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의 제국 - 이결
드라마 '궁' AU 황태자 자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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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시오. 그들은 해맑게 상투를 감는다. 신들은 오뚝이 같군. 무릎은 까졌지만 멀쩡합니다. 물러들 가라.
짐은 폭군처럼 피곤하구나.
신들의 불찰입니다. 헐레벌떡 그들은 망건을 풀고. 천진하게 무릎을 꿇지 폐하 통촉하세요. 바지가 점점 짧아집니다.
짐은 팬티만 입은 것처럼 허전하구나. 아버지는 겁쟁이에요. 짐이 미안해. 사과하고 싶어서 아빠가 너를 낳았지. 필요하니까.
너도 애를 낳으렴. 깨끗한 무릎을.
- 미안의 제국,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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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진기주
이결
李潔
*
21세 여성
173cm
A대학 재학 중
(철학 전공, 정치외교 복수전공)
가려진 15년, 이젠 나를 돌려받을 차례.
[속보] '황가의 경사' 황실 쌍둥이 탄생
우리. 의 탄생은 모든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다. 2002년 3월 24일의 일이다. 이란성 쌍둥이. 3분 먼저 태어난 남자아이 '결', 뒤이어 태어난 여자아이 '연'. 이 집안의 모두가 기뻤겠지. 좋았겠지. 황실의 대를 이어줄 아들과, 온갖 군데에 얼굴을 팔며 대외적으로 황실의 이미지를 만들어줄 딸이 동시에 찾아왔으니. 그렇게 우리는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다른 듯 닮게. 닮은 듯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뜸을 들이며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사건이 있는 법이다. 6살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4월 경. 결은 의문사 했다. 말 그대로 의문. 이었다. 극비리에 진행된 부검에서도 그저... 급성으로 심정지가 왔다고 할 뿐이었지 무엇이 그 아이의 심장을 멈추게 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아바마마. 어마마마는 곧장 나를 데리고 흰 배경에다 사진을 찍었다.
연, 잘 들어. 너는. 지금부터. 결이로 살아가야 한다.
너는. 결이다. 연이는 이제 없는 사람이야.
그 길에 바로 머리카락이 짧게 잘렸다. 옷도 남자아이 옷으로 바꿔 입었다. 나는 잉잉 울면서 물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오빠는, 어딨어요? 왜 제가 오빠예요? 그럼 이제 요술공주 핑키도 못 봐요? 공주치마도 못 입어요? 여자애들이랑 못 놀아요?
그들은 아무 말 않고 나를 안아주며 흐느끼기만 했다.
[속보] '황가의 비극' 황손의 돌연사
이 일 역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성대한 규모로 치뤄진 결의 장례식. 아니지. 나의 장례식이지...
이연(2002.03.24.~2008.04.07.)
거기서 똑똑히 쓰인 내 이름을 보고 눈을 비볐다. 바로 위쪽엔 그 때 찍혔던. 웃음기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마지막 긴 머리 사진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죽었고. 저기에 누운 건. 내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내가 아닌 것이다. 여섯 살의 머리로는 도저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떤 불가항력적인 생존본능으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황가의 자손이니까. 집안의 체통을 지켜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도 늘 어깨가 무거웠다. 내 의지가 아니었어도, 어찌 되었든 대국민 사기극의 중심에 서야 했으니.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괜찮았다. 머리를 짧게 해놓으니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분간도 안 갔다. 문제는 사춘기에 접어들고나서부터.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뚜렷해질 시기가 되니, 성별을 속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집안에선 검소하고 국민친화적인 면모를 어필한다며 나를 국제중학교나 사립 학교가 아닌, 일반 남녀공학 중학교로 보냈다. 자연히 나는... 유약한 남자애가 되었다. 변성기도 안 와서 가는 목소리에, 체육시간엔 옷도 못 갈아입으니까. 그저 애가 몸이 너무 약해서 체육활동을 못 한다는 핑계로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화장실. 교직원 남자 화장실을 썼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가끔 달마다 남자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있으면 안 될 것을 치우는 청소 직원만이 조금 의아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따위로 사는데 내가 뭘 해... 가슴을 압박하는 보정속옷이 아니었어도 내 속은 늘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뜨겁고 답답했다. 매일 집에 돌아가 어머니 앞에서 울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결아. 몇 년만 더 참아주겠니. 간곡하게. 아. 이제 진짜 연이는... 없구나. 없는 거구나.
그 뒤로 어떻게 버텨왔는지 상세히 다 회상하기엔... 너무 힘이 많이 든다. 그러니, 적당히 눙쳐두고. 나는 그간 현대 황족의 자손들 치고는 변변치 않은 대학에 갔다. 물론. 일반인으로 놓고 본다면 못 간 축도 아니었다. 일단 서울권이었으니까. 나와 우리 집안은 황족으로서의 그 어떤 특혜도 거부하고 모두와 똑같이 입시를 치르길 원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했듯이. 내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최대한의 대학에 가는 게 최선이었고. 그게 A대 철학과. 였다. 이쯤 되면 전공이야 별로 중요치 않았다.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다고 해서. 우리 집안은 나를 나무랄 자격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젠 내 맘대로 살고 싶어져 슬슬 집안의 눈치를 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결아. 사실은... 너에게 이미 정해진 혼사처가 있다.
네? 내 나이 스물 하나. 결혼 이야기를 듣다.
얼마 뒤, 어느 주말. 우리 집으로 걸어 들어온 애는 대뜸.
결아...!!! 내가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아. 그러니까... 이 여자애랑... 결혼하라고요?
부모님께서는 또 한없이 애틋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너는 일단 서류상으로는 남자 아니겠니. 혼인신고서 쓰고 식만 올려라. 그 이후엔 저 아이랑 같이 살기만 하면 뭘 어떻게 해도 간섭하지 않겠다. 며 나에게 거의 비셨다.
...그런데. 진짜 결에게. 이런 여자친구? 가 있었던가? 아니. 있었다고 해도. 여섯 살 꼬마 시절의 약속은 별 효력이 없는 거 아닌가? 얘는... 어찌 그렇게 옛날에. 내가 하지도 않았던 약속들을 줄줄 읊으며 나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하는 거지? 좋은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일은 더 꼬여서, 그 애는. 같은 학교의 식물의학과에 다닌다고 했다. 게다가. 걔가. 너, 아직 동아리 그런 거 없어? 그럼 너... 게임 잘하냐? 나랑 같이 게임하고 노는 동아리 들자!! 고 졸라대는 것이 아닌가? 아... 여간 골치가 아픈 일이 아니다. 대대적으로 길일을 점쳐 정해둔 국혼식 날짜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놈의 형식. 그놈의 관습. 어쩔 수 없이 질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 애와 패물을 보러 다니니, 걔는... 나를 그동안 관찰해온 결과! 라며 나에게만 들리게 조심히 속삭였다...
너, 누구야? 너. 결이가 아니잖아.
언젠가는 들킬 얕은 거짓말이기는 했어도. 이딴 식으로 그런 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끝까지 외면하며 애써 반지를 고르고.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빠른 걸음으로 그 애와 함께 집에 돌아와. 내 방에서 문을 철컥.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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