌아가면 바로 보호자를 물색할 겁니다."
사라진 어머니의 화제가 나오자 쌍둥이는 흙탕에 씻긴 듯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여러분의 생활을 지원하는 보호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생명의 위협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추적하고 있는 지명수배자 아르투리아와……제가 연관되어 있죠. 그가 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과정에 여러분이 일방적으로 휘말린 이상, 제게는 앞으로 여러분의 안전이 보장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
상심의 흙탕에 뒤이어 이번에는 개념어의 홍수에 떠내려갈 지경이 된 아이들을 세르필리아가 제때 붙들었다. 그는 과장되게 손을 휘휘 저으며 다가붙었다.
"교통정리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오빠가 너희가 걱정되어서 후견인이 되고 싶다고 했어. 후견인이 뭐냐면…… 매일 같이 있는 엄마랑은 좀 다르고, 에렌이랑 타라가 잘 지내는지 종종 물어보거나, 만나러 오거나 하는 어른?"
"제럴드 아저씨 얘기다!"
"―제럴드는,"
"앗, 페데리코. 하지 마."
페데리코가 입을 열어 무어라 부연하기 전 세르필리아가 잽싸게 잘라냈다. 며칠 새 그도 페데리코를 제법 파악한 덕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상당히 함축된 만류였지만 페데리코는 다행히 바로 알아들었다.
"……비슷하겠죠. 이것이 완전한 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점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 업무가 대부분 외근으로 이루어지는만큼 입양은 불가능하니까요. 다만 제가 여러분의 후견인 자격을 얻는다면 향후 있을 입양 희망자 심사에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한숨을 돌리던 세르필리아는 이어지는 말에 질려버렸다. "……입양까지 고민은 해 본 거야? 그 새에? 엄청나다 너도."
"가능한 모든 대책을 고려했을 뿐입니다."
변함없이 무감동한 대답이다. 집행자의 서슬퍼런 심사를 받게 될 그 미래의 보호자에게 벌써부터 동정심이 들었다.
"어련하겠어……. 어쨌든 당사자 의견이 제일 중요하지."
아이들은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어른들의 모습을 공놀이의 공을 쫓듯 좌우로 구경하고 있었다. 둘에게 시선을 돌린 세르필리아는 페데리코의 옆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에렌델과 에스타라의 어깨에 얹었다.
“얘들아, 만약에 여기 페데리코가, 앞으로 가끔 너희가 잘 있는지 보러 오고 그런다고 하면……"
"좋아!" "매일 와도 돼."
말이 끝나기도 전 거의 동시에 즉답이 튀어나왔다. 세르필리아는 픽 웃으며 페데리코에게 눈썹을 들어 보였다.
“……그렇다는데. 후견인 자격은 뭐, 성도 예하시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정해진 규율을 깨는 용도로 칭호를 활용할 예정은 현재 없습니다. 절차는 공정하게 거칠 겁니다.”
이쪽도 칼같은 즉답이다. 리아는 그래 누가 말리겠어, 라는 투로 들먹했다가 다시 아이들을 향했다.
“자꾸 어른들끼리 어려운 얘기 해서 미안. 에렌이랑 타라는 이제 걱정 없겠네! 엄청 센 삼촌이 생겨서~!"
세르필리아는 쌍둥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며 둘이 꺄륵거리는 모양을 한참 즐겼다. 페데리코는 세르필리아가 장난을 치는 내내 미간을 희미하게 좁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가 자리를 비키려 할 즈음에야 뒤따라 일어서며 반박했다.
"저와 이들은 혈연 관계가 아닐뿐더러 종족조차 다릅니다. 그런 호칭은 부적합합니다."
“그래 그래. 호칭은 당사자 간 합의를 거쳐서 정하시고. 일단 상담은 해결된 거지?”
“예.”
세르필리아는 수도원의 본관 방향을 눈짓했다. “난 리켈레랑 민원 담당 교대하러 간다? 걔 지금쯤 반 시체일 걸, 어제 세 시간인가밖에 못 자서."
"함께 가죠. 아이들은 주민들과 함께 있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러자 그럼. 타라! 아침도 안 먹고 페데리코 오빠 찾아다녔지! 언니가 식당까지 안아 줄까?"
"혼자서도 갈 수, 꺄아!"
리베리는 다른 종족보다 체중이 가볍다. 그렇잖아도 작은 소녀는 세르필리아가 단번에 훌쩍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둥실둥실 안긴 에스타라를 보고는 에렌델은 덩달아 기대에 차 초롱거리는 눈빛을 페데리코에게 쏟아부었다. 페데리코는 그 눈에 담긴 요구의 해를 찾느라 지체한 끝에 간신히, 확신 없이 물었다.
“……에스타라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실까요?”
"저거 재밌어 보여!"
"…………이쪽을 잡으세요."
"응!"
무람없이 어깨에 올라앉은 에렌델의 균형을 잡아 주며 페데리코는 호칭에 대해 생각했다. ‘삼촌’. 마르첼로 숙부.
후견인은 특별히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아동의 양육권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견인도 역할을 다할 수 없을 때에는 후견인의 가족에게 연락이 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르첼로 숙부에게도 간단한 자초지종을 미리 설명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번 결정은 아르투리아와 관련이 있는 일이기도 하니.
그가 양친을 잃은 후 숙부에게 의탁한 경험은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받은 선의의 원환을 완성하는 근사한 알레고리를 빚고 있음을 자각하지 않는다.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기에 행할 뿐이다.
수백 년 뒤 누군가가 성도 페데리코를 칭송하는 작품을 그린다면, 그 첫 장이나 두 번째 장쯤에는 안온히 잠든 이종족의 아이들을 흰 옷자락으로 감싸안은 청년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 미래 또한 페데리코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어깨 위에 올라앉은 소년이 다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가늠하고 있다. 어떤 계산은 사랑보다 헌신적이다.
-
설정 날조 많아요. 테라설정집을 샀는데 중국어 까막눈이라 모셔만 두는 중….
글섭에서 성도 페데리코에 대한 경칭은 총대주교급인 Your Beatitude가 쓰입니다. 번역하기가 애매하네요… 교황 아닌 성도는 최초이니 호칭 문제로 꽤나 갑론을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베리아의 성도는 경칭으로 Lord를 쓰는 듯합니다.)
쌍탑 아직 못 읽은 현시점에서 제일 두려운 부분: 이격 시점에서 마르첼로씨 살아 계시려나………??? 돌아가셨으면 글 수정해야 해………………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